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20)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20)화(120/162)
<120화>
그레이스의 눈동자가 갤로웨이에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걸 목격한 셀로니아는 소름이 끼쳤다.
아무것도 몰랐다면 보이지 않았을 행동들이 이제는 너무도 잘 보였다.
“베넷 남작께서는 사업차 외국에 나가셨다고 들었는데 돌아오신 모양이네요?”
하지만 셀로니아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되려 미소를 지으며 그레이스를 향해 물었다. 그 목걸이를 누가 사 준 것인지 뻔히 알면서도.
“아니에요. 하지만 주기적으로 이렇게 저를 위해 선물을 보내신답니다.”
그레이스는 수줍게 웃으며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렸다.
그러더니 소중한 가보를 매만지듯 목에 걸린 목걸이를 살며시 쓸어 만졌다. 보란 듯이.
전에는 저 행동이 그저 한정판 목걸이를 자랑하려는 허영심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러기엔 내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거든.’
셀로니아의 한쪽 입꼬리가 비식 올라갔다.
어찌 웃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렇게 알아 달라고 발버둥을 치는데.
“셀리, 아비는 저쪽에 가 있으마.”
그때 클로이 백작과 얘기를 나누던 갤로웨이가 타이밍 좋게 빠지려 들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셀로니아는 여전히 그레이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아버지.”
그 순간 그레이스의 어깨가 미세하게 움찔 떨리는 것이 포착되었다.
셀로니아는 아주 온화하게 빙그레 웃으며 갤로웨이를 향해 돌아섰다.
“왜 그러느냐.”
“타이가 삐뚤어졌어요.”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이 거침없이 갤로웨이가 목에 두르고 있는 보타이를 매만졌다.
살짝 삐뚤어져 있던 타이를 올바르게 돌려놓은 셀로니아는 생긋 웃으며 그의 어깨에 붙은 먼지도 다정한 손길로 탁, 탁 털어 주었다.
갤로웨이는 셀로니아를 아주 묘한 눈동자로 지켜보았으나 그건 찰나일 뿐이었다. 늘 그렇듯 곧 인자한 아버지의 눈길로 돌아왔다.
“하하하. 이래서 아들보다 딸이라고 하는 건가 봅니다. 공작님, 정말 부럽습니다.”
함께 있던 클로이 백작이 눈치 없이 떠들어 대자 귀족들의 시선이 더 몰려들었다.
셀로니아는 이때다 싶어 티 나지 않게 그레이스를 지켜보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께서 제게 주시는 사랑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닌걸요.”
누가 봐도 아버지에게 듬뿍 사랑을 받는 딸처럼 그녀의 뺨이 싱그럽고도 수줍음이 담긴 홍조로 물들었다.
그 순간 셀로니아는 똑똑히 보았다.
그레이스가 입술을 꾹 다무는 모습을. 눈동자에 얼룩진 질투를.
아무리 짜고 친 판이라고 한들 가짜 딸이 본인의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딸처럼 구는 모습이 아니꼽겠지.
“암요. 그렇고말고요. 공작님의 공녀님 사랑은 제국 내에서도 아주 유명하시죠.”
클로이 백작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갤로웨이에게 잘 보이고자 맞장구를 쳤다. 그게 갤로웨이와 그레이스의 심기를 계속 건들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고맙구나. 이만 가지.”
갤로웨이는 셀로니아의 어깨를 두 번 두들기곤 클로이 백작과 함께 아주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이런, 어디까지 얘기하고 있었죠?”
갤로웨이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끝까지 다정하게 쳐다보는 척하던 셀로니아가 순진한 표정으로 그레이스에게 물었다.
대놓고 목걸이를 자랑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농락하려고 한 것 같은데 어림없는 소리였다.
저 두 사람이 진짜 부녀 사이라고 한들, 지금 셀로니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 바로 자신이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모두가 저를 갤로웨이의 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그레이스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공작님과의 사이가 참 보기 좋으셔요.”
“아버지가 저를 끔찍이도 아끼니까요. 전 정말 행운아예요. 이렇게 저를 사랑해 주시는 아버지가 있으니 말이에요.”
셀로니아는 일부러 순진무구한 얼굴로 ‘저’라는 말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갤로웨이 베스인이 사랑하는 건 ‘딸’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영혼까지 바꿔 가면서 토벌을 피하려 했으면서 그 과정에서 엮인 세 명의 남자마저도 차지하려 들었던 그레이스가 질투심이 많다는 것쯤이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제 말에 차마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입꼬리가 경련하고 있지 않은가.
“공녀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아버지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지네요. 저희 아버지는 저를 위해선 모든 걸 하시는 분이거든요. 그 어떤 것도.”
얼른 표정을 갈무리한 그레이스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셀로니아의 입술에 가소로운 웃음이 피어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런 것 같네요. 그러니 영애의 파혼도 허락한 거겠죠? 한차례 떠들썩했잖아요. 영애가 체르빌 공작에게 보낸 파혼서 때문에.”
“아…… 제게 너무 과분한 분이라 놓아드리려고 했는데…… 쉽지 않네요. 공작님이 자꾸 다시 생각해 보라 매달리는 통에요.”
파혼 얘기에 그레이스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눈꼬리를 내렸다.
