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46)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46)화(146/162)
<146화>
가꾸지 않아 휑하기만 했던 정원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와아! 정말 처음 봤던 그 정원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아요! 그렇죠, 아가씨?”
“그러게 말이에요! 한껏 봄을 머금었어요!”
엘라와 멕스웰이 서로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은영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자신이 쓰러져 있는 동안 엘라와 멕스웰은 꽤 많이 친해진 모양이었다. 이제는 서로 말을 편하게 할 정도였으니까.
오늘은 그들이 북부에 올라와 대공저에서 지내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조금 넘은 날이었다.
원래는 마왕성으로 가려고 했으나 전투 당시 무너져 버린 것이 복구가 안 됐기도 했고, 톰과 잭이 사라지면서 대공가의 주인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럽게 가주가 사라진다면 대공성에서 일하고 있는 자들은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어 버릴 테다.
게다가 대공성은 북부를 지키는 요새로 마물들에게서 북부를 수호하는 임무가 있었다.
대공은 원래 혈연이 없어 사생아로 둔갑한 탄이 유일한 계승자였다. 이미 탄은 대외적으로 대공의 작위를 이어받았기에 대공성의 주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가 대공성에 대공으로 있는 한 마물들이 북부를 위협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그들은 감투를 버리지 않기로 선택했다.
“괜찮나?”
마지막 나무까지 손수 옮겨 심은 탄이 삽을 놓으며 은영을 돌아보았다.
“무척요. 가을에 맺힐 열매가 기대돼요.”
은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 성장한 르웬 나무가 아주 웅장하게 정원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제 막 새순이 움트고 있는 나무는 가을이 되면 탄이 말하던 열매를 맺을 것이었다.
하인들을 동원하여 손쉽게 정원을 꾸밀 수도 있었지만 탄은 자신이 주고 싶은 선물이라며 손수 땀을 흘리며 움직였다.
물론 일반인과는 차원이 다른 힘 덕분에 오래 걸리지 않고 정원은 그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북부의 꽃 만드리아가 피어 있는 정원 한가운데에는 오래된 버드나무처럼 큰 르웬 나무가 중심을 잡고 있었다.
봄이 되면 그 만드리아 꽃은 형형색색으로 만개할 테고, 여름이면 잎이 다 돋아난 르웬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줄 테다.
가을엔 르웬 나무에 열매가 달리고 겨울엔 수정처럼 아름다운 고드름이 맺힐 것이다.
이제부터 두 사람이 함께 맞이할 사계절의 풍경이었다.
“햇빛이 따갑진 않나.”
어느새 다가온 탄이 그녀의 이마 위로 커다란 두 손을 펼쳐 그늘을 만들어 냈다.
덕분에 한결 눈 뜨기가 수월해진 은영은 제 앞에서 햇살을 등진 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고생 많았어요.”
나무를 옮길 때 튄 것인지 그의 왼쪽 뺨에 묻은 흙을 살살 털어 주었다.
그러자 탄은 마치 사람의 손을 탄 짐승처럼 나른하게 눈을 감고선 그녀의 손길을 받았다.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그 표정에 은영은 기분 좋게 쿡쿡 웃었다. 더없이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주인님. 욕조 물이 준비되었습니다.”
조심스럽게 다가온 하인의 말에 감겨 있던 탄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커다란 손이 은영의 손을 붙잡고 거침없이 저택 안으로 향하였다.
뭐가 그리 급한 건지 재촉하는 그의 발걸음에 은영은 또 웃고야 말았다.
* * *
“음…… 머리가 좀 더 검게 변한 것 같아요.”
뿌연 김이 서린 거울을 닦은 은영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이제 완전히 다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머리카락이 어제보다 더 검게 물든 느낌이었다. 이젠 보랏빛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물론 보라색 기가 없는 검은 머리카락은 그녀의 본 모습과 가장 가깝기도 했다.
“이리 와.”
그때 젖은 머리카락을 넘기며 탄이 거울 앞에 서 있는 은영을 향해 조르듯 말했다.
욕실 안, 그는 뿌옇고 따듯한 김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넓은 욕조에 이미 들어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의 앞은 텅 비어 있었다. 은영의 자리였다.
“그렇지 않아요? 더 검어진 것 같죠?”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모른 척 하는 건지 그녀는 태연하게 질문하며 계속 거울 앞에 머물러 있었다.
“빨리.”
“네? 대답해 봐요.”
갈급한 재촉에도 은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탄을 향해 빙글 돌아서서 생긋 웃어 보였다.
그걸 본 탄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일부러 그녀가 자신을 놀리고 애태우고 있다는 걸 단번에 파악한 것이었다. 그는 더는 볼 것도 없이 물속에 있던 손을 들어 까딱였다.
“잠깐……! 꺄악!”
그걸 알아본 은영이 외쳤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첨벙.
속절없이 이끌려 간 은영의 몸이 낮은 물보라와 함께 욕조에 사뿐히 잠겼다. 정확히 그녀의 지정석인 탄의 몸 앞에.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일으킨 원흉은 두 팔로 그녀의 허리를 냉큼 휘감아 안았다. 벗어나지 못하도록 아주 단단하게.
“그러니까 누가 자꾸 뭉그적대래.”
이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 탄이 여유롭게 웃으며 하얗고 둥근 어깨에 턱을 괴었다.
코끝에 옅은 물 내음을 머금어 더욱 진해진 그녀의 향기가 파고들고 있었다.
쿵, 쿵, 쿵.
언제나 그렇듯 그녀로 인해 그의 심장이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뛰고 있었다.
“목욕은 혼자서도 할 수 있잖아요. 매번 같이 안 해도 된다고요.”
