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22)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22)화(122/162)
<122화>
“아파요! 이것 좀 놔요!”
시큰거리는 손목에 그레이스가 앙칼진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억지로 그녀의 손목을 붙잡은 채 앞서 걷고 있던 이안은 아무도 없는 회랑에 도착하자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잡고 있던 그레이스의 손목을 내팽개치듯 거칠게 놓으며 뒤돌아섰다.
“지금 뭐 하는 짓이지, 그레이스 베넷.”
고압적인 눈빛과 잔뜩 화가 난 목소리가 그녀를 찍어 누를 듯 으르렁거렸다.
“제가 뭘요.”
결국 손목에 새빨간 손자국이 난 것을 확인한 그레이스가 눈을 치켜뜨며 날카롭게 되물었다.
“감히 나한테 말도 없이 가문에 파혼서를 보내?”
이안은 지금 상당히 열이 받은 상태였다. 그레이스가 자신의 허락도 없이 멋대로 파혼서를 보낸 것도 모자라 가문을 통해 청해 왔기에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알게 되었다.
반대하던 약혼을 했다며 언제나 못마땅하시던 부모님은 그레이스의 파혼서를 보자마자 가문의 망신이라며 길길이 날뛰었다.
게다가 누가 이 얘기를 흘리고 다닌 건지 신문에까지 실리며 요 며칠 그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당연히 이대로 순순히 파혼해 줄 생각은 없었기에 수색 작업이 바쁜 와중에도 그레이스를 만나려 몇 번이고 찾아갔다.
그러나 그녀는 얼굴 한번 비치지 않고 계속 거절했다. 사용인을 통해 그저 파혼서를 빨리 처리해 달라는 이기적인 말만 전한 채.
“감히…… 하!”
이안의 말을 곱씹던 그레이스가 콧방귀를 뀌며 팔짱을 꼈다. 또 시작되었다. 저놈의 ‘감히’.
아무리 술수를 부렸어도 저 오만 방자함은 언제나 꺾을 수가 없었다. 늘 이 관계의 우위에 서 있다는 듯, 주도권을 가진 건 늘 자신이라는 듯 구는 재수 없는 이안의 태도.
필요에 의해서 비위를 맞춰 가며 받아 줬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왜 이렇게 시간을 끌어요? 파혼해요.”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레이스는 눈치 보지 않고 톡 쏘아붙였다.
이안을 향해 다정히 휘어지던 그녀의 눈은 이제 싸늘하다 못해 경멸이 어려 있을 뿐이었다.
“누구 마음대로. 내 허락 없인 절대 안 돼.”
분노한 이안이 그레이스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이글거리는 푸른 눈동자가 작은 머리통을 부수는 계획을 짜듯 내려다보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 댔다. 이젠 하다하다 자신의 약혼녀까지 그를 무시하고 있었다.
“네깟 게 나에게 파혼을 운운해?”
장갑을 낀 손이 그레이스의 턱을 움켜잡아 고정시켰다. 봐주거나 힘 조절 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기에 그의 악력이 그레이스의 턱뼈를 부술 듯했다.
이안의 마음속엔 여전히 그레이스를 향한 사랑이 있었으나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자신의 체면과 위신을 갉아먹은 그녀를 향한 분노가.
더는 이성이 그의 마음대로 통제가 되지 않았다.
“아파요! 이거 놔요!”
그레이스가 발악하며 이안의 손을 떨쳐 내려 했으나 그는 올가미처럼 붙잡고 늘어졌다.
“아프다고요! 아파! 아프다고! 맥라이언!”
이안의 팔을 때리고 꼬집었으나 소용이 없자 그레이스가 맥라이언을 불렀다.
그런데 맥라이언은 나타나질 않고 있었다. 분명 따라오는 것을 봤는데 어딜 간 거야!
“게일!”
하는 수 없이 그레이스가 그를 불렀다.
그러자 멀리서 인기척을 숨기고 있던 한 사내가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달려온 사내는 그레이스를 붙잡고 있는 이안의 어깨를 강하게 밀어냈다.
아니, 밀어내려 했다.
둘 사이에 등장한 훼방꾼을 향해 이안이 거침없이 검을 뽑기 전까지는.
단숨에 검을 뽑아 든 이안은 고민도 없이 다가온 게일을 향해 휘둘렀다.
민첩하게 피하긴 했으나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기에 검 끝이 게일의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크윽……!”
깊게 베인 어깨를 부여 잡은 게일이 앓는 소리를 내었다.
