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12)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12)화(112/162)
<112화>
“너…….”
그토록 찾던 심장이 그레이스의 손에 있는 것을 확인한 맥라이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자신이 심장을 찾을 걸 미리 알고 빼돌린 건가? 어떻게 알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맥라이언을 보며 그레이스가 여유롭게 뒷짐을 진 채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또각, 또각, 또각.
일정한 구두 소리가 방 안을 마치 해일처럼 뒤덮자 맥라이언은 저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섰다.
어쩐지 지금 마주하고 있는 그레이스는 평상시와 달랐다.
평상시에는 멍청해 보일 만큼 생각 없어 보이던 초록색 눈동자가 지금은 진득한 무언가를 담고 있었으니까.
그게 무엇인진 모르겠으나 마치 저주처럼 께름칙했다.
“하여간. 당신은 너무 단순하다니까.”
“…….”
“심장에 대해 물어 놓고 바로 이렇게 내 방을 뒤지면 어떡해요.”
깔깔깔.
곧이어 마녀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맥라이언이 눈썹을 치켜올린 채 시선을 들자 그레이스가 한층 더 재밌다는 듯 배를 잡고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그를 비웃듯이.
이 미친 여자가 지금 제정신인가?
맥라이언은 걷잡을 수 없는 모멸감에 표정 관리가 안 되었다. 당장이라도 그레이스의 목을 조를 것처럼 표정이 살벌하게 일그러졌다.
“마법에서 풀린 거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
그러나 곧 웃음을 뚝 그친 그레이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맥라이언이 경직되었다.
“흐응. 진짜 풀렸구나? 어떻게 풀린 거지.”
심하게 요동치는 맥라이언의 금안에 그레이스가 확언하며 턱을 매만졌다.
지금 상황이 무척이나 재밌지만 의아하다는 듯, 정말로 순수하게 궁금하다는 듯.
그 발언에 결국 참아 왔던 맥라이언의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고 말았다.
“야. 돌았냐?”
한 자 한 자 씹어뱉듯 목소리를 내는 맥라이언은 그 어느 때보다 사납고 거칠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으나 어찌 됐건 그레이스가 알아챈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뻔뻔하게 구는 게 아니라 최소한 이유를 설명하고 미안하다 사죄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이 태도는 뭐란 말인가. 뭐가 이렇게 당당하지?
너무도 태연하고 자연스러워 맥라이언은 마치 자기가 흑마법에 걸린 게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이 될 정도였다.
제국에서 흑마법은 엄연히 불법이었다. 이미 아주 오래전에 황제가 금기시한 터라 흑마법을 몰래 누리다 걸린다면 가문 하나가 몰살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럴 리가요.”
그레이스가 특유의 싱그러운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진짜 죽고 싶은 거지. 대놓고 죽여 달라 애원하는 거지 지금.”
두 주먹을 말아 쥔 맥라이언이 그레이스를 향해 성난 발걸음으로 다가갔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등 위로 푸른 핏줄이 돋아났다.
사과를 해도 들어줄까 말까 한 이 판국에 그레이스는 시종일관 후안무치하게 굴고 있었다.
억제되지 않는 감정으로 인해 그의 몸 주변으로 아지랑이처럼 푸른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런데 진짜 어떻게 풀린 거예요? 웬만해선 풀어내기 힘들 텐데.”
그러나 그레이스는 잔뜩 화가 난 맥라이언과 달리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정말로 순수하게 그것만이 궁금하다는 듯.
“내가 그냥 넘어갈 것 같아? 네년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쳐서 폐하께 모든 것을 고할 것이다.”
“맥라이언, 멍청하게 당한 건 당신이잖아요.”
“그 입 닥쳐!”
맥라이언이 살기를 뿜어내며 그레이스를 향해 성난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레이스의 손끝 하나 건드릴 수가 없었다. 어떠한 힘이 그의 전신을 강제적으로 묶어 가두고 있었으니까.
