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09)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09)화(109/162)
<109화>
다이닝룸에 들어서려는데 이미 자리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
셀로니아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으나 의심이 피어나 아버지를 의식하기 시작하니 긴장이 되었다. 손안엔 식은땀이 배어나기 시작했다.
“셀리.”
그때였다. 다정한 목소리가 다이닝룸에 들어선 채로 움직이지 않고 있던 그녀를 불렀다.
셀로니아는 천천히 떨리는 시선을 들어 정면을 응시했다.
그러자 식탁 의자에 앉아 고개를 돌린 채 저를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내려왔구나. 어서 앉거라. 오늘 네가 좋아하는 송아지 요리니.”
정다운 파란 눈동자가 담긴 아버지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셀로니아는 울컥했다.
언제나 그렇듯 애정 어린 미소였다. 늘 딸인 저를 위하던…….
그런데 아버지가 그레이스의 후원자일 수도 있다고? 그레이스의 술수에 당한 걸까?
머리와 마음속이 혼란스러웠지만 계속 이러고 있을 순 없었기에 그녀는 상석에 앉아 있는 아버지를 지나쳐 그 앞에 앉았다.
아버지는 외출복을 입고 있었다. 아마 식사가 끝나면 바로 외출하시는 모양이었다.
곧이어 대기하고 있던 주방장이 따뜻한 음식을 기다렸다는 듯이 내왔고 식탁 위엔 만찬이 차려졌다.
셀로니아는 조금 멍한 표정으로 포크와 나이프로 잘 익은 고기를 썰어 나갔다. 정신이 온통 딴 데 가 있었다.
그레이스는 남주들에 이어 제 아버지에게까지 술수를 부린 것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 왜? 단지 자금을 위해서?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아버지가 술수에 당한 것이라면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태도의 차이였다.
그레이스의 술수에 당한 것이 명확했던 맥라이언과 레예프는 언제나 그레이스에게 맹목적으로 굴었다.
생각이 없어 보일 정도로 물불 안 가리는 물소들처럼. 심지어 제가 앞에 있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물론 길리안은 앞에선 제가 부탁한 일을 처리하는 척 순응했지만, 뒤에서는 그레이스를 위해 일했다. 말 그대로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며 배신을 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길리안은 술수에 당한 건지 자발적인 배신인지 확실하지 않지.’
전에 길리안을 잡았을 때 그녀는 치유술을 쓰지 않았다.
치유술로 흑마법을 벗겨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레이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하여. 감옥에 가게 될 길리안에게 그레이스가 접촉할 게 뻔했고, 그랬다가는 그가 미주알고주알 다 일러바칠 테니까.
일단 길리안을 제외하면 맥라이언과 레예프 그리고 우연히 당한 에밀리라는 아이까지 그레이스를 향한 감정을 속이지 못한 채 온몸으로 드러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니었다. 언제나 그녀의 편이었다. 그러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이건 다른 종류의 흑마법인 걸까. 그것도 아니면 아버지는…….
“셀리, 입맛에 맞지 않으면 다른 음식을 준비하라 일러 주마.”
“아……. 아니에요. 방금 일어나서 그래요.”
셀로니아는 목뒤를 매만지며 정신을 차렸다.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제 모습을 아버지가 내내 지켜보신 모양이었다.
“잘 먹어야 건강해진다. 요즘 몸은 좀 어떠니.”
“괜찮아요. 건강해요.”
“그래도 끼니 거르지 말거라.”
“네. 그럴게요.”
달라진 것 없는, 언제나 그렇듯 다정한 부녀의 대화였다. 하지만 셀로니아의 마음은 불편하기만 했다.
청구서에 대해서 직접 물어봐야 하는 걸까?
술수에 당했다면 물어도 순순히 답해 주지 않을 텐데. 그럼 우선 해 볼 수 있는 것을 해 봐야 했다.
“아버지, 요즘 몸은 어떠세요?”
“하하하. 내 걱정을 하는 게냐. 역시 내 딸. 기특하구나. 하지만 이 아비는 걱정 말거라. 언제나 신경 쓰고 있으니.”
“기력이 허하진 않으신가요? 제 치유술엔 기력 회복을 돕는 힘도 있으니 제가 외출하시기 전에 봐 드릴게요.”
