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30)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30)화(130/162)
<130화>
“와하하! 정말이었잖아?”
표정에 변화가 없는 셀로니아를 본 그레이스가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뭐가 그리도 웃긴지 배를 잡고 깔깔거릴 때마다 그레이스가 귀에 끼고 있던 푸른 귀걸이가 짤랑거렸다.
셀로니아는 그 모습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네가 다 눈치챈 것 같다고 했는데 진짜였어. 그럼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었던 거야? 역시, 남의 몸을 스스럼없이 사용할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이렇게 낯짝이 두꺼워야 할 수 있는 일이지. 그렇지?”
너무 웃어서 광대가 아픈지 그레이스는 얼굴을 문지르며 눈에 살짝 고인 눈물을 닦아 내었다.
셀로니아는 더는 숨김없이 막장으로 나오는 그레이스를 보며 직감했다.
준비가 완료된 거구나.
저들이 하려는 일이 준비가 되었으니 지금 이렇게 뒤를 생각 않는 태도를 보이는 거겠지. 게다가 당당하게 공작저를 찾아올 생각을 하다니.
‘여기 있구나. 제단.’
가늘어진 눈매 속 푸른 눈동자가 예리하게 번뜩였다.
분명 제단이 이 집안에 있는 거다. 그렇담 장단을 맞춰 줘야지. 이렇게 까지 나오는데.
“늦네? 좀 더 빨리 알아챌 줄 알았는데 역시 넌 눈치가 없어.”
“……뭐?”
“그럼 맥라이언의 술수가 풀린 게 우연인 줄 알았어?”
셀로니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더 높은 위치를 선점한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그레이스를 깔보았다.
“심지어 지금도 풀려나 있잖아. 네가 다시 술수를 건 게 무색할 정도로.”
“…….”
그레이스의 얼굴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구겨졌다. 그 빌어먹을 도롱뇽이 자신의 앞에서 연기를 했단 말이야?
그리고 설마 했더니 그게 진짜로 저 여자의 짓이었을 줄이야. 대체 언제부터 눈치를 채고 있었던 거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전.”
짤막하게 흔들리는 그레이스의 눈을 읽은 셀로니아가 대답했다.
“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뻔뻔해질 수 있나요, 공녀님? 제게도 알려 주세요.”
살짝 떨리는 입꼬리를 갈무리한 그레이스는 표독스러운 눈으로 셀로니아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알고 있잖아. 이 분야에서 너희 부녀를 이길 자는 없을 텐데?”
“제가 안다고요? 그럴 리가요.”
“그 몸. 네 거 아니잖아.”
“아아, 이거요? 하하하!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죠.”
웃음을 뚝 그친 그레이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나 이 몸의 주인은 나 때문에 평생 누려 보지도 못할 호사를 누렸잖아요? 게다가 옆에 서 보지도 못할 공작과 약혼까지 해 봤으니 영광이라 생각해야지요.”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믿고 있다는 듯 그레이스의 얼굴에는 거리낌이 조금도 없었다. 역겨울 정도로.
그러니 지금까지 이런 일을 저지른 거겠지. 저런 정신 상태가 아니라면 애초에 저지르지도 않았을 일이었다.
‘그런데 그레이스가 끼고 있는 저 귀걸이.’
셀로니아는 아까부터 저 귀걸이에 자꾸 시선이 갔다.
사파이어 보석 안에서 붉은 빛이 묘하게 깜박거리는 게 보였다.
더군다나 귀걸이에서 옅지만 탄의 기운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깜빡거려? 설마 저거…….
“나 정말 궁금한 게 있었는데 말이야. 너, 그 대공을 어떻게 손에 쥔 거지?”
순간 그레이스가 바짝 얼굴을 붙여 희번덕거리는 눈동자로 그녀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아니, 애초에 선대공의 사생아라니. 그런 얘기는 어디에도 안 나와 있었잖아?”
혼자서 중얼거리는 그레이스의 말에 셀로니아의 눈썹이 빗금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런 얘기? 마치 어디서 본 것 같은 말투이지 않은가.
“이런. 네 뻔뻔한 반응에 놀라서 말이 너무 길어졌네? 어차피 되돌려 받으면 모두 다 내 게 될 테니 무슨 수를 썼든 간에 상관없지.”
“멋대로 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그렇겐 안 되지.”
셀로니아는 그레이스를 비웃듯 픽 웃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레이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일이 조금 어그러져서 시간이 지체됐지만, 나 대신 토벌에 참여해서 받은 보상이라고 생각해.”
