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29)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29)화(129/162)
<129화>
“이래도 괜찮은 거 맞아?”
“어차피 우리가 할 일을 덜어 준다는데 마다할 게 뭐 있냐.”
이미 일을 저질러 놓고 안절부절못하는 잭을 보며 톰이 혀를 끌끌 찼다. 저렇게 담이 작아서야. 같은 마족이라는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 인간 놈의 말을 믿느냔 말이야.”
“상관없잖아? 지키지 않으면 그때 가서 죽이면 되니까.”
톰은 거만하게 소파에 기댄 채 다리를 꼬고 앉아 앞쪽 발을 까닥이며 씨익 웃었다.
아까 전 갑자기 찾아온 갤로웨이 베스인 공작.
톰은 선대공이 되어 그를 마주했다. 그 계집애의 아버지가 직접 찾아온 것에 흥미가 돌았으니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설마 주군과 그 여자의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건 아닐까 싶어 경계하고 있는데 갤로웨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아주 뜻밖이었다.
“제 딸이 선대공의 마음에 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갤로웨이는 아주 고아한 얼굴로 앞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었다.
오호라. 이 인간 놈 보소?
톰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공작이 손바닥에 옅게 그려 온 흑마법진을.
정확하게 저것이 무슨 용도인진 모르겠으나 하나 확실한 건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저걸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게 분명했다.
게다가 갤로웨이에게서 흘러나오는 검은 속내와 어그러진 욕망이 아주 똑똑히 보였다.
톰은 마족이었다. 당연히 선과 반대되는 감정과 탐욕 그리고 음기는 아주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다.
“이렇게 마주하니 선대공께서도 그리 달가워하진 않으신 것 같군요.”
“그렇다면 어쩔 텐가.”
“그럼 저를 도와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는 대공이 제 딸과 헤어지길 바랍니다.”
갤로웨이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쪽에선 절대 손해 보는 일이 아니었다. 톰은 내내 그 셀로니아라는 계집을 주군 앞에서 치워 버리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먼저 손을 쓰겠다 말한 건 갤로웨이였으니 주군에게 걸려도 상관없었다. 이 모든 건 갤로웨이의 수작질이 될 테니까.
톰은 갤로웨이의 요구를 받아들이곤 기억경을 내주었다.
갤로웨이가 요구한 것은 하루 동안 주군이 그 계집을 만나러 공작저에 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
“약속만 이행해 주시면 제가 눈엣가시인 제 딸을 영영 치워 드리지요.”
그 말이 조금 거슬렸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그 여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말든 그들이 관여할 바가 아니었으니까.
“주군이 바로 알아차리실지 몰라…….”
“그럼 넌 주군이 정신 못 차리고 계속 그 계집년에게 붙어 있는 걸 보겠다는 거냐?”
“그건 아니지만…….”
잭은 톰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도 역시 주군에게 크나큰 배신감을 느꼈으니까.
주군만 바라보는 자신들은 내팽개치고 선택한 게 인간 여자라니.
“나 그 여자 싫어.”
“그래. 우리는 주군을 붙잡아 둘 수 없으니 이 방법을 써 보자고.”
만약에 주군이 그 여자를 만나러 공작저로 향하여도 쉽게 만나지 못할 테다.
갤로웨이는 톰을 탄의 아버지로 알고 있으니 아들을 붙잡고 있어 달라 부탁을 한 것이겠지만 실상 그들은 탄의 부하들이었다. 그들은 절대 힘으로 주군을 막아설 수 없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기억경이었다.
기억경은 거울 앞에 선 사람의 기억을 보여 주는 물건이었지만 숨겨진 또 다른 기능이 있었다.
그 기능은 인간에게든 마왕에게든 똑같이 작용했다.
“선대공님, 대공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그때 방 너머에서 멕스웰의 목소리가 울렸다.
톰과 잭은 서로 눈빛 교환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얼른 응접실을 나와 저택의 현관으로 향하였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본 그들은 외출에서 돌아온 탄을 향해 냉큼 허리를 숙였다.
“주, 주군. 오셨습니까…….”
“오셨습니까.”
탄은 톰과 잭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지나쳐 걷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네놈들은 이제 숲으로 돌아가.”
그러곤 고개를 돌려 명령했다.
“예? 주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톰이 놀라 번쩍 고개를 들어 반문했다. 마왕성도 아닌 숲으로 돌아가라니. 그건 신하의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뜻이었다.
“여기 있을 필요 없다. 내 성에도 오지 마라. 특히 네놈은 그녀에게 위협이니 다시 내 눈에 띈다면 그땐 목숨이 온전치 못할 거다.”
“……주군, 정말 변하셨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그 여자가 뭐길래요! 주군을 찔렀던 여자입니다! 주군을 죽였던 여자라고요!”
톰을 참을 수가 없어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목숨을 내놓는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너무나 억울했으니까.
탄의 서늘한 붉은 눈동자가 핏대를 세우고 있는 톰을 내려다보았다.
일이 끝나는 대로 셀로니아와 함께 북부의 성으로 갈 것이니 그녀에게 위협이 되거나 거치적거리는 것들을 모조리 정리하고 치울 생각이었던 것이다.
“두 번 말하지 않겠다. 가.”
“……후회하실 겁니다.”
