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13)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13)화(113/162)
<113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얘기를 들은 셀로니아는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다.
이게 지금 다 무슨 소리지?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여자가 그레이스 베넷이라고?
그럼 지금껏 만난 그 여자는 누구란 말인가.
아니, 그게 가능해? 어떻게…….
“…….”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늘어나던 의문은 곧 멈추었다.
잠자코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니 그런 일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을 더 이상 가질 수가 없었다.
그녀 자신조차도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었으니까.
지금 이 여자의 말이 믿기진 않았으나 저도 셀로니아의 몸에 빙의한 입장이었다.
그러니까 남의 몸을 쓰는 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빙의자는 나뿐 아니던가?
게다가 저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눈떠 보니 빙의가 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 여자가 말하는 의도적으로 훔쳐 갔다는 것과 전혀 다르게.
“뭔 헛소리지? 네가 진짜 그레이스라면 그 여자는 뭐야.”
탄이 눈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흐흡, 그 여자는 제 몸을 강제로 빼앗아간 도둑이에요…….”
몸을 일으킬 힘도 없는지 여자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채로 그저 눈물만 흘려 대며 힘겹게 입술을 달싹였다.
이곳에 얼마나 갇혀 있던 건지 여자의 입술은 마치 가뭄 난 땅처럼 갈라져 있었다. 갈라진 틈 사이로는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네가 진짜 그레이스라는 증거는.”
벙쪄 있는 셀로니아를 대신하여 탄이 착실하게 여자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게 사실이라면 그들의 예상한 것보다 더 큰 일이었으니까.
“왼쪽, 왼쪽 제 허벅지 뒤편에 푸른 점이 있어요…….”
“아니. 그딴 건 증거가 못 된다. 다른 것을 말해.”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여자를 상대로 탄은 가차 없었다.
하지만 셀로니아도 탄의 말에 공감했다. 신체 특징은 그레이스 본인이 아니어도 시중을 드는 하녀라면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녀가 주장하는 본인이 ‘진짜 그레이스’라는 것에 대한 증거로는 불충분했다.
“다, 다른 건…… 다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 뒤로 아버지께서 재혼하셨지만 얼마 못 가 이혼하셨고…… 여덟 살 때 처음으로 피아노를 배웠고, 열세 살엔 연못가를 산책하다 넘어져서 오른쪽 무릎에 작게 흉터가 남았어요. 제 생일은 10월 8일이고 그레이스라는 제 이름은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늘 밝은 빛 속에서만 살라며 지어 주신 거고 또, 또…….”
“그만.”
무엇이라도 입증하기 위해 절박하게 말을 늘어놓던 여자는 이윽고 탄의 단호한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본인을 증명할 수 없는데 네가 그레이스라는 말을 어떻게 믿지?”
“방금 다 얘기했잖아요! 저니까 알 수 있는……!”
“조금만 파도 개나 소나 다 아는 그런 정보 따위는 소용없다.”
탄은 자비가 없었다. 잘 벼려진 칼날보다 더 예리한 말은 곁에서 듣는 사람조차 아프게 찌를 정도였다.
그러나 여자가 횡설수설한 모든 말들은 허벅지 뒤에 있는 점에 이은 연장선이었다.
본인이 아니어도 알 수 있는 정보들.
정말로 저 여자가 그레이스라면 안타깝지만, 지금은 한쪽 말만 무작정 믿을 수가 없었다. 명확한 증거가 있기 전까진 모든 걸 의심해 봐야 했다.
셀로니아는 여자가 다시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
“억울해요……. 제가 그레이스인데 내가 나를 입증해야 한다니요. 그 여자가 멋대로 제 몸을 빼앗은 건데……! 그럼 그 여자는 본인이 진짜 그레이스라는 걸 증명하던가요?”
침묵을 유지하던 여자는 이윽고 분하다는 듯 또렷한 음성들을 쏟아 냈다. 한기가 올라오는 지하실 바닥에 누운 여자의 몸이 안쓰러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추위가 아닌 분노로 인한 떨림이었다.
“없다는 말이군.”
징징거리는 여자를 보며 탄이 짜증 난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사실 그는 여자의 주장에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여자의 각 손목과 발목에 채워진 족쇄는 물리적인 힘으로 풀 수 있는 일반 족쇄가 아니었다.