“아, 아가씨, 지금 이게 다 무슨 소리인지…….”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엘라가 끼어들며 입을 열었다.
더는 서로 숨길 것 없이 당당한 두 사람의 대화는 엘라를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
우리 아가씨가 남의 몸을 사용하고 있는 거라니? 아가씨가 아가씨가 아니면…….
“엘라, 넌 진짜 멍청하구나? 주인도 못 알아보는 개라니. 쯧.”
그레이스가 혐오감이 어린 얼굴로 엘라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게일.”
이제 그만 마무리를 지으려 그레이스가 게일을 부르던 순간.
“꺄아악! 뭐야!”
놀란 그레이스가 소리 질렀다.
“윽……!”
뒤로 피하긴 했으나 왼쪽 팔을 내어준 게일이 신음성을 내뱉었다.
“너, 너 대체 내 몸으로 뭔 짓거리를 한 거야!”
믿기지 않는 일에 그레이스가 버럭 언성을 높였다.
그녀의 부름을 받고 순식간에 소리도 없이 나타난 게일이 셀로니아를 뒤에서 가격하려고 했으나 할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방금까지 태연하게 서 있었던 셀로니아가 재빠르게 성검을 낚아채 게일을 베어 버렸으니까.
모든 건 눈 깜짝할 새 일어났다.
게일이 이안에게 당했다곤 하나 저 계집애한테 팔을 내어줄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저 검술은 뭐야. 검조차 잡지 못했던 자신의 몸이 언제 저렇게……!
“이제 네 몸 아니라니까?”
셀로니아는 씨근덕거리는 그레이스를 보며 씨익 웃었다.
탄의 힘이 깃든 이 몸은 심지어 사냥제 때 맥라이언과도 동등하게 맞붙었던 적이 있을 정도였다. 게일의 조잡한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다.
애당초 믿는 구석이 있는 듯 당당하게 행동하는 걸 봤을 때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뒤를 노릴지 모른다고.
“뭐해! 저년 하나 못 잡는 거야? 이 한심한 새끼!”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에 열이 뻗친 그레이스가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게일에게 악을 질렀다.
셀로니아는 갑자기 나타난 게일이라는 남자를 응시했다.
저놈이다. 그 초록 머리.
자신의 성검에 베인 그의 팔은 길게 찢어진 것도 모자라 불에 지진 듯 그을린 자국이 나 있었다. 흑마법을 쓰는 놈인 건지 성검이 단순히 베는 것을 넘어 살을 태운 것이었다.
이놈을 불러서 제 뒤를 노린 것을 보니 기절시켜 제단으로 데려가려는 모양이었다. 제단의 위치를 알려면 따라가는 것도 방법이긴 했지만 당연히 위험했다.
그때였다.
“이런. 우리 딸이 못 본 새 많이 성장한 모양이구나.”
“아, 아가씨…… 으윽!”
놀란 그녀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엘라!”
갤로웨이가 엘라를 뒤에서 붙잡고는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으니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게일과 달리 별다른 기운도 느끼지 못했는데 언제…….
“검을 내려놓으렴. 네가 이럴수록 이 아이가 다치잖니.”
부드럽게 미소를 지은 얼굴과 달리 갤로웨이의 손에 들린 검은 잔혹하게도 점점 엘라의 목을 파고들고 있었다.
“끄윽, 아가씨, 저는 괜찮아요……!”
목에서 피가 흘러도, 끔찍한 통증이 밀려들어도 엘라는 질끈 감은 눈으로 그렇게 소리쳤다.
뭔지도 모르면서, 제가 그녀의 아가씨가 아니라는 걸 다 들었으면서.
“자아. 내 딸아, 어서. 너도 이 아이가 죽는 걸 보고 싶진 않을 테지.”
검을 놓기를 종용하는 갤로웨이의 얼굴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모든 껍질이 다 벗겨진 민낯. 암막이 드리운 듯 탁한 푸른 눈빛과 비열한 입매.
사람인 것 같지 않은 그 모습에선 악한 기운과 악취가 풍겨 대고 있었다. 마왕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만큼 완벽한 악의 형상이었다.
“누가 당신 딸이야.”
셀로니아가 검을 꽉 그러쥔 채 씹어뱉듯 말했다.
지금 그냥 바로 갤로웨이를 쳐 버릴까?
하지만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데 나선다고 해서 찌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괜히 발을 움직였다가 엘라만…….
