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19)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19)화(119/162)
<119화>
며칠 뒤.
“아가씨, 공작님께서 준비가 다 되셨다고 합니다.”
노크 소리와 함께 방문 너머에서 하인이 알려왔다.
“그래. 곧 내려가겠다 전해 드려.”
“네. 알겠습니다.”
그녀의 대답에 복도를 울리는 하인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다 됐습니다.”
“역시 우리 아가씨. 언제나 빛이 나셔요!”
치장을 마친 하녀가 물러나며 말하자 엘라가 눈을 빛내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에 셀로니아가 천천히 시선을 들어 앞에 놓인 전신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흠잡을 곳 없는 얼굴은 오늘따라 더욱 도자기 인형처럼 고왔다.
차분하게 반으로 올려 묶은 머리카락이 크게 웨이브 진 채로 찰랑거리며 늘어져 있었고, 드러난 길고 하얀 목에는 그녀의 눈동자와 똑 닮은 푸른 사파이어가 촘촘히 박힌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둥글고 가녀린 어깨선이 드러난 보랏빛 드레스는 하얀 그녀의 피부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누가 보더라도 한 번 더 시선을 줄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외모였다.
“헤헤. 제국 어느 누구도 아가씨의 외모에 견줄 수 없을 거예요. 오늘 주인공이신 황녀 전하 조차도요!”
엘라가 두 손을 모은 채 황홀하다는 듯 구두를 신은 셀로니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분명 칭찬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그녀에겐 아니었다. 거북하고 속이 메슥거렸다.
오히려 그 칭찬은 올가미처럼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원래부터 네 것이 아니었다고. 네 것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주인이 따로 있다고. 주문처럼 말이다.
“엘라, 내가 부탁했던 건?”
“아…… 여기요. 두 개 맞죠?”
돌아온 싸늘한 대답에 당황한 엘라가 허둥지둥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셀로니아는 말없이 그것을 받아 들었다.
작은 크리스털 병이었다. 다행히도 레예프와 맥라이언이 아직까지 다시 술수에 당하지 않고 잘 버티고 있었다.
이 병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였다. 통할지 안 통할진 모르겠으나 안 하는 것보단 나으니까.
“저어…… 아가씨…….”
엘라가 힐끗힐끗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하렴.”
“제가 혹시 아가씨께 무엇을 잘못했을까요? 그렇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사과드릴게요!”
시선을 주지 않는 셀로니아를 향해 엘라가 절박하고도 다급하게 말했다. 요 며칠 아가씨의 태도가 급격하게 차가워졌으니까.
전에는 살갑게 대해 주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자주 나누곤 했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무슨 일인진 모르겠으나 아가씨가 너무도 조용했다. 전처럼 먼저 대화를 걸어오는 일도 없었고 심지어 시중도 거부하였다.
아예 곁을 내어주질 않으셨다. 그건 다른 시중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어제 병을 구해 달라는 아가씨의 부탁에 엘라는 반색하였다. 오랜만에 처음으로 아가씨가 먼저 무언가를 요구하신 거니까.
하지만 여전히 아가씨의 태도는 냉담하고 싸늘했다. 전에 자신이 알던 다정한 아가씨가 아닌 듯이.
“…….”
셀로니아가 천천히 시선을 돌려 엘라를 바라보았다.
초조한지 손과 발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엘라는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아냐. 그런 거 없어.”
“저, 정말요……?”
“그래.”
“그렇지만……! 아니, 아니에요…… 죄송해요.”
무슨 말을 내뱉으려던 엘라는 결국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저었다. 토를 달 수 없었다. 아가씨가 그런 거라면 그런 거였으니까.
“난 한 번 더 점검하고 나갈 테니 먼저 나가 있어.”
“……네에.”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린 엘라는 떨어진 축객령에 조용히 방을 나갔다.
탁.
문이 닫히자 방 안이 고요해졌다. 철저하게 혼자가 된 셀로니아는 엘라가 사라진 문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두 손을 말아 쥐었다.
마음이 따끔거렸다. 비 맞은 강아지처럼 안쓰러운 엘라의 뒷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엘라에게 미안했지만 더는 곁을 내어줄 수 없었다.
제일 의지하고 믿음을 가졌던 친구였으나 결국 가문의 사람인 엘라는 이제는 경계 대상일 뿐이었다.
