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08)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08)화(108/162)
<108화>
셀로니아는 유심히 레이몬드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들고 있는 걸 태우려는 건가?’
소각장에 온 이유는 무언가를 소각하기 위해서일 테니까.
하지만 뭘 태우길래 직접 소각장에 찾아온 걸까?
쓰레기를 태우는 건 사용인들이 하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보좌관인 레이몬드가 궂은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하인들이 알아선 안 되는 비밀스러운 무언가라면 레이몬드가 직접 처리하는 게 마땅하다.
그렇지만 굳이 모두가 잠든 이 새벽에?
게다가 들키지 않으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수상한 행동까지. 확실히 이상하다.
“설마…….”
순간 무언가 번뜩 떠오른 셀로니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혹시 지금 레이몬드가 소각하려는 것이 아버지가 알면 안 되는 무언가가 아닐까? 그래서 이 시간에 몰래 나온 거고.
레이몬드가 아버지가 신뢰하는 최측근이라 할지라도 완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피네스트 부길드장이었던 길리안조차 뒤에서 몰래 아버지를 배신하지 않았던가.
또다시 뒤통수를 맞을 순 없었다.
‘확인해 봐야겠어.’
셀로니아는 단단한 나무를 붙잡고 고개를 내밀었다.
멀찍이 떨어진 레이몬드가 닫혀 있는 소각 기계의 손잡이를 위로 여는 모습이 보였다.
덮개가 열리자 레이몬드는 이윽고 망설임 없이 품에 가지고 있던 보따리를 들어 소각 기계 안으로 우수수 쏟아 내었다.
보따리에서 나온 하얀 종이들이 펄럭이며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
‘비밀문서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레이몬드가 보따리까지 기계 안에 넣고는 손잡이를 내렸다.
열렸던 기계가 닫히자 볼일이 끝났는지 그가 손을 털며 소각장을 빠져나갔다.
‘빨리, 빨리!’
셀로니아는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며 레이몬드가 모퉁이를 돌아 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종이는 불에 금방 타니 한시라도 빨리 달려가서 확인해야만 했다.
속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몬드가 모퉁이를 돌며 완벽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기계를 향해 빠르게 달렸다.
새벽 찬 공기를 맞으며 도착하자마자 바로 기계 손잡이부터 잡아 열었다.
기계 안쪽에선 불길이 화르륵 타오르며 스르륵 밀려 들어오는 종이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재 가루와 함께 불꽃이 사방에 튀어 올랐다.
레이몬드가 서류들을 깊숙이 안쪽으로 찔러 넣는 수고를 하지 않아서 몇 장이 입구에 걸려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결국 불똥이 튀어 그 서류들마저 모두 타 버리고 말겠지만.
한시라도 급히 바깥쪽의 서류들이라도 꺼내야 했기에 셀로니아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기계 옆에 부지깽이로 사용할 법한 기다란 집게가 놓인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집게를 집어 든 그녀는 걸려 있는 서류부터 잽싸게 끄집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사이에 튄 불똥으로 모서리부터 그을려 형체를 잃어 가는 서류를 두 발로 밟았다.
불씨는 발길질에 쉽게 사그라들었다.
그녀가 건진 것은 총 네 장의 서류였다. 나머지는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 형체도 없이 불에 타 버렸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셀로니아는 허리를 굽혀 종이를 집어 들었다.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과 흙을 털어 내며 빠르게 서류를 읽어 나갔다.
“청구서?”
비밀문서라고 생각한 것과 달리 네 장의 서류는 모두 청구서였다. 청구된 금액의 지불 처리가 완료되었다는 인장이 찍힌 서류.
품목은 적혀 있지 않지만 조금 특이한 것은 가문의 인장이 아닌 아버지 개인의 인장이 찍혀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고작 청구서일 뿐인데 레이몬드는 이걸 왜 몰래 버린 거지?
풀리지 않는 의아함에 계속 서류를 살피던 중 셀로니아는 청구서를 발행한 상점에 주목했다.
두 장은 드레스 전문 부티크에서 발행된 청구서였고 나머지 두 장은 보석상에서 발행된 청구서였다.
대부분 여성의 소비가 이루어지는 상점들이었다.
하지만 셀로니아는 근래 드레스나 보석을 구매한 적이 없었다. 만약 그녀가 구매한 것이라면 당연히 가문에서 비용이 처리가 되었을 테고.
혹 아버지에게 만나는 사람이 생긴 건가? 그래서 개인 비용으로 처리하신 거고?
꽤 일리 있는 추론 같았지만 레이몬드의 수상쩍은 행동에 대한 답으론 부족했다.
“왜…….”
고민에 빠진 얼굴로 여러 번 서류를 번갈아 쳐다보던 셀로니아는 한 서류를 꼼꼼히 살피다 온몸이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어마어마한 금액이 청구되어 있는 익숙한 상점 이름에서 무언가가 떠올랐으니까.