“당신 미쳤어요?!”
그레이스가 질겁한 얼굴로 소리쳤다. 너무 놀란 그녀의 눈동자는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검부터 휘두르고 보는 안하무인은 아니었는데, 상황이 심각했다.
“감히 내 앞을 가로막아? 이 새낀 뭐지? 네가 만나는 놈인가?”
피가 흐르는 어깨를 부여잡고 있는 게일을 훑어보는 이안의 시선은 이번에는 상대의 목을 벨 것처럼 살벌했다.
그는 한참 게일을 노려보다 이내 피가 묻은 검을 내리며 다시 그레이스를 응시했다.
“내가 보잘것없는 너를 선택하기 위해 무엇을 놓았는지 알아? 그런데 네가 나에게 파혼을 말해? 허락도 없이 네가!”
“왜, 왜 이래요! 구질구질하게!”
“파혼은 없던 거다. 네 판단이 틀렸다고 당장 신문에 내. 그리고 지금 내게 잘못했다 싹싹 빌어라.”
손에 검을 쥔 채 이안이 그레이스를 향해 한 발짝씩 다가갔다.
그는 그레이스를 선택하기 위해 쥐고 있던 셀로니아를 놓았다. 그런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 제게 먼저 파혼을 운운하다니. 은혜도, 주제도 모르고.
감히, 감히……!
속에서 천불이 끓다 못해 눈앞이 멀 것처럼 거대한 분노가 그를 휘감았다.
“내, 내가 미쳤어요? 이러지 말아요! 여긴 황궁이라고요!”
그레이스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그만두십시오.”
게일도 어깨를 감싼 채 그레이스를 보호했지만 이안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레이스는 초조했다.
지금 이안의 눈동자는 제정신이 박힌 사람처럼 보기 어려울 정도로 어딘가 미쳐 있었다.
게다가 저 검은 핏줄은 뭐란 말인가. 이안의 목 위로 핏줄이 두껍게 솟아나 있었는데, 푸른색이 아닌 새까만 색이었다.
심지어 점점 더 짙어지는 저 검은색은 핏줄을 너머 그의 목까지 스물스물 물들이고 있었다.
“크으으…… 무사하고 싶다면 더는 내 심기를 건들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레이스.”
그때 이안이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그르렁거리며 마지막 경고와도 같은 말을 내뱉었다.
예사롭지 않은 상황에 두려움을 느낀 그레이스는 냅다 반대편으로 뛰기 시작했다.
목적은 하나였다. 연회장으로 돌아가는 것.
사람이 많은 그곳이라면 이안도 어쩌진 못할 테니까. 그리고 황녀가 자신이 준 찻잎을 썼다면 대공이 저를 지켜 줄 것이다.
“…….”
그리고 도망치는 그레이스를 본 순간 이안의 이성이 뚝 끊어졌다.
목 끝까지 차오른 삿된 악은 빠르게 독처럼 퍼져 결국 이안의 눈까지 멀게 만들고야 말았다.
* * *
황제와 황후. 그리고 황태자와 황녀가 모두 참석한 네그지트 홀 안.
“사랑하는 황녀의 스무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해 준 그대들에게 고맙군. 모두 오늘 연회를 즐기게나.”
황제가 황녀의 생일 축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 대기하고 있던 연주단이 밝은 음악을 뽑아내었다.
그 안에서 셀로니아는 기둥에 기대어 홀로 샴페인잔을 들고 있었다.
레예프는 이안에게 성수를 쓰겠다며 찾아 나섰다. 혹시 자신이 먼저 만날지도 모르니 성수 하나는 그녀가 가지고 있었다.
‘미친 부녀 같으니라고.’
샴페인잔이 깨질 듯 강하게 그러쥔 셀로니아는 입술을 짓씹었다.
그레이스와 갤로웨이의 악독한 계획을 알게 된 이상 이제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탄에게도 레예프와 맥라이언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그들이 행하려고 하는 흑마법이 무엇인지, 저는 진짜 셀로니아가 아니라는 것을.
두려웠지만, 변할 것 같은 눈빛이 무서웠지만 말해야 한다. 우선 묵묵히 기다려 준 탄에게 제일 먼저 말해야겠지.
그나저나 탄은 왜 모습을 보이지 않는걸까?
게다가 오늘 연회의 주인공은 왜 저런 표정이고.
셀로니아는 황제와 나란히 앉아 있는 황녀의 표정을 보며 의아해졌다.
