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15)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15)화(115/162)
<115화>
끼이익.
잘 달리던 마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더니 도로에서 빠져나와 외곽에 멈췄다.
탄이 마차 안에 있는 줄을 잡아당겼기 때문이었다.
“왜 그래요?”
셀로니아는 바깥 풍경을 확인하곤 탄에게 물었다.
저택에 도착했나 싶었지만 그들이 멈춘 곳은 도로였다. 아직 공작저에 도착하려면 조금 더 가야 했다.
“셀로니아, 그냥 나와 함께 가.”
탄이 쥐고 있던 셀로니아의 손을 더욱 꽉 잡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집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그녀 때문에 아까부터 심기가 좋지 못했다.
이유는 묻지 말라는 그녀가 힘들어 보여서 입을 꾹 다물곤 있었지만 이건 아니었다.
그녀는 공작저로 돌아가는 내내 표정이 어두웠다. 마치 억지로 끌려가는 사람처럼 집으로 돌아가기 싫은 듯 보였다.
그게 너무도 눈에 보여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싫다면 함께 북부로 가자.”
“…….”
갑작스러운 탄의 제안에 셀로니아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그에게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알고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쏙쏙 골라서 하는 걸까. 모든 것을 모른 척하고 도망치고 싶은 제 마음을.
하지만 이내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왜 이렇게 제 마음을 잘 아는지.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 남자의 눈동자는 한시도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저보다 더 저를 걱정 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그이다 보니 미묘한 변화가 보인 것이었다.
“그럴까요. 이대로 북부로 가서 함께 살까요.”
탄 덕분에 심각했던 그녀의 입매는 어느새 부드럽게 허물어져 있었다.
“농담 아니다. 네가 원하면 당장 마차를 돌릴 수 있어. 마차로 장시간 이동이 힘들다면 순간 이동을 해서 가자. 거리가 멀어 몇 번은 해야겠지만 오늘 안에 당도할 수 있을 거다.”
“알아요. 농담 아닌 거. 고마워요, 탄. 진지하게 생각해 볼게요.”
셀로니아는 탄의 어깨에 툭 기대며 희미하게 웃었다.
이대로 진실을 덮어 두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그럴 순 없었다. 이건 제 존재의 의미와 생사와도 관련된 일이었으니까.
“당신이 묻고 싶은 게 많다는 거 알아요. 조금만 시간을 줘요. 모두 다 얘기할게요.”
숨길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거짓이 쌓이는 관계야말로 모래성처럼 언제 부서질지 모를 만큼 얄팍하다는 것을 아니까.
다만, 더 확실해지면 그때 모든 것을 그에게 털어놓으리라.
진실을 알았을 때에도 탄의 마음이 변함없다면 이 모든 게 해결되는 날에 탄과 함께 북부로 가자. 갤로웨이도 그레이스도 없는 그곳에서 둘이서 함께 다시 시작하자.
“부담 갖지 마. 내키지 않는다면 억지로 말할 필요 없다. 그냥 이거 하나만 알아 둬. 무엇이 됐든 나는 여기, 네 옆에 있을 것이다.”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는 탄의 따뜻한 손길에 셀로니아는 고마움을 느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멈추었던 마차가 다시 출발하였다.
얼마 가지 않아 저 멀리 공작가의 대저택이 보이기 시작했다.
베스인 공작저.
분명 지금까지 그녀에게 편하고 익숙하기만 했던 장소였는데 오늘따라 저 대저택이 웅장하다 못해 사람을 짓누를 듯 거대해 보여 낯설고 두려웠다.
‘집이라 여겼었는데…….’
결국 이곳은 안식처가 아니었다. 공작저엔 자신의 것이라곤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건도, 사람도, 그 무엇도. 모두 진짜 제가 아니라 셀로니아 베스인을 위해 존재할 뿐이었으니까. 가족이라 여겼던 아버지조차.
그때 반대편에서 오던 익숙한 마차가 앞서 공작저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갤로웨이의 마차였다. 아버지가 귀가한 것이었다.
그녀는 치미는 분노에 파르르 떨려 오는 입술을 꾹 깨물다 문득 옷소매 사이로 드러난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를 보았다.
고생 없이 자란 것 같은 가냘프고 고운 셀로니아의 손.
손을 올려 눈앞에서 요리조리 움직여 보았다.
분명 이 손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건만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갤로웨이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진짜 셀로니아의 것이지.
베스인 공작이 그렇게 걱정하는 진짜 딸의 몸.
“넌 나의 보석이란다. 아주 작은 상처도 입어서는 안 된다. 그걸 보는 난 피눈물이 날 테니.”
그 순간 갤로웨이가 했던 말이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피눈물이라.
그래. 생각해 보면 갤로웨이는 늘 아버지의 걱정이라 포장한 채 대놓고 이 몸만 걱정했었다.
그렇다면…….
“탄, 저 좀 도와줄래요? 꼭 확인해 봐야 할 게 있어요.”
이윽고 그녀의 입매가 위험하게 비틀렸다.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믿어 주는 그를 위해서라도 이대로 무너질 수도, 가만히 당할 수는 없다고.
셀로니아는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 맸다.
* * *
빈민촌에서 꽤 떨어진 인적이 드문 숲.