“이게 무슨……!”
쇠사슬이 달린 것처럼 팔을 옭아매고 있는 강한 힘에 맥라이언이 당황하여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순식간의 그의 금안이 풍랑을 맞은 배처럼 흔들렸다. 그가 서 있는 곳에 검붉은 마법진이 생성되어 있었으니까.
“게일, 이왕이면 무릎을 꿇리는 게 좋겠어.”
“네.”
대답하는 낯선 목소리에 맥라이언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언제 어떻게 온 것인지 분명 둘만 있었는데 어느새 한 남자가 그들의 옆에 서 있었다.
인기척도 없이 나타난 그 초록색 머리의 남자가 검은 망토를 두른 채로 무언가를 중얼거리자, 순식간의 맥라이언의 두 무릎이 저절로 바닥에 꿇려졌다.
“크윽……!”
그는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해 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저 남자가 발동한 흑마법에 의해 몸이 단단히 묶여 버렸으니까.
“당장 그만 안 둬?!”
이마에 핏대가 일어설 만큼 분개한 맥라이언이 소리쳤다.
그 누구 앞에서도 꿇어 본 적 없는 이 무릎이 그레이스를 향해 꿇려져 있었다. 심지어 이젠 제 앞에서 아주 대놓고 흑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젠장, 젠장……! 심장만 있었어도, 심장만……!
“맥라이언.”
그레이스는 수치심에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부들부들 떠는 맥라이언이 가소롭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고는 자세를 낮춰 맥라이언과 시선을 마주했다.
“마법이 풀리자마자 그 여자한테 쪼르르 달려갔나요?”
“네년의 목을 쳐 버릴 것이다. 폐하께 고할 필요도 없이 내 손으로 직접 너를 죽여 주마.”
그레이스를 향한 분노에 화염처럼 타오르는 그의 눈동자가 매서웠다.
“정말 이해가 안 되네. 왜 이렇게 화를 내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레이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걸 지금 몰라서 물어? 하, 몰염치한 여자 같으니. 너의 그 술수 때문에 셀로니아를 배신하고 역겨운 네 곁에 내내 붙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억지로 갈취해 놓고 어쩌고 저째?”
“그러니까.”
역겹다는 말에 그레이스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으나, 그녀는 그랬던 적 없다는 것처럼 다시 생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한테 고마워해야지. 당신이 원래 있을 자리에 서 있게 해 줬으니까.”
“입 닥쳐!”
되지도 않는 말을 지껄이는 그레이스를 향해 맥라이언이 으득 이를 갈았다. 이 술수만 풀어내면 정말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난 내가 가져 마땅할 것들을 되찾은 것뿐이야.”
분위기 파악 못 하고 고래고래 언성을 높이는 맥라이언을 향한 그레이스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그녀는 삐뚤어진 광기가 깃든 녹안으로 맥라이언을 노려보다 다시 입술을 열었다.
“게일, 진행해.”
곧이어 맥라이언의 고개가 맥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거대한 암흑이 순식간에 그를 덮쳤다.
* * *
불꽃에 의존한 채 1층 높이의 음습한 계단을 내려온 셀로니아와 탄은 지하실 안에 서 있었다.
말로만 듣던 베넷 남작가의 지하실에 정말로 들어온 것이었다.
“어때요? 뭔가 느껴져요?”
탄의 옆에 더욱 바짝 붙은 셀로니아가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었다.
“안쪽에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불빛이 닿지 않아 칠흑처럼 어두운 깊은 안쪽을 바라보는 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역시.”
셀로니아가 반색하며 발을 내디뎠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댔다.
앞에 있을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으나 진실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레이스의 술수를 알아차리고 정보를 수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으나 지금까지 무엇 하나 명확하지가 않았다.
