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32)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32)화(132/162)
<132화>
30분 전.
“우욱……!”
셀로니아는 악취에 정신이 핑 돌 지경이었다. 코를 마비시킬 정도로 강력한 냄새에 속이 메스껍고 숨쉬기가 힘들었다.
그녀는 두 남자에게 양팔이 붙잡힌 채 어둑한 공간을 걷고 있었다. 두 손은 등 뒤로 포박당하여 꼼짝없이 묶여 버렸다.
이곳이 어디인지 몰랐다. 갤로웨이가 양피지를 찢자 순식간에 응접실에서 이 어두운 공간으로 이동해 버렸으니까.
여기가 그들이 흑마법을 자행한 공간인 건가? 이곳에 제단이 있는 건가?
확인을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벽 군데군데 놓여 있는 촛불은 화력이 크지 않아 이곳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알려 주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게 있다. 빛이 잘 들지 않는 지하 공간일 것이다.
발을 움직일 때마다 울리는 소리도 그렇고,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눅눅하고 습한 기운. 그리고 악취 속에서 느껴지는 쿰쿰한 곰팡내까지.
대체 이런 지하실이 어디에 있는 거지? 이 정도로 악취가 난다면 기운이 느껴질 법도 했는데 지금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는 건 완벽하게 기운을 숨기기 위해 노력했거나 이곳이 저택이 아닌 다른 곳에 숨겨져 있다거나, 둘 중 하나일 터.
“풉! 이제 좀 사태 파악이 됐나 봐?”
그때 그레이스가 말없이 조용히 걷고 있던 셀로니아를 비웃었다. 아까는 그렇게 날뛰어 대더니 이곳에 오니 겁을 먹고 본인의 주제를 파악했다고 확신한 것이다.
그러나 셀로니아는 그레이스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이곳이 어디인지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도망치려면 이 통로를 잘 기억해 둬야 해.
“이제 그 몸에 있을 시간도 얼마 없는데 목소리라도 더 내 봐야지!”
셀로니아의 무시에 열받은 그레이스가 언성을 높이며 비아냥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셀로니아는 연신 눈동자를 굴려 주위를 살피며 생각했다.
성검의 기운을 내가 흡수한 것 같은데 필요하면 나타날까? 그러면 좋으련만.
“내 말 안 들려?!”
“셀리.”
참다못한 그레이스가 폭발해 셀로니아의 어깨를 강하게 돌려세우자 어디선가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셀로니아는 그 목소리가 너무도 익숙했기에 앞서 걷던 남자를 쳐다보았다.
뚜벅뚜벅. 그녀의 시선을 본체만체 지나친 남자는 그레이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열을 낼 필요 없다. 이제 곧 제자리를 찾을 건데 아량을 베풀어야지.”
어르고 달래는 다정한 어투였다.
“…….”
그 모습을 본 셀로니아는 동요하고 싶지 않아 입술을 사리물었다. 갤로웨이가 너무나 당연하게 그레이스를 ‘셀리’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있었으니까.
저를 부르던 그 따뜻한 애칭이 이제는 비수가 되어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하지만 아버지! 저년의 태도를 좀 보세요! 주제도 모르고 제가 진짜 공녀인 듯 굴잖아요!”
갤로웨이의 다독임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그레이스가 표독한 눈으로 셀로니아를 째려보았다.
지금까지 얼마나 뻔뻔하게 저 여자가 공녀라는 자리에서 자신을 눌러 왔나. 본래 자신의 것도 아니면서 마치 진짜 자기 것처럼 말이다.
“하하. 그래 봤자다. 존귀한 내 딸은 너 하나뿐이니.”
갤로웨이가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그레이스의 머리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오직 그레이스만을 바라보는, 부성애가 일렁거리는 갤로웨이의 푸른 눈을 본 셀로니아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역겨워.”
그 애정이 진짜여서. 자신의 딸을 위한답시고 벌였던 모든 일을 정당화시키는 저 대단한 부성에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이런이런. 내 가짜 따님께서 불만이 많은 모양이군.”
셀로니아의 말을 들은 갤로웨이가 비열하게 번뜩이는 눈을 돌렸다. 그는 고개를 돌린 셀로니아의 턱을 손가락을 붙잡아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그녀가 저항했으나 소용없었다. 손에 얼마나 힘을 준 것인지 붙잡힌 턱에 아릿한 통증이 퍼져 나갔다.
“마음 같아선 네 몸을 성한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만들어 주고 싶다만. 이 몸이 너의 것이 아니란 걸 고맙게 여기거라.”
같지도 않은 말에 살벌한 눈으로 갤로웨이를 노려보던 셀로니아는 그대로 침을 뱉었다.
“꺄악! 이 미친년이!”
“그만!”
그 모습을 본 그레이스가 셀로니아에게 달려들려고 했으나 갤로웨이가 소리쳤다.
“아버지!”
“셀리. 잊었느냐. 이 몸이 누구의 것인지.”
그레이스가 원망 어린 목소리를 내었으나 갤로웨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에 묻은 침을 닦아 내었다.
“그렇지만 저년이 아버지한테……!”
“네 어미가 물려준 이 몸에 상처가 나도 좋단 말이냐!”
“…….”
“잊지 말거라. 이건 네가 되돌려 받을 네 몸이다.”
아주 쇼를 해라, 쇼를.
셀로니아는 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는 부녀를 보며 표정을 구겼다.
그래도 이로써 확실해진 게 있다. 늘 그랬지만 갤로웨이는 이 몸에 생채기가 남는 것조차 못 견디게 싫어 한다는 것이었다.
“……네. 아버지.”
결국 한발 물러선 건 그레이스였다.
