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21)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21)화(121/162)
<121화>
“대공, 오랜만이네?”
티타니아는 푹신하고 보드라운 소파에 우아하게 앉은 채 찻잔을 들며 말했다. 도도한 태도로 지금 막 들어온 탄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으며.
그러나 입꼬리는 숨길 수가 없는지 씰룩거리고 있었다. 탄이 자신의 방에 방문한 것이 무척이나 좋았으니까.
탄은 앉으라는 말도 없었으나 황녀 앞에 놓인 소파가 마치 제 것인 것처럼 털썩 앉았다.
“용건은.”
“황녀님.”
탄을 데리고 온 기사가 따라 들어와 티타니아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기사의 말을 전해 들은 황녀의 눈이 놀라 커다래졌다.
“군말 없이 따라왔다고? 그래. 이제야 정신 차린 거야, 대공?”
놀람도 잠시, 그녀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리며 거만한 어투로 말했다.
방 한편으로 눈짓을 보내자 기다리고 있던 시녀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더니 곧이어 고풍스러운 다관과 찻잔을 탄 앞에 내왔다.
또르륵. 비어 있는 찻잔을 채우는 소리가 청아하게 울렸다.
찻잔이 다 채워진 것을 곁눈질로 확인한 티타니아가 들고 있던 잔을 내렸다.
“할 얘기가 많으니 일단 차나 한잔해. 내가 대공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거니까.”
“특별히라.”
탄은 꼬아 앉은 다리의 발끝을 까딱이며 눈앞에 있는 찻잔을 보았다. 노을빛을 띠는 투명한 찻물에서 희뿌연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뭐 해? 내가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잖아.”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찻잔을 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그를 향해 티타니아가 성급하게 졸랐다.
“향이 좋네.”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탄은 찻잔을 집어 올렸다.
황녀는 긴장과 기대감이 어린 눈으로 탄의 손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우아한 손동작이 아주 천천히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마셔. 얼른 마시란 말이야. 티타니아는 답답한 마음에 주문을 외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드디어 이제 마시는구나, 그런 생각을 할 만큼 그의 입술이 찻잔에 닿을락 말락 한 순간.
“그 귀걸이.”
탄이 새빨간 눈을 들며 티타니아를 응시했다.
“어, 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입안으로 차가 들어가기만을 기다렸던 티타니아는 갑자기 눈이 마주치자 당황하였다.
설마 뭔가 눈치를 챈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지금 찬 귀걸이.”
“이, 이거? 왜? 나랑 잘 어울리지?”
당황을 숨기기 위해 티타니아는 귀걸이가 잘 보이게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자랑했다.
그 덕에 그녀의 귀걸이에 박힌 사파이어가 아주 잘 보였다. 사람을 현혹시킬 정도로 오묘한 색을 내며 발광하고 있는 보석이.
탄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운 시선으로 보석에 시선을 고정했다.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태도는 마치 모든 것을 내려다보며 군림하는 제왕처럼 보이기에 충분했다.
“…….”
분명 황녀 앞에서 취하는 그 거만한 행동을 지적하고 화를 내야 했으나, 티타니아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전보다 더 짙은 붉은 눈이 왜인지 모르게 오싹했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머금은 탄이 이내 손가락을 튕겨 냈다.
이윽고 푸른 사파이어 안에 붉은 빛이 스며들었다 사라졌다.
* * *
“셀로니아 님.”
혼자서 정원을 나온 셀로니아를 발견한 레예프가 한달음에 다가왔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셀로니아는 조용히 레예프와 나무 뒤로 가서 섰다.
“레예프, 알게 된 사실이 뭐예요?”
“아직 공식 발표가 나진 않았으나 지금 황실 기사단에서 실종자들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이어진 레예프의 말을 들은 셀로니아의 얼굴이 점점 잿빛으로 변해 갔다.
“파악된 실종자만 수십 명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레예프의 말을 종합해 보자면 제국민들이 실종되고 있고 현재 파악된 수만 해도 그 정도라고 했다.
그리고 실종된 자들은 모두 빈민들이었다. 사라져도 뒤늦게 실종 신고가 되거나 신고조차 안 될 만큼 연고가 없는 사람들.
‘잠깐…….’
흑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선 산 자의 목숨이 필요하다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흑마법을 그레이스와 갤로웨이가 사용하고 있고.
“……설마.”
순간 무언가를 깨우친 셀로니아는 소름이 끼치는 걸 넘어 딱딱하게 얼어붙고야 말았다.
“셀로니아 님, 왜 그러십니까?”
놀란 레예프가 셀로니아의 팔을 붙잡으려다 차마 만지진 못하고 걱정스레 안색을 살폈다.
“알아낸 건 있다던가요?”
셀로니아는 다급하게 레예프의 팔을 붙잡고 물었다.
“아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계속 실종자들이 늘고 있는 것을 보아 인신매매를 의심하는 것 같습니다.”
인신매매. 그것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셀로니아의 머릿속엔 이미 확실하고도 강력한 의심 하나가 자리 잡아 버렸다.
