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14)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14)화(114/162)
<114화>
셀로니아와 탄은 지하실을 빠져나와 베넷 남작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둔갑을 풀고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본인이 그레이스라 주장하는 여자를 함께 데리고 나오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간단한 마법인 것 같은데 건 사람이 아니면 풀 수 없게 해 놓았군.”
탄이 말하길 팔다리에 묶인 족쇄는 흑마법이 걸려 그조차 풀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셀로니아는 눈물을 많이 흘려서인지 기절한 여자에게 기력을 회복할 수 있게 치유술을 불어넣어 주곤 빠져나온 상태였다.
탄의 능력으로 여자가 우리를 만났다는 것을 까먹게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짜 그레이스의 귀에 들어가면 안 되니까.
“하아…….”
셀로니아는 깊은 한숨과 함께 오늘 겪은 거대한 일을 천천히 머릿속에서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과 의문들은 아버지가 다 알고 있었다면 설명이 가능해.’
물론 어디까지나 본인이 진짜 그레이스라고 주장하는 그 여자의 말이 사실일 때 한해서이지만.
우선 그 주장을 사실이라 놓고 봤을 때 지금 그레이스의 몸을 빼앗아 간 사람은 바로…….
‘진짜 셀로니아. 이 몸의 주인.’
게다가 갤로웨이 베스인은 그레이스로 살고 있는 셀로니아를 몰래 후원까지 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납득이 가.’
왜 그레이스가 술수를 부려 남주들만 빼앗아 갔는지.
우연이 아니었다. 일부러 그런 거야.
이 육체에 빙의를 했는데도 제게 셀로니아가 살아온 기억들이 왜 없었는지 이제야 알았다.
진짜 셀로니아가 그 기억들을 가지고 있었을 테니까.
모든 것을 깨닫자 정신이 맑아지면서 그동안 놓치고 있던, 잊고 있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주르륵 떠오르기 시작했다.
“너무 억울해 마셔요. 우리는 꽤 닮았으니까요.”
처음 로블랑에서 그레이스를 마주쳤을 때, 그녀는 제게 이렇게 속삭였었다.
그저 기만하는 말이라 생각했는데 모든 걸 알고서 이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니 머릿속이 싸늘해졌다.
본인이 곧 셀로니아니까 닮았다는 말을 한 거겠지.
“제가 누구인지 모르시나요?”
이건 베론디 부티크에 막무가내로 들어온 그레이스가 했던 말이었다.
당연히 남주들을 등에 업은 채 업신여기는 거라 생각했으나, 어쩌면 그녀가 진짜 셀로니아라면 언제나 모셔지기만 했던 공녀였기 때문에 나온 말이 아닐까.
모든 게 그럴싸하게 착착 들어맞는다.
‘잠깐, 덴로하 후작저에서 봤던 그 남자…….’
일전에 덴로하 후작 영애의 생일 연회에 참석한 날, 그레이스가 녹색 머리를 한 남자를 따라가는 것을 보았었다.
그리고 얼마 전 아버지가 초록색 머리를 한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금세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잘못 본 것이라 치부하고 넘어갔지만, 만약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두 남자가 동일 인물이라면?
또 연결되는 의심스러운 사람이…….
“…….”
셀로니아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일었다.
길리안.
피네스트 부길드장이었던, 자신이 붙잡아 친히 감옥으로 보내 버렸던 그 남자.
“언제부터야? 네놈이 그레이스의 끄나풀이 된 게. 그레이스가 널 회유했나?”
“그런 적 없습니다.”
자신이 묻는 말에 길리안은 그렇게 답했었다.
“공녀님, 이왕 이렇게 붙잡힌 거 제가 충고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너무 나서지 않는 게 좋으실 겁니다. 하하하. 공녀님을 위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래, 이 말까지 떠오르니 더 명확해졌다.
그레이스가 길리안을 회유한 게 아니었다. 그저 본래 주인을 모시고 있던 거지.