“머리 굴리지 말거라. 네가 시간을 끌면 끌수록 이 아이만 죽게 되는 거다.”
“으, 으윽……! 전 괜찮, 으니 도망가요, 아가씨……. 끄윽!”
갤로웨이가 모든 걸 다 파악하고 있다는 듯 손에 힘을 주었다.
더 깊게 들어간 검날을 타고 엘라의 벌어진 살갗에서 피가 흘러나와 아래로 뚝, 뚝 흘러내렸다.
“누가 누구보고…….”
도망가라는 엘라의 말에 셀로니아는 어이가 없어 픽 웃으며 결국 검을 쥔 손의 힘을 풀었다.
“옳지. 어서 내려놓아라.”
그 모습에 만족스럽다는 듯 갤로웨이의 한쪽 입꼬리가 잔인하게 올라갔다.
그 순간이었다. 셀로니아가 결국 검을 놓기 위해 손가락 하나하나를 떼어 내려는 찰나.
검을 감싸고 있던 푸른 기운이 그녀의 손바닥을 거쳐 모조리 몸으로 흘러들었다.
뭐야?
놀란 마음에 고개를 드니 갤로웨이는 그저 자신이 검을 놓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애초에 이 기운이 안 보이는 건가?’
게일도 그레이스도 갤로웨이도 모두 이 모습이 보이지 않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흑마법을 쓴 자는 이 성검의 기운을 읽을 수 없는 걸까.
검의 푸른 기운은 멈추지 않고 계속 그녀의 몸으로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마치 지금의 상황을 파악한 것처럼.
셀로니아는 천천히 무릎을 구부렸다. 시간을 끌기 위해서.
“발악을 하는구나, 아주.”
등 뒤에서 그레이스의 비웃음이 들려왔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바닥에 무릎을 굽힌 셀로니아는 검의 기운이 모조리 몸에 들어온 순간.
탁, 바닥에 검을 내려놓았다.
“포박해.”
* * *
“알아서 말씀해 주시겠지요.”
“그러기엔 사안이 너무 중대하잖아. 그리고 너도 궁금해서 따라와 놓고는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옆에서 자꾸만 잔소리해 대는 레예프가 귀찮다는 듯 얼굴을 구긴 맥라이언이 고개를 들었다.
그들에 앞에는 웅장한 베스인 공작저가 놓여 있었다.
“전 맥라이언 님이 행여 셀로니아 님께 실수할까 봐 감시하는 것입니다!”
레예프가 발끈하여 강하게 부정했다.
“어련하시겠나. 나도 내 호기심이나 풀자고 무작정 찾아온 거 아니다. 그 얘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냐. 걱정되는데…….”
자신도 모를 이 불안함에 결국 맥라이언은 셀로니아를 찾기 위해 베스인 공작저로 온 것이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셀로니아의 이야기를 모두 다 들어 버렸다.
갤로웨이 베스인이 이 모든 사달의 원흉이라는 것도, 그녀가 진짜 셀로니아가 아니라는 것도.
그래서 지금 다시 영혼을 바꾸려고 한다는 것도.
그 진실을 다 알아 버렸는데, 셀로니아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그녀가 진짜 베스인 공녀가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들과 토벌을 함께한 건 지금의 그녀이지 않나.
자신의 상처를 모른 척 치유하며 고기를 내밀던 그 여자는 결국 지금의 셀로니아다.
“에이 씨, 집에도 없는 거 아니야?”
맥라이언은 거칠게 머리를 털며 저택 문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들의 방문을 알리고 문 앞을 지켜야 할 기사들이 보이질 않았다.
“다 어딜 간 거야?”
문이라도 두드려 보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문은 닫혀 있지 않았다. 작은 틈을 두고 열려 있었다.
“뭐야?”
이상한 마음에 맥라이언이 문을 밀자 내부의 싸늘한 공기가 두 사람에게 불어닥쳤다.
“…….”
“…….”
순간 맥라이언과 레예프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열린 문 사이로 오싹할 만큼의 적막이 느껴졌으니까.
기사도, 복도를 지나는 하인도 보이질 않았다. 저택 안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형언할 수 없는 기이한 광경에 맥라이언과 레예프과 경계 태세를 위해 검을 잡은 순간.
쿵, 쿵, 쿵.
저택을 울릴 만큼 거대한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2층?”
첨예하게 번뜩이는 맥라이언의 눈이 계단 위를 향했다.
두 사람은 곧장 2층으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