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47)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47)화(147/162)
<147화>
“으음…….”
칭얼거리는 잠꼬대에 탄이 낮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침대 위에 흐트러진 검은색 긴 머리카락이 그의 손길에 의해 사라락 흘러내렸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
곤했는지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잠이 든 은영의 옆에는 탄이 있었다.
그의 팔은 어느새 그녀의 베개로 전락해 있었으나 오히려 좋았다. 더욱 딱 붙어서 곁에 있을 수 있었으니까.
그는 역시나 오늘도 눈을 뜬 채 곤히 잠든 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에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있는 행위를 하긴 했지만 ‘잠든다’는 것에 대해 알진 못했기에 그녀가 잠든 모습을 보는 건 언제 봐도 신비로웠다.
그래서일까.
단잠에 빠진 얼굴을 보고만 있어도 시간이 어찌나 그리 빨리 흐르던지. 오늘도 금방 아침이 밝아 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은영을 만나기 전까지. 늘 길기만 했던 밤은 이젠 짧기만 했다.
그녀를 만나기 전, 밤은 늘 지루하고 따분한 시간이었기에 그다지 좋아하질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낮과 밤중에 밤을 제일 좋아했다.
물론 시간대와 상관없이 그녀를 품에 안았으나 모두가 잠든 밤은 모두가 활동하는 낮과 달리 방해하는 이가 없었다.
탄은 그녀의 얼굴에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긴 손가락이 차마 그녀가 잠에서 깰까, 얼굴은 만지지 못하고 눈코입을 덧그리며 내려갔다.
둥근 이마 아래 조용히 감긴 눈꺼풀을 지나 오뚝하게 솟은 코 그리고 붉은 입술까지.
천천히 선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드리운 그녀의 얼굴은 확실히 변해 있었다.
이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하하……. 이전이 더 낫지 않아요?”
그녀에게는 지금의 모습이 본래 자신의 얼굴이지만 간만이라서 그런지 변해 버린 모습에 어색해하며 이전이 더 낫지 않는지 조금 불안해했다.
하지만 탄은 그럴 때마다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지금이 더 너답다. 더 아름다워.”
그 대답에 은영은 반신반의했지만 탄은 진심이었다.
마주하게 된 그녀의 진짜 모습은 더없이 예뻤으니까. 예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자신과 같은 검은색 머리카락도. 언제나 저를 향해 다정한 빛이 어리는 고동색 눈동자도. 달콤한 숨을 내뱉는 코도 언제나 머금고만 싶은 몰캉한 입술까지.
그냥 다 좋았다. 당연하게도 지금 이 모습이 아니라 어떤 모습이라도 다 좋을 게 분명했다.
무엇이든 그건 너니까.
피가 바짝바짝 말라 갔던 기나긴 3개월의 기다림을 보상받듯 하루하루가 그에게는 벅차고 설레었다.
그녀에게 북부를 보여 줄 수 있어서, 또한 그놈들을 자주 안 봐도 되니 더 좋기도 했다.
자석이라도 달린 듯 잠든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탄은 문득 이불 밖으로 나와 있는 하얀 두 손을 발견했다.
일자로 곧게 뻗은 열 손가락에는 아무런 장신구가 끼워져 있지 않았다.
그의 손이 절로 그녀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어쩐지 휑한 느낌이었다.
여기에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나?
그 뭔가가 뭐지?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그의 머릿속에 일전에 엘라가 빌려줬던 책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분명 거기서 마지막에…….
“음…… 아침이에요?”
떠오를 듯 말 듯 하고 있을 때, 손길을 느꼈는지 은영이 졸음이 가득한 눈꺼풀을 슬쩍 들어 올렸다.
“더 자도 된다.”
탄은 팔베개를 해 준 채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 말에 바로 다시 잠든 건지 그녀가 꾸물꾸물 그의 품에 쏙 안기더니 색색 규칙적인 숨을 내뱉었다.
그 숨이 심장에까지 닿아 간질거리고 있었다.
그가 차오르는 행복에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그녀의 머리에 자신의 이마를 대었다.
결국 책의 마지막 내용을 떠올린 탄은 그녀의 네 번째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 * *
며칠 뒤.
“괜찮겠어? 같이 가도 돼.”
“오오! 그래도 되……!”
“에이! 아니에요!”
은영의 질문에 멕스웰이 눈을 밝히며 따라나서려 하자 엘라가 급히 말을 가로챘다.
“저희는 더 구경하고 싶어요!”
손사래까지 치며 극구 거부하자 그제야 멕스웰이 마지못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눈치 없이 따라갔다가는 아가씨 뒤에 서 있는 저 거대하고 흉포한 짐승이 자신을 눈빛만으로 죽일 기세였으니까.
“그렇다는군. 어서 들어가지.”
엘라의 대답에 탄이 냉큼 은영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럼 나중에 봐.”
하는 수 없이 은영이 엘라와 멕스웰에게 서둘러 인사를 했다.
엘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어 보이다 얼른 멕스웰을 데리고 레스토랑 앞을 빠져나갔다.