길리안도 알고 있던 거야. 이 모든 일을. 그래서 그레이스의 관한 정보를 숨긴 거야.
‘날 배신한 게 아니야. 애초부터 내 편이었던 적이 없었던 거지.’
아버지는 알면서도 내 앞에서 길리안이 배신자인 것을 몰랐던 척 연기했던 거고.
‘아버지…….’
셀로니아는 갤로웨이의 생각에 파르르 떨려 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갤로웨이 베스인. 딸을 지독히도 사랑하는 아버지.
그녀는 그런 갤로웨이를 좋아했다. 가족의 정을 처음으로 느껴 봤으니까.
남주들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아버지 덕분이었다.
절로 느껴지는 아버지의 애정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든든하게 편들어 주는 아버지가 있어서 괜찮았다.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 무한한 사랑을 가진 내 편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텅 비어 있던 마음이 충만하게 들어찼으니까.
지난 생에 혈혈단신으로 황폐하고 삭막하게 살았던 제게 운명이 그간 누리지 못한 가족애를 보상해 주는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가 좋았다. 우습게도 정말로 내 아버지라 생각했다.
“더는 다치면 안 된다. 항시 몸을 조심해야 한다. 이 아비는 너밖에 없단다.”
다감한 아버지는 두 팔을 벌려 저를 껴안아 주실 때도 이런 게 가족이구나, 이런 게 아버지구나, 생각하게 했다.
“넌 나의 보석이란다. 아주 작은 상처도 입어서는 안 된다. 그걸 보는 난 피눈물이 날 테니.”
언제나 아버지가 하는 말에는 ‘몸’을 조심하라는 말뿐이었으나 그저 딸에 대한 지나친 애정에서 나오는 당부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단순한 걱정이 아니었던 건가.
몇 달 동안 쓰러져 있었음에도 그녀가 무리 없이 바로 일상생활이 가능했던 이유는 아버지의 정성 어린 간호 덕분이었다.
왜냐하면 이 몸은 갤로웨이의 진짜 딸 셀로니아의 것이었으니까.
그간 제게 몸을 조심하라고 했던 것도, 묘하게 몸만을 걱정했던 것도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하, 하하하…….”
하나부터 열까지 딱딱 끼워 맞춰진 진실에 그녀의 입에서 실성한 듯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들이 작정하고 짜 놓은 판에 놀아난 것이었다. 모든 게 가짜였던 거다.
“셀로니아, 무슨 일이지? 대체 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듯 심각했던 그녀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리자 탄의 걱정이 더욱 커져만 갔다.
지금 셀로니아의 푸른 두 눈은 초점을 잃은 채 텅 비어 있었다. 게다가 눈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듯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대체 아까부터 왜 이러는 거지?
지하실에서부터 연유를 알 수 없는 셀로니아의 심경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탄이 두 손을 뻗어 셀로니아의 뺨을 감싸 쥐었다.
“말해. 네가 지금 이러는 이유. 무엇이 됐든 내가 없애 주겠다.”
그 목소리에 셀로니아가 스르르 고개를 들었다.
반짝이는 햇빛 아래, 정말로 자신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을 다 해 주겠다는 듯 붉은 두 눈이 이채를 띤 채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마음이 저절로 느껴졌다.
‘그런데 그는 진짜인 걸까…….’
이렇게까지 맹목적으로 제게 마음을 비치는 그를 보자 셀로니아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의문이 생겨났다.
모든 것이 가짜였다. 자신조차도 진짜 셀로니아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의 마음은 진짜인 걸까. 아니, 그의 마음은 누구를 향한 것이지?
알고 있다. 그는 당연히 내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걸.
하지만 지금의 제 모습은, 이 인두겁은 원래 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모습이, 그가 나를 사랑하는 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단언할 수 있나.