그 족쇄에서 선명하게 흑마법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가 지하실에 들어올 때부터 느낀 기운도 여기서 나오는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탈출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가둬 놓은 것을 보면 이 여자가 절대 드러나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사실은 확실해 보였다.
그러니 여자의 말이 완전히 믿지 못할 것만은 아니란 뜻이었다.
“당신들 뭐야…… 당신들 누구인데 내 고통을 함부로 평가해! 나는 억울해, 억울해……! 흐흑.”
탄의 말에 결국 상처를 받았는지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잠기지 않은 수도꼭지처럼 여자의 눈에서 계속 흘러내리는 굵은 눈물방울이 바닥을 적셨다.
아무래도 현재로써는 여자가 진짜 그레이스라는 확실한 증명을 얻을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셀로니아는 지금 이 모든 게 연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대로 알려면 이야기를 더 들어 봐야 했다.
“우린 그 여자 편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 여자가 저지르는 일을 밝히려고 알아보는 중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당신을 도와줄 수 있을지 몰라요. 더 자세히 말해 봐요. 언제부터 몸을 빼앗긴 건지. 그럼 지금 그레이스는 누구인지.”
“나도 몰라요…… 모른다고요! 언젠가 눈을 뜨니 햇빛도 들지 않는 이곳에 갇혀 있었다고요. 여기에 있으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가 없어요……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요. 시체가 따로 없다고요. 흐흡…… 오래 여기에 갇혀 있었어요. 너무 오래…….”
울음 때문에 뭉개지는 여자의 목소리에는 깊은 서러움이 깃들어 있었다. 너무도 깊어 그 깊이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셀로니아는 여자의 말에 공감했다.
빛이 없는 공간에서는 흐르는 시간을 셀 수 없었다. 눈을 떠도 아침인 밤인지 분간할 수 없으니 날짜를 셀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뭐라도 좋으니 알고 있는 걸 말해 봐요. 당신이 여기에 갇히게 된 시점이 이안 체르빌 공작과 약혼하기 전인가요?”
“네? 약혼이라니요? 대체 그 여자가 제 몸으로 무슨 짓을……!”
생전 처음 듣는 얘기라는 듯 여자가 놀랐다. 정말로 몰랐는지 눈물을 흘리고 있던 두 눈이 크게 뜨여 있기까지 했다.
“그럼 당신이 이곳에 갇히기 전, 그레이스일 때 마지막 기억이 뭐예요?”
“저는 곧 성년식을 앞두고 있었어요. 제국에선 원정대가 꾸려져 마왕을 토벌하러 간다고 했고요…….”
“뭐? 지금 뭐라고…….”
“아아, 출발하는 날이었어요. 그래요, 맞아요! 토벌대의 무사 기원을 바라기 위해 사람들이 모두 나와 손을 흔들었어요……!”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는 듯 여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 소리에 셀로니아는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것이 마지막 기억이라면 거의 10개월 전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빙의하기 전이기도 하였다.
뭐지? 이건 마치…….
“저도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 맞아! 저희, 저희 아버지는 어떻게 되었죠? 제 아버지는 무사한가요?”
추억을 회상하듯 그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여자는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듯 급히 말했다.
“당신 아버지요……?”
“그 여자가 뻔뻔하게 내 몸으로 날 찾아와 말했어요. 아버지가 나를 찾을 일은 없다고……. 저희 아버지는 무사한 거죠? 살아계신 거죠?”
셀로니아는 베넷 남작이 살아 있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
지금 대외적으로 남작은 외국에 나가 새로운 사업으로 돈을 벌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셀로니아는 다니엘을 통해 진실을 알고 있었다.
사업은 가짜다. 남작가에 자금을 조달해 준 익명의 후원자가 있을 뿐.
‘잠깐만…….’
순간 이상함을 느낀 그녀는 재빨리 전에 다니엘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려 보았다.
“제가 아는 베넷 남작가는 덴프리스에 있는 광산 하나로 근근이 먹고살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지출이 폭등하더니 이젠 매주의 지출 합산이 웬만한 귀족가의 한 달 가계입니다.”
“그 시점이 언제죠?”
“10개월 전부터입니다.”
10개월 전.
그녀가 이 몸에 빙의를 했을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베넷 남작가의 지출이 커졌고.
그 얘기를 들었을 당시에는 제 빙의와 비슷한 시기라고 생각만 하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 채 넘겼었다.
