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28)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28)화(128/162)
<128화>
마차를 타고 공작저로 돌아가는 길.
셀로니아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한 하늘색이 감도는 드레스가 뒤덮은 무릎 위엔 꽉 말아 쥔 그녀의 주먹이 올려져 있었다.
‘벌써 움직였을 줄이야.’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였다.
갤로웨이의 자선 사업은 결국 자선을 위장한 가짜였다. 흑마법에 필요한 재료를 모으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많지 않다며 처음에 뽑힌 서른 명이 그 건물에 들어갔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벤자민 형도 마찬가지고요.”
헨릭이 전해 온 얘기는 이랬다.
“무슨 일이 있어서 사라진 거라면 분명 형이 그 전에 제게 미리 언질을 해 줬을 텐데 그런 것도 없이 감쪽같이 사라진 거예요…….”
헨릭의 지인인 벤자민이 사라진 것과 더불어 건물에 있던 모든 사람이 사라졌다. 그리고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그 건물에 새로운 30명이 다시 채워졌다고 했다.
벤자민에게 음식을 챙겨 받고 있던 헨릭은 매일 건물 앞까지 찾아왔고, 그래서 이 사태를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고.
그러나 원래 그곳은 빈민들이 생활하도록 만든 공간이었고 당연하게도 연고도 없는 그들의 실종을 알아차린 사람은 헨릭 외에는 따로 없었다.
게다가 단체 실종에 관해 헨릭이 순찰서에 신고를 했으나, 순찰대는 이미 알고 있는 사안이라며 헨릭을 내쫓았다고 했다.
셀로니아는 헨릭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순찰대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네에……. 베스인 공작님 측에서 순찰대에 먼저 얘기를 하셨대요……. 아무래도 수용해야 할 사람이 너무 넘치다 보니 기존에 가건물에 있던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추가로 더 인원을 받았다고. 혹시라도 그 사실을 모르고 신고하는 사람이 있다면 놀라지 말라고요…….”
“하…….”
“높으신 분이 하는 정의로운 일에 네깟 게 끼어들지 말라며 절 내쫓았어요……. 공녀님. 정말인 건가요? 정말 벤자민 형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건가요?”
“……아니야.”
“그럴 줄 알았어요. 처음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어요……. 그럼 도대체 벤자민 형을 어디로…….”
절망하는 헨릭을 보며 셀로니아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걸리지 않을 거라고 자신하는 건가?
아무리 빈민이라고 할지라도 사람이 여럿 사라지면 의심을 사기 마련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흑마법의 부활이 알려져 황제가 대대적으로 수사에 나서고 있는데, 일을 이토록 크게 만든다고?
꼬리가 길면 밟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베스인 공작이 힘이 있다 하더라도 오래도록 금기였던 흑마법에 손을 대었으니 무사하지 못할 테다.
게다가 이미 사라진 사람들만 해도 수십이니 못해도 이건 무기 징역 아니면 사형감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계속 일을 진행시키다니. 마치 뒤는 걱정하지 않는 사람처럼.
‘뭔가 또다른 꿍꿍이라도 있는 건가?’
어찌 됐건 지금은 사라져 버린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야만 했다.
“그놈이 마지막에 뭐라고 했지?”
그때 손등 위를 뒤덮는 서늘한 피부와 함께 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별말 아니었어요. 그냥 형을 찾아 달라고. 꼭 부탁한다고 그런 거예요.”
그가 묻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셀로니아는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마지막에 헨릭이 둘이서만 할 얘기가 있다며 탄에게 자리를 잠시 비켜 줄 것을 요청했다. 셀로니아는 탄에게 그렇게 해 달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헨릭에게 귀를 내어주었다.
“공녀님……. 제가 위클란더 할아버지께서 공녀님에 대해 말씀하셨던 걸 전달하지 못해서요…….”
“그게 뭔데?”
“…………가 없으니 몸을 조심해야 한다고요.”
그 말을 들은 그녀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현자라더니. 정말 위클란더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던 거였다.
심지어 헨릭이 전해 준 위클란더의 말은 그녀가 알고 싶었던 정답에 가까웠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버텨야 한다, 무조건.
모든 걸 밝혀내고 버티기만 하면 결국 탄과 계속 함께 있을 수 있어.
“정말이에요.”
의심을 거두지 않는 탄의 눈빛에 셀로니아가 살포시 웃으며 덧붙였다.
확실한 건 아니었기에 아직은 묻어 두기로 했다. 괜한 설레발로 그가 실망하는 것은 싫었으니까.
“셀로니아. 아니, 은영.”
탄이 셀로니아를 부르다 급히 정정했다.
그가 불러 주는 제 진짜 이름에 셀로니아는 더없이 기분이 좋았으나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은요. 다른 사람이 알면 안 되니까요.”
“그럼 넌 언제 네 이름으로 불릴 거지.”
탄이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셀로니아를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그의 기다랗고 차가운 손가락이 언제나 그렇듯 그녀의 보드라운 뺨을 감싸 쥐었다.
표정은 이렇게나 툴툴거리고 있는데 손길은 너무나도 다정하여 셀로니아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 끝나면요. 다 끝나면 그때요. 당신이 알아줬잖아요. 지금은 그걸로 괜찮아요.”
동떨어진 세계에서 온 이방인인 저를, 꽁꽁 숨겼던 자신의 진짜 이름을 그가 알아준 것만으로도 정말로 다 괜찮았으니까.
“그러고 보니 탄, 당신도 진짜 이름이 있잖아요.”
