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2)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2)화(12/162)
<12화>
셀로니아의 고개가 천천히 정면을 향했다.
시선을 들자마자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서 자신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붉은 눈과 마주쳤다.
셀로니아의 어깨가 절로 움찔거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기억이 절로 떠오를 만큼 살벌한 눈동자였다.
“왜, 왜 당신이 여기에 있어요?”
“내가 너를 구했으니까.”
“그럼 이제 돌아가도…….”
“글쎄. 그전에 네가 나한테 진 빚을 받아야겠는데.”
“부족하지 않게 드릴게요. 원하는 금액을 말해요.”
“너, 나를 알지.”
“…….”
깜빡이도 없이 갑자기 들어온 공격에 셀로니아의 입이 꾹 다물렸다.
그는 단 한 번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선득한 붉은 눈으로 자신을 직시하고 있었다.
속을 꿰뚫어 보려는 듯.
“날 본 적 있나.”
“그럴 리가요. 저는 당신을 오늘 처음 봤는걸요.”
또다시 들어온 공격에 셀로니아는 이번만큼은 침착하게 답하였다.
그가 왜 본인의 존재에 대해 저에게 묻는진 모르겠으나, 그녀가 할 말은 그것뿐이었다.
“그럼 왜 나를 보고 놀랐지? 마치 나를 본 적 있다는 것처럼. 너, 내가 어떻게 살아 있냐고 했다.”
야차 같은 그의 붉은 눈이 기필코 자신의 속내를 끄집어내려는 듯 집요하고 그악스럽게 번뜩였다.
‘젠장. 내가 그런 소리도 했던가…….’
기겁한 나머지 헛소리를 왕창한 모양이었다.
도망칠 곳 없는 궁지로 몰아붙이는 그의 눈빛에 식은땀 한 줄기가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셀로니아는 동요하지 않은 표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뻔뻔히 대답했다.
“다른 사람이랑 착각했어요.”
“나는 기억이 없다.”
“…….”
“그런데 네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지.”
예기치 못한 고백에 셀로니아는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이자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집착한 건가?
‘아님, 죽어야 할 마왕이 죽지 않아서 남주들이 변한 건가?’
아니, 아니다. 그건 너무 근거 없는 추론이다. 거기까지 가진 말자.
또다시 구차해지고 싶지 않으니까.
“잘못 짚었어요. 몰라요, 저는.”
“나를 모른다고.”
그의 얼굴이 돌연 차갑게 가라앉았다.
속사정까지 털어놓았는데도 앵무새처럼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물러설 수 없었다.
그는 선득한 눈을 번뜩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끝까지 말하지 않겠다는 거군. 그런데 나는 네가 아는 나에 대해 알아야겠거든.”
“정말 모른다니까요?”
“그래?”
순간, 그의 얼굴에 불안할 만큼 요요한 웃음이 피어나자 셀로니아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리고 그 느낌은 적중하고 말았다.
“허…….”
기가 차다는 건 지금 이런 상황을 보고 하는 말일 것이다.
셀로니아는 눈앞에 놓인 아찔한 광경에 주먹을 꾹 쥔 채 입을 열었다.
“이봐요.”
“내가 기억이 없어서.”
남자는 뻔뻔하게 말하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심지어 삐쭉 삐져나온 긴 다리는 소파 옆에 놓인 테이블 위에 턱, 턱 올려놓기까지.
아주 본인 집 안방처럼 편안해 보였다.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인데요?”
“갈 곳이 없으니 여기 있을 수밖에.”
킬킬거리는 그의 음성에 셀로니아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밤의 야수인지 뭔지가 마왕인 것도 모자라 우리 집에 눌어붙겠단다.
이게 나한테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이만 나가요. 경비대한테 끌려 나가고 싶지 않으면.”
그때였다.
그가 매끈한 입꼬리를 올리며 갑자기 손가락을 튕겨 냈다.
화르륵.
두 사람 사이에서 주먹만 한 불씨가 공중에서 활활 타올랐다.
불씨는 쭉 뻗은 그의 손가락이 지휘봉이라도 되는 양 움직임에 맞춰 음표처럼 움직였다.
불씨는 융단으로 만든 창문 커튼 앞에 아슬아슬하게 멈춰 섰다.
1cm만 더 다가가면 커튼은 금방이라도 화르륵 타올라 도화선이 될 것이다. 방 안을 모조리 불태워 버릴.
“내가 이 불씨를 얼마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
“이 집 전부를 뒤덮을 수 있을 정도.”
“이봐요……!”
“날 끌어내려는 인간들은 어떻게 할 거 같지?”
“그건…….”
“앞마당이 넓던데. 거기에 묻으면 되겠군.”
섬뜩한 말을 웃으면서 잘도 한다.
그러니까 그는 지금 누구든 자신을 억지로 끌어내려 든다면 다 죽이겠다 말하고 있었다.