“저희는 가면 안 되는 건가요……?”
아쉬움에 멕스웰이 조금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안 돼. 아무래도 오늘 중요한 날인 것 같아. 방해를 했다간 두고두고 힘들어질 거라고!”
엘라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며칠 동안 탄이 자신에게 물었던 질문들이 있으니 어느 정도 예측을 한 것이었다. 그게 오늘이라고.
한편 북부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에 들어온 은영과 탄은 가장 안쪽 프라이빗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느 정도 저택에 적응한 그녀는 오늘 외출을 나와 거리를 구경했다.
거리 곳곳마다 활기가 넘쳤고 만개한 봄꽃들이 좌판대 위에서 손님을 기다렸다. 이곳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었기에 수도와 규모만 다를 뿐인 것 같았다.
“여긴 어떻게 알았어요?”
은영이 꽤 상기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게 장관이었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은 원래 음식을 먹지 않는 탄이 알 법한 장소는 아니었다.
“그냥. 들었다.”
들떠 보이는 그녀를 보며 그가 픽 웃었다.
오랜만에 하는 외출이라 그런지 늘 보았던 편한 차림과 달리 화사한 외출복을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예뻤다.
그녀의 의상에 맞춰 지금 하고 있는 귀걸이와 목걸이는 그가 일전에 보석상에서 선물했던 것 중 하나였다.
작은 보석 여러 개가 박혀 장식을 이루고 있는 심플한 디자인의 목걸이와 귀걸이는 그녀가 자주 하고 다녔던 거였다. 공작저가 변해 버릴 당시에도 하고 있어 용케도 저 두 개는 살아남았다.
나머지가 소실되었으니 더 좋은 것들을 선물해 주겠다 해도 잘 하지도 않는다며 은영은 이게 좋다고 고집을 부렸다.
탄의 눈길이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진 그녀의 두 손에 향했다.
그러고 보면 귀에도 목에도 그가 선물한 보석이 걸려 있는데 손가락에만 없었다.
그는 깊게 잠긴 눈으로 테이블 밑 무릎 위에 올려 둔 손을 꼼지락거렸다.
“은영…….”
“실례합니다. 말씀 주신 메인 메뉴 먼저 자리에 놓아 드리겠습니다.”
뜸 들이다 그가 겨우 입을 떼었지만 메뉴를 들고 온 지배인에 의해 그 말이 가볍게 묵살되었다.
아직 탄의 얼굴이 북부 마을까지 알려지진 않았기에 그저 그런 손님 대접이었다.
곧이어 두 사람 앞에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잘 익은 스테이크가 각각 놓였다. 배가 고팠기에 코스 중 메인을 가장 먼저 내어 달라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뭐라고 했어요?”
“아니다.”
뭔가 타이밍이 맞지 않아 탄은 고개를 저었다.
지배인이 돌아가고 은영은 포크와 나이프를 들어 접시에 놓인 스테이크를 썰어 나갔다.
“음…… 덜 익은 것 같네요.”
바싹 탄 겉에 비해 갈라진 속은 완전 새빨간 날고기였다.
잘린 고기에서 흘러나온 육즙이라고 할 수 없는 분홍빛 핏물이 접시 위를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분명 익힘 정도는 미디엄으로 해 달라고 했는데, 착오가 있던 모양이었다.
“그래?”
“네. 아무래도 다시 해…… 우왁!”
깜짝 놀란 은영이 괴상한 비명과 함께 컵에 든 물을 접시 위에 들이부었다.
점원을 호출하기 위해 고개를 든 찰나 화르륵 소리와 함께 앞에 놓인 접시에 불꽃이 타올랐으니까.
치이이익.
불은 단번에 꺼졌고 물에 젖은 스테이크는 뿌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안 익었다며.”
탄이 의미를 모르겠다는 얼굴로 말을 건넸다.
“그렇다고 불을 내요?”
“익히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허, 참…… 푸하하하!”
너무나 기가 차서 실소를 터뜨리던 은영은 급기야 깔깔 웃고 말았다.
이럴 때 진짜 그가 마왕이라는 걸 실감한다.
음식에 조예가 별로 없다 보니 가끔가다 탄이 하는 행동은 그녀를 황당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웃게 만들었다.
“…….”
탄은 그녀의 환한 웃음에 순간 넋을 잃었다. 맑고 또렷한 미소였다.
귓가에 들리는 청량한 웃음소리와 어여쁘게 곡선을 그리며 올라간 입꼬리는 보기만 해도 절로 기분을 좋아지게 했다.
그래서 평생 저 웃음을 곁에서 두고두고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더욱 단단해질 만큼.
그는 그녀를 따라 웃었다.
음식은 다시 조리되어 나왔다. 기분 좋은 식사 시간이었다.
* * *
“벌써 밤이네요. 봄이긴 해도 아직 낮이 짧나 봐요.”
부른 배를 이끌고 레스토랑을 빠져나오니 어느새 해가 사라진 하늘은 밤이 찾아와 있었다.
“갈 곳이 있다.”
