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24)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24)화(124/162)
<124화>
셀로니아는 보태거나 덜어 내는 것 없이 오직 정확한 진실만을 탄에게 얘기했다.
더는 미루지 않고 말하겠다 마음먹은 것과는 별개로 행여나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표정이 변할까 싶어 그녀의 작은 목소리는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다.
더듬더듬.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말을 마치자 묵묵히 끝까지 들어 준 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 여자가 진짜 이 몸의 주인이다?”
“맞아요.”
셀로니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살며시 탄의 반응을 살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그의 표정은 아까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였군.”
탄은 이제야 납득이 되었다.
왜 베넷 남작저 지하실에서 셀로니아가 그렇게 놀랐던 것인지. 왜 갤로웨이 베스인 앞에서 다친 척 연기를 했던 것인지 말이다.
“그 반응이 다예요? 놀랍거나 당황스럽지 않아요?”
별다른 반응이 없자 오히려 당황한 건 셀로니아였다. 꽤 충격적인 얘기인데 이렇게 덤덤할 수가 있는 건가?
제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 건가?
“그래야 하나?”
“당신이 지금까지 봐 온 나는 내가 아니에요. 겉으로 보이는 이 외모는 제가 아니라 그 여자의 것이라고요.”
셀로니아는 울컥하여 조금 전보다 언성이 높아졌다.
어찌 됐든 사람의 외모는 가장 먼저 그 사람을 드러내는 정체성이자 매력이었다.
외모란 누구에게는 고려의 대상이 아닐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아니다.
출중한 외모는 호감으로 작용한다. 심지어 이 세계의 주인공인 셀로니아 베스인은 누구나 한 번 더 쳐다볼 정도로 굉장히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지 않은가.
그녀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은 이렇게 아름답지 않았으니까.
“듣고 싶은 말이 뭐야. 내가 속았다며 죽여 주길 바라? 그래?”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는 셀로니아의 태도에 탄이 붉은 눈을 번뜩였다.
“그건 아니지만…….”
“토벌대에 합류했을 때부터 너는 지금 이 몸이었다고 했다. 난 한 번도 그 여자를 만난 적 없어. 내가 지금껏 봐 왔던 건 너다.”
“하지만 제 진짜 모습은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이 모습이 아니라니까요.”
“그럼 내가 묻지. 너는 내 진짜 모습을 이 얼굴로 알고 있나?”
“아니요. 그렇지만 지금 당신의 모습도 당신이잖아요.”
“만약 내가 진짜 모습으로 되돌아간다면? 네 마음은 달라지나?”
그의 질문에 셀로니아는 당연하게도 고개를 내저었다.
달라질 리 없다.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진 이 마음으로는 그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을……!
“…….”
순간 셀로니아가 커다래진 눈으로 탄을 바라보았다.
“그래. 나도 그렇다.”
그러자 탄이 피식 웃으며 셀로니아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툭 기대었다. 그녀가 방금 속으로 생각한 게 무엇인지 다 안다는 듯한 대답과 함께.
그는 셀로니아가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아주 잘 알았다. 자신도 전에는 그녀를 보며 예쁘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으니까.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그녀를 온전히 자신의 마음에 담았을 때를, 스스로도 어쩌지 못할 만큼 그녀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자신을 명확히 알고 있었으니까.
“다른 게 아니라 특별한 거죠.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걸 가진 건 특별하다고 하는 거예요. 다른 게 아니라.”
“당신이 특별하다는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그날이었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깨달았던 날. 너를 스치는 바람에는 향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날.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녀는 자신이 마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말을 했었다. 그래서, 그런 그녀라서 좋았다. 대가 없는 따뜻함을 가진 사람이라서.
“이렇게 별거 아니었다면 지금껏 혼자 끙끙 앓았던 게 억울해지네요.”
셀로니아는 탄을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비로소 그의 진심과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었으니까.
아, 정말 그는 상관이 없구나. 정말로 그가 좋아하는 것은 지금껏 마주했던 온전한 ‘나’일 뿐이구나.
여전히 변함없이 그는 든든한 제 편이라는 것을.
“그럼 네 원래 육체는 어디 있는 거지?”
“죽었어요. 예전에.”
“…….”
“아뇨! 그냥 자연사예요.”
순간 살기 형형해지는 그의 눈빛을 본 셀로니아가 얼른 덧붙였다. 갤로웨이가 자신의 육체를 죽인 거라 생각하는 게 뻔히 보였으니까.
“본래의 넌 스물네 살이겠군.”
“그걸 어떻게…….”
놀라움도 잠시 셀로니아는 영문을 알아차렸다.
“몇 살인데.”
“저요? 스물네에…… 헙, 한 살이에요.”
“뭐?”
“스물한 살이요.”
전에 나이를 묻는 탄에게 실수로 본래 나이를 말했다가 셀로니아의 나이로 정정한 적이 있었다.
그는 그걸 기억하고 있던 것이었다.
“당신은 몇 살인데요?”
뭔가 탄만 자신에 대해서 다 아는 것 같은 불공평함에 셀로니아가 툴툴거리며 물었다.
“나? 딱히 안 세어 봐서 모르겠지만 세 자리가 넘는 건 확실하군.”
탄은 셀로니아의 입술이 뾰로통하게 나온 것을 보며 킥킥거리더니 안고 있던 허리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왜 그래요?”
셀로니아는 자신의 가슴에 깊게 파고든 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족히 100살이 넘는 마왕의 머리카락이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냐고.
“셀로니아, 네 이름을 알고 싶다.”
“제 이름이요?”
“네 진짜 이름.”
