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41)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41)화(141/162)
<141화>
고요한 황궁의 회랑.
맥라이언은 팔짱을 낀 채 삐딱하게, 레예프는 흐트러짐 없는 특유의 단정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에 반면.
“쓸데없이 얘기가 길어지는군. 가 봐야겠다.”
“아, 좀! 고작 1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정신 사납게 왔다 갔다 하던 탄이 냅다 걸음을 옮기려 하자 맥라이언이 만류했다.
셀로니아가 이안과 얘기를 하기 위해 잠시 떨어진 지 고작 1분.
탄은 주인을 잃은 개처럼 안절부절못하며 온갖 성질을 다 부리고 있었다.
맥라이언과 레예프는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지금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진짜 자신들이 아는 마왕이 맞단 말인가? 뭐 마려운 개처럼 구는 이 사람이?
사람이, 아니 마수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변할 수가 있는 거지?
게다가 그레이스와 갤로웨이는 해결이 됐는데, 이 마왕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하아…….”
같은 생각을 한 건지 레예프와 맥라이언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애초에 한자리에 세 사람이 같이 있는 것부터 말이 되질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되는 바람에 여차여차해서 서로 힘을 모았으나, 진심으로 서로를 죽이기 위해 목에 칼을 겨눴던 게 고작 1년도 지나지 않은 일이다.
마왕은 제국의 주적이자 황제가 가장 두려워하고 없애고 싶어 하는 인물 0순위였다. 그래서 최정예 부대가 꾸려졌고, 결국 네 명의 구원자가 마왕을 무찔렀다.
모두가 그렇게 마왕이 죽었다고 알고 있다. 얼마 전 그들까지도 그렇게 맹신했다.
그런데 이렇게 버젓이 살아 있다니. 심지어 셀로니아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만 좋은 걸까. 이걸 황제에게 알려야 하는 걸까?
“당신. 셀로니아를 못 믿는 거냐?”
가만히 탄을 지켜보던 맥라이언이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입술을 열었다.
어찌 됐든 지금까지 본 바로는 탄과 셀로니아는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확고했다. 그러니 헤어진 옛 연인을 만나러 갔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초조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마치 셀로니아의 행실을 의심하는 것 같아 날을 세운 것이었다.
“하.”
탄이 맥라이언의 말에 실소를 터뜨렸다. 근래 들었던 말 중 가장 개소리라는 듯.
그는 치켜뜬 눈으로 맥라이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뭐, 뭐야.”
맥라이언은 탄의 눈빛에 당황했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냐고 말하고 있는 그의 시선이 마치 자신을 혼내고 있는 것만 같았으니까.
“그녀가 꺼지라 해도 붙어 있는 네놈들을 못 믿는 거지.”
“…….”
“나 같으면 미안해서라도 눈에 띄지 않을 거다. 세 놈 모두 똑같이 구는 걸 보니 구원자의 덕목은 두꺼운 낯짝이군.”
“그건 우리가 그 부녀한테 휘말려서……!”
잊고 싶던 과거를 언급하자 맥라이언이 창피함에 화르륵 달아오른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레예프가 막아서는 바람에 말을 멈추었다.
“당신은 셀로니아 님과 어떤 미래를 그리고 계신 겁니까.”
조용히 지켜만 보던 레예프가 탄을 당당하게 마주 보며 나섰다.
“저는 셀로니아 님과 같은 인간입니다. 같은 시간을 살며 같은 속도로 나이 들고 있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영생을 살지 못하며 예기치 못한 병이나 노쇠하면 다시 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잠시 말을 멈춘 레예프의 고아한 보라색 눈동자는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 하고 싶은 말이, 우려되는 점이 명확하다는 듯.
“아니지 않습니까.”
물러섬이 없는 마지막 목소리는 마치 신의 뜻을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반박할 수 없는 진실이었으므로.
이건 명백한 선을 긋는 말이었다. 우리는 너와 다르다는 선언.
인간과 달리 초월적인 존재인 건 드래곤인 맥라이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탄과 맥라이언은 달랐다.
드래곤은 제국에서 신성시하는 고귀한 영물이었으나 마왕은 모두가 두려워 없애고 싶어 하는 괴물일 뿐이었다.
