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34)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34)화(134/162)
<134화>
“손이 왜 이렇지?”
셀로니아를 품에서 떼어 내고 여기저기 상처를 살피던 탄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손이요? 손이 왜, 아…….”
셀로니아가 의아한 눈으로 제 손을 바라보다 깨달음에 작은 소리를 내었다.
손바닥이 온통 피범벅이었다. 검 손잡이에도 붉은 피가 흥건히 묻어 있었다.
남자들을 상대하느라 손바닥이 베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괜찮아요. 우선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셀로니아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탄의 눈동자가 한시도 제 손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으니까.
베여서 벌어진 살을 차마 만지진 못하고 그 주위의 손가락만 만지작거리는 손이 애처롭게 보일 정도였다.
하는 수 없이 셀로니아는 반대편 손을 들어 다친 손 위에 얹으며 치유의 빛을 흘려보냈다.
“탄, 정말 괜찮아요. 봐요, 사라졌죠?”
말끔하게 아문 손을 자랑스럽게 보여 주며 셀로니아가 배시시 웃었다.
하지만 그래도 탄의 표정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더 아픈 것처럼 눈을 찌푸린 채 그녀의 얼굴과 몸에 남은 자잘한 자상을 바라보았다.
“이건 나중에 다 치료할게요. 이것들도 흉터없이 말끔하게 사라질 테니 걱정하지 마요.”
탄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셀로니아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톡 기대었다.
“그놈은 어디 있지.”
이윽고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주위를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싸늘했다. 셀로니아를 이렇게 만든 갤로웨이를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겠다는 듯이.
“이봐. 지금 여기 너네 둘만 있는 게 아니라고!”
잠자코 그들의 포옹이며 애정 행각을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바라보던 맥라이언이 결국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볼멘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집안 꼴이 왜 이래. 여기 쓰러진 놈들은 또 뭐고.”
“셀로니아 님, 괜찮으십니까?”
맥라이언에 이어 레예프가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셀로니아는 맥라이언과 레예프를 번갈아 쳐다보며 이미 단단히 굳혀 버린 마음을 전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알고 있지? 그때 다 엿들었잖아. 아마 레예프도 맥라이언한테 전해 들은 것 같고요. 맞죠?”
“엿듣다니 그건 순전히 우연……! 후우, 그래 맞아. 다 들었다.”
맥라이언은 발끈했지만 지금 상황이 괜히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질 만큼 한가롭지 않다는 걸 알기에 그냥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정말인 겁니까……?”
레예프가 떨리는 눈동자로 셀로니아를 바라보았다.
셀로니아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맞아요. 현재 그레이스 베넷으로 있는 그 여자가 이 몸의 진짜 주인이에요. 그런데 난 되돌려주고 싶지 않아요.”
셀로니아는 아까 제단 앞에서 갤로웨이한테 들었던 계획을 얘기해 주었다. 영혼을 다시 바꾸고 나면 모든 사람의 기억을 지워 버리겠다는 그들의 계획을.
“그러니까 지금 내 결정이 도리에 어긋난다 생각하는 거라면 그냥 가요. 그런 사람에게 도움을 바라지 않으니까.”
애초에 저 두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제 결정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의 도움 따윈 필요 없었다.
하지만 도와준다고 하면 거절할 생각도 없었다.
“나는……. 아이 씨!”
고민을 하는 듯했던 맥라이언이 돌연 머리를 헝클어뜨리다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래! 네가 셀로니아지, 그럼 누가 셀로니아야.”
“……뭐?”
이렇게 바로 대답할 줄 몰랐기에 셀로니아가 조금 놀란 얼굴로 맥라이언을 보았다.
“난 그런 여자 몰라. 내가 기억하는 셀로니아는 너뿐이라고.”
뭔가 말하기가 쑥스러운 건지 부끄러운 건지 맥라이언은 계속 애꿎은 목뒤를 매만지며 다시 입술을 열었다.
“내가 좋아한 건 너야.”
“…….”
종말을 맞이한 것 같은 저택에서 듣는 고백이라니. 게다가 지금 이 상황에서.
당연히 멋도 없고 마음도 동하지 않았으나 셀로니아는 그게 조금 위로가 되었다.