“어딘데요?”
탄은 대답 대신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곤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두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와아……. 너무 예뻐요.”
눈 깜짝할 새 레스토랑에서 다른 곳으로 순간 이동한 은영은 궁금증도 잠시 눈앞에 바로 보이는 풍경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선명하게 보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그들의 머리 위 밤하늘에 수많은 별이 수놓여 있었다.
그들은 대공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오래된 첨탑 맨 꼭대기에 올라와 있었다.
은영은 앞으로 나아가 난간에 두 손을 올린 채 고개를 젖혔다.
그러자 온 시야가 별 천지였다. 게다가 시선을 내리면 불이 켜진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마치 하늘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
탄은 밤하늘과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별을 바라보는 은영을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서서 눈에 담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저릿저릿한 게 어쩌면 이걸 위해 죽지 않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제 곁에 있는 그녀를 위해.
책의 내용과 달리 왜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지에 대해 은영과 자신은 확실하겐 알지 못했다. 그저 짐작할 뿐.
하지만 자신이 살아 있어서 혼자서 이 모든 일을 겪었을 그녀의 곁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죽지 않고 살아서, 기억을 잃고 떠돌아서 그래서 마침내 그녀의 곁에 머물게 된 것이. 결국 그녀가 온전한 자신의 이름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을 옆에서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라고.
그가 결국 살아서 거머쥔 것은 그녀라는 완벽한 행복이었으니까.
“이걸 보여 주려고 데리고 온 거예요?”
은영이 뒤를 돌아 탄에게 물었다. 탄은 말은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너무 예뻐요.”
진심 어린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맺혔다.
은영은 수도보다 이곳이 좋았다.
이렇게 선명한 별을 볼 수 있고 자신의 이름으로 살 수 있고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는 이곳이.
“그런데요, 탄. 아까부터 계속 손안에 만지작거리고 있는 거 뭐예요?”
“……뭐?”
“너무 티 나서 모른 척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은영이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오늘 외출을 나오면서부터 탄이 계속 무언가를 손에 넣고 쥐었다 폈다 쥐었다 폈다 하면서 제 눈치를 보고 있는데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하하.”
깜짝 놀라게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들킬 줄이야.
탄은 맥빠진 웃음을 흘리다 결심이 선 듯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가 은영의 앞에 섰다.
그의 손이 계속 비어 있는 게 거슬렸던 그녀의 네 번째 손가락을 잡아 올렸다.
오늘 한시도 손안에서 가만히 두지 않았던 그것이 그녀의 네 번째 손가락에 쏙 끼워졌다.
반지였다. 탄의 눈동자를 닮은 붉은 루비 주위로 다이아몬드가 여러 개가 잎사귀 모양으로 촘촘히 박힌 반지.
“……이거 무슨 뜻인지 알아요?”
이거까지 예상하지 못했던지라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본 은영이 놀란 눈을 들었다.
탄이 부서지는 성휘 아래 별보다 더 찬란하게 웃고 있었다.
“평생 내 곁에 있어 줘.”
“…….”
담백하지만 진심이 담긴 그 고백에 은영의 고동색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부는 봄바람에 두 사람의 검은 머리카락이 살랑이며 나부꼈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 탄과 은영은 똑같은 감정을 지닌 채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너와 나의 시간이 같지 않다 하더라도 나는 언제까지고 너를 기다릴 수 있으니. 다시 나한테 돌아와 주기만 하면 돼.”
은영의 두 손을 잡아 올린 그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뜨거운 입술이 차게 식은 그녀의 두 손 위에 꽤 긴 시간을 머물다 떼어졌다.
“난 그거면 돼.”
탄은 오직 하나의 감정만을 담은 눈동자로 다시금 은영을 응시하다 입을 열었다.
“사랑해.”
처음으로 입에 담아 본 말이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고 나니 지금까지 그가 그녀를 향해 가졌던 모든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더욱더 또렷하게 깨닫게 만들었다.
“그럴게요.”
이 모든 일을 지나 결국 그의 입에서 나온 그 고백에 은영은 대답과 함께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하지만 어느새 눈에는 눈물이 고여 참는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이 영혼이 이 몸에 들어온 것은 결국엔 당신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당신의 곁에 머물기 위해서였다.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그러니 언제나 다시 돌아올게요. 당신 곁으로.”
벅차오르는 눈물과 함께 쏟아 낸 그녀의 고백에 탄은 더없이 기쁘게 웃으며 두 팔을 뻗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녀의 팔은 그의 목을 감싸고 그의 팔은 그녀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두 사람을 축복하듯 첨탑 위로는 별들이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었으며 아래에는 마을의 불빛들이 어여쁘게 반짝이고 있었다.
앞으로 그들이 함께 보낼 수없이 많은 계절에는 언제나 행복만이 가득할 것이다.
서로라는 행복을 가진 채로 봄에는 꽃을 여름에는 바람을 가을에는 열매를 겨울에는 수정을 만끽하며 두 사람은 아주 오래도록 함께할 테니까.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完
2022.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