옅은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했다.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조차도 탄이 지금의 인간 모습이 아닌 마왕의 본래 모습인 인외였다면 어땠을지 몰랐다.
왜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깊어진 지금에서야 불안해지는 걸까…….
아마도 그건 원작이 끝났음에도 계속 이 세계에 머무르고 있는 저를 보며 셀로니아로 평생 살아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겠지.
내가 진짜 셀로니아가 된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이 모든 게 조작되었던 거라니. 진짜 셀로니아가 존재하고 있었다니…….
그럼 나는 뭐지?
그들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얻으려던 게 뭐야? 단순히 토벌을 피하기 위해서?
아직 거기까진 모르겠다. 머리가 복잡하다 못해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탄…….”
“그래.”
“탄…….”
그녀는 물기 어린 목소리로 몇 번이나 그의 이름을 되뇌며 절박하게 탄의 품에 매달렸다.
어떻게 해도 진정되지 않아 손끝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
더 이상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목 끝까지 차오른 울음이 입을 벌리는 순간 튀어나올 테니까.
지금 유일한 나의 편……. 내가 믿는 단 한 사람.
이제 어쩌면 좋을까. 탄에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아니, 이 진실을 말할 수나 있을까.
하지만 이대로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멍청하게 당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셀로니아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를 뒤로한 채 탄의 가슴에 기대었다.
“잠시만 이대로 있어 줄래요. 이유는 묻지 말고요…….”
“네가 싫다 해도 평생 있어 줄 것이다. 그러니 그런 표정 하지 마. 제발.”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탄은 꾹 참고 불안정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그녀를 품 안에 끌어안았다.
단단하게 옭아매는 그의 두 팔은 절대 그녀를 놓지 않겠다는 듯 작은 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
그는 알고 하는 말인 걸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따뜻한 이 품이, 그 말이 셀로니아에겐 더없이 위안이 되었다.
* * *
“아버지께선 뭐라셔.”
“곧 준비가 다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 정말 오래 걸리네.”
그레이스가 불만스러운 얼굴을 구기며 티스푼으로 찻잔을 휘저었다.
“대체 왜 그때 실패를 한 거야. 번거롭게.”
표독스럽게 올라간 입술 사이로 툴툴대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흑마법의 실패만 아니었다면 그 여자가 꼴사납게 설치는 꼴을 보지 않았어도 되는 일이었다.
“주제도 모르고.”
셀로니아를 떠올리며 비식 비웃던 그레이스는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던 드래곤의 붉은 심장을 손가락으로 쥐어 창문에 비춰 보았다.
아까 다시 세뇌시킨 맥라이언에게 어떻게 세뇌가 풀린 것인지 물었으나 그는 모른다고 답할 뿐이었다.
그냥 드래곤의 능력인 건가? 그래서 본인도 왜 풀린 건지 모르는 건가?
하여간에. 본인이 고귀하다, 고결하다 날뛰는 게 우습게도 단번에 다시 세뇌당했다. 심장이 없는 드래곤은 하잘것없었으니까. 달라고 하길 잘했지.
“그나저나 아까 그 태도는 뭐야. 오히려 나한테 고마워해야지.”
그가 원래 있을 자리에 있게 해 줬으니까. 은혜도 모르는 드래곤 같으니라고.
그녀는 아직 맥라이언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부작용 때문에 이안은 내팽개쳤지만 맥라이언과 레예프는 아직 효용 가치가 있었다.
“게일, 우선 맥라이언의 세뇌가 왜 풀린 건지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레예프도 알아봐. 걔도 요즘 이상할 만큼 뜸하니까. 이만 가 봐.”
내려진 축객령에 게일은 스크롤을 찢었다.
익숙한 일이라는 듯 그레이스는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 게일에게 시선도 두지 않았다.
“흐흐흥~.”
홀로 방에 남은 그레이스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드디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았다.
이 세계의 주인공, 다시 베스인 공녀가 될 날이 고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