자욱한 안개 속에 갇혀 자꾸만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 저 안에 있는 무언가를 확인한다면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을 하나로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
탄의 걱정에 셀로니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점점 더 지하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걸을 때마다 폭이 넓지 않은 어두운 지하실에 발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공간이 어찌나 고요한지 발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크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꽤 깊게 들어온 것 같았지만 기대와 달리 보이는 것은 계속 잿빛의 벽뿐이었다.
뭐지?
다즐링 잎이라든가 흑마법을 사용했던 잔재, 아니면 희생자들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고 보니까 악취가 나질 않아요.”
하나를 깨달은 셀로니아가 중얼거렸다.
쪽방에서 다즐링이 풍기던 악취가 이곳에선 나질 않았다. 지하실에서 만들어 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그렇다면 이 지하실은 뭐지?
의문이 피어올랐지만 아직 끝까지 둘러본 것이 아니니 셀로니아는 더 안쪽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때였다.
“헉! 탄, 저기……!”
셀로니아가 놀라 목소리를 내었다.
희미한 불빛이 닿은 저 끝에 검은 무언가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게 포착된 것이었다.
“뒤에 있어.”
탄은 행여나 위협이 있을까 셀로니아를 등 뒤로 이끌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탄을 뒤따랐다.
두 사람이 무언가에 가까워질수록 검은 덩어리가 점점 더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앞에 선 탄이 손안의 불씨로 바닥을 쭉 훑어내자 셀로니아는 놀란 입을 틀어막아야만 했다.
불빛에 드러난 것은 발목과 손목이 족쇄로 묶여 있는 여자의 시체였다.
볼품없는 얇은 원피스 하나를 입고 있는 여자. 여자의 옆엔 반쯤 채워진 물그릇과 버석하게 마른 빵 조각이 놓여 있었다.
“정말로…….”
셀로니아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참담한 마음과 함께 팔 위엔 소름이 돋아 있었다.
흑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선 희생자가 필요하다던 말이 진짜였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야. 도대체…….
“잠깐.”
그때 불빛으로 시체를 샅샅이 살피던 탄이 말했다.
“왜 그래요?”
“셀로니아.”
탄은 고개를 돌려 등 뒤에 서 있는 셀로니아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본 채 말을 이었다.
“살아 있다. 이 여자.”
“사, 살려 주세요…….”
그가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시체인 줄 알았던 여자의 입에서 희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
너무 놀라면 사람이 억 소리조차 못 낸다는 게 사실이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여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셀로니아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너무 놀라 벌렁벌렁 뛰는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릴 지경이었다.
“제발 살려 주세요……. 저를 꺼내 주세요…….”
뼈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신체의 여자는 힘없이 바닥에 누워 있는 채로 눈도 뜨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얼마나 오래 이곳에 갇혀 있던 건지 쉬어 버린 목소리가 애절하다 못해 다 꺼져 가는 불씨처럼 가늘었다.
“혹시 이 저택에서 일하던 사람이에요? 그레이스가 당신을 가둔 건가요?”
놀람도 잠시, 셀로니아는 곧장 쭈그리고 앉아 여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여자는 파르르 떨리고 있는 파랗게 질린 눈꺼풀을 아주 힘겹게 떴다.
“흐흑…….”
그와 동시에 눈에선 굵은 눈물방울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보는 사람조차 서럽다고 느낄 정도로.
여자의 감정에 동요한 셀로니아는 울컥하여 붉어진 눈시울로 차분하게 달래듯 다시 물었다.
“괜찮아요. 도와줄게요. 말해 봐요, 그레이스가 당신을 가둔 거예요?”
“흐윽, 아니…… 아니에요…….”
여자가 부정했다.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었기에 셀로니아는 재차 묻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커다란 충격에 모든 사고 회로가 정지하고 말았으니까.
여자가 뒤이어 내뱉은 이 말 때문에.
“그레이스 베넷은 저예요……. 그 여자가 제 몸을 훔쳐 간 거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