에르젤 보석상.
사냥제 때 그레이스가 하고 왔던 한정판 목걸이를 판매한 보석상이었다.
견본 책에서 미리 봤으나 자신은 구매하지 않았던 하나뿐인 목걸이.
청구서엔 품목이 나와 있지 않았고 그녀가 본 견본 책엔 목걸이의 금액이 쓰여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금액이라면…….
“설마…… 이거…….”
종이를 쥔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 * *
“다녀오십시오, 주군.”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일찍 저택을 나서는 탄을 향해 이우스가 깍듯하게 허리를 숙였다.
“다시 한번 허튼수작 부리다 걸리면 그땐 네 존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다. 명심해.”
탄은 붉은 두 눈으로 이우스를 노려보며 경고를 내뱉었다. 그 말이 진심이라는 듯 자신의 수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자비가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걸 알기에 이우스는 분한 마음을 삼키며 읍하였다.
찬바람이 도는 태도로 탄이 이우스를 지나쳐 저택을 나섰다.
남겨진 이우스, 아니 이우스의 몸에 들어 있는 톰은 멀어지는 주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두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젠장……!”
톰의 입에서 꾹 참았던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 여자에게 달려들었던 그날 이후 그는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언제 주군의 손에 죽임을 당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나 주군께서 저를 살려 두신 채로 곁에 두고 있는 이유는 그 여자의 말 때문이었다.
당장 선대공이 죽게 되면 문제가 될 거라는 그 여자의 말 하나 때문에.
그러니까 톰은 진작에 죽었어야 했으나 그 여자의 말로 인해 주군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감히, 감히 인간 여자 따위가 위대한 마왕을 손안에 쥔 채 쥐락펴락하려고 들다니……!
톰은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을 짓씹었다. 턱이 씰룩거릴 정도로 이를 가는 그의 눈동자가 활활 타올랐다. 분노와 배신감으로 얼룩진 채로.
“이럴 순 없다. 주군께서 이럴 순 없어.”
마왕의 재림만을 기다리는 수많은 수하들을 뒤로한 채 고작 인간 여자 하나에게 빠져서 이럴 순 없는 거다. 그것도 본인을 죽인 인간 여자한테.
게다가 어떻게 된 게 나날이 주군의 기운이 약해져만 가고 있었다. 이건 필시 그 여자가 주군의 기운을 앗아 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 애초에 그 사악한 여자가 주군의 기운을 모조리 빼앗아 독차지하려는 것이다. 주군과 같은 기운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절대 그렇게 놔둬선 안 된다. 감히 제깟 게 누구의 힘을 넘본단 말인가……!
그러니 그 전에 어떻게든 주군을 정신 차리게 만들어야 했다.
“톰!”
그때였다.
아주 오랜만에 들리는 목소리에 톰이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열린 문 너머로 이제 막 마차에서 내린 잭이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북부에 있는 마왕성에서 주군께서 기억을 되찾을 만한 촉매제를 찾기 위해 떠났던 잭이 돌아온 것이었다.
“잭.”
“내가 뭘 찾았는지 봐!”
그 소리에 톰이 잭의 손에 들린 커다란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본 톰의 입매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모든 것을 제자리에 되돌려 놓을 방법이 떠올랐으니까.
* * *
결국 한숨도 자지 못하고 뜬눈으로 아침을 맞이한 셀로니아의 얼굴은 퀭하게 변해 있었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어 대는 바람에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의원님을 불러올까요?”
“괜찮아. 그냥 잠을 설친 것뿐이라서.”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공작님께 식사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실 거라고 말씀 전해 올릴까요?”
걱정하는 엘라를 향해 셀로니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냐. 곧 내려가겠다고 아버지께 전해 줘.”
셀로니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
정신을 바짝 차리기 위하여 이 추운 날씨에 찬물로 연거푸 세수를 했다. 그녀는 얼얼하게 차가워진 뺨을 든 채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거울 속에 들어 있는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혼란이 깃든 채로 떨고 있었다.
아직 확인된 건 아무것도 없다. 쉽사리 속단해서는 안 된다.
레이몬드가 아버지의 개인 돈을 횡령했을 수도 있는 거다. 아버지일 리가 없잖아. 아버지가 왜…….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는 셀로니아는 세면대를 그러쥔 손에 힘을 주었다. 힘을 주지 않으면 자꾸만 손이 떨려 왔기에.
아닐 거야. 아니겠지. 착각한 거야.
셀로니아는 입술을 꾹 깨물며 자신에게 최면을 걸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한 번 피어난 의심은 쉽사리 가시질 않았다.
그러니 결국 이 의심을 없애기 위해서는 확실하게 알아봐야만 했다.
셀로니아는 멈춰 있던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다이닝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