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33)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33)화(133/162)
<133화>
자신만만한 그레이스를 보며 셀로니아는 잠시 침묵했다.
주인공.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인물로 극을 이끌어 가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
엑스트라. 극에서 비중이 크지 않고 주인공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역할.
한때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당연히 주인공인 저를 놔두고 왜 남주들은 원작에 한 줄도 등장하지 않는 엑스트라를 선택한 걸까 의구심을 품었었다.
내가 주인공인데. 나와 함께 해피 엔딩을 맞이하는 게 당연한 건데.
우습게도 원작을 알고 있었기에 당연한 듯 그렇게 차별하고 차이를 뒀다.
이 극을 위해 잠시 모인 배역이었을 뿐, 영원한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어느 날 이 몸에 빙의되어 버렸지만, 반년을 넘게 죽을 고비를 넘겨 가며 토벌한 일부터 해서 탄을 만난 지금까지의 모든 일은, 자신이 했던 수없이 많은 선택이 모여 만들어진 제 인생이었다.
아픈 게 싫다며 피해 버린, 그래 놓고 되돌아가겠다고 죄 없는 사람들을 희생시킨 저 여자의 인생이 아니라.
그런데 이제 와 그레이스가 주인공을 운운하니 우스울 수밖에.
영혼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날, 주인공의 어둠은 피하고 빛만 취하겠다고 다짐한 그날, 스스로 주인공이 되길 포기했다는 것도 모르고.
극은 끝났다. 더는 이 세계에 주인공과 엑스트라라는 배역은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서로가 없으면 배역의 나눔이 의미가 없는 것을.
이제는 그저 사람들을 위해, 또한 이 세계를 위해 사라져야 할 저 악들뿐이었다.
게다가 저 부녀는 두 가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첫째는 제가 저 책의 내용을 다 알고 있다는 점. 그리고 둘째는 탄이 살아 있다는 것.
원작은 마왕이 죽었다고 쓰여 있다. 그걸 철석같이 믿고 있겠지. 주인공이 숙명처럼 해야만 하는 일이 있듯이 마왕 또한 숙명처럼 죽었을 게 분명하다고.
‘어쩌면 지금 상황이 저 소설과 달라진 이유가 이것 때문일지도 몰라.’
책의 비밀을 알아 버린, 주인공이라는 배역에 심취하여 엑스트라를 그저 하잘것없는 인간으로 여기고 말도 안 되는 악행을 저지르기까지 한 저 부녀를 막으려고.
그래서 탄이 죽지 않고 살아난 건가.
어쨌든 탄이 저를 선택한 것도, 자신이 성검을 다룰 수 있게 된 것도 제가 한 일이다. 모든 건 그녀 스스로가 선택하고 내린 행동들이 모여 만든 결과였다.
이제 내막을 알아냈으니 생각을 해야 했다.
생각하자, 생각해.
이곳을 빠져나가 시간을 벌어야 해.
갤로웨이는 이 몸에 상처가 나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지. 설령 자신의 딸이 아닌 다른 영혼이 이 몸 속에 있다 하더라도.
그렇다면…….
모든 게 되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저 부녀에게 작은 불신을 심어 준다면?
게다가 그레이스가 끼고 있는 저 귀걸이.
만약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라면, 지금 저 부녀의 입을 열게 만들어야 했다.
“네가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어떻게 장담해? 한 번 실패했었잖아.”
“……그걸 어떻게!”
침묵하던 셀로니아의 입에서 나온 말에 그레이스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렇게까지 네가 애절하게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데 지금 와서 처음 시도하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내가 갑자기 3개월 동안 일어나지 못했던 것도 그것과 관련이 있겠지.”
“아, 아버지…….”
그레이스가 불안한 얼굴로 갤로웨이를 바라보았다.
그럴 수밖에. 셀로니아의 말대로 처음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기에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정말로 또다시 실패한다면 그땐…….
“두 번째는 성공할 수 있다 확신해요? 정말로?”
역시 동요할 줄 알았다.