당시에 알고 있는 것들은 듬성듬성한 조각들이었기에 이어붙일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만약 이 여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 주장의 조각을 포함해 여태까지의 모든 조각을 이어붙여 하나의 퍼즐을 완성할 수 있었다.
셀로니아의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한곳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자가 말하는 마지막 기억은 토벌이 시작된 시점이었다. 제가 이 몸에 빙의한 것도 토벌이 시작된 시점이었고.
그 시점에 베넷 남작가의 지출이 커졌다. 알고 보니 익명의 후원자가 있었다.
‘가짜 그레이스’는 흑마법을 써서 이안과 맥라이언 그리고 레예프를 꾀어냈다.
‘모두 원작 속 남주들…….’
마치 각본이라도 있는 것처럼 딱 들어맞는 타이밍.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한 가지가 맞지 않는다. 완성되기 직전이었던 퍼즐에 딱 한 조각이 부족했다.
“그럼 이곳에 저희 아버지를 불러 주세요! 아버지라면 저를 알아볼 수 있으실 거예요! 아버지라면 진짜 딸이 누구인지 알아보실 거예요!”
진짜 딸?
“셀리!”
탄이 순간적으로 휘청이는 셀로니아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왜 그래? 어디 아픈가? 괜찮나?”
“…….”
정신이 아득했다. 탄의 목소리가 웅웅거릴 뿐 그녀의 귀에 제대로 들리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를 찾는 여자의 말에 마지막 한 조각이 딱 들어맞았으니까.
바뀐 그레이스. 베넷 남작가에 생긴 익명의 후원자. 그레이스가 찬 에르젤의 목걸이. 아버지의 개인 인장이 찍힌 에르젤 보석상의 청구서.
아버지. 그리고 딸. 아니, 진짜 딸…….
갤로웨이 베스인은 진짜 셀로니아의 아버지였다.
그녀가 빙의를 하고 제일 처음 본 광경은 원정대에 합류한 자신, 즉 셀로니아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자신은 반년 동안 사교계를 떠나 가족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남주들과 토벌에 나섰다.
빙의하고 초반엔 제가 셀로니아가 된 것에 대해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자꾸만 분리해서 생각했다.
그녀는 그녀. 나는 나.
나라면 이렇게 하진 않았겠지만 원작대로, 셀로니아였다면 이렇게 행동하고 말했을 거야.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은 점점 하지 않게 되었다.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는 마물 숲에서 매번 그렇게 행동하려면, 생각하는 동안 마물들 손에 죽어 버렸을 테니까.
살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본래의 셀로니아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게 익숙해졌고 언젠가부터 저는 셀로니아에 동화되어 있었다.
제가 하는 말과 행동은 결국 셀로니아가 하는 생각이 되었다. 남주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언제나 저를 셀로니아로 대하였다.
그럴 수밖에.
왜냐하면 그들은 토벌 전에 ‘셀로니아’를 겪은 적이 없었으니,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물론 이안은 남자 주인공이었기에 그녀가 이 몸에 빙의 전 진짜 셀로니아를 마주한 사람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정략혼으로 인해 몇 번 데이트를 하는 정도의 형식적인 만남이었을 뿐 셀로니아라는 사람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그렇게 반년 동안 이안과 맥라이언 그리고 레예프는 언제나 저를 셀로니아로 대했고, 제가 셀로니아인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의심을 품은 적이 없었다.
그들은 믿어 의심치 않은 것이었다. 제가 셀로니아라는 것을.
하지만 20년을 넘게 셀로니아를 봐 온 사람이라면……?
그녀는 지금껏 자신이 놓치고 있던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가 알아채지 못할 수 있나?’
갤로웨이는 정말 저를 자신의 친딸인 셀로니아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토벌 이후로 달라진 딸의 태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까?
그녀가 의식을 잃고 3개월 만에 눈을 떴을 때, 빙의하고 처음으로 공작가의 사람들과 마주했다.
저는 원래 셀로니아와 태도부터 달랐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바뀐 아가씨의 태도에 공작가의 사람들이 뒤에서 쑥덕거렸으나, 얼마 뒤에는 모두가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제가 그저 바뀐 것이라 치부했다.
하지만 아버지도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까?
낳고 기른 부모인데? 심지어 딸을 애지중지했다는 갤로웨이인데?
만약에 모든 걸 알고 있었다면…… 그렇다면…….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