“착한 내 딸. 이제 너에게 모든 것을 돌려주마.”
갤로웨이는 그런 그레이스를 흡족하게 바라보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셀로니아는 강제로 이끄는 남자들에 의해 멈추었던 발걸음을 움직였다.
넓지 않은 통로를 지난 끝에 그녀는 2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철문 앞에 도착하였다.
끼이익.
망설임 없이 문을 여는 갤로웨이의 손짓에 녹슨 소리가 고막을 할퀴며 지나갔다. 그러자 열린 문 사이로 소름이 끼칠 정도의 피비린내가 훅 밀어닥쳤다.
“끌고 와.”
떨어진 갤로웨이의 명령에 남자들이 우악스럽게 셀로니아의 팔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섰다.
찰박, 찰박. 바닥에 고인 물로 인해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났다.
이곳이 어딘지 살피기 위해 고개를 든 셀로니아는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제단이었다. 그녀가 그토록 찾던.
두 계단 위에 놓인 연단 위에는 은색의 커다란 제단이 있었다.
제단 위에는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는데 셀로니아는 저것이 흑마법을 부리는 주술이 담긴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제단 앞엔 새카만 제대가 위치해 있고, 그곳엔 한 번도 본 적 없는 커다란 마법진이 공중에 떠 있었다.
커다란 구 안에 화려한 수식이 그려져 있고, 수식들 사이사이에 붉은색 작은 돌멩이가 끼워져 있었다.
돌멩이는 족히 100개는 되어 보였다.
‘저 돌멩이는 뭐지?’
마법진과 함께 공중에 떠 있는 저 붉은 돌멩이는 뭘까.
흑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선 사람의 목숨이 필요하다 했다. 저게 희생된 사람의 목숨인 건가?
혼란스러움에 고개를 떨어뜨린 셀로니아는 순간 바닥에 고인 물이 투명하지 않고 붉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물이 아니다.
‘피야…….’
그 사실을 깨달은 셀로니아가 번쩍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았다.
그러자 지나온 통로보다 한층 밝은 방 왼편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보따리가 눈에 띄었다.
그 보따리에서 줄줄 흘러나오는 붉은 액체가 평평하지 않은 바닥 곳곳에 고인 듯했다.
‘설마 그럼 저게 다 사람이라고……?’
경악한 셀로니아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보따리의 개수를 세어 보았다.
그러나 수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 왼편에 쌓여 있었다.
“음. 눈치챈 모양이네? 맞아.”
그런 셀로니아의 표정을 본 그레이스가 꺄르륵 웃었다.
‘웃어?’
저걸 보고 웃어?
본인들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보고 웃어?
“미쳤어.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대체 어쩌자고……. 감히 지들이 뭔데…….
결국 울분을 참지 못한 셀로니아가 붉어진 눈으로 그레이스에게 소리 질렀다.
“애초에 영혼을 바꾸지 말았어야지! 토벌을 피하기 위해서였으면 토벌대에 참여한다고 하지 말았어야지! 본인이 선택해 놓고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이 짓을 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토벌대에 참여하겠다고 한 건 본래 셀로니아였다.
이렇게 죽도록 하기 싫은 일이었으면 애초에 합류하겠다고 하지 말았어야지. 본인이 하겠다고 해 놓고 영혼을 바꾸는 게 말이 되나. 무슨 이런 이기적인 선택이 다 있나.
“너 정말 잘 아는구나? 그런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 멍청하게.”
섬뜩하게 번뜩이는 그레이스의 녹안이 점점 더 셀로니아를 향해 다가왔다.
“토벌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당연히 그렇게 했겠지. 하지만 그럴 수 없어. 그게 주인공의 숙명이니까.”
“……뭐?”
그레이스의 입에서 나온 주인공이라는 말에 셀로니아는 순간 벙쪘다.
이게 지금 무슨 말이지?
“내가 이 세계의 주인공이야. 여자 주인공.”
“너…….”
“남자 주인공이 이안 체르빌이지. 으음. 마음에 안 들어.”
불만이라는 듯 그레이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
셀로니아는 정신이 멍했다.
그게 주인공의 숙명이라니.
그럼 다 알고 있다는 거야? 이게 책 속의 세계라는 걸?
“그런 커다란 틀은 바꿀 수가 없어서 말이지. 어쩌겠어, 내가 주인공인데. 숙명이라면 받아들여야지.”
그레이스가 오만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얄미운 그 말에서 셀로니아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정말로 알고 있는 거다. 이 세계의 정체를.
어떻게?
셀로니아의 시선이 바로 제단 위에 놓여 있던 책으로 향했다. 흐릿하게나마 표지가 보였다. 흑마법의 주술이 담긴 책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책 제목이 익숙했다.
마왕에게서 살아남기…….
“그런데 난 집 나가서 반년 동안 고생하긴 너무 싫었거든. 게다가 마왕 토벌이라니. 아프잖아. 으으, 침대가 아닌 진흙에서 야숙하는 것도 싫고 게다가 마물 고기라니. 우웩! 생각만 해도 역겨워.”
“……그래서. 그게 싫어서 영혼을 바꿨다?”
“응. 하지만 이것 봐. 너도 살아 돌아왔잖아? 내게 고마워해. 내가 주인공이라 네가 무사히 돌아온 거니까.”
“…….”
“있잖아.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이 아니야. 난 주인공이고 넌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 주인공인 내가 고생하는 것보단 하잘것없는 네가 대신 좀 희생하는 게 더 낫잖아? 안 그래?”
셀로니아를 향해 불쑥 얼굴을 들이민 그레이스가 아주 만족한다는 듯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넌 그저 주인공인 내가 더 빛나기 위해 존재한 엑스트라였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