탄은 아주 능숙하게 말을 돌리는 셀로니아의 모습에 살짝 볼을 꼬집더니 결국 픽 웃고 말았다.
“있지. 그래도 탄이라 불러. 난 네가 나에게 준 그 이름이 더 좋으니.”
“그래도 진짜 이름을 알고 싶어요.”
“레온하르트 카벨레누스.”
“오…….”
마왕의 위엄이 느껴지는 것 같은 이름에 셀로니아가 감탄을 내뱉었다.
원작에서 마왕은 언제나 이름 없이 마왕으로만 지칭되었기에 처음 알게 된 것이었다.
“진짜 당신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저 말고도 있겠죠?”
“아마도. 나름 오래 살았으니 알았던 이가 후손에게 전달했으면 알곤 있겠지.”
“그렇구나…….”
탄의 대답에 셀로니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에 그녀의 눈꼬리가 아래로 처졌다.
“왜 그러지?”
예리하게 그것을 눈치챈 탄이 축 처진 그녀의 눈꼬리를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며 물었다.
“그낭 당신이 제 진짜 이름을 첫 번째로 알게된 것처럼, 저도 당신의 진짜 이름을 처음 알게 된 사람이었으면 좋았을걸, 아쉬워서요.”
서로의 처음을 함께 나눠 가지고 싶은 작은 욕심이었다.
하지만 말하고 나니 민망해져 셀로니아는 볼을 붉힌 채 시선을 돌렸다.
“…….”
예상 못 한 대답이라 탄은 그녀의 대답에 잠시 멍했으나 이내 기분 좋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사랑스러운 투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아쉬움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게 짜증이 나 제 이름을 아는 것들은 모조리 다 없애 버리고 싶을 정도로.
“나 봐.”
“지금 마주 보기엔 너무 창피한데요…….”
셀로니아는 최대한 시선을 피하려 했으나 그의 손이 그녀의 고개를 원위치 시키고야 말았다.
그래도 지금 당장 눈을 마주치는 건 낯부끄러워 최대한 눈동자만이라도 내리깔려고 했으나 앞에 놓인 붉은 눈동자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농담 삼아 한 말인데 그의 눈빛은 진지했으니까.
“처음은 지나갔지만 내 진짜 이름을 알게 되는 건 네가 마지막이 될 거다. 앞으로 난 네가 나에게 준 이름으로만 살 것이니. 그걸로는 네 아쉬움을 풀기 부족한가?”
마치 청혼하듯, 신에게 맹세를 읊듯 결연한 표정으로 말하는 그의 모습에 셀로니아는 손끝이 찌르르 울렸다.
탄조차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자 그냥 지나쳐도 될 만한 작은 아쉬움이었을 뿐인데.
이렇게나 진심으로 마음을 내비치는 그가 너무나 좋아서. 고마워서.
“충분해요.”
그녀의 입가에 어여쁜 미소가 피어났다.
“다행이군.”
그 미소에 탄이 따라 웃으며 입술을 내렸다.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벌어진 입술 사이로 뜨거운 두 개의 숨결이 뒤엉켰다.
끼이익.
“하아…….”
입을 맞춘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을 알리듯 마차가 정차했다.
셀로니아는 탄의 입술에서 제 입술을 떼어 내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고는 번들거리는 그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훑어 주었다.
탄은 아직 욕망이 가시지 않은 붉은 눈동자를 뜨며 제 입술에 닿은 셀로니아의 손을 잡았다.
“이러지 말고 내 집으로 가자.”
그는 여전히 저 소굴에 셀로니아를 보내는 게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아직 알아볼 게 남았잖아요. 그리고 자정에 움직이는 게 감시망을 벗어나기도 좋아요.”
셀로니아는 걱정 말라며 그를 안심시켰다.
모든 것을 안 마당에 아직까지 공작저를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은 모든 실마리가 이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늘 알게 된 서른 명의 실종.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저택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걱정 마요. 그럼 조금 이따가 봐요.”
“그래.”
웃으면서 뒤돌아서는 셀로니아를 배웅하며 탄은 저택을 바라보았다.
별다른 위험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몰라 그는 정차된 마차 안에서 창밖 너머 공작저를 주시했다.
한참을 그렇게 지켜보던 탄이 줄을 잡아당겼다. 이윽고 마차가 공작저를 빠져나가기 위해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
그러자 저택 2층에선 마치 마차가 가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커튼 뒤에 숨어 있던 검은 실루엣이 창문 앞으로 스윽 모습을 드러냈다. 갤로웨이였다.
그는 탄이 탄 마차가 멀어져 점처럼 보일 때까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의 옆으론 환영을 내뿜고 있는 기억경이 놓여 있었다.
* * *
“아, 아가씨!”
저택 안으로 들어와 중앙 계단을 오르려던 셀로니아는 엘라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 이제 오셔요?”
달려온 건지 가슴을 크게 들썩이면서도 숨을 고르지도 않고 엘라가 말했다.
“응. 올라가 볼게.”
“저, 저어……! 아가씨!”
발걸음을 붙잡는 엘라 때문에 셀로니아는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할 말이 있는지 어두운 낯빛으로 엘라가 손가락을 꼼질거렸다.
“무슨 일이야?”
“손님이 아까부터 기다리고 계세요…….”
“손님? 누구?”
그 물음에 엘라는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몇 초간의 정적이 두 사람의 사이를 메워 갈 때쯤 엘라가 입을 열었다.
“……그레이스 베넷 영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