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3)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3)화(13/162)
<13화>
* * *
방으로 돌아온 셀로니아는 엘라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듣게 되었다.
“제가 아가씨한테 뛰어가려는데 갑자기 그분이 나타나더니 짐승들을 다 날려 버리셨다니까요?”
엘라가 영웅을 만난 것처럼 상기된 얼굴로 열심히 설명하였다.
“짐승을?”
“네에! 영애들께서 말씀하신 게 정말인가 봐요. 그 왜, 밤의 야수님이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언제 야수가 야수님이 된 거지?
하지만 셀로니아는 딴지를 걸 수 없었다. 엘라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그를 동경하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그 이후로도 짐승들이 몇 번이나 달려들었는데 들고 있던 굵은 나뭇가지 하나로 그냥 다 끝내 버리셨어요!”
“그렇구나.”
“예! 정말 그분 아니었으면…… 으으, 생각하기만 해도 아찔해요. 아가씨가 무사하셔서 얼마나 천만다행인지.”
결과적으로 그 남자 덕분에 자신이 목숨을 부지한 것은 맞지만, 구해 주려는 의도였는지는 모른다.
그가 짐승이고 사람이고 가리지 않고 힘을 쓴 덕분에 저는 나가떨어져서 허리가 나갔다.
치유술이 아니었다면 뼈가 이렇게 붙었을 리가 없을 것이다.
아마 한 달은 넘게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했겠지.
“정말 정말 멋졌었는데! 아가씨도 보셨어야 했어요!”
펄쩍펄쩍 뛰며 좋아라 하는 엘라를 뒤로한 채 셀로니아는 오늘 오후 영애들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몇 개월 전부터 나타난 밤의 야수, 즉 마왕. 그는 굶주린 자들을 위해 음식을 나눠 주고 범죄자들을 소탕한다고 했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기억도 없는 데다가 의인 노릇까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걸까?
똑똑.
“아가씨, 공작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그토록 기다린 아버지의 귀가 소식이 문밖에서 들려왔다.
셀로니아는 곧장 아버지가 계시다는 집무실로 향했다.
‘이대로 내가 두고 볼 줄 알고?’
그를 저택에 머무르게 하는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껴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위험한 자다.
자신의 앞에서 불씨를 피워 내 집을 홀랑 태워 먹겠다고 협박까지 하지 않았나.
“아버지!”
“셀리, 귀공에게 감사 인사는 잘 전했느냐.”
드넓은 집무실 책상에 앉아 옷도 갈아입지 않고 외출복 그대로 서류를 넘기던 갤로웨이가 딸의 방문에 바로 고개를 들었다.
“그 남자를 저택에 머물게 하셨다고요?”
“그래. 너의 목숨을 구해 줬으니 신세를 갚아야지. 그자가 요즘 제도를 떠들썩하게 만든 주인공이더구나. 밤의 야수라고 하던가.”
아버지는 그리 말하며 요즘 젊은이들은 대단하다며 껄껄 웃으셨다.
“아버지, 제가 감사하는 마음을 충분히 전했으니 저택에 머무르게 하는 것보단 사례금을 드리는 게 어떨까요?”
어쩐지 아버지가 그에게 마음이 기운 것 같은 모습에 셀로니아가 초조한 마음으로 생각해 둔 다른 방안을 꺼냈다.
섭섭지 않게 사례금을 챙겨 준다고 하면 아버지도 수긍하실지 몰랐다.
“그럼 그럼. 당연히 사례금도 따로 챙겨 줘야지.”
“그럼 제가 지금 당장……!”
“하지만 얼마간은 공작저에 머물게 하는 게 좋겠다. 귀공은 머무는 곳이 정해져 있지 않아 떠돌고 있다는구나.”
완고한 아버지의 결정에 유일하게 모든 걸 알고 있는 셀로니아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버지, 아무리 그가 저를 구한 은인이긴 하나 위험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그런 사람을 어떻게…….”
“셀로니아.”
온화하던 아버지의 표정이 순식간에 엄해졌다.
그녀를 부르는 것도 애칭이 아닌 이름이었다.
이때만큼은 아버지가 아닌 베스인 공작이 된 것이었다.
“귀족의 본분을 잊지 말거라. 이 정도의 은혜도 갚지 않으면 베스인 가문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느냐.”
“그렇지만…….”
“가진 것이 많은 만큼 베풀 줄도 알아야 한다.”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하는 덴 이유가 있었다.
아마도 일평생 날 때부터 귀족 사회에 몸을 담고 있는 아버지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확고한 신념이 있기 때문이겠지.
지금 자신이 어떤 말을 해도 뜻을 굽히지 않으실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셀로니아는 언제나 올곧은 아버지의 눈과 마주쳤다.
갤로웨이 베스인 공작.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아버지.
셀로니아에게 언제나 무한한 애정과 무조건적인 믿음을 주는 든든한 한편.
‘그렇다면 아버지는 내 말을 믿어 주실지도 몰라.’
스스로도 믿기 힘든 일이지만 아버지라면.
고심 끝에 셀로니아는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아버지 그자는…… 읍!”
“셀로니아?”
“그 인간은 으, 읍읍……!”
당황한 셀로니아가 조가비처럼 딱 다물린 입술을 벌리고자 노력했다.
손으로 억지로 벌리려고도 했으나 입이 열리지가 않았다.
“아아, 으읍!”
몇 번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정체를 밝히려고 할 때마다 입이 닫혔다. 마치 목소리를 낼 수 없게 하려는 듯.
미친. 이게 무슨……?
“셀로니아, 괜찮은 것이냐?”
