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16)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16)화(116/162)
<116화>
“아니……?”
드러난 셀로니아의 왼쪽 팔을 확인한 갤로웨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정도 피라면 분명 커다란 상처가 있을 거라 생각한 것과 달리 하얀 팔에 군데군데 피가 묻어 있긴 했으나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오해에요. 이건 제 피가 아니에요.”
“네에? 아가씨 피가 아니라고요?”
셀로니아가 사실을 얘기하자 눈물을 짓던 엘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피가 너무도 흥건하게 묻어 있어 상처를 확인하지 않은 채 아가씨가 다친 것으로 인식했으니까.
“내 피다.”
“공의 피라고?”
탄의 대답에 분노로 일그러져 있던 갤로웨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화했다.
“내가 다친 걸 그녀가 치유해 준 것입니다. 그러니 이 손 놓으십시오.”
탄은 아주 꽉 그녀의 팔을 붙잡고 있는 갤로웨이의 손을 거칠게 떼어 냈다.
다쳤다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무자비하게 상처를 확인하려 들다니. 공작을 향한 그의 붉은 눈동자에 살기가 어렸다.
“대공님께서 다리를 다치셔서 치유해 드렸어요. 지혈하느라 소매에 피가 많이 묻은 것뿐이고요.”
결국 두 눈으로 진실을 확인한 셀로니아가 평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입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탄의 다리로 향하였다.
바지가 검은색이라 피 묻은 게 표가 나진 않았으나 찢겨 있는 것을 보아 그 안에 상처가 생겼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녀는 메스꺼운 속을 삼키었다.
방금 갤로웨이의 행동과 말들로 이제 진짜 명확히 알게 되었다. 정말로 갤로웨이가 걱정하던 것은 자신의 ‘몸’뿐이었다는 것을.
이 몸에 흉이 지면 안 된다고 중얼거리던 그 모습이 어찌나 소름 끼치고 역겨운지.
사람은 오감 중에 시각에 제일 의존하는 존재였다.
상처가 보이지 않아도 많은 양의 피를 묻힌 채 아픈 것처럼 서 있다면 누구든 다쳤다고 생각할 게 뻔했다. 더군다나 아픈 것 같은 표정으로 탄에게 기대어 있다면 더더욱.
이 피는 그녀가 부탁하여 탄이 만들어 낸 가짜 피였다.
물론 혹시라도 원하는 반응을 이끌어 내지 못할까 진짜 상처를 내려고 했으나 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그럴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가 옆에서 긴급하게 의원을 찾아 준 덕에 모두가 의심도 하지 않고 깜빡 속아 넘어갔다.
“대체 공은 무엇을 하고 돌아다니길래…….”
그제야 갤로웨이가 몸에 힘을 탁 풀며 성마른 손길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아……. 셀로니아. 이 아비의 피를 말릴 셈이냐.”
진실을 알게 된 갤로웨이의 얼굴은 좀 전까지만 해도 피가 몰린 듯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으나, 지금은 핏기가 싹 가셔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버지, 전 괜찮아요. 멀쩡해요.”
셀로니아는 평소처럼 갤로웨이를 안심시키려 부드럽게 웃었다.
“미안하다, 미안해. 네가 다친 줄만 알고……. 아비가 너무 놀라서 너를 몰아붙였구나. 많이 놀랐겠어.”
보는 사람이 다 안쓰러울 정도로 갤로웨이의 어깨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 어느새 그의 눈가엔 옅은 물기까지 어려 있었다.
갤로웨이가 파리해진 손으로 셀로니아의 두 손을 조심스럽고도 다정하게 붙잡았다.
“아니에요, 아버지. 제가 더 조심할게요.”
“의원은 왜 찾은 게냐. 혹시 또 어디가 아픈 것이냐.”
표면적으로는 걱정하듯 묻는 물음이었으나 셀로니아는 알았다. 무언가를 미심쩍어하며 캐내려고 하는 갤로웨이의 속내를.
