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45)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45)화(145/162)
<145화>
은영은 아무것도 없는 백색의 설원 같은 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이곳이 무의식 속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을 때 멀리서 간간이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활기찬 엘라의 목소리가 대부분이었지만 가끔 레예프와 맥라이언의 목소리도 들려오곤 했다.
그리고 그녀가 가장 듣고 싶은 목소리.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탄의 목소리는 매일 그녀에게 전달되었다.
말을 그렇게 많이 하는 편이 아닌 사람인데, 애써서 저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이건 분명 쓰러져 있는 저에게 말을 건네오고 있는 거겠지.
잘 지내고 있을까?
그가 잠을 자지도 먹지도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뭐라도 챙겨 먹으면서 지내고 있으면 좋을 텐데.
그때 쓰러지기 직전에 급하게 말을 꺼내긴 했는데 제대로 전하지는 못했다.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크게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은영은 자신이 했던 말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운 탄의 목소리에는 언제나 불안이 담겨 있었으니까.
‘괜찮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다시 만날 거라고 그렇게 얘기하고 싶었던 건데…….’
은영은 옅은 한숨과 함께 언제쯤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지 생각했다.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만약 죽었다면 이런 공간에 있지도 않았을 테니.
‘분명 때가 오겠지.’
그녀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전에 헨릭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쓰러지는 순간에도 탄에게 괜찮다고 말을 한 것이었다.
“공녀님……. 제가 위클란더 할아버지께서 공녀님에 대해 말씀하셨던 걸 전달하지 못해서요…….”
“그게 뭔데?”
“영혼이 몸에 완전히 동화되기 위해선 마음가짐에 달렸다고 했어요. 본래 영혼보다 더 순수하고 무결한 선을 가진 마음이요. 그러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융합이 되어 결국 하나가 될 거라고……. 그렇지만 그 전에 영혼이 부서진다면 영영 돌아올 수 없으니 몸을 조심해야 한다고요.”
결국 시간이 해결책이며 시간이 지나면 몸과 영혼이 알아서 하나가 된다는 말이었다. 다만 그 전에 영혼이 부서진다면 그대로 끝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영혼은 멀쩡했다. 쓰러지긴 했지만 영혼이 부서지진 않았다.
은영은 왜 그런지에 대해 두 가지를 추측해 냈다.
마지막에 부린 게일의 흑마법이 미완성이었거나 탄의 힘이 있기에 이번에도 흑마법이 통하지 않았거나.
그러니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그저 때가 오길 기다리면 될 뿐.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몽롱한 무의식 속, 지금이 며칠째인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눈앞에 갑자기 아주 강한 빛을 뿜어내는 주먹만 한 구가 떠올랐다.
눈이 멀 것처럼 새하얀 빛을 뿜고 있는 구는 망설임도 없이 제 몸속으로 쏙 빨려 들어왔다.
그러자 편안해지는 느낌과 함께 몸속의 기운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점점 몽롱했던 의식이 선명해지는 그 순간.
“너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것은 잔뜩 있다.”
“그러니 언제든 괜찮아. 어떤 계절이든.”
“기다릴 수 있다.”
또렷하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아, 때가 되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시간이 흘렀구나. 결국엔 제 영혼이 이 몸에 정착했구나.
그렇다면 이제 돌아갈 때였다. 저를 기다리고 있을 그의 곁으로.
은영은 오랫동안 감겨 있던 눈을 떴다.
* * *
“그랬더니 모습이 바뀌었다고?”
얘기를 전해 들은 맥라이언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되물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입도 대지 못한 차는 이미 차게 식은 뒤였다.
“맞아. 눈을 뜨고 며칠 동안 계속 모습이 바뀌더니 이렇게 되었어.”
은영은 이제는 보랏빛이 도는 검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럼 이 모습이 본래 셀로니아 님의 모습인 겁니까?”
“완벽하다곤 할 수 없지만 상당히 근접해요.”
조용히 얘기를 경청하고 있던 레예프의 질문에 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레예프는 맞은편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변해 버린 셀로니아의 모습은 정말 그들이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눈도 머리카락도, 얼굴과 목소리까지. 모든 게 달라졌다.
이제 셀로니아의 눈은 고동색이었으며 머리카락은 보랏빛이 감도는 검은색이었다.
목소리는 예전엔 조금 소녀 같은 청아한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한 톤 낮아져 차분하고 우아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현재 셀로니아의 모습과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
레예프와 맥라이언은 말없이 셀로니아가 찻잔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바뀐 얼굴 때문인지 분위기가 너무나 달라져 있었으니까.
제국에서 유명했던 셀로니아는 전형적인 미인상이었다. 아름다워 한 번 더 뒤돌아보게 되는 그런 얼굴.
그런데 지금 얼굴은 뭐랄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제국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미인상과는 달랐지만 어쩐지 한번 보면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는 얼굴이었다. 문득문득 계속 떠오를 것만 같은.
게다가…….
“많이 달라졌는데 용케도 바로 알아봤네?”
“눈빛이 똑같아.”
맥라이언이 냉큼 대답했다.
토벌 당시부터 지금까지 셀로니아는 가끔 이질적인 눈빛을 할 때가 있었다.
이질적이라는 것은 평상시 해맑은 푸른 눈빛과는 확연히 다른 빛을 띨 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도화지 같은 외모에는 잘 어울리지 않던 함초롬한 눈빛은 투명했고 그 속에 비친 심지는 곧고 단단했었다.