호쾌하게 웃는 아버지를 향해 셀로니아가 평상시와 다를 것 없는 목소리와 표정으로 자연스럽게 말했다.
“이런. 아비가 되어서 딸에게 기대서야 되겠느냐. 마음은 고맙지만 괜찮다. 아픈 곳 없이 건강하니.”
“아버지, 그래도 한번……!”
“셀리, 언제나 몸을 아끼거라. 능력도 마찬가지야.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남발해서는 안 되는 능력이다. 네가 가진 능력이긴 하나 그건 네 어머니가 남겨 준 게 아니더냐.”
“…….”
“별다른 일로 소모시켜선 안 된다. 늘 소중히 신중히 써야 한다. 이 아비의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짐짓 엄한 표정으로 말하는 아버지를 향해 셀로니아는 더는 억지를 부릴 수가 없었다.
이 정도까지 단호하게 나오니 아버지가 쓰러지지 않는 이상 치유술을 거부할 게 뻔했다.
그렇담 지금으로선 성수가 최선이었다.
레예프한테 한시라도 빨리 구해 오라 해야겠어.
“네. 그럴게요.”
“한데 셀리, 오늘 새벽에 나갔다 왔다더구나. 잠을 통 못 자는 것이냐.”
갤로웨이가 천천히 포크를 내리며 돌연 예리한 눈을 빛내며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설마 들킨 건가? 셀로니아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기사가 새벽에 들어오는 너를 봤다더구나. 멀리까지 나갔다 온 게냐.”
“아뇨. 그냥 중간에 잠에서 깼는데 다시 잠이 안 와서 앞에 있는 정원을 거닐다 들어왔을 뿐이에요.”
그녀의 입에서 절로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어 청구서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들킬 필요는 없으니까.
게다가 질문하는 아버지의 눈동자가 마치 제 속내를 파악하려는 느낌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래? 잠을 푹 잘 수 있는 약이라도 처방받아야겠구나.”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신경 써야지. 이 아비는 언제나 내 딸의 안위와 건강만을 생각한단다.”
곰살맞은 갤로웨이의 미소가 셀로니아를 향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미소에 애써 따라 웃어 보였다.
“공작님, 출발하셔야겠습니다.”
그때 레이몬드가 다이닝룸에 들어와 아버지께 알렸다.
“내일 가건물을 열기로 해서 오늘은 무척 바쁠 것 같구나. 아마 늦게 들어올지 모르니 먼저 자거라. 숙면에 좋은 약은 오후에 마련해 둘 테니 꼭 챙겨 먹고.”
“네. 감사해요, 아버지.”
갤로웨이는 빙긋 웃으며 셀로니아의 어깨를 다정히 두 번 툭툭 두들기곤 레이몬드와 함께 다이닝룸을 나섰다.
“…….”
홀로 남겨진 셀로니아의 입꼬리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앞엔 입도 대지 않은, 잘게 썰린 스테이크가 접시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 * *
“셀로니아.”
“…….”
“셀로니아.”
“예, 예?”
멍하니 마차 창밖을 보던 셀로니아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 있나? 안색이 왜 이러지?”
탄이 아까부터 얼빠진 사람처럼 구는 셀로니아를 살피며 물었다.
“탄, 아…….”
셀로니아는 답답한 마음에 아버지에 대해 탄에게 말하려 했으나 다시 속으로 삼켰다.
괜히 의심을 나눴다가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 싫었다.
탄이라면 함께 나서 줄 테니까. 그랬다가 만약 오해로 밝혀지면 그땐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 볼 면목이 없었다.
셀로니아는 지금 탄과 에르젤 보석상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청구서에 적힌 금액을 보석상에서 한정판이었던 그 목걸이 금액과 맞춰 봐야 했다. 금액이라도 정확하면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갈 테니.
“괜찮으니 말해. 무슨 일 있는 거지?”
“그럴 리가요. 잠을 잘 못 자서 정신이 살짝 멍한 거예요.”
셀로니아는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웃으며 탄의 손을 잡았다.
“또다시 아픈 건가? 쓰러질 것 같고 그래?”
탄은 걱정 어린 표정으로 손을 뻗어 셀로니아의 뺨을 만져 보았다. 다행히 열은 없었지만 그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너무 멀쩡해서 탈인걸요. 그나저나 당신은 어때요? 좀 호전되는가 싶더니 요즘 들어 통증이 더 심해지는 것 같은데…….”