그레이스의 불안을 읽은 셀로니아는 이번에는 갤로웨이의 눈을 정확히 보며 입을 열었다. 그 역시 작은 의심이라도 가지길 바라면서.
그러나.
“하하하!”
갤로웨이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나 웃긴 농담을 들었다는 양 진심 어린 웃음이 거슬렸다.
뭐지? 뭘 믿고 저렇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태도라 당황스러웠지만 셀로니아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 실패하면 영영 기회는 없을 거예요.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거든. 그리고 이렇게 대놓고 흑마법을 써 놓고 은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이런이런.”
어느새 웃음을 뚝 그친 갤로웨이가 어두운 지하실 안에서도 선명하게 보일 만큼 섬뜩하게 가라앉은 푸른 눈으로 뚜벅, 뚜벅 다가왔다.
“넌 내가 너의 아비 놀음한 게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구나. 이렇게 걱정까지 해 주고. 마음이 갸륵하기 그지없어.”
다정다감하게 내는 목소리와 달리 그녀를 응시하는 갤로웨이의 눈은 애정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 넌 너무나 잘 적응했지. 날 보고 의심 없이 단번에 아버지라 부르기도 하였고.”
“…….”
“아마도 넌 이 책을 알고 있는 모양이야. 그렇지?”
갤로웨이가 속내를 파악하겠다는 듯 가늘게 뜬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뭐? 그게 정말이야?”
그 말에 놀란 건 그레이스였다. 그녀는 펄쩍 뛰며 셀로니아에게 대답을 요구했으나 셀로니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
“토벌대엔 내 눈과 귀들이 있단다. 영혼이 바뀌었음에도 별 무리 없이 적응하고 치유술도 척척 썼다지? 의심하긴 했는데 지금 셀리의 얘기를 듣고도 주인공에 대해 묻는 게 아니라 성공 여부에 대해서 물어보니, 너무 뻔하지 않니.”
이미 모든 걸 다 파악했다는 듯 포식자의 눈으로 갤로웨이가 손을 뻗었다.
기다란 손가락이 셀로니아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 소름 끼치는 감각에 치가 떨려 왔다.
“시간을 끌려는 모양인데, 소용없단다. 네 걱정도 소용없고.”
갤로웨이는 티를 내지 않으려 무척 애를 쓰고 있으나 파르르 떠는 셀로니아를 보며 픽 웃었다. 마치 비를 맞은 강아지처럼 떠는 꼴이 가여워 그의 손이 그녀의 뺨을 툭툭 치곤 떨어져 나갔다.
“……뭔가 있나 보지? 전과 달리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셀로니아는 예리한 갤로웨이 때문에 덜컥 두려워졌으나 담담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찰박, 찰박.
고인 피를 가르며 어느새 제대 위로 올라간 갤로웨이가 마법진에 박혀 있던 붉은 돌멩이를 빼내며 말했다.
“이게 바로 사람의 심장이란다. 참으로 보잘것없지 않느냐.”
“…….”
“사람의 심장을 빼내어 흑마법으로 응축시키면 이렇게 변모하지.”
결국 저게 흑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수단이자, 사람을 희생시킨 결과물인 건가.
“가기 전에 궁금한 것 같으니 말해 주마. 영혼을 바꾸는 데엔 그다지 많은 심장이 필요치 않단다.”
그럼 저건 다 뭐지? 족히 100개는 되어 보이는 저 심장들은.
“네 말대로 우린 한 번 실패했었지. 뭐든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니 우리도 대안을 만들어 놔야 하지 않겠니.”
갤로웨이가 그리 말하면서 손가락을 까딱이자 셀로니아를 붙잡고 있던 두 남자가 걸음을 떼었다.
셀로니아는 남자들에게 질질 끌려 연단을 올라서 제대 앞에 멈췄다.
“실패는 없단다. 아니, 아무도 이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맞을 테지.”
셀로니아의 동공이 풍랑을 맞은 배처럼 흔들렸다.