짙은 피곤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 그 얼굴은 마치 이안이 그레이스를 억지로 붙잡으려 하며 더 괴롭히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끔 했다.
“영애의 마음이 변한 건 아니고요? 사람 마음은 원래 바뀌는 거라고 했잖아요.”
“그럴 리가요……. 전 언제나 공작님의 행복만을 바란답니다. 그러니 공작님께선 저보다 더 좋은 여자를 만나셔야 해요. 집안에 반대에 부딪치지 않을 그런 분이요.”
아쉬움이 역력한 얼굴로 그레이스의 눈시울이 붉어지기까지 했다.
근처에서 그레이스의 말을 엿듣던 몇몇 귀족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베넷 남작가가 체르빌 공작가보다 한참 기우는 건 사실이니 이번 파혼에 관해서 납득이 되는 모양이었다.
“아참. 맥라이언, 뭐 해요. 공녀님과 인사를 나눠야죠. 사냥제 이후 처음 보는 거 아니에요?”
그때 꼴 같지 않은 연기를 지켜보고 있던 셀로니아 앞에 그레이스가 맥라이언을 잡아끌어 데려왔다.
“어서요.”
그레이스는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 묘한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재촉했다.
“셀로니아, 오랜…….”
“별로 인사를 나눌 사이는 아니라서요.”
당황하다 마지못해 맥라이언이 말을 꺼내자 셀로니아가 싹둑 잘라 내었다.
용케도 아직까지 들키진 않은 모양인데 괜히 말을 섞었다가 또 티가 날까 봐 미연에 차단시킨 것이었다.
“흐음. 그런가요? 그나저나 허시브룩 대공께서는 함께 안 오셨나 봐요.”
여전히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한 얼굴로 셀로니아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그레이스는 보이지 않는 사람을 찾듯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곧 오시겠죠.”
“오늘은 또 어떤 멋진 모습으로 공녀님 곁에 서실지 무척 기대되네요.”
그녀의 대답에 그레이스가 웃었다.
뭐지?
꽤나 의미심장한 웃음에 셀로니아는 왜인지 모르게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이안 체르빌 공작님 드십니다!”
이윽고 시종의 목소리가 사위를 울리자 생긋 웃고 있던 그레이스의 표정이 일순 일그러졌다.
“그럼 전 이만.”
“그레이스!”
급한 볼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황급히 떠나려던 그레이스의 발걸음이 누군가의 외침에 멈추었다.
이안이었다.
열린 문으로 등장한 이안은 그레이스를 발견하자마자 큰소리로 부르더니 아주 빠르게 계단을 내려왔다.
화가 난 듯 저돌적인 이안의 행동에 귀족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길을 터 주었다.
그 덕에 계단을 내려와 단숨에 그레이스에게 다가온 이안이 그녀의 손목을 세게 붙잡아 돌려세웠다.
‘장갑?’
셀로니아가 이안의 두 손에 끼워진 검은색 가죽 장갑을 발견하고 의아해하고 있을 때.
“잠깐 얘기 좀 하지?”
“그 손 놓고 말해.”
그레이스를 죽일 듯 이글거리는 눈으로 보는 이안의 팔을 맥라이언이 붙잡았다.
“……하아. 알겠어요.”
그레이스는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이안과 그레이스가 홀 안을 빠져나가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따라갈까 말까 망설이던 맥라이언은 셀로니아의 눈짓에 얼른 두 사람을 따라나섰다.
“베스인 공녀님.”
세 사람이 나가고 샴페인 잔을 담은 쟁반을 들고 있던 시종이 그녀에게 다가와 쪽지를 내밀었다.
얼떨결에 쪽지를 받아 든 셀로니아는 몇 번 접힌 종이를 펼쳤다.
‘레예프입니다. 몇 가지 알아낸 것이 있으니 정원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구했습니다.’
* * *
맥라이언은 이안과 그레이스를 졸졸 따라 황궁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테라스에서 얘기하면 될 것을 굳이 밖에까지 나가다니.
귀찮았지만 또다시 술수가 풀린 것을 들키면 안 되니 어쩔 수 없었다. 들킨다면 아마 이후 셀로니아는 저를 상대조차 하지 않으리라.
‘그놈은 왜 안 오는 거지?’
탄. 그놈이 보이질 않았다. 셀로니아와 함께 오거나 뒤이어 들어올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며칠 전 그 일이 있은 후 맥라이언은 확신했다.
그놈이 저에게 지껄였던 그 말은 분명 마왕이 자신들에게 했던 말이었다.
‘틀림없다.’
마물의 기운까지 풍겨 대고 있지 않은가.
믿기진 않으나 피어난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있었다. 그러니 확인을 해 보는 수밖에.
그때였다.
앞선 이안과 그레이스가 코너를 돌고 맥라이언도 이제 막 코너를 돌려는 찰나.
저 멀리 반대편 복도를 걸어오고 있는 기사 무리가 보였다. 황녀의 기사들이었다.
그런데 그 속에 우뚝 솟아 있는 사람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으니.
“이건 또 뭐야?”
걸음을 멈춘 맥라이언의 표정이 어이가 없다는 듯 구겨졌다.
황녀의 기사들 틈 속에서 걷고 있는,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체구의 사람은 다름 아닌 탄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