이미 붙잡힌 이상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은영은 툴툴거리면서도 탄의 어깨에 뒷머리를 기대었다.
“안 돼. 말했잖아. 나는 늘 네가 부족하다고.”
“참…….”
그 말에 결국 오늘도 은영은 더 이상 말을 보태지 않았다.
원래부터 떨어지기 싫어하는 걸 알곤 있었지만 그게 그녀가 쓰러지고 다시 깨어난 뒤로 더욱 심해졌다.
이제는 24시간 내내 붙어 있으려고 했으니까.
이제는 다시 그런 일은 없을 거라 설명했지만 그는 이해를 하면서도 불안함을 지우지 못했다.
기약 없이 초조하게 기다리기만 했던 그의 마음을 알기에 결국 오늘도 져 주는 건 그녀였다.
“머리는 더 검게 물들면 좋겠다.”
탄이 물속에 잠겨 있는 머리카락 끝을 들어 올려 손끝으로 비비적거렸다.
물에 푹 젖어 더욱 검은빛을 띠는 머리카락은 더없이 보드라웠다.
“왜요?”
“조금이라도 너와 내가 닮은 구석이 있으면 좋겠다.”
탄은 그 말을 끝으로 그녀를 더욱 깊게 끌어안으며 입술을 내렸다.
드러난 둥근 어깨의 젖은 그의 입술이 뭉근하게 달라붙었다 떼어지기를 반복하며 쪽쪽 소리를 내었다.
그게 간지러워 입매를 허물고 푸스스 웃던 은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말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이미 저와 그는 근본부터 달랐으니까. 인간과 마왕. 할애된 생명의 기간조차 달랐다. 어찌 보면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 중요할까.
“이것 봐요.”
그녀는 자신을 안고 있는 팔을 잠시 풀곤 뒤 돌아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머리카락과 탄의 젖은 머리카락을 비교하며 보여 줬다.
“이미 똑같아졌어요.”
물에 푹 젖은 두 사람의 머리카락 색깔은 정말로 똑같았다.
솔직히 이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우리가 가진 서로에 대한 마음이 똑같았으니까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눈에 보이는 닮은 점이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은영은 변해 버린 제 머리카락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이젠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그를 떠올릴 수 있으니까.
“그래. 네 말이 맞다.”
사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탄은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시선을 내려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이윽고 탄의 입술이 떨어지자 은영은 탄탄한 그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었다.
따뜻한 욕조와 따뜻한 품에 기대어 있으니 몸이 절로 노곤노곤해졌다.
“내 아버지가 그대를 봤으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을 거야.”
“예? 당신 아버지가 있었어요?”
그것도 잠시. 붙였던 고개를 뗀 은영은 헙 하고 입을 다물었다.
당황하여 입이 멋대로 움직였지만 말해 놓고 나니 너무나 쓰레기 같은 발언이었다.
날 때부터 마왕이었던 그에겐 부모라는 존재가 없을 거라 지레짐작하고 말았다.
무례한 자신을 자책하고 있는데, 탄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 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줄 알았나?”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안다.”
탄은 허둥대는 그녀를 보며 픽 웃었다.
놀리려고 한 건 아니었으나, 당황하는 그녀를 보니 짓궂은 입술이 멋대로 움직인 것이었다.
그는 아직도 난처해하는 은영을 달래기 위해 품에 안았다.
“그 영감이 살아생전 널 봤다면 미리 며느릿감으로 삼았을지도 모르지.”
“그, 그래요?”
은영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대체 자신의 어느 부분을 마음에 들어 했을 거라는 걸까? 도무지 전대 마왕의 취향을 알 길이 없었다.
“그래. 뭐,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내 추측이긴 하지만.”
“…….”
“꿈속에라도 안 나타나는 걸 보니 지옥에 떨어져 구르느라 바쁜 모양이다.”
이건 또 무슨 저세상 멘트일까.
자신의 아버지가 지옥에 떨어져 구르고 있다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도통 이 대화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이 난감한 대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눈을 굴리던 은영은 눈앞에 놓인 그의 상처를 만지작거렸다.
“이 상처는 결국 안 없어지네요.”
가슴에 그어진 흉터는 절대 사라지지 않겠다는 듯 매우 선명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정마다 찾아오던 그의 통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영혼이 안정되었기 때문인 걸까. 저에게 있던 탄의 힘을 그가 가져갔는데도 기운이 없거나 몸이 아픈 일이 더는 일어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이 흉터가 있었기 때문에 저와 그가 만나게 된 것이었다.
흉터를 남긴 것이 미안하면서도 이렇게 그를 만날 수 있어 감사하기도 하다가…….
“흐음. 침대로 가자는 뜻이야? 아님 여기서?”
“……예?”
여러 가지 감정을 갖고 깊게 생각에 잠겨 있었으나, 그것을 단번에 깨부수는 말에 은영이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언제 변한 건지 그의 붉은 눈동자가 작열하는 태양보다 더 뜨거운 정염을 담고선 타오르고 있었다.
“계속 그렇게 만질 거면 침대로 가. 실컷 만지게 해 줄 테니.”
뭐라 할 새도 없이 탄이 그녀를 안은 채 벌떡 일어나 욕조를 나왔다.
“아니, 피곤해서 낮잠이라도 자려고 했는…….”
“밤에 자.”
“당신은 잠을 안 자잖아요!”
잠을 안 자는 탄은 밤새 그녀를 가만두질 않았다. 그 불공평함에 은영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그의 젖은 발걸음이 욕실을 나서 침대로 향하고 있었으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낮도 밤도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