그러니까 저 말은 영혼을 되돌리고 나면 실패든 성공이든 흑마법을 이용해 모든 사람의 기억을 지우겠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떳떳하게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걸려도 모두가 알게 된 사실들이 지워질 테니까.
“윽……!”
그때 셀로니아가 살갗이 찢어지는 감각에 고통을 삼켰다.
잠시 방심하고 있는 사이 갤로웨이의 눈짓을 받은 남자가 단검으로 그녀의 손바닥을 베어 낸 것이었다.
“쯧. 적당히 베어 낼 것을.”
“죄송합니다.”
갤로웨이의 질책에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유리병을 내밀었다.
방금 셀로니아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를 받은 유리병이었다.
“자 이제 작별 인사를 해야겠구나. 대공이 오지 못하게 손을 써 놓긴 했어도 아무래도 찾아올 것 같으니 지체해선 안 되겠지.”
탄이 오지 못하게 손을 써 놨다고?
저 말이 진실인지 아닌진 모르겠으나 셀로니아는 침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현재 자신을 빼고 도합 4명이었다. 갤로웨이,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두 남자 그리고 그레이스.
인원이 많긴 해도 마냥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으니 움직여야만 했다.
“셀리.”
갤로웨이의 부름에 그레이스가 품에 가지고 있던 유리병을 꺼내 가져왔다.
유리병을 받아 든 갤로웨이는 망설임 없이 제단 위로 두 유리병 속 피를 부었다.
뚝, 뚝, 뚝.
새빨간 두 사람의 피가 동일한 속도로 제단 위로 떨어졌다.
그러자 공중에 떠 있던 마법진이 눈이 멀 정도로 붉은 빛을 발산하며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돼……!’
아득해져 오는 정신 사이로 셀로니아는 성검을 떠올렸다.
성검이라도 나타나야 해.
‘제발, 제발, 제발……!’
이보다 더 간절할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하게 빌고 있을 그때였다.
갤로웨이가 입을 벌려 주문을 외려던 순간.
셀로니아의 손안에 우웅- 진동이 울리며 길쭉한 검 손잡이가 나타났다.
착 감기는 감각과 함께 몸에 들어차 있던 기운들이 빠르게 몸 밖으로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기운들은 잘 벼려진 검날을 만들어 냈다.
‘됐어!’
셀로니아는 지체 없이 포박당한 손을 풀어내곤 바로 팔을 높게 쳐올렸다.
콰아앙!
무게를 실은 검날이 엄청난 굉음을 내었다.
“꺄아아악!”
놀란 그레이스가 벌러덩 넘어지며 소리를 내질렀다. 푸른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성검은 정확하게 두 사람의 피가 섞인 제단 한가운데를 내리쳤으니까.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제단이 두 동강으로 갈라지며 돌가루가 휘날렸다.
붉은 빛을 발산하며 돌고 있던 마법진은 이윽고 빛을 잃고 모든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 제단을 부수고 마법진이 멈춘 것까지 확인한 셀로니아는 뒤늦게 달려드는 두 남자의 옆구리를 칼로 베어 내곤 뛰었다.
“아아악! 내 귀! 내 귀! 이 미친년이!”
넘어진 그레이스의 귀에 달린 귀걸이를 잡아 뜯는 것도 잊지 않고.
고통을 호소하며 그레이스가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으나 셀로니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뛰고 또 뛰었다.
그레이스의 귀걸이를 뜯어 낼 때 살점도 같이 뜯긴 것 같았으나 상관하지 않았다. 그깟 피 조금 흘린다고 한들 본인들 손에 희생당한 그 수많은 피에는 미치지도 못할 테니.
“뭣들 하느냐, 당장 쫓아라! 당장!”
성난 갤로웨이가 악을 내질렀다.
옆구리에 입은 자상 때문에 주춤거리던 남자들이 서둘러 셀로니아를 뒤따랐다.
“아버지, 아버지 제 귀가…… 그년이 제 귀를……! 흑…….”
그레이스가 주저앉은 채 피 흘리는 귀를 부여잡고 울었다.
