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44)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44)화(144/162)
<144화>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있었다.
곧 계절이 바뀐다는 것을 보여 주듯 쌓여 있던 눈도 서서히 녹고 있었다.
“이것 좀 보셔요! 아가씨랑 잘 어울리실 만한 선물인 거 있죠?”
엘라가 고급스러운 케이스에서 꺼낸 목걸이를 누워 있는 셀로니아를 향해 들며 말했다.
“이 팔찌는 또 어떻고요! 헤헤. 하나같이 다 아가씨랑 어울리는 것들로만 골라서 보내셨어요!”
함께 온 팔찌도 들며 엘라가 설명을 이어 나갔다.
셀로니아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엘라는 분명 자신의 목소리가 셀로니아에게 닿을 거라 생각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말을 걸고 있었다.
대부분 오늘 신문 기사 내용이라거나 바깥 날씨에 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었다.
3개월째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이렇게 계속 재잘재잘 떠들다 보면 언젠간 저 입술에서 타박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엘라 알겠으니 그만 좀 해’라고. 꼭 오늘이 아니라도 말이다.
“이제 많이 적응되셨대요. 꼭 한번 만나 뵙고 싶다시네요.”
엘라가 선물과 함께 온 쪽지를 읽었다.
그건 진짜 그레이스 베넷이 셀로니아에게 보낸 선물이었다.
사건이 일단락되었던 당시에는 커다란 충격에 미처 신경 쓰지 못한 감사 인사를 지금 전해 온 것이었다.
엘라는 눈을 감고 있는 셀로니아를 향해 팔찌와 목걸이를 요리조리 보여 주다 씁쓸한 웃음과 함께 조용히 케이스 안에 다시 집어 넣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밝아진 얼굴로 가져온 신문을 들었다.
“어라? 황태자 전하가 곧 약혼하신대요! 상대가…… 아가씨도 아시는 분이네요? 로아나 세르데이 백작 영애래요! 기억나시죠? 함께 디저트도 드시고 아가씨가 축하연 때 초대하셨잖아요!”
오랜만에 본 반가운 이름에 엘라가 들떴다.
“읽어 드릴게요! 항간에 의하면 로아나 세르데이 영애가 혼전 임신…… 헉!”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기쁜 마음에 기사를 읽어 나가던 엘라가 화들짝 놀라 헛숨을 삼켰다.
“하하하! 아무튼! 곧 두 분이 약혼하신대요!”
그러더니 급히 마무리했다. 예상하지 못한 기사에 당황한 것이었다.
어서 다른 기사를 읽어 드리기 위해 곰곰이 신문을 살피던 엘라는 입안이 썼다.
이제 더는 신문 어느 곳에서도 셀로니아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주 작은 자투리 기사에서조차.
셀로니아가 쓰러진 지 이제 3개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진 것이었다.
“쿠키, 쿠키를 좀 구워 올게요…….”
그게 몹시도 서럽고 원통하여 엘라가 울음을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아가씨에겐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 주고 싶었으니까. 그러니 가끔씩 참지 못하고 튀어나오는 이런 못난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후다닥 방을 나섰다.
“…….”
오늘도 어김없이 묵묵히 셀로니아의 곁을 지키고 있던 탄은 조용히 잡고 있던 그녀의 하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에 이마를 맞대었다.
꽉 잡으면 부서질 것처럼 부드럽고 약한 손은 당장이라도 그가 놓는다면 맥없이 아래로 툭 떨어질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꼭 붙들고 있는 수밖에. 제가 계속 잡고 있을 수밖에. 그렇지 않으면 이 손은 언제라도 빠져나갈 테니까.
“오늘 날씨가 좋다.”
보는 것만으로 따뜻할 정도로 화창한 햇살을 보며 탄이 셀로니아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었다.
“너와 북부의 봄을 함께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가 낮게 진심을 말하며 이마를 묻고 있던 손등에 입술을 묻었다.
“탄. 우리 정리되는 대로 북부로 가요.”
분명 그녀가 그리 말했으나, 허락 없이 데리고 갈 순 없었기에 그는 아직 제도에 머물고 있었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제 손을 잡고 함께 가자고 먼저 말을 해 줄 때. 그때를 기다렸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 버렸다.