“치유술을 너무 많이 써 힘들어하는 그녀의 몸 상태를 확인하려 한 것뿐입니다.”
탄이 대신 대답하며 도움을 주었다. 이미 그녀에게 지금 연기할 상황들을 전해 들은 터였기에 머뭇거림이 없었다.
게다가 셀로니아는 그에게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함이라고 뭉뚱그려 말했으나, 탄은 대충 눈치를 챘다. 그 ‘무언가’가 갤로웨이 베스인이라는 것을.
“그래. 의원을 방으로 올려 보내마. 힘들 터인데 어서 들어가서 쉬거라. 날이 저물고 있으니 공은 이만 돌아가 주시오. 내 조만간 따로 연락할 터이니.”
셀로니아를 향해 인자한 아버지처럼 굴던 갤로웨이가 탄에게는 매섭도록 차갑게 말했다.
그 모습은 누가 봐도 딸을 힘들게 한 장본인에게 화를 내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보이기 충분했다.
“그건 안……”
“대공님, 고마워요. 조심히 가세요.”
셀로니아가 탄의 말을 가로채며 단호하게 말했다.
무언가 께름칙함을 느낀 탄이 지금 저를 혼자 공작저에 두는 것을 무척이나 꺼려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으니까.
그의 마음은 고맙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가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면 갤로웨이가 더더욱 의심을 할 수 있었다.
“……하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간절하게 제발 그냥 돌아가 달라는 셀로니아의 눈빛을 읽은 탄은 결국 한숨과 함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공작저를 나섰다.
“아가씨,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닫히는 문 사이로 천천히 멀어지는 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셀로니아의 곁으로 엘라가 다가왔다.
그녀는 엘라의 어깨 위에 팔을 얹은 채 걸음을 옮기려다 고개를 돌려 갤로웨이를 응시하였다. 할 말이 있었다.
“아버지.”
“그래. 말하려무나.”
“제가 아버지 사랑하는 거 아시죠.”
셀로니아가 빙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분명 얼굴은 웃고 있었으나 눈만큼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남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다정한 얼굴과 목소리는 그저 아버지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딸의 모습으로 보일 뿐이었다.
“하하하. 녀석. 나도 하나뿐인 내 딸을 무척 사랑한다.”
갤로웨이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화답했다.
사랑이 넘치는 부녀를 본 사용인들은 모두 찡하다는 듯 가슴을 부여잡았다.
“올라가 볼게요.”
“그래. 편히 쉬거라.”
갤로웨이에게서 고개를 돌린 셀로니아의 얼굴은 어느새 웃음기가 싹 싸라진 채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방금까지 다정하게 웃으며 아버지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사람과 동일 인물로 볼 수 없을 만큼.
“아가씨! 저 정말 너무 놀라서…….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셀로니아를 부축하며 계단을 올라가던 엘라가 한시름 놓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나저나 역시 공작님의 딸 사랑은 여전하시네요. 저번에도 그러시더니, 우리 아가씨 손끝 하나 다치는 것도 용납하지 못하시는 거죠.”
“저번? 언제?”
이어 들려온 엘라의 말에 셀로니아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왜, 그때 있잖아요. 짐승들의 습격을 받아 대공님께서 구해 줬을 때요. 그때도 아가씨가 기절해서 저택에 돌아오니 한바탕 난리가 났었어요. 공작님이 어찌나 분개하시고 걱정하시던지. 절대 작은 흉이라도 남으면 안 된다고 치유사님을 닦달하셨죠. 그때 모두가 진땀을 뺐어요.”
다시 생각해도 무서웠는지 엘라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
셀로니아는 기절해 있던 터라 갤로웨이가 어떻게 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 보니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부터 갤로웨이는 늘 이 몸만 걱정했던 것이었다. 제가 처음 가져 본 아버지라는 그늘에 너무도 따뜻해 알지 못했을 뿐.
“저도 공작님 같은 아버지가 계셨으면 좋겠어요. 헤헤.”