그녀의 품속에서 고개를 든 탄이 진득한 붉은 눈으로 셀로니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
진지한 그 눈빛을 마주한 셀로니아는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은 이 몸에 빙의했고 셀로니아 베스인으로 살아야만 했으니까.
별다른 것을 이루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죽어 버린 나.
그다지 좋은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없을 정도로 무의미하고 건조한 삶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가진 유일한 하나뿐인 내 것.
셀로니아가 되어 사느라 스스로조차도 잊고 있었던 가엾은 내 이름.
그녀는 시야가 희뿌옇게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차오른 눈물이 그녀의 눈가에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셀로니아의 삶은 부족한 것 없이 풍족했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 내내 채워지지 않던 외로움의 구멍이 메워져 갔다.
탄이 제 이름을 물어봐 줘서, 제 진짜 이름을 알고 싶어 해서.
셀로니아 베스인이 아닌 진짜 나를 알아준 사람이 그라서…….
“은영. 이은영이에요.”
처음으로 입 밖으로 이름을 내뱉자 그녀의 얼굴엔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미소와 함께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눈물은 끝까지 흘러내리지 못하고 부드러운 손길에 의해 사라졌다. 탄이 닦아 내 주었으니까.
“……지금 이게 지금 다 무슨 소리야?”
그때였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와 함께 수풀 사이로 부스럭거리며 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맥라이언이었다.
* * *
“젠장. 어디에 있는 거야.”
셀로니아의 옅은 기운을 찾아 나온 맥라이언은 주위를 살피며 욕설을 내뱉었다.
이 근방에서 조금 더 기운이 진하게 느껴지긴 하는데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도저히 우리끼린 무리입니다! 아무래도 셀로니아 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가서 도움을 요청해 보십시오!’
이성을 잃고 날뛰는 삿된 악으로 변모해 버린 이안을 힘겹게 막으며 레예프가 소리쳤다.
맥라이언은 레예프의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셀로니아를 찾아 나왔으나 사실 알고 있었다. 셀로니아가 간다고 해서 가망이 생기는 게 아니라는 걸.
연회장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이안에 의해 본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지고 붕괴되었다.
대부분의 귀족들은 빠르게 대피하였기에 큰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폭주가 멎지 않아 점점 더 크게 날뛰는 이안 때문에 연회장 너머 기둥들이 무너지고 바닥이 갈라지며 그야말로 황국이 박살 나고 있었다.
부름을 받고 달려온 치유술사들이 이안을 향해 치유의 빛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수십 개가 넘는 밧줄을 동원해 괴물이 이동하는 것을 막고는 있으나 언제 다 뜯어내고 또다시 날뛸지 모를 일이었다.
집결한 황궁의 기사들은 그것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죽일 순 없었다.
자잘한 상처를 입히는 건 가능하지만 치명상을 입히는 건 불가능했다. 이안이 덮어쓰고 있는 거대하고도 새까만 인두겁 때문에.
맥라이언은 괴물처럼 변해 버린 이안을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이안이 괴물로 변한 게 아니라 괴물의 인두겁이 이안을 집어삼킨 것이라는 점을. 마수 같은 거대한 몸체 안에 이안이 들어 있다는 것을.
그를 구하려면 그 인두겁을 갈라 이안을 꺼내야만 했다.
하지만 삿된 악으로 똘똘 뭉친 인두겁은 그저 평범한 검으로 벨 수 없었다. 악과 대비되는 완전무결한 선만이 그것을 벨 수 있었다.
“젠장 성기사의 검도, 내 능력도 안 된다면 대체 뭘로……!”
레예프가 가지고 있던 성수도 무력했고, 성기사의 검과 드래곤인 자신의 능력으로도 인두겁을 벨 수가 없었다.
심장만 있다면 아마 가능성이 있을 듯한데…….
“X발!”
맥라이언이 악에 받친 얼굴로 소리쳤다.
부작용을 일으켜 놓고 혼자 튀어? 이 미친 여자가……!
그레이스를 떠올리며 씩씩거리던 맥라이언은 발길을 돌렸다.
지금은 셀로니아를 찾을 때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여자에게서 심장을 되찾아 와야 한다.
그때였다.
“……탄, 해야 할 말이 있어요. 이 몸은 제 것이 아니에요.”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그의 귓등을 때렸다.
맥라이언은 숨을 죽인 채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셀로니아가 하는 얘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듣게 되었다.
“이게 다 무슨 소리냐니까!”
“상황은? 이안은 어떻게 됐어?”
맥라이언이 다 엿들었다는 것에 놀랐으나 셀로니아는 정신을 차리곤 탄의 허벅지에서 몸을 일으켰다.
“말 돌리지 말고! 지금 이게 다 무슨 소리야? 네가 셀로니아가 아니라니!”
“지금 뭐가 더 급한 건지 몰라? 이안은 어떻게 됐냐니까!”
두 사람이 한 치도 물러섬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
맥라이언은 이글거리는 금안으로 셀로니아를 노려보았으나, 셀로니아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지금 그가 혼란스러운 건 알겠지만 그건 나중에 처리해도 될 일이었다. 이안의 부작용을 해결해야만 했으니까.
“……젠장! 글러 먹었다. 고결한 선으로 인두겁을 베어 내지 않는 이상 죽여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이안도 완전히 죽게 되겠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맥라이언은 하는 수 없이 먼저 한발 물러섰다.
“인두겁을 베어 내야 한다고? 성기사의 검으론? 아니면 네 능력으론?”
“다 소용없다. 그것보다 더 완전무결해야 해.”
완전무결한 선?
순간 셀로니아의 머릿속에 무언가 스치듯 지나갔다.
“탄! 공작저로 가야 해요! 빨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