갤로웨이는 그레이스를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기만 하다 시선을 옮겨 이제는 보이지 않는, 셀로니아가 사라진 방향을 보았다.
우웅-
땅이 진동했다. 천장이 흔들리고 주변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부서진 제단으로 인해 지금껏 감춰져 있던 공작저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었다.
“순순히 내어줄 생각이 없다면 상대해 줘야지.”
음험한 목소리와 함께 갤로웨이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왼편에 수북이 쌓여 있던 보따리가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하나둘씩 튀어나오는 그것들을 본 갤로웨이는 두 동강이 난 제단을 붙이기 시작했다.
* * *
“하아, 하아……”
셀로니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성검의 푸른 빛이 안내하듯 빛을 뿜어낸 덕에 바깥으로 나오게 된 그녀는 안도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게 다 뭐야……?”
그녀는 마주한 저택의 모습에 기함했다.
자신이 알던 공작저의 내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새카만 지옥으로 변해 있었으니까.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왜 사용인들은 하나도 보이질 않는 건지.
“셀로니아!”
“탄?”
황망한 가운데 그런 생각이 들던 찰나 익숙한 목소리에 셀로니아가 고개를 돌렸다.
“탄! 저 여기 있어요!”
분명 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고독하게 어두운 저택을 울릴 뿐 되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탄? 탄!”
셀로니아는 탄이 들어오지 못하게 손을 썼다는 갤로웨이의 말에 걱정이 되어 우선 그를 찾아 나섰다. 잃어버리지 않게 그레이스의 귀걸이를 손에 꼭 쥔 채로.
“순순히 붙잡히십시오. 그래야 다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몇 발자국 움직이지 못한 채 끈질기게 따라붙은 갤로웨이의 수하들로 인해 길이 막혀 버렸다.
하는 수 없이 검을 꽉 움켜잡았다.
“너희들이야말로 지금이라도 도망가는 게 살길이야.”
“잡아!”
그녀의 말을 남자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먼저 검을 휘둘렀다. 귀가 아릴 정도로 날카로운 금속성이 사위에 울려 퍼졌다.
서로에 입에서 신음이 튀어나오기를 수십 번.
“후우…….”
힘이 쭉 빠진 채로 힘겹게 서 있는 셀로니아의 입에서 고된 숨이 흩어져 나왔다.
털썩.
결국 마지막 한 놈까지 바닥에 쓰러지고 나서야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성검과 탄의 힘 덕분에 두 놈을 해치웠으나 셀로니아의 상태도 그리 좋진 않았다.
그래도 실력이 없진 않은지 그녀의 온몸에 자잘한 상처는 물론, 얼굴에 자상까지 남겼으니까.
그래 봤자 그들은 전에 검을 겨뤘던 맥라이언보다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담.
거슬리는 길고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넘기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셀리?”
등 뒤에서 인기척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처럼 환청일까?
확인을 위해 뒤를 돌아보았을 때 맥라이언과 레예프가 보였다.
그리고 그들 옆에 서 있는 한 남자.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 뛰어왔는지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힌 얼굴과 애틋함을 담아 저를 바라보고 있는 붉은 눈동자.
“늦었네요.”
그를 다시 마주했다는 안도감에, 탄과 제가 서로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셀로니아는 성검을 든 채 웃었다.
탄은 그런 그녀를 붉어진 눈시울로 바라보다 성큼성큼 걸어갔다.
거대한 두 팔이 단숨에 그녀를 끌어안았다.
“걱정했다.”
몸을 굽혀 품에 깊게 안은 그녀의 목에 얼굴은 묻은 탄이 뜨거운 숨을 토해 냈다.
셀로니아는 자신의 몸을 으스러질 정도로 힘을 주고 있는 그에게서 옅은 떨림을 느꼈다.
불안, 초조, 걱정, 자책.
떨림 속에 이 모든 감정이 한데 뒤섞여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에 그녀는 탄의 단단한 가슴에 툭 기대었다.
“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