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11)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11)화(111/162)
<111화>
어둑한 쪽방 안을 대부분 차지할 만큼 커다란 테이블 위에는 바짝 말린 찻잎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우욱!”
찻잎에서 풍겨 대는 코를 찌르는 악취에 셀로니아는 두 손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익숙한 썩은 내였기에 가까이서 확인하지 않아도 저 찻잎들이 다즐링 잎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한눈에 봐도 양이 상당했다.
전에 스톰 길드의 다니엘이 알아봐 줬던 서류에 따르면 베넷 남작저의 한 주 다즐링 소비량이 다른 귀족들의 반년 치 소비량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진짜였다.
도대체 저걸 어디서 제조하는 거지?
다니엘이 그랬다. 간악한 흑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선 그만큼 대가가 필요한데 그것이 산 자의 목숨이라고.
이만큼의 양을 계속 만들어 낼 정도라면 분명 어디서 누군가 희생되고 있다는 건데…….
“왜 이래? 빨리 가서 포장해. 정오 전에 다 끝내 놓으라고 하셨단 말이야!”
하녀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셀로니아의 등을 떠밀었다.
속절없이 방 안에 발을 들이게 된 셀로니아는 심각하게 몰아치는 악취에 정신이 어질했다.
고역이었다. 다른 이들은 찻잎에 묻어 있는 악취를 못 맡을지 몰라도 그녀는 아니었으니까.
‘영 안 되겠는데.’
일을 도우면서 하녀에게 정보라도 캐내려 하였으나 포장이고 나발이고 여기선 버틸 수가 없다.
셀로니아가 구역질을 참으며 방을 튀어 나가기 위해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뭐 하는 거야, 지금. 너 자꾸 이럴래? 내가 아가씨한테 못 일러바칠 줄 알아? 지하실로 끌려가고 싶은 거야?”
당연히 일을 내팽개치고 도망치는 것으로 보이는 행동에 하녀가 셀로니아의 손목을 우악스럽게 붙잡곤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곧 구토를 할 것처럼 하얗게 질린 셀로니아가 휙 고개를 돌려 하녀를 바라보았다.
“지하실?”
“그래! 지하실! 너 그 지하실 무서워하잖아. 일 제대로 안 하면 거기 끌려갈 수도 있다고. 너도 그때 봤잖아. 유리아가 매질당하던 거. 내가 아가씨께 이르면 너도 그렇게 될걸?”
하녀가 팔짱을 낀 채 비아냥거렸다. 마치 아주 중요한 약점을 잡았다는 듯이.
하지만 그 말에 셀로니아는 오히려 눈을 번뜩였다.
“지하실이 정말 있어? 어디 있는데?”
소문 무성한 지하실이 진짜 있는 거라면, 하녀들이 끌려간다는 그 지하실 안에서 흑마법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 거의 확실했다.
“무, 뭐? 그럼 당연히 있지! 기억 안 나? 제이미 네가 곡소리 나는 지하실에 가기 싫다고 징징거렸었잖아!”
이 반응은 예상 못 했다는 듯 하녀가 되레 당황하여 언성을 높였다.
셀로니아는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었으나 제이미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하녀의 눈에는 마치 다 알면서 비꼬는 듯한 모양새로 비치었다.
“그러니까, 그 곡소리 나는 지하실이 어디 있냐고. 우욱…….”
“그, 그건……! 너 내가 지금 거짓말한다는 거야? 있어! 있다고! 확실해!”
셀로니아의 계속된 질문에 압박을 받은 하녀가 버럭 소리 질렀다.
겁을 줘서 모든 일을 떠넘기려고 했는데 겁을 먹기는커녕 지하실 존재 여부를 넘어 위치까지 물어 올 줄은 몰랐으니까.
“너 여기서 일한 지 얼마나 됐지?”
그러거나 말거나 셀로니아는 여전히 코를 틀어막은 채 맹맹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 너 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아가씨가 네 말을 들어 줄 거 같아?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너랑 반년을 넘게 일한 나, 둘 중 누구를 더 신뢰하시겠냐고!”
하녀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앙칼지게 고함을 내질렀다.
어째 오해를 한 듯싶었다. 정보 수집을 위해 물은 것뿐이었는데 압박한다고 여기는 태도였으니.
하지만 이로써 명확해진 것이 있었다.
반년을 넘게 일한 하녀가 지하실의 위치를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출입구가 없거나 숨겨져 있다는 뜻이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 꽁꽁 숨겨져 있다면 차라리 찾는 것보다 지하실에 끌려가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셀로니아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일단 이 방을 나가기 위해 다시 발을 움직였다.