가끔 그녀가 그런 눈을 할 때면 이안도 맥라이언도 레예프도 모두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서도 느껴 보지 못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그 눈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으니까.
“가끔 보았던 그 눈빛을 지금 네가 가지고 있어.”
그래서 맥라이언도 레예프도 변한 셀로니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잘 어울리십니다.”
레예프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맥라이언의 말에 덧붙였다.
가끔 보았던 그 눈빛은 주인을 찾아갔다.
예전 셀로니아에게는 이질적으로만 느껴지던 눈빛이었는데 현재 그녀에겐 무척이나 잘 어울렸으니까.
“네놈들은 질리지도 않고 또 왔군.”
그때였다.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언제 온 것인지 거대하고 시커먼 남자가 셀로니아 뒤에 서 있었다.
그는 허리를 숙여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더니 아주 당연하게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 자리가 본인의 것이라는 듯 거칠 것 없는 행동이었다.
“허…… 이제 좀 살 만한가 봐?”
맥라이언이 기가 찬 얼굴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다 죽어 가는 몰골로 그녀의 곁을 지키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탄은 예전의 오만하고 건방진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힘들죠?”
“그럴 리가.”
그녀의 걱정 어린 물음에 탄이 웃으며 손을 뻗었다.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그녀의 옆머리를 다정스레 귀 뒤로 넘겨 주었다.
“……참나.”
맥라이언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두 사람은 이곳에 본인들밖에 없다는 듯 서로를 향해 아주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일을 하다 오신 겁니까?”
레예프가 탄의 신발에 잔뜩 묻어 있는 흙을 발견하곤 묻자 그녀가 대신 답했다.
“정원을 가꾸려 해요.”
“정원이요?”
“북부에서만 볼 수 있는 봄꽃의 모종을 옮기고 가을에 열리는 열매 나무를 심으려고요.”
“……수도엔 다시 내려오지 않으실 생각이시군요.”
레예프가 조금 서운하고 아쉬운 표정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가을에 열리는 열매 나무까지 심는다는 것은 결국 북부에서 계속 살겠다는 말과 다름없었으니까.
“맞아요.”
“곧 황제 폐하의 생신 연회가 열립니다. 그때도 올라오지 않으실 겁니까?”
“아마도요. 게다가 제가 이 모습으로 나타나면 놀라지 않겠어요?”
은영은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이미 그녀의 마음은 수도를 떠나 이곳에 정착했다.
영혼이 완전히 이 몸에 정착하고 본래의 자신의 모습으로 바뀌었으니 더는 셀로니아로 살 이유가 없어졌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이름으로 살 생각이었다. 저를 셀로니아라고 기억하지 못하는 곳에서.
새로 찾은 보금자리. 그녀의 안식처. 그건 바로 탄의 곁이었으니까.
“그렇습니까.”
“두 사람 다 고마워요. 제가 쓰러져 있는 동안 찾아와 줘서요.”
그 말에 레예프가 떨리는 시선을 들었다. 진심을 담아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더없이 온화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녀는 더 이상의 불안도 걱정도 없는, 완연한 행복뿐일 미래를 결국 찾아낸 것이었다.
“……당연한 것을요.”
레예프는 울컥하는 마음을 삼키며 화답하듯 웃어 보였다.
결국엔 저 웃음이 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것이 기뻤다.
물론 그 웃음을 피어날 수 있게 한 건 이안도 맥라이언도 자신도 아닌, 탄이었지만.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녀의 선택이 아닌 일로 만나게 된 저희 세 사람과 달리, 탄은 그녀가 선택한 사람이었다.
온전한 본인의 모습으로 만난, 그녀 스스로가 곁에 있기로 마음먹은 사람.
“좋냐.”
맥라이언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그녀와의 추억들을 상기하다 질문했다.
그의 기억 속엔 언제나 고군분투하던 모습과 그레이스로 인해 자신들에게 상처를 받았던 얼굴만 존재했기에, 지금의 마음이 궁금했기에.
“그래.”
“그럼 됐다.”
더없이 확고한 대답에 맥라이언은 망설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왕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거? 이제 자신은 더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냥 서로를 사랑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을 뿐.
“……그래도 종종 찾아와도 돼?”
호기롭게 돌아섰던 맥라이언은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물었다.
“어딜. 꺼져.”
“푸핫! 물론이지.”
불만스럽다는 듯 대신 대답하는 탄의 목소리 뒤로 그녀가 웃으며 허락했다.
그래. 그거면 됐다. 우리의 마지막이 오늘은 아닐 테니까.
“그럼 가 보겠습니다. 몸 건강하십시오.”
레예프도 인사를 마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심히 가.”
배웅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같이 따라 일어선 탄은 빨리 꺼지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은 채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닮았네…….’
붙어 있는 탄과 그녀의 모습을 보며 맥라이언과 레예프는 똑같은 생각을 했다.
머리 색깔 때문인 걸까. 묘하게 두 사람의 분위기와 외모가 비슷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가라. 빨리.”
어물쩍거리는 두 남자를 보며 탄이 으름장을 놓았다. 품에 안고 있는 그녀를 더더욱 끌어안으며 얼굴을 바짝 붙인 채로.
“간다! 가!”
하여간에 성질머리하고는.
맥라이언은 인상을 구기며 레예프와 함께 저택을 빠져나왔다.
수도로 되돌아가기 위해 드래곤으로 변해 하늘을 날아오르자 보였다. 저택의 창문 너머로 서로를 품에 끌어안은 채 행복하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