이제는 그녀가 눈을 뜬 모습보다 눈을 감고 있는 이 모습이 더 익숙하게 다가올 정도로 시간이 흘러 버린 것이었다.
너는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 꿈속에 저는 있을까?
언제쯤 눈을 뜨고 저를 바라봐 줄까.
기약 없는 기다림이라도 괜찮았다. 아주 오래 걸린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다만 이 눈이 떠진다는 확신만 있다면.
그녀가 의식을 잃은 뒤 그가 습관처럼 수시로 하는 행동이 있었다. 그건 바로 그녀의 호흡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혹시라도 이 숨이 끊어질까, 언제라도 호흡이 멎어 버릴까 불안했기에.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으니 꼭 눈을 뜰 거라는 확신만 있다면 좋을 텐데…….
“괜찮아요…….”
넌 뭐가 괜찮다고 한 걸까. 어떤 의미를 담아 그 말을 한 걸까.
네가 없어도 나는 괜찮은 거라는 소리인가? 아님 꼭 다시 제 곁으로 오리라는 약속인 건가.
확실히 알 수 없기에 탄은 날이 갈수록 바짝 말라 갔다.
그녀의 호흡을 확인할 때마다 그의 심장은 바닥에 내려앉았다 다시 올라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좀먹는 불안에 어둠이 자리한 얼굴로 탄은 탁상 위에 놓인 물수건을 잡았다.
“곧 새순이 돋을 것 같다.”
그러고는 오늘도 어김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그녀에게 들려주며 잡은 손을 정성스레 닦아 주었다.
“북부에는 제도에서 볼 수 없는 봄꽃들이 많다.”
비단 마왕성 뒤에 있는 야생 숲만 하더라도 인간들은 평생 볼 수도 없는 아름답고 희귀한 꽃들 천지였다.
“여름도 괜찮아. 이곳보다 훨씬 온도가 낮기에 시원하게 보낼 수 있어.”
손을 다 닦은 그는 이젠 가느다랗고 하얀 팔을 수건으로 부드럽게 문질렀다.
“가을엔 북부에서만 자라는 열매가 열린다. 난 맛을 잘 모르겠지만 다른 놈들은 달고 맛있다며 좋아하더군. 넌 단것을 무척 좋아하니 마음에 들 거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익숙한 손길로 그녀의 몸을 닦던 탄이 피식 웃었다.
처음 그녀가 대공저에 발을 들였을 때, 그녀가 자신이 대접한 식사를 마치고도 야무지게 초콜릿 케이크까지 챙겨 먹은 것이 생각나서.
신기하게 바라보는 저를 향해 그때 그녀는 퉁명스레 말했었다.
“원래 디저트 배는 따로 있는 거거든요?”
그런 그녀의 권유에 하는 수 없이 케이크를 입에 넣었던 자신은 살인적으로 단 맛에 혀가 아릴 정도였다.
그런데도 맛있냐고 묻는 그녀에게 호기롭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 조각을 다 먹어 치운 미련한 짓까지 했다.
괜히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녀가 제게 권유한 것이고 그녀는 제가 잘 먹는 모습을 좋아하니까. 그래서 좋아하는 것만 보여 주고 싶었다.
원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보여 줄 수 있을 텐데. 이 눈만 뜨인다면…….
어느새 웃음이 사라진 얼굴로 탄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겨울의 북부는 제도보다 혹독하지. 하지만 가을에 잘 준비해 두면 무리 없이 지낼 수 있다. 게다가 추우니 딱 붙어서 지내는 게 좋겠군. 가끔 겨울나무에 맺히는 고드름을 구경하면서. 겨울나무에 맺히는 고드름은 햇빛이 반사될 때면 마치 수정처럼 반짝거려 장관이거든.”
한쪽 팔까지 다 닦은 탄은 고요히 잠들어 있는 것만 같은 셀로니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손은 어느새 셀로니아의 뺨을 매만지고 있었다.
“너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잔뜩 있다.”
봄에 피는 아름다운 꽃도, 여름에 부는 쾌적한 바람도, 가을에 수확한 달달한 과일도, 겨울이 맺히는 눈부신 수정까지.
4계절 내내 그녀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게 존재했다.
“그러니 언제든 괜찮아. 어떤 계절이든.”
시간이 얼마나 걸려도, 어느 계절에 눈을 뜬다 하여도 상관없으니 부디 저를 다시 찾아오기를.