셀로니아는 되레 탄을 걱정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탄은 통증을 느끼는 주기와 강도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전에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괴로워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드는 저 상처가 아물고 있는 것 같아 조금 안도했는데, 최근 들어 다시 통증의 강도가 점점 심해졌다. 그는 또다시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그럴 리가.”
말을 돌리는 셀로니아를 보며 탄이 픽 웃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으나 아프지 않은 거라면 다행이었다.
하기야 전처럼 그렇게 앓을 일은 없을 테다.
그는 무언가 눈치챈 듯하지만 실상은 모르는 셀로니아를 향해 고개를 내렸다.
툭. 서로의 둥그런 이마가 살포시 맞닿았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네가 더는 아플 일은 없을 거야.”
“제 걱정은 말고 당신 몸을 챙겨요. 이왕 외출한 김에 몸에 좋은 약초를 사야겠어요.”
“하여간 고집은.”
기분 좋게 말려 올라간 탄의 유려한 입매가 천천히 셀로니아의 입술로 다가갔다.
“헤헤헤…….”
그때 앞에서 들려오는 머쓱한 웃음소리에 셀로니아가 화들짝 놀라 탄의 얼굴을 밀어냈다.
“죄송해요…….”
엘라가 죄스러운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모른 척하고 싶었으나 키스 이후에 자신을 본 아가씨가 쥐구멍으로 숨고 싶어 할 걸 잘 알았다.
“아냐. 내가 미안하지.”
분위기에 휩쓸려 엘라가 앞에 있었다는 것도 청구서에 대한 것도 잠시 잊어버린 셀로니아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탄은 그렇지 못했기에 그는 도착할 때까지 엘라를 무시무시한 눈총으로 쏘아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몬테라에 도착한 마차가 멈췄고 세 사람은 남쪽 거리로 들어섰다.
“이곳이네요.”
“……하필.”
셀로니아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도착한 에르젤 보석상을 쳐다보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하필이면 오늘 문을 닫는 날이라니…….
내일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속이 너무 답답하다. 뭐라도 확실히 알아내고 싶었는데.
그때였다.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고?”
“원래 술수에 걸리셨을 때 잘만 선물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그걸 말이라고! 그땐 그때고 지금은 아니지! 얼굴을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워 죽겠는데 무슨 선물까지 해다 바친단 말이냐!”
“너무 오래 얼굴을 비치지 않으면 의심할 것입니다.”
부티크 거리를 걸어오며 옥신각신하고 있는 맥라이언과 레예프의 모습이 보였다.
들려오는 대화를 듣자 하니 그들은 선물을 사 들고 그레이스가 있는 베넷 저택에 방문하려는 모양이었다.
‘잠깐만…….’
베넷 남작저. 수상하다 소문난 지하실. 그리고 모든 시발점인 그레이스가 있는 곳.
“탄, 그때 바위를 그리핀으로 둔갑시켰었잖아요.”
“그래.”
탄은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셀로니아를 응시하며 답하였다.
“그거 사람한테도 할 수 있어요?”
어느새 고개를 돌려 탄을 마주 보며 묻는 셀로니아의 눈빛에 이채가 돌았다.
“문제없다.”
“잘됐네요.”
원하는 대답에 그녀는 씨익 웃으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 여자를 박살 내고 심장을 도로 찾아와도 시원치 않을 판에. 제길……!”
“맥라이언.”
그녀가 멈춘 곳은 맥과 레예프 앞이었다.
“셀로니아 님.”
“셀리!”
레예프와 맥라이언이 셀로니아를 보곤 활짝 웃었다.
하지만 맥라이언은 이내 다시 썩은 표정이 되었다. 그녀의 옆에 또 탄이 있었으니까.
“하루가 멀다 하고 붙어 있군.”
맥라이언은 불만스러움에 구시렁거렸다. 도대체 저 수상쩍은 놈이랑 왜 맨날 붙어 있는 건지.
“너 그레이스한테 가는 거지?”
“그래. 아직 들키지 말아야 한다 했잖아.”
“나도 가야겠어.”
셀로니아의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빛났다. 그곳에 모든 비밀이 있으리라.
하지만 후에 그녀는 생각했다. 그때 내가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러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