맥라이언이 저를 동등한 동료로 생각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그에게 실망하여 마음이 돌아섰지만, 그래도 우리가 함께했던 그 시간이 그렇게 가치가 없진 않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러다 문득 옆에서 탄이 ‘죽일까, 저거.’라고 진심으로 중얼거리는 소리에 웃음을 삼켜야만 했다.
“심장을 주고 내가 나와 함께 오래 살아 달라고 했던 건 동료인 너라고. 그러니까…… 네 말대로 바꾸지 마, 그냥.”
“저는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맥라이언의 멋쩍은 고백에 이어 레예프가 말했다.
셀로니아는 그의 혼란을 이해했다. 신을 섬기는 성기사에게는 신의 내려 주신 고귀한 몸이 뒤바뀐 채 산다는 일과 그가 가진 교리와 신념이 충돌하는 일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다시 이 몸에 들어가기 위해 수없이 많은 생명을 앗아 갔다는 것에 신께서도 분노하실 겁니다.”
결심이 섰는지 레예프의 고아한 얼굴 속 보라색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그리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기사의 맹세를 했던 것은, 제가 마음에 새겼던 것은 지금의 셀로니아 님입니다.”
맥라이언과 다르지 않은 레예프의 고백에 탄의 얼굴이 점점 더 험악해졌다. 이것들이 지금 누구 앞에서 셀로니아에게 마음을 품었다 어쩐다 하는 건지.
열받은 탄이 번쩍 손을 들어 올리려고 했으나 이미 눈치챈 셀로니아가 그의 팔을 붙잡아 제지했다.
“알겠어요.”
그녀는 탄의 팔을 붙잡은 채 레예프와 맥라이언을 향해 말했다. 본인들이 도와주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대체 집안이 왜 이렇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쯧. 숨겼던 거다.”
여전히 저 두 놈이 불만스러웠지만 셀로니아의 저지에 참은 탄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 말에 셀로니아가 반응했다.
“숨겼던 거라고요?”
“처음부터 이 꼴이었던 거다. 지금까지 흑마법을 썼으면 이렇게 변하고도 남는 게 당연해. 게다가 나까지 눈치채지 못하게 감쪽같이 모습을 숨겨 둔 걸 보니 매개체가 있던 모양이군.”
“매개체라면…….”
“본래 모습을 감추고 흑마법의 기운을 모조리 대신 삼킬 물건.”
탄은 환영의 방에서 나오자마자 변해 버린 저택의 모습을 보고 옛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본디 흑마법은 생명을 갉아먹고 탄생한 주술이었기 때문에 흑마법을 벌이는 주위는 언제나 황폐했다는 것을. 모든 생명이 죽고 그을린 듯 검게 남은 자국만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이 저택은 한순간에 뒤바뀐 게 아니라 흑마법을 쓰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점차 변해 버렸을 것이다.
결국 그들이 이제껏 행한 흑마법으로 저택이 죽어 버린 것이었다.
“그럼 그 물건이 아마 제단이었겠네요. 제가 제단을 부쉈기 때문에 본모습이 드러난 거고요.”
그의 말을 이해한 셀로니아는 바로 제단을 떠올렸다.
“그래. 흑마법을 시행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본모습이 드러난 저택에서 살아남지 못할 거다.”
“그럼 이 저택에 있던 하인들은 다 죽어 버린 것입니까? 그렇다면 저희는 어떻게 살아 있는 걸까요?”
탄의 물음에 셀로니아가 가졌던 의문을 레예프가 대신 물었다.
“네놈들은 본인이 누군지도 몰라?”
탄이 레예프를 면박 주듯 눈살을 찌푸렸다.
“아…….”
그 말에 레예프가 깨달았다는 듯 작게 소리 내었다.
레예프는 성기사였다. 맥라이언은 영물이라 불리는 드래곤이었으며, 탄은 마왕이었으며 셀로니아는 탄의 힘을 나눠 가졌다.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갔다. 왜 그들을 제외하고 하인들이 보이질 않았는지.
아무런 기운도, 능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모두 죽어 버린 것이었다.
“그러면 엘라도…….”
충격에 휩싸인 셀로니아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모두 다 죽어 버렸다면 엘라 역시 무사하지 못했을 테니.
그때였다.
“으허어어엉! 아가씨, 아가씨이!”
환청처럼 우는 엘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달려오는 발소리까지.
셀로니아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엘라? 너 어떻게…….”