티타니아는 누구 하나 죽일 듯한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홀 안을 쥐 잡듯이 샅샅이 지켜보고 있었다.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뭔가 싸한 감이…….
그때였다.
연회장 문이 열리며 머리가 산발이 된 그레이스가 급하게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왜 저래?’
셀로니아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어쩐지 연기 같지는 않고 정말로 다급해 보였다.
잠깐, 왜 혼자지?
분명 이안과 맥라이언과 같이 나가지 않았나?
“당장 저년을 끌고 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번엔 표독스러운 목소리가 홀 안을 울렸다.
고개를 돌리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티타니아가 그레이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셀로니아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상황 파악을 하려는 순간.
콰아앙!
“꺄아아악! 무, 뭐야!”
“으아악!”
엄청난 괴음이 일며 거대한 연회장 문이 두동강이 난 채로 홀 가운데로 날아들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으나 문이 박힌 바닥엔 쩍 금이 갔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기분 좋게 황녀의 생일을 즐기려는 참에 일어난 참사에 황제가 분노하며 고함을 내질렀다.
대기하고 있던 황궁의 기사들은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모두 문으로 향하였다.
그 순간 홀 안을 울릴 정도로 거대한 발걸음 소리가 쿵, 쿵 울려 대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하였다.
“저, 저게…….”
“괴, 괴물이야!”
모두 같은 것을 발견한 사람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이내 소리를 내지르며 반대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크으으…….”
새카만 사람의 형체 같은 거대한 덩어리가 짐승처럼 그르렁거리며 홀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그 옆으론 홀 밖에서 지키고 있던 문지기와 기사들이 쓰러져 있었다.
“……장갑.”
셀로니아는 보고야 말았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그 검은 덩어리 손에 파묻혀 있는 가죽 장갑을. 이안이 끼고 있던 그 장갑을.
족히 3미터는 되어 보이는 저 새까만 암흑은 이안이었다.
“저, 저게 무엇이냐! 어서 잡아라! 어서!”
황제도 그 괴물을 발견하곤 소리를 내질렀다.
황후는 이미 황녀를 데리고 대피하고 있었다.
괴물의 등장에 아연실색이 된 사람들이 질서도 없이 다른 통로로 빠져나가기 위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살겠다고 서로를 밀고 넘어뜨리고 밟는 연회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미친!”
셀로니아는 아득해져 오는 현실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결국 부작용이 실현된 것이었다. 이러면 치유도 먹히지 않는다고 했는데.
맥라이언의 말대로 정말로 육체가 붕괴되고 삿된 악만 남은 괴물로 변모한 건지 이안은, 아니 그 괴물은 달려드는 기사들을 거침없이 내치며 연회장 안을 부숴 댔다.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순 없었기에 셀로니아는 하는 수 없이 손안에 치유의 빛을 모았다.
“대, 대공님……!”
그때 잽싸게 도망치던 그레이스가 누군가를 발견하곤 소리쳤다.
대공이라는 말에 셀로니아의 고개도 옆으로 돌아갔다.
날뛰는 이안을 뒤로한 채로 탄이 자신을 향해 고고하게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대, 대공님, 저 여기 있어요……!”
그레이스는 반색하며 한달음에 탄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나.
탄은 그런 그레이스를 무심하게 지나쳐 셀로니아 앞에 섰다.
“가자.”
이윽고 셀로니아의 손을 잡은 탄은 거침없이 테라스로 향하였다.
그레이스는 황망한 눈으로 덩그러니 멈춰 섰다.
“탄! 잠깐, 잠깐만요!”
당황하여 그를 따라 테라스 안까지 들어온 셀로니아는 정신을 차리곤 걸음을 멈추었다.
“저건 그냥 괴물이 아니에요! 이안이에요!”
“그래서?”
“돌아가야 해요. 이러다가 큰일이 날지도 몰라요. 사람들이 다칠 거예요. 우리가 나서야 해요.”
“왜?”
탄의 눈동자가 셀로니아를 응시했다. 의아한 시선이었다.
“왜라니요, 그게 무슨…….”
“내가 왜 네가 아닌 다른 인간들을 살려 줘야 하지?”
자비 없는 그 목소리와 함께 셀로니아는 흰자위까지 붉어진 그의 눈 속에 비친 것을 보았다.
“내 세계엔 네가 아닌 다른 것들은 필요 없다.”
그의 눈엔 모든 게 불타 없어진 제국이 있었고, 그 잿더미 위에는 오직 셀로니아, 그녀 혼자만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