더 있다간 진짜로 바닥을 흥건하게 적실지도 몰랐다.
“너 내가 만만……!”
또다시 나가려는 셀로니아를 붙잡으려던 하녀는 목소리를 다 낼 수 없었다. 목뒤에 닿은 강한 충격에 의해 까무룩 정신을 잃었으니까.
셀로니아는 맥없이 앞으로 고꾸라지는 하녀의 몸을 놀란 얼굴로 받아 내며 시선을 들었다.
“탄?”
언제 온 것인지 여전히 하녀의 모습으로 둔갑한 탄이 서 있었다.
“찾은 것 같다.”
* * *
한편, 응접실에서 그레이스와 단둘이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맥라이언은 이 시간이 고욕이 아닐 수 없었다.
술수가 풀렸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만나러 왔다만 눈앞에 앉아 있는 저 뻔뻔한 낯짝을 뭉개 버리고만 싶어 자꾸만 쥐어지는 주먹을 풀어야만 했다.
“맥라이언, 왜 그래요?”
그레이스의 말에 맥라이언이 움찔 어깨를 떨며 고개를 들었다.
혹시라도 들킨 건가 싶어 마음이 조마조마했으나 최대한 티 내지 않고 입술을 열었다.
“뭐가.”
“차 좋아하잖아요. 식기 전에 마셔요. 밖에 날도 춥잖아요.”
그레이스는 내온 뒤로 맥라이언이 한 입도 대지 않은 차를 눈으로 가리키며 싱긋 미소 지었다.
그 웃음에 맥라이언은 목뒤에 오소소 소름이 돋고 분노가 치밀었다.
‘감히 이 몸에게……!’
그는 태연자약하게 차를 권유하는 그레이스의 멱살을 잡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만 했다.
저 여자는 진짜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게 분명했다. 어떻게 감히 드래곤인 저에게 흑마법을 쓸 생각을 했단 말인가.
감히, 감히……!
속도 없이 당했던 지난날의 모욕을 떠올리기만 해도 온몸에서 살기가 피어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 화내 봤자 저만 손해였다. 저 여자의 민낯을 낱낱이 파헤쳐서 제 위신을 다시 세워야만 했으니까.
결국 참고 또 참은 맥라이언은 바로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놓인, 석양과도 같은 붉은 찻물을 바라보았다.
늘 그가 이곳에서 그레이스에게 대접받았던 저 다즐링 차는 흑마법에 당하게 된 원흉이었다.
심지어 저택에서도 마시라며 선물까지 주었던 그 차.
모든 사실을 알고 난 뒤 맥라이언은 저택에 있던 다즐링 찻잎을 모조리 벽난로에 처넣었다.
저걸 마시면 100퍼센트 다시 흑마법에 걸리게 된다.
어떻게 술수에서 벗어났는데. 다시 당할 순 없었다.
“이미 많이 마시고 와서 괜찮다.”
맥라이언은 그레이스의 시선을 외면하며 권유를 거절했다.
“그래요?”
그 모습을 묘한 눈동자로 바라보는 그레이스의 입매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내가 너에게 선물로 주었던 심장은 잘 가지고 있나.”
그는 창밖 먼 곳을 바라보며 아무 뜻도 없다는 듯 툭 물어보았다.
아무리 술수에 벗어나지 않은 척 연기를 한다 하더라도 하루빨리 심장이라도 되찾아야 했다. 그것이 있어야 다시 흑마법에 당하지 않을 테니.
“그럼요. 소중하게 잘 보관하고 있답니다.”
“그렇군. 나 잠시 화장실 좀.”
“네. 다녀오셔요.”
나긋나긋한 그레이스의 대답에 맥라이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바로 응접실을 잽싸게 빠져나왔다.
* * *
“여기예요?”
셀로니아와 탄은 베넷 남작의 집무실로 추정되는 방 안에 몰래 들어와 있었다.
크지 않은 방 한가운데 놓인 원목 테이블을 중심으로, 왼쪽 벽 한 면은 책장이 가득 들어차 있었고 오른쪽 벽에는 벽난로와 함께 뿔 달린 사슴의 박제가 걸려 있었다.
“그래. 이 방에서 묘한 기운이 느껴진다.”
탄이 새빨간 눈으로 방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하녀로 둔갑하여 돌아다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이 방이 수상하다는 것을.
애당초 저택이 그리 넓지도 않았거니와 원초적으로 흑마법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방에 수상한 공간이 있으려면…….”
셀로니아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오른쪽 벽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장작도 들어 있지 않은 벽난로 위로 헌팅 트로피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으나 수상한 홈이라든가 버튼, 손잡이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책장 뒤?”