“무사하셨군요! 흐흡, 걱정했어요! 흐어어어엉!”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달려온 엘라가 셀로니아를 와락 껴안은 채 오열했다.
어떻게 엘라가 살아 있는 거지?
얼떨떨한 마음도 잠시 셀로니아는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엘라의 등을 토닥였다.
“다행이다…….”
“흐흑, 걱정했어요! 갑자기 모두가 재로 변하더니 저택도 이상하게 변해 버리고 흐어엉! 아가씨는 끌려갔고, 흐어어엉!”
끌려간 셀로니아를 찾기 위해 울면서 저택을 돌아다니던 엘라는 갑자기 저택이 변하면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검은 재로 변하는 장면을 똑똑히 목격해 버린 것이었다.
“너. 뭐 가지고 있는 거 없어?”
탄이 셀로니아를 껴안고 있는 엘라의 어깨를 돌려세우며 날카롭게 물었다.
“흐흡, 가지고 있는 거요? 히끅, 그런 거 없는…… 아, 이거 아가씨께서 놓고 가셔서 제가 챙겨 드리려고…….”
탄을 늘 겪었던 엘라는 무서워하지 않으며 대답하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이건…….”
엘라의 손 위에 올려진 것을 본 셀로니아의 눈이 흔들렸다.
하얀빛을 내뿜고 있는 작은 병. 그녀가 치유의 빛을 담았던 병 중 하나였다.
레예프에겐 줬지만 맥라이언에겐 전해 주지 못해서 그녀가 아직 가지고 있던 그 병.
설마 이게 흑마법을 상쇄해서 엘라가 죽지 않은 건가?
지금까지 흑마법을 당했던 이들이 자신의 치유술을 통해 깨어난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엘라, 이거 가지고 있어. 잃어버리지 말고 꼭 품 안에 가지고 있어.”
셀로니아는 그것을 전해 주려는 엘라의 손을 도로 꽉 말아 쥐게 하며 결연하게 말했다.
엘라는 뭔진 모르겠지만 아가씨의 말이었기에 세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와아악! 뭐야, 이거!”
순간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며 맥라이언이 호들갑을 떨었다.
맥라이언 방향을 본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바닥에서 무언가가 꾸물꾸물 기어 나오고 있었으니까.
검은 점액질로 뒤엉킨 슬라임 같은 게 하나가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이 이 바닥, 저 바닥에서 나오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가 없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 다섯 사람은 복도 한가운데 딱 붙어 있었다.
그들의 주위로 모여드는 검은 점액질은 돌연 사람의 키만큼 커지더니…….
“사람?”
모두 하나같이 왼쪽 가슴이 뻥 뚫린 사람으로 변모했다.
피부색은 녹빛이고 눈은 모두 흰자로 변해 버린, 말 그대로 움직이는 시체였다.
* * *
“가만 안 둬, 절대 가만 안……!”
표독스러운 얼굴로 귀를 부여잡고 지하에서 위로 올라온 그레이스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모든 행동을 멈추었다.
“왜, 왜 저것들이……!”
그녀의 눈에 탄과 셀로니아 그리고 맥라이언과 레예프가 함께 있는 모습이 보였으니까.
왜……?
왜? 왜! 대체 왜 제가 아닌 저년의 옆에 당연하다는 듯이 있단 말인가!
“내가 진짜야……. 내가 진짜 셀로니아라고…….”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그레이스가 중얼거렸다.
“진짜는 나야. 저년은 가짜야. 내 것을 훔친 가짜란 말이야…….”
모든 게 자신의 것이었다.
맥라이언도 레예프도 이안도 그리고 탄도.
“이 집도 아버지도 저 하녀도 저 몸도 저 얼굴도 다 내 것이란 말이야!”
독기를 품은 그레이스가 악에 받친 얼굴로 고함을 내지르는 순간, 시체들이 일제히 다섯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콰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바닥에 쌓여 있던 잿가루가 마치 폭풍처럼 휘날렸다.
잿가루가 사방에 날려 시야를 메웠다.
“콜록, 콜록!”
검고 뿌옇게 휘날리던 잿가루로 인해 사람들이 연신 기침을 터트렸다.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서.
달려드는 언데드들을 단번에 휩쓸어 버린 탄은 살벌한 붉은 눈으로 그레이스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