셀로니아는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아무도 믿지 못하는 공작저에서 철저히 혼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 * *
“전하, 정말이지 미의 여신이 강림하신 게 틀림없습니다!”
“아프로디테도 지금 전하의 모습을 본다면 질투에 눈이 멀 것이에요!”
과할 만큼의 입바른 칭찬들이 시녀들의 입에서 줄줄이 새어 나왔다. 당연히 황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과도한 알랑방귀였으나 아예 거짓말은 아니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세 시간을 넘게 치장한 티타니아의 외모는 어느 때보다 더 빛이 났으니까.
“한두 번이야?”
티타니아는 시녀들의 칭찬에 당연하다며 콧방귀를 꼈으나 기분이 좋았기에 어깨가 한껏 위로 올라가 있었다.
넓고 웅장한 황녀의 방.
열린 문 사이로 하인들이 쉴 틈 없이 황녀에게 온 선물들을 나르고 있었다.
방 한구석에 트리만큼 선물이 가득 쌓이고 또 쌓여 갔다. 그녀의 눈에 들기 위해 귀족들이 미리 보내온 선물들이었다.
“하여간. 센스들이란, 쯧.”
티타니아는 선물 더미를 바라보며 가소롭다는 듯 혀를 찼다.
몇 개 뜯어 봤으나 하나같이 격이 떨어지고 조잡스러웠다.
아무리 좋은 선물이라 한들 눈이 하늘에 달린 황녀의 마음에 차는 선물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딱 하나는 살아남았다.
티타니아는 화장대 위에 놓은 케이스 안에서 고아한 빛을 발하는 블루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들었다.
티타니아의 푸른 눈과 똑같은 색의 블루 다이아몬드 귀걸이는 그레이스 베넷이 보내온 선물이었다.
디자인은 별로 특별한 게 없었으나 귀걸이에 달린 블루 다이아몬드는 최상급으로, 바다처럼 투명하여 빛 아래에서 오로라처럼 오묘한 색을 띠며 발광하였다.
그래서인가?
최상급 보석이라면 황녀인 티타니아에게 널리고 널렸으나 왜인지 모르게 자꾸만 마음이 끌렸다. 보고 있으면 꼭 착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걸로 해.”
“네.”
곁에 있던 시녀는 티타니아가 내민 귀걸이를 재빨리 받아 대신 착용시켜 주었다.
“역시. 그런데 이 집안 거지 아니었어?”
요리조리 거울을 보며 푸른 눈과 어울리는 귀걸이에 만족하던 티타니아가 말했다.
베넷 남작가는 듣도 보도 못한 가문이었다. 사교계나 정계, 재계에서는 이름조차 언급된 적이 없다.
심지어 이안 공작과의 약혼 소식 때 처음 알게 된 한미한 가문이었는데 이런 비싼 귀걸이라니. 심지어 그녀에게 필요한 찻잎까지 주지 않았나.
“듣자 하니 베넷 남작의 사업이 잘 풀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이안 공작에게 빌붙은 거 아니고?”
“두 사람은 파혼 얘기가 오가고 있으니 아마 남작저의 재산으로 산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긴.”
시녀의 말에 티타니아가 수긍했다.
얼마 전 그레이스가 이안에게 파혼서를 보냈다고 사교계가 아주 떠들썩했으니까.
“얼마나 잘 풀리길래 그 여자 따위가 이런걸.”
티타니아는 그레이스를 깔보며 자신의 귀에 달린 귀걸이가 흡족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애초에 그 여자는 자신과 어울릴 수조차 없는 위치였다. 어차피 더는 볼일 따위 없었다. 찻잎은 손에 넣었으니.
“대공이 오면 무조건 나에게 들리라고 해. 거부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데려와. 알아들어?”
“네. 알겠습니다.”
희번덕거리는 티타니아의 눈에서 광기를 읽은 시녀들과 기사들은 군말 없이 허리를 숙였다.
그들은 모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공을 황녀 앞에 대령해야 했다. 안 그러면 모가지가 날아갈 테니.
* * *
황궁의 가장 큰 연회 홀인 베베르마 홀은 모인 귀족들로 인해 시끌시끌하였다.
올해 황녀의 생일 연회는 다른 때보다 특별하다는 소문이 효과가 있었는지 지방에서까지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든 귀족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베스인 공작님과 공녀님 드십니다!”