황실 기사들은 실종자들의 마지막 행선지로 여러 번 지목된 이 숲에서 실마리라도 얻기 위해 수색 중이었다.
실종자들에 대한 보고를 받은 황제는 대대적으로 수사를 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에 따라 수색대가 꾸려졌다.
“이쪽을 더 수색하라.”
“예, 예!”
장갑을 낀 손으로 이안이 반대편을 가리키며 명령하자, 기사들이 흠칫 놀라며 빠릿빠릿하게 몸을 움직였다.
모두 하나같이 기사단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바로 어제 일 때문에.
본인의 아버지인 선대 공작에게 막말을 내뱉어 패륜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선대 공작이 아끼는 개를 눈앞에서 베어 버린 그 사건 말이다.
부단장인 러드 백작이 기사들의 입단속을 시켰으나 이미 알음알음 말이 새어 나가 기사단 내에 소문이 퍼진 상태였다. 그래서 함께 수색을 나온 기사들은 두려워하며 이안의 눈치를 보기 일쑤였다.
“단장님, 안쪽을 조금 더 확인해 보고 오겠습니다.”
러드 백작의 말에 이안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수색대를 총괄 지휘하기 위해 외근을 나온 이안의 표정은 몹시도 살벌하였다. 누구 하나 잘못 걸리면 사단이 날 정도로.
그럴 만했다. 아버지의 가벼운 입 덕분에 어제 일이 가문 원로회의 귀에 들어갔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체르빌 공작가의 가주 자질을 운운하고 있기까지 했다.
“하. 웃기지도 않는군.”
코웃음을 치며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기던 이안은 기사들이 모두 숲 안쪽으로 들어간 것을 보곤 끼고 있던 가죽 장갑을 벗었다.
그러자 드러난 두 손에 불만스럽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그의 손끝이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다 타 버린 재처럼.
썩어 가는 것이라는 의심이 들었으나 손끝의 감각은 여전했다.
이 현상은 어제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생겼다.
게다가 분명 어제는 손끝만 검붉게 변해 있었다.
당연히 피가 잘 통하지 않아 그런 줄만 알았는데 자고 일어나 오늘 아침 다시 확인해 보니 손가락 한 마디까지 칠흑같이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독처럼 점점 퍼져 나가듯이.
“X발.”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이안은 더는 사람의 손이 아닌 것 같은 제 손끝을 바라보며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 * *
“감히, 감히……!”
복도를 울리는 성난 목소리와 함께 거친 발걸음이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 소식을 전해 들은 갤로웨이의 얼굴이 다급했다.
“아, 아가씨. 어떻게, 어떻게…….”
“빨리 의원을 불러와라!”
이윽고 중앙 문에 다다랐을 때 안절부절못하는 엘라의 모습과 함께 급히 의원을 찾는 대공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리고 대공에게 기대듯 서 있는 셀로니아의 모습도.
“피를 많이 흘리신 듯합니다.”
갤로웨이와 함께 걸음 한 보좌관 레이몬드가 셀로니아를 보고 말했다.
그 말에 마치 도화선에 불이 붙은 듯 갤로웨이의 이성이 통제되지 못하고 뚝 끊겼다. 셀로니아가 크게 다쳐 대공이 길길이 날뛰고 있다는 전언을 실제로 확인한 순간이었으니까.
정말로 셀로니아의 왼쪽 팔소매가 붉은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그리 조심해라 누누이 말했건만! 내 딸의 몸에……!”
흥분하여 한껏 격앙된 얼굴로 소리를 내지르던 갤로웨이가 셀로니아에게 한달음에 다가갔다.
“이게 어찌 된 것이냐!”
“……아버지.”
“뭣들 하느냐! 당장 치유사를 불러오지 않고!”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지, 갤로웨이가 하인들을 향해 살벌하게 소리쳤다.
떨어진 불호령에 모여 있던 사용인들이 황급히 움직였다.
공작저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대공과 함께 돌아온 아가씨가 다 쓰러질 것 같은 얼굴로 왼쪽 팔소매에 피 칠갑을 하고 나타났으니까. 누가 봐도 크게 다친 사람처럼.
“감히 이 몸에! 누가 그런 것이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갤로웨이가 실핏줄이 선 눈으로 셀로니아의 왼쪽 팔을 확인하기 위해 잡아끌었다.
다친 팔이라는 것을 알면서 잡아끄는 손길이 우악스럽기 짝이 없었다.
“치유사는 아직인 것이냐! 흉이 남으면 안 된다. 흉이 남으면 안 돼.”
“…….”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갤로웨이의 모습에 셀로니아는 소름이 끼쳤으나 똑똑히 지켜보았다.
제가 아프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자신의 팔소매를 걷어붙이려는 갤로웨이의 행동을. 물불 가리지 않고 이 몸에 상처가 난 것에 분노하는 그 모습을.
“아버지, 아파요.”
“대체 뭘 하다 온 것이기에! 몸을 늘 소중히 여기라 말하지 않았느냐!”
아프다는 말에도 갤로웨이는 개의치 않고 오히려 푸른 눈에 섬광을 번뜩이며 단추를 다 푼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 눈엔 무시무시한 비난과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상처를 입고 온 그녀를 향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