결국엔 그들의 주군이 그들이 아닌 셀로니아를 택한 것이었다.
치밀어 오르는 울분에 입술을 악다문 채 탄을 노려보던 톰은 그대로 문을 박차고 나갔다.
잭은 안절부절못하고 눈치만 보다 탄이 꺼지라는 듯 고갯짓하자 하는 수 없이 톰을 따라 나갔다.
자신의 부하들이 사라졌음에도 탄은 일말의 동요도 없이 다리를 움직였다.
“후회.”
탄은 톰이 했던 말을 되뇌었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역시나 마음은 명확했다. 후회 따위를 할 리가 없다.
그들의 원망에도, 마왕답지 않다는 그 말에도 탄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가 셀로니아로 하여금 알게 된 이 감정은 그를 마왕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그러니 자신이 쥔 것을 빼앗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 * *
“하.”
그레이스가 있다던 응접실에 들어온 셀로니아는 실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오셨어요? 늦으셨네요.”
마치 본인 집에 있듯 소파에 아주 편안하게 앉아 있던 그레이스가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마지못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셀로니아는 허리춤에 감고 있던 성검을 풀며 다가갔다. 그 뒤를 엘라가 따랐다.
“어디 다녀오셨나 봐요?”
“그거까지 내가 설명할 이유 없고. 여긴 왜 왔나요?”
“차 한잔 내주지 않으시는 거예요? 너무하세요.”
“…….”
속상하다는 듯 가식적으로 눈꼬리를 내리는 그레이스를 보는 셀로니아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레이스가 앉아 있던 자리 앞 테이블 위에 올려진 찻잔은 이미 다 마셔 텅 비어 있었다.
“많이 마신 듯하니 그만 드세요. 우리가 도란도란 차 마실 사이는 아니잖아요?”
셀로니아가 소파에 앉으며 쥐고 있던 검을 옆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레이스가 기다렸다는 듯 냉큼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앉으라 한 적 없는데요, 그레이스 영애.”
“그냥 앉을게요. 서 있으면 다리가 아파서요.”
그녀의 지적에도 그레이스는 방긋 웃으며 대꾸했다.
“지, 지금 우리 아가씨께 무슨 무례셔요!”
셀로니아의 뒤에 서 있던 엘라가 황당하다는 듯 소리쳤다.
당연히 일개 하녀가 남작 영애를 향해 이런 말을 꺼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엘라는 참을 수가 없었다.
요즘 들어 아가씨가 힘들어하는데 이제는 하다 하다 저 여자까지.
엘라는 처음부터 그레이스를 이 집안에 들이기 싫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공작님께서 그레이스 영애를 응접실로 안내하라고 명을 내리셨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공녀님, 아랫것이 너무 시끄럽네요. 아랫것은 주인의 얼굴. 교육을 제대로 시키셔야겠어요. 망신당하지 않으시려면.”
“글쎄. 영애는 나를 걱정하는 그 시간에 윗사람에 대한 공경을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은데.”
“윗사람. 푸핫!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크게 웃어 버렸네요.”
비웃는 그레이스의 태도에 셀로니아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뭐지?
아까부터 묘하게 신경을 긁는 저 태도와 말투. 뭔가 믿는 구석이 있듯이 이상할 정도로 당당한 자세.
셀로니아는 티 나지 않게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방 안엔 그레이스와 자신 그리고 엘라뿐이었다.
“있잖아요, 공녀님. 제가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전해 들었지 뭐에요? 듣고 싶지 않으세요?”
그레이스가 재밌는 이야기보따리를 풀겠다는 듯 녹색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내며 몸을 셀로니아를 향해 바짝 기울였다.
그 모습에 셀로니아의 등골에 소름이 돋아났다.
현재 눈앞에 있는 그레이스의 모습은 그녀가 지금껏 봐 왔던 그레이스와는 달랐으니까.
늘 덮어쓰고 있던 가면을 벗은 느낌. 진짜 날것의 그녀를 마주한 기분.
“으음, 혼자 들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랫것이 들으면 너무 놀라 기절할지도 모르니까요.”
고민하는 척 손가락으로 볼을 짚었던 그레이스는 셀로니아의 대답이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아가씨…….”
엘라가 초조한 눈으로 셀로니아를 바라보았다.
당장 그녀의 입에서 명령만 떨어진다면 그레이스를 막아설 준비가 됐다는 듯.
“괜찮아, 엘라.”
하지만 셀로니아는 엘라를 저지했다.
그러고는 웃으며 다가오고 있는 그레이스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또각또각.
높은 구두가 바닥에 닿을 때마다 명쾌한 소리가 응접실 안을 울렸다.
마치 시곗바늘이 움직이듯 규칙적인 그 소리는 그녀의 귓가에 이명처럼 퍼져 들었다.
따끔거리는 귀와 함께 셀로니아는 그레이스의 움직임이 아주 느리게 재생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단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조금도 티 내지 않고 셀로니아는 꿋꿋하게 그레이스를 바라보았다.
코앞까지 다가온 그레이스는 기다렸다는 듯 지체하지 않고 앉아 있는 셀로니아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빨갛게 칠한 도톰한 입술이 그녀의 귓가에 바짝 붙더니 움직였다.
“내 몸으로 사니까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