셀로니아가 선택한 건 제국에 반하는 그 마왕이었고.
“당신이 셀로니아 님을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에 거짓이 없다는 것도요. 하지만 지금 당장 셀로니아 님 때문에 잠자코 있는 것이라면 그 이후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계속 이어진 레예프의 말은 아주 날카롭고도 예리한 질문이었다.
맥라이언은 거기까진 생각지 못했는지 한 대 맞은 것 같은 얼굴로 가만히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거지?”
탄은 빙빙 돌려 대는 레예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시간이 흘러 셀로니아 님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 말입니다. 당신께선 멀쩡히 살아 계시겠지요. 그럼 그때도 이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지금 우리가 당신을 가만히 지켜만 봐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다행이군. 적어도 내가 그녀보다 먼저 죽을 일은 없으니. 네놈들이 떠나갔을 때 혼자가 되어 버렸던 그 일을 다시 겪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
탄이 레예프의 말에 가소롭다는 듯 픽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 공작저에 머물던 때, 그녀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원한다면 구원자 놈들을 다 죽여 주겠노라고.
그때 그녀는 대답했다.
“됐어요. 이제 관심 없어요. 그냥 변한 거예요. 그들도 저도. 그뿐이에요.”
그 말을 하는 셀로니아의 얼굴엔 얼핏 고독이 스쳤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릴 정도의 쓸쓸함이 내비쳤다.
그가 제일 잘 아는 감정이었다.
탄은 심연처럼 어두운 감정이 그녀의 맑은 얼굴에 떠오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는 그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해 주고 싶을 만큼.
그런데 이제는 그녀가 저를 선택했으니,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게 해 주리라.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그만.”
당황하여 또다시 주저리주저리 떠들려는 레예프를 향해 탄이 서늘한 눈을 들었다.
그가 레예프의 말뜻을 모를 리 없었다. 결국엔 네가 마왕인 것을 밝히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보라는 뜻이었다.
“……왜 하필 셀로니아 님입니까.”
“뭐?”
“수많은 사람 중 왜 셀로니아 님이냔 말입니다.”
화를 내는 건지 레예프가 추궁하듯 조금 전보다 목소리를 높였다. 여태까지 꾹 참아 왔던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X발.”
탄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들은 자꾸 그에게 자신들을 납득시켜 보라 말하고 있었다. 이래서 인간들이 싫었다.
뭐가 이리 말이 많고 재고 따지는 게 많은지. 어떤 일이든 왜 그 일이 벌어졌는지 이유를 찾고자 했다. 이유가 없는 일도 있는 것을.
“내가 네놈들을 납득시킬 필요 없다. 그리고 별다른 이유 없이 네놈들이 셀로니아를 좋아하는 것은 말이 되고 내 감정은 말이 안 된다?”
“지금까지 이런 적 없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가벼이 듣지 마십시오. 제국의 안보와도 직결된 문제입니다.”
금방이라도 씹어 죽일 듯 노려보는 탄의 눈빛에도 레예프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원한다면 들려주지. 훗날 셀로니아가 없어졌을 때 어떻게 되는지.”
탄은 그런 레예프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이어진 말에 맥라이언과 레예프는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 * *
셀로니아와 이안은 황궁 정원에 서 있었다.
그들 뒤로 건물 보수 공사가 한참이었다. 그건 이안이 흑마법의 부작용으로 부숴 버렸던 황궁의 연회홀 건물이었다.
꽤 오랜 시간 침묵을 유지하고 이안 때문에 셀로니아도 덩달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지 않으면 그녀가 먼저 말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애초에 그와 대화를 할 생각도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간절한 부탁에 따라나선 것뿐이었다.
“얘기 들었다.”
정적을 유지하던 이안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제 막 깨어나 정신을 차린 지 반나절. 이안은 부관인 러드 백작에게 지금까지의 진상에 대해 전해 들었다.
“나를 살렸다고.”
“살렸다기보단 정화한 거죠.”
셀로니아는 정확하게 정정해 주었다. 이것을 빌미로 감사를 받거나 하는 일은 질색이었으니까.