빈민들을 위한 갤로웨이의 자선 사업. 그건 오갈 데 없는 그들에게 무상으로 안식처를 마련해 주었다.
그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한 사업인 줄 알았는데 만약 그게 단순히 자선 사업이 아니라면? 흑마법을 위한 수단이라면?
“이런 미친……!”
“셀로니아 님?”
하얘졌다 파래졌다 변화무쌍한 얼굴색도 모자라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욕설에 레예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그녀의 귀엔 레예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퍼즐이 딱딱 들어맞았으니까.
그레이스는 몸을 되돌리길 원할 테니 흑마법을 다시 사용해야 할 테고 그렇다면 산자의 목숨이 필요하다.
전에는 사람들을 납치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빈민들을 자발적으로 한데 모을 강력한 방법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제 그 사업체를 이용하려는 걸지도 몰라.
‘미친, 미친…… 미친!’
의심이 확고해진 셀로니아는 두 주먹을 말아 쥔 채로 속으로 욕을 뱉고 또 뱉었다.
이건 아니잖아. 아무래 그래도 이건……!
헛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은 그들의 계획에 그녀는 와락 얼굴을 구겼다.
‘그들이 해내기 전에 내가 먼저 찾아야 해.’
만약 이 실종 사건들에 갤로웨이가 연관되어 있다면 분명 납치한 사람들을 가둘 공간이 필요했다.
지금으로선 갤로웨이의 사업체가 가장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확실하게 알아내기 위해서는 황제만 열람할 수 있다는 중앙 도서관에 있는 금서들을 확인해 봐야만 했다.
“레예프, 이거 제 치유력을 담은 거예요. 만에 하나라도 그레이스가 헛짓을 하려고 든다면 사용해 봐요.”
그녀는 가방에 넣어 두었던 크리스털 병 하나를 꺼내 레예프에게 내밀었다.
치유의 힘이 담긴 병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이건 그녀가 전에 덴로하 후작 영애의 생일 때 선물로 만들어 준 것과 같은 것이었다. 효과가 있을진 확실하지 않지만 혹시라도 도움이 될지 모르니까.
“감사합니다. 그런데 셀로니아 님, 이게 끝이 아닙니다. 전에 맥라이언 님이 말씀하셨던 흑마법에 대한 부작용 말입니다. 그게 정말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안 공작께서 얼마 전 선대 공작님이 보는 앞에서 선대 공작님이 아끼던 개를 죽였답니다.”
“……선대 공작의 개를요?”
“예. 심지어 기사들이 보는 앞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입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레예프의 표정이 심각한 만큼 셀로니아의 얼굴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흑마법에 오래도록 걸려 있으면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들었다. 속부터 썩어 간다더군. 더는 인간이 아니게 되는 거다. 이성을 통제할 수도 없고 짐승처럼 오직 본능으로만 움직이게 되는 거지.”
맥라이언이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으니까.
‘이성을 통제하지 못하고 오직 본능에 의해서만…….’
아무리 이안이 정신머리가 없다고 해도 남이 보는 앞에서 패륜을 저지를 만큼 멍청하진 않았다.
레예프의 말대로 정말로 부작용이 진행 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레예프, 서둘러야겠어요. 성수 구했다고 했죠?”
셀로니아가 다급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어서 움직여야만 했다. 더 지체했다가 정말 치유도 먹히지 않는다면 큰일일 테니.
“네. 세 병 구해 왔습니다.”
레예프는 품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손가락만 한 기다란 유리병 세 개를 꺼내 들었다.
“그거 당장 오늘 이안에게 써야 해요. 당장.”
* * *
달칵.
황녀의 방문을 열고 나온 탄은 순간 복도가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는 것을 느끼곤 피식 웃었다.
“같지도 않은 수작질 따위 먹히지 않는다. 나와.”
경고처럼 날아든 탄의 싸늘한 목소리에 인기척이 들려왔다. 바로 기둥 뒤에서.
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한 남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 맥라이언이었다.
복도에는 당연하게도 황녀의 방을 지키기 위해 기사들이 서 있었으나 드래곤의 결계로 인해 적막한 복도를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탄이 너무도 빨리 눈치챘다.
“대놓고 이러면 쓰나. 예나 지금이나 하는 짓은 도롱뇽보다 못하군.”
“너…….”
탄의 비아냥에도 맥라이언은 맞받아치지도 못한 채로 놀란 눈만 떨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의 눈이 새빨갛게 변해 있었으니까. 흰자위까지 모두 다.
숨길 생각도 없다는 듯이.
“마왕이군…….”
맥라이언은 그 말을 뱉는 순간 의심이 확신이 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말에 탄이 그 어느 때보다 잔혹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아니, 대체 꿍꿍이가 뭐야. 셀리 곁에 붙어서 뭘 하려는 거냐고! 순진한 셀리를 이용하고 우리에게 복수라도 할 심산인가? 그래?!”
황당하고 기가 막힌 마음도 잠시, 맥라이언은 살벌한 얼굴로 탄에게 물었다.
하지만 이윽고 탄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에 맥라이언의 얼굴은 하얗게 질린 채 굳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