“그래. 사랑하는 딸을 위해선 무엇이든지 할 분이시지.”
그 무엇이 됐든. 영혼을 바꾸는 일이라도.
셀로니아는 으득 이를 갈며 생각했다. 더는 바보처럼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이제 그녀에겐 아버지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
한편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고요해진 중앙 문 앞에 갤로웨이는 여전히 서 있었다.
그는 하녀의 부축을 받아 계단을 올라가 사라진 셀로니아의 뒷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발칙하군.”
그 순간 공작의 한쪽 입꼬리가 비식 올라갔다.
방금 일어났던 그 상황이 모두 연극이었다는 사실을 모두 알아챈 것이었다.
상처가 있는 것처럼 굴던 행동도, 방금 저를 향한 그 고백도.
어떤 것을 알아내기 위함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반응을 보기 위해 꾸며 낸 거짓이라는 것쯤이야 노련한 갤로웨이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손안에 든 쥐였다.
이 세계를 잘 알지 못하는 한낱 어린 여자애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일 따위.
심지어 지금 그 여자는 셀로니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제 딸의 모습을.
그 모습으론 아비에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못한다.
그 무엇이 됐든 저 여자가 저지르려는 것은 모두 패륜일 뿐이었다. 사람들에겐 절대 허용되지 않는.
“어떻게 할까요.”
조용히 곁에 서 있던 레이몬드가 고개를 숙이며 물어 왔다.
“내 딸이 알고 싶다는데 도와줘야지.”
아버지가 딸에게 너그러운 아량을 베푸는 듯한 말투였으나 갤로웨이의 입가에 그려진 미소는 비열하기 짝이 없었다.
* * *
“오, 오셨습니까. 주군.”
잭이 슬며시 눈치를 보며 이제 막 저택에 들어온 탄에게 허리를 수그렸다. 함께 있던 톰도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탄은 그들을 마치 없는 사람 취급하며 지나쳐 걸었다. 그의 머릿속엔 온통 셀로니아에 대한 생각뿐이었으니까.
지하에서 만난 여자가 본인이 진짜 그레이스 베넷이라고 주장한 이후 셀로니아의 상태가 이상했다. 심지어 갤로웨이의 행동을 확인하려는 모습까지.
분명 이 세 사람을 둘러싼 일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게 있는 것이었다.
뭐지? 제가 놓치고 있는 게 뭘까.
탄은 셀로니아에게 기다리겠다, 말하지 않아도 된다 호언장담했으나 마냥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뭐가 됐든 그녀를 위협하고 괴롭히는 것들이라면 자신이 처리해야 했으니까.
우선 오늘은 조금 더 일찍 그녀의 방에 찾아가야겠다 생각하고 있을 때.
“주, 주군!”
등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탄은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잭을 보았다.
“제가 북부에서 이것을 가져왔습니다.”
잭이 옆으로 한발 물러나며 몸으로 가리고 있던 무언가를 내보였다.
그게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아 탄이 물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윽고 잭이 선보인 물건 앞에 선 탄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잭이 북부에서 가져왔다는 것은 낡고 커다란 하잘것없는 거울이었다.
“치워라.”
“주, 주군! 이건 그냥 거울이 아닙니다! 주군께서 아끼시던 기억경입니다!”
돌아서려는 탄을 붙잡으며 잭이 설명을 늘어놓았다.
기억경? 그게 뭐지?
생소한 단어에 몸을 돌리려던 탄이 다시 거울 앞에 섰다.
그 순간이었다.
탄의 모습을 비치고 있던 거울의 표면이 순식간에 까맣게 바뀌더니 그 위로 수많은 장면들이 파노마라처럼 재생되기 시작했다.
거울이 내보이는 장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낯설지만 익숙한 괴물의 모습과 더불어 그의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왔다.
이윽고 탄은 깨달았다.
지금 보이는 이것은 그가 마왕으로서 잃어버렸던 모든 기억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