얼른 왼쪽 벽을 가득 채운 책장을 살펴보았다.
눈 씻고 찾아봐도 수상한 점은 보이지 않는 책들이 빼곡하게 들어 있는 책장. 반년 동안 일한 하녀조차도 알지 못하는 지하실의 위치.
그럴싸했다. 여기에 만약 지하실이 있는 거라면 아무도 모를 만했으니까. 이러니까 다니엘도 찾지 못한 거지.
“문고리가 있는지 찾아봐야겠어요.”
그녀는 곧장 책장에 꽂힌 책들을 빼 보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탄이 그녀의 손을 제지하며 붙잡았다.
“그럴 필요 없다.”
“네?”
“셀로니아, 너는 날 뭘로 아는 거지.”
그는 자신만만하게 씨익 웃으며 셀로니아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이윽고 눈을 깜빡이는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은 책장 앞이 아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아주 어두운 공간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설마 여기.”
“맞아. 책장 뒤 공간이다.”
탄이 픽 웃으며 닫혀 있는 문을 밀었다.
그러자 어두컴컴했던 공간을 열린 문 사이로 스며든 빛이 비췄다.
“정말이네.”
셀로니아가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문 너머로 방금까지 서 있던 집무실이 보였다.
탄이 연 문은 책장이었다. 그들은 정말 책장 안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문이 안 보였던 방금 같은 상황에서도 순간 이동을 할 수 있어요?”
“공간이 있는 게 확실하다면야 못 할 것 없다.”
“허어…….”
셀로니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건 너무 사기잖아. 그녀는 다시 한번 탄이 제 편이라는 것에 감사했다.
“심상치 않다.”
탄은 피부를 타고 느껴지는 불쾌한 기운에 셀로니아의 허리를 더욱 품에 끌어안았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인가 봐요.”
아래를 응시하고 있던 셀로니아는 지금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현재 계단 시작점의 위에 서 있었다. 그들의 앞으론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다.
불빛이 닿지 않은 아래쪽은 칠흑 속에 감춰져 있었다.
그래서일까. 더욱 수상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쯤 되니 확실했다. 여긴 지하실로 가는 계단이었다.
이곳은 지하처럼 목소리가 둔탁하게 울렸고 공기도 서늘하고 축축해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셀로니아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었으나 곧 허리를 단단하게 안고 있는 팔에 안도가 들었다. 지금 이 순간 탄이 곁에 있어 주는 게 얼마나 든든한지 몰랐다.
“가요.”
“조심해. 손 놓지 말고.”
그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던 팔을 풀어 손을 맞잡았다. 계단을 내려가기 위해선 손을 잡아 주는 게 더 나았으니까.
셀로니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행여나 들킬까 열렸던 문을 닫았다.
시야가 또다시 칠흑처럼 어두워졌지만 탄이 손안에 불씨를 피워 냈다.
횃불 역할을 톡톡히 하는 그의 불씨 덕분에 두 사람은 무리 없이 함께 계단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감춰져 있던 공간, 지하실로.
* * *
“젠장! 어디다 숨긴 거야.”
온갖 서랍을 뒤지던 맥라이언이 짜증을 내며 거칠게 머리를 털었다.
그는 지금 단출한 저택 외부와 다르게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꾸며진 그레이스의 방 안에 있었다.
화장실에 간다고 했으나 사용인들의 시선을 피해 몰래 그레이스의 방에 들어온 것이었다. 이 방은 올 때마다 내부 장식이 달라져서 적응이 되지 않았다.
원래 이럴 생각은 아니었으나 괘씸해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으니까.
심장이라도 되찾아 가야만 했다. 자신을 만만하게 보다 못해 모욕하고 기만한 저 여자한테 심장이 있는 꼴을 더는 볼 수가 없었다.
“젠장, 젠장!”
화장대며 침대 옆 작은 협탁 그리고 옷장까지. 서랍이란 서랍은 다 뒤졌으나 그 어디에도 자신의 심장은 보이질 않았다.
혹시 방에 금고 같은 게 있나? 본 적은 없지만 이렇게까지 뒤졌는데 안 나온다면 신빙성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꽤 지체되었기에 돌아가야만 했다. 안 그러면 의심할 테니까.
우선은 돌아갔다가 다시 한번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 나오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
“맥라이언.”
등 뒤에서 오싹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의 행동이 일순간 정지했다.
“혹시 이거 찾아요?”
뻣뻣하게 굳은 몸을 삐걱거리며 돌리자 언제 왔는지 그레이스가 방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
손에 그의 심장을 쥔 채 섬뜩할 만큼 생긋 웃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