도착을 알리는 시종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러자 시끄럽던 홀 안이 찬물을 끼얹듯 조용해졌다.
모두가 흥미로운 시선으로 천천히 열리는 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역시 베스인 부녀네요.”
어디선가 튀어나온 읊조림에 모두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팔짱을 끼고 들어오는 베스인 공작과 공녀는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외모부터 재력까지. 어느 하나 부족한 게 없는 그들은 그야말로 완벽한 부녀의 형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영애들이 부러워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셀리,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네. 아버지.”
갤로웨이가 온화한 미소와 함께 다정히 말하자 셀로니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다정하셔요.”
“공작님은 평소에도 공녀님을 그렇게나 아끼신다면서요?”
“소문엔 황제께서 황태자 전하와 공녀님의 혼사를 추진하려 했는데, 공작님께서 글쎄, 공녀님이 원하는 짝과 맺어 주고 싶다면서 거절하셨대요.”
“어머나…….”
그 모습을 본 영애들의 입에선 셀로니아를 향한 부러움이 담긴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귀족 영애로 태어난 이상 무릇 가문을 위해서 아버지의 뜻대로 혼사가 정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뼛속까지 귀족주의에 물들어 있는 아버지들은 대개 자식들을 가문의 번영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며 엄격하고도 근엄하게 대했다.
그것은 평범하고도 흔한 일이었으나 저 부녀의 모습이 부럽게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딸에게 살갑고도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이.
“그나저나 공작님과 함께 오셨네요? 공녀님은 허시브룩 대공님과 같이 등장하실 줄 알았는데.”
“아직 두 분 사이가 정식으로 발표 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그 얘기 들으셨어요? 공작님이 두 분을 반대하신다는 말이 있던데…….”
모여 있는 영애들 사이에서 화제가 빠르게 돌아갔다. 더욱 흥미가 돋는 가십에 모두가 쫑긋 귀를 세웠다.
“베스인 공작님.”
갤로웨이와 셀로니아가 계단을 내려와 홀 안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한 남자가 웃으며 다가왔다.
“공녀님은 나날이 더욱더 아름다워지시는군요.”
“감사합니다.”
셀로니아는 남자가 기분 나쁘게 훑어보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클로이 백작. 오랜만이군.”
“소식 들었습니다. 정말이지 공작님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감탄하였지 뭡니까. 빈민들을 위한 터전을 여셨다니요.”
갤로웨이의 대답에 클로이 백작이 감명받았다는 듯 과장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미 소식은 빠르게 퍼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베스인 공작이 지은 임시 건물에 빈민들을 수용했다는 것은.
“처음이라 아직 부족한 게 많지.”
“그럴 리가요. 공작님의 행보는 의미가 남다릅니다.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공작님의 부름이라면 맨발로 뛰쳐나가겠습니다.”
“하하하. 고맙군.”
클로이 백작과 대화를 나누는 갤로웨이의 옆에서 셀로니아는 방금 자신이 들어온 문을 바라보았다. 따로 출발하게 된 탄이 곧 도착할 시간이었으니까.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요.”
그때였다. 귓등을 때리는 곰살맞은 목소리가 셀로니아를 불렀다.
아주 익숙한 목소리였기에 그녀의 눈이 차분하고도 차갑게 가라앉은 채 천천히 옆으로 돌아갔다.
역시나 그레이스가 아는 척을 해 왔다. 그 뒤에는 맥라이언이 서 있었다.
“공녀님을 뵙습니다.”
그레이스는 셀로니아의 시선에 드레스 자락을 살포시 올리며 예의를 갖추었다.
그 인사에 찰랑 소리를 내며 피부에서 살짝 떨어진 목걸이가 그레이스의 얼굴 아래로 보였다.
셀로니아의 시선이 절로 목걸이에 머물렀다.
화려하고도 커다란 목걸이는 바로 에르젤 보석상의 한정판인 그 목걸이였다.
고개를 든 그레이스는 셀로니아의 시선이 목걸이에 향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곤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셀로니아의 뒤에 서 있는 갤로웨이를 힐끗 쳐다보더니 생긋 웃으며 말했다.
“역시 공녀님도 이 목걸이의 진가를 알아보신 거군요. 이건 사랑하는 저희 아버지께서 제게 선물로 주신 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