딸의 이상 행동에 갤로웨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들어온 책상 위에 놓인 만년필과 서류들.
‘글! 글씨로 적어서 보여 드리자!’
셀로니아는 잽싸게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셀로니아, 왜 그러느냐.”
“아버지 이것 좀 봐 주세요.”
빈 종이에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그 남자는 으으으어?”
갤로웨이가 뒤로 갈수록 휘갈긴 딸의 글씨를 소리 내어 읽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읍, 읍!”
환장하겠다. 말도 못 하고 글도 안 써진다.
마왕이라는 글자를 적으려고 할 때마다 손에 마비가 온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 글자를 쓸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써 보려 했으나 종이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지렁이만 기어 다닐 뿐.
“후우, 셀로니아. 장난은 그만하거라.”
갤로웨이가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딸이 하는 말을 들어 보려 했으나 말도 안 하고 글씨를 쓴다면서 장난스럽게 지렁이를 그린다.
“아버지 그게…… 읍!”
이젠 그게 아니라고 부정도 못 하게 한다.
눈물이라도 흘리면서 애원할까 했는데 그것도 안 된다.
이게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셀리, 그는 너를 구해 준 은인이다. 게다가 지금 민심은 그 귀공에게 기울고 있다. 그런 자에게 베스인 가문이 덕을 입었는데, 그저 돈만 쥐여 주고 돌려보냈다 하면 사람들이 우리 가문을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
셀로니아는 아버지의 말을 단번에 알아들었다.
사례금을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례금만 쥐여 주고 돌려보낸다면 제국민들은 베스인 가문을 돈이면 다 해결되는 줄 아는 전형적인 귀족이라 생각할 것이다.
은혜를 베푸는 것은 돈이 다가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귀족들에게 바라는 건 인정이었다.
신분의 격차가 높다고 하나 똑같은 사람이니 사람과 사람 간의 정을 기대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이번 일을 통해 베스인 가문의 인간적인 면모와 대인배스러운 배포를 보여 주고 싶은 것이었다.
밤의 야수는 혼자서 자발적으로 어려운 자들을 돕고 있었으니까.
더없이 좋은 기회이긴 했다. 그가 마왕만 아니었다면.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에게 마왕인 걸 밝힐 수가 없었다.
위험하다 털어놓고 싶어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거지 같은…….’
일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으나, 그 위험한 인간이 아버지 옆에서 알짱거리는 걸 두고 볼 순 없었다.
제 입을 열겠다고 협박까지 하던 놈 아닌가. 그러니 자신의 선에서 처리해야 했다.
“제가! 제가 그 사람이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살펴볼게요.”
결국 셀로니아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일단은 최대한 그가 허튼짓을 못 하게 곁에서 감시하며 하루라도 빨리 내쫓을 생각이었다.
“그래. 잘 생각하였다. 역시 내 딸이구나.”
“하하하…….”
셀로니아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갤로웨이가 흡족한 표정으로 셀로니아의 어깨를 다정하게 토닥였다.
“셀리, 이 아비는 오늘 심장이 철렁했다. 쓰러진 네가 영영 깨어나지 않을까 봐서.”
그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아버지는 전처럼 자신이 3개월 넘게 깨어나지 못할까 봐 두려웠던 거다.
“더는 다치면 안 된다. 항시 몸을 조심해야 한다. 이 아비는 너밖에 없단다.”
“네. 아버지.”
셀로니아는 먼저 두 팔을 벌린 다감한 아버지에게 안기었다.
가족의 사랑이 느껴지는 따뜻한 품에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그놈의 마왕 때문에.
* * *
모두가 잠든 자정.
그는 편히 묵으라고 안내받은 넓은 방 안에 홀로 서 있었다. 구름에 가려진 어슴푸레한 상아색 달빛이 스며들고 있는 창가 앞에.
“윽…….”
어디가 아픈지 그의 훤한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새어 나가는 신음을 참기 위해 힘주어 이를 악다물었다.
강한 교합으로 인해 그의 턱 주위가 사납게 씰룩였다.
온몸은 이미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꼿꼿하게 서 있었다. 한 손으로 창가를 붙잡은 채.
힘을 준 손등 위로 파란 핏줄이 불룩 솟아나 있었다.
“후우…….”
또다시 시작된 지독한 고통에 익숙한 듯 숨을 고르며 서슬 퍼런 눈이 붉은 빛을 반짝였다.
머릿속에 아까 그 여자가 떠올랐다.
혼란스러워하는 파란 눈동자. 허리까지 오는 보라색 머리카락.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과 대비되는 붉은 입술.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자였다.
본 적이 있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 없었다. 쉬이 잊힐 외모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저와 달리 그 여자는 자신에 대해 알고 있다.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으나 그는 더없이 확신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었으니까. 죽은 당신이 어떻게 살아 있는 거냐고.
어떻게 살아 있는 거냐고?
이건 자신이 죽었다고 믿던 사람의 확신이 무너졌을 때 나오는 말이었다.
그 여자가 알던 나는 죽었던 사람인 건가?
그래서 모두가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인가.
‘아무렴 상관없다. 기억만 되찾을 수 있다면.’
그는 이 여자의 곁에 머물 작정이었다.
자신에 대해 알 수 있을지도 모르는 실마리. 그러니 놓칠 수 없었다.
말을 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말하게 만들면 된다.
그편이 훨씬 재밌을 테니까.
원래 쉽게 얻는 건 뭐든 재미없었다.
“젠장…….”
참고 참았으나 결국 온몸을 무너뜨리게 만드는 고통에 그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창가에 기댄 채 스르르 주저앉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지독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