“영애 덕분에 이만할 수 있었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그대도 알겠지만 내가 했던 모든 말들은 진심이 아녔다.”
셀로니아는 왠지 모르게 드는 아련한 감정에 대답을 하지 않고 이안을 응시했다.
술수가 풀린 이안은 그녀가 알던, 그녀가 사람으로서, 동료로서 좋아했던 그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래서일까. 문득 토벌 당시 함께했던 옛 추억이 떠올랐다.
“영애, 난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믿어. 영혼이 바뀌었다 한들 그때 내가 내민 손을 잡은 건 영애이지 않나.”
“…….”
“얘기를 전해 듣고 조금 놀랐지만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가 알던 그녀가 그 여자가 아닌 당신이라는 것에.”
이안의 그윽한 눈동자가 셀로니아를 담았다.
그 순간 폐부에 닿을 정도로 차갑고 상쾌한 겨울바람이 두 사람의 옷자락을 지나 머리카락을 못살게 흔들었다.
셀로니아는 방해가 되는 긴 머리카락이 거추장스럽다는 듯 한 손으로 쓸어 넘겼다.
이안은 그 모습을 단 1초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꼭 처음 토벌을 떠났던 그날 같았다. 그날도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던 그녀는 결국 하나로 질끈 묶어 버렸다.
말꼬리처럼 흔들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하얀 목덜미가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그녀는 묶은 머리를 고수했다. 긴 머리카락은 토벌에 방해만 될 뿐이라며 예상치 못한 대답과 함께.
이안은 그때 처음으로셀로니아가 토벌에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흥미가 들었다.
왜 갑자기 바뀐 걸까? 무엇이 그녀를 바뀌게 한 걸까?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셀로니아가 토벌에 나서겠다고 한 걸 이해하지 못했던 이안이었다.
토벌 전, 맞선 때문에 형식적으로 몇 번 셀로니아를 마주했을 때 이안은 크게 실망하였다.
외모는 뛰어났지만 그녀는 전형적인 귀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했다. 베스인 공작가의 하나뿐인 외동딸. 콧대는 드높았고 오만했으며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이 갖춰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여자.
배려와 이타심은 눈 씻고 찾아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여자가 토벌에 참여하겠다고 하다니. 이안은 눈앞이 캄캄했다.
개인이 아닌 동료들과 함께 움직여야만 하는 단체 생활에서 셀로니아의 이기적인 태도는 방해물이 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토벌이 시작되니 달랐다.
그녀는 누구보다 먼저 자진해서 나섰고, 방해가 되기 싫다며 노력했다.
심지어 좋다고 쫓아다니는 맥라이언과 레예프에게 단 한 순간도 여지를 주질 않았다. 그들의 마음을 이용하여 조금 더 원만한 토벌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도.
그런 여자가, 그 누구에게도 단단히 그은 선을 지우지 않았던 여자가 선택한 게 바로 이안 자신이었다.
이안은 그런 셀로니아를 사랑했다.
모두가 사랑하는 여자. 그런 여자가 택한 남자. 바로 자신. 그것만으로도 우월감을 느끼기 충분했다.
물론 이안은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흑마법이 밝혀짐과 동시에 세상에 드러난 그 책 속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남자 주인공이라서 여자 주인공인 셀로니아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가 직접 겪은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제 옆에 있어야 했다. 그래야 가장 빛나니까. 역시나 우리 둘은 주인공이니까.
“이제 영애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궁금하군.”
이안이 셀로니아를 보며 웃었다. 찬가 속 신의 미소처럼 햇살을 베어 문 화사한 미소였다.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일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는 듯이.
“공작님.”
셀로니아는 한때 자신이 많이 의지했던 남자를 향해 더없이 차분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셀로니아라고 부르세요.”
“그대는 본명을 기억하고 있지 않나? 혹 기억이 없는…….”
“아뇨. 있어요. 그런데 그걸 공작님께 알려 주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당황하는 이안을 보며 셀로니아는 단호했다.
단 한 점의 애정도 없는, 불어오는 바람보다 더 시린 눈동자가 이안을 응시했다.
옛 감정에 젖어 있는 그를 그녀가 자비 없이 현실로 데려다 놓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