이건 명백한 협박이자 경고였다. 바른대로 말하라는.
결국 셀로니아는 절망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울고만 싶었다.
마왕을 겪어 본 사람으로서 그가 지닌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었으니까.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눈앞에서 사라져 줬으면 했다.
게다가 그땐 마왕 하나 물리치겠다고 네 명이 발악했는데, 지금은 혼자였다.
맞서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들지 않았다. 그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러니 말해. 네가 알고 있는 나에 대해. 그리고 너에 대해서도.”
“하아, 진짜 모른다니까요…….”
그녀는 한탄 섞인 한숨과 함께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에게 해 줄 말은 없었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을까?
당신은 마왕이고 나는 당신을 죽인 구원자라고.
‘왜 말이 없지?’
좌절하며 또다시 협박을 기다리고 있는데, 적막이 수 초간 유지되었다.
그사이 불이라도 지른 건가 싶어 번쩍 고개를 들었다.
다행히 불씨는 아직 제자리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다만 그가 진실을 가늠해 보려는 듯 집요하고도 진득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뿐.
“내게 시간은 많다.”
무언가 결심했는지 그는 공중에 띄워 두었던 불을 거두어들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 뭐예요?”
갑작스러운 행동에 잔뜩 쫀 그녀가 거의 소파를 뚫을 기세로 등을 기대었다.
190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키를 가진 그는 앉았다가 일어서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한순간에 사람을 압도하는 그의 탄탄하고도 거대한 체구는 흡사 야생의 불곰 같았다.
“쯧. 안 문다.”
움츠러든 그녀를 본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무뢰한으로 만드는 태도가 영 마땅치 않았다. 무슨 짓을 했다면 모를까.
그는 그녀를 불만스럽게 쳐다보다 이내 응접실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통유리 창 앞으로 다가갔다.
“그거 아나.”
한눈에 보이는 정원을 눈에 담으며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아버지라는 자가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다 가라더군.”
너무 놀란 셀로니아는 혀를 씹을 뻔했다.
아버지는 이 남자가 무엇인지 알고 집에 들였단 말인가!
“호의를 거절할 순 없지.”
“거절해도 괜찮은데요…….”
“아니. 그럴 순 없다.”
그녀가 소심하게 반항했으나 씨알도 안 먹혔다.
“싫으면 네가 알고 있는 걸 말해. 그럼 내가 여길 머물 이유도 없다.”
“아무것도 모른다니까요.”
“그래. 기대하지. 언제까지 말 안 할 수 있는지.”
낄낄거리는 그의 웃음을 들으며 셀로니아는 맥 빠진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신이 나에게 억하심정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단시간 내에 이렇게 엿을 줄 리가 없었으니까.
* * *
뚝, 뚝.
지하를 울리는 물방울 소리가 사위에 깔렸다.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어두운 지하실 안은 눅눅하고 습한 기운에 벽이 온통 젖어 있었다.
끼이익.
고막이 아플 정도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꽉 닫혀 있던 지하실 문이 열렸다. 문을 연 사람은 검은색 로브를 질질 끌며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찰박, 찰박.
걸을 때마다 지하실을 울리는 젖은 소리가 음산한 기운을 더하였다.
군데군데 고인 물웅덩이에서 튀어 오른 물이 로브 끝을 적셨지만 그 사람은 익숙한 일이라는 듯 신경 쓰지 않았다.
거칠 것 없이 움직이던 다리는 두 계단을 올라 연단 위에 멈춰 섰다.
발이 멈춰 선 바로 앞에는 사람 허리 높이까지 오는 제단이 놓여 있었다.
로브 사이로 쑥 빠져 나온 손이 차가운 제단을 조심스럽게 쓸어 만졌다. 아주 소중한 것을 다루듯 애틋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은으로 만든 것인지 지하실 안의 냉기를 모두 흡수한 제단은 차갑다 못해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살이 시릴 정도였다.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기다렸다는 듯 뒤이어 누군가 다가왔다.
“어떻게 되었지.”
“두 개 더 확보했습니다.”
남자의 고저 없는 물음에 다가온 부하가 착실히 답했다.
부하는 어깨에 이고 있던 사람만 한 보따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쿵.
무게가 나가는지 묵직한 소음이 땅과 벽을 울렸다.
남자는 부하가 가져온 보따리에서 시선을 돌려 제단 앞에 놓인 제대를 바라보았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새까만 제대 위에는 커다란 마법진이 존재했다.
마법진은 커다란 구 안에 화려한 수식이 그려져 있었다.
수식 안엔 붉고 작은 돌멩이 같은 게 열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그 수가 미비해 커다란 마법진을 다 채우긴 무리였다.
남자는 현 상황이 불만스러운지 혀를 차다가 돌연 매서운 눈을 번뜩였다.
“더 속도를 낼 좋은 수가 있다.”
“명문하십시오.”
부하가 한쪽 무릎을 꿇자, 남자의 입에서 계획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