자신이 보는 것을 그녀가 보고, 자신이 느끼는 것을 그녀가 함께 느낄 수 있기를.
“기다릴 수 있다.”
탄이 고개를 내렸다. 뜨거운 입술이 그녀의 동그란 이마에 짧게 닿았다 떨어졌다.
여전히 미동조차 없는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쓸어 만지며 그는 쓴웃음을 삼키었다.
“햇빛이 너무 눈부실 것 같군.”
오늘따라 강렬한 햇살이 혹 그녀를 괴롭힐까 그는 몸을 틀었다.
활짝 젖힌 커튼을 닫기 위해 창문으로 향하려는 그때.
“…….”
탄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무언가가 그의 손끝을 살며시 잡았다.
너무 놀라 모든 사고 회로가 멈춘 것도 잠시. 얼른 고개를 돌려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분명 제가 잡지 않으면 잡히지 않던 그 하얀 손가락이 제 손끝을 붙잡고 있었으니까.
심장이 미친 듯 뛰어 대는 통에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깨물며 탄이 시선을 옮겼다.
잡혀 있는 손을 지나 가녀린 어깨와 흐드러진 긴 머리카락을 스쳐 결국에 닿은 그녀의 얼굴.
“하아…….”
결국 참지 못한 뜨거운 숨이 터져 나왔다.
마주하게 된 그녀의 얼굴 속 오래도록 감겨 있던, 그래서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그 눈이 뜨인 채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탄.”
깊게 잠긴 목소리가 작게 벌려진 그녀의 입술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눈을 뜨자마자 그녀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그의 이름이었다.
“다녀왔어요.”
조금은 힘겹게 뱉어 낸 이어진 목소리는 전보다 더 뚜렷했다. 그래서 이게 지금 꿈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믿기지 않아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이던 탄이 웃었다.
입꼬리까지 올린 진실 된 웃음이었으나 그 미소에는 눈물이 고여 있는 것처럼 느껴져 보는 사람이 다 울컥할 정도였다.
“기다렸어. 은영아.”
이윽고 그의 거대한 몸이 은영을 향해 내려갔다.
망설임 없이 가느다란 그녀의 두 팔이 작게만 느껴지는 그를 한껏 끌어안았다.
“나도요.”
은영은 틈 없이 붙어 오는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멈춰 버린 두 사람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봄이 찾아왔다.
* * *
쿠웅!
거대한 드래곤의 두 다리가 굉음을 내며 땅에 착지하였다.
순식간에 드래곤은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더니 서둘러 어떤 곳을 향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 뒤를 또 다른 남자가 뒤따랐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앞서 걸어가던 남자, 맥라이언이 성질을 잔뜩 부렸다. 그의 손에는 한 통의 편지가 들려 있었다.
편지의 발신인은 셀로니아였다.
“그래도 깨어나셨으니 다행입니다…….”
레예프의 손에도 똑같은 편지가 들려 있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셀로니아의 편지를 받자마자 바로 북부로 왔다. 급한 마음에 맥라이언이 드래곤의 모습으로 레예프를 등에 태워 북부로 날아온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편지에 적힌 내용은 이랬다. 분명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의식이 없던 셀로니아가 의식을 되찾은 것은 물론, 북부로 올라갔다는 내용이었다.
깨어났으면 알려 주지, 말도 없이 올라가 버리다니…….
배신감이 들었지만 편지 밑에 적혀 있는 마지막 내용을 보곤 납득은 했다.
이제 더는 셀로니아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올라간 거라 했으니까.
아마도 이 편지를 받은 것도 결국 자신과 레예프뿐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얼굴 한 번은 보여 줘야 할 거 아니야.”
맥라이언은 걷잡을 수 없는 서운함에 아주 빠르게 움직여 커다란 대문 앞에 멈췄다.
지키는 이가 아무도 없는 대문을 두드리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렸다.
“너…… 셀로니아야……?”
문이 열리고 등장한 한 여인의 모습에 놀란 그가 자신도 모르게 익숙한 이름을 내뱉었다.
“오랜만이야.”
그러자 긍정의 대답이 돌아왔다.
“어떻게……?”
맥라이언과 레예프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알아채긴 했으나 아주 다시 마주한 셀로니아는 그들이 알던 모습이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