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48)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48)화(148/162)
외전 1<1화>
봄. 모든 새 생명이 움터 세상을 초록빛으로 물들이는 계절.
1년의 시작을 알리는 축복과도 같은 봄과 함께 북부에 있는 대공 성도 활기가 돌았다.
그리고 오늘.
대공 성은 유례없는 축제 분위기였다.
“엄마! 저도 오늘 대공 전하를 볼 수 있는 거예요? 성도 구경할 수 있구요?”
“물론이란다. 대공비 전하도 함께 볼 수 있을 거야.”
“우와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의 손을 꼭 쥐고 있던 여자아이가 눈을 반짝였다.
“우리 어서 가요!”
6살쯤 됐을까? 아이는 짧은 다리로 앞서 나가 엄마를 재촉했다.
아이의 엄마는 웃으며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 타이르며 부지런히 다리를 움직였다.
“와아아아! 진짜 크다!”
한참을 걸려 도착한 아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성을 올려다보았다. 한 발자국 뒤에 서 있던 아이의 엄마도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큰 건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큰 대공 성이 두 모녀의 앞에 놓여 있었다.
언제나 마을에서만 올려다보던 머나먼 성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한눈에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웅장한 성은 범접할 수 없는 위용을 자랑했다.
“엄마! 어서요! 어서!”
아이는 멈춰 있는 엄마의 손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아이의 엄마는 침만 꿀꺽 삼킬 뿐 멈춘 발을 쉽게 떼지 못했다.
분명 오늘만큼은 누구나 대공 성에 출입 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성이 품고 있는 위세가 너무 대단했기에.
물론 손님들을 환영한다는 듯 굳게 닫혀 있어야 할 대공 성의 거대한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대문 양옆에 서 있는 기사들도 별다른 제지 없이 모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여자는 단정하게 정복을 갖춰 입은 기사들을 보다 자신의 옷을 힐끔 쳐다보았다.
“…….”
말문이 절로 막혔다.
오늘을 위해 가지고 옷 중에 제일 깔끔하고 비싼 원피스를 골라 입었다.
옆 마을에서 사 온 이 옷은 심지어 여자의 친한 친구들도 탐내던 옷이었다. 가격에 비해 디자인이 굉장히 고급스럽게 보였으니까.
그래서 당연히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성 앞에 서서 보니 이렇게 추레해 보일 수가 없었다.
치맛자락이 자신의 눈에만 보일 정도로 조금 닳은 게 신경이 쓰이고 또 쓰였다.
“엄마아!”
여자가 아이의 간절함에도 그냥 돌아갈까, 괜히 창피만 당하는 게 아닐까 고민하고 있던 그때.
“어서 오세요! 예쁜 꼬마 손님도 환영해요!”
언제 나온 건지 커다란 바구니를 든 아담한 아가씨가 두 사람을 향해 인사를 건네었다.
“언니! 그건 머예여?”
“유진!”
아이가 잡고 있던 손을 놓고는 바구니를 든 아가씨에게 쪼르르 달려가자 여자가 놀라 딸의 이름을 부르며 쫓아갔다.
“죄송해요. 아직 아이라 뭘 몰라서 그런 거예요. 정말 죄송합니다.”
빠르게 아이를 낚아챈 여자가 거듭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본인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비싸 보이는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었다. 소소한 결례라도 저지르면 아이를 다치게 할까 염려되었다.
“아이참.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두 분은 손님이시잖아요. 나는 엘라라고 해. 유진이라고 했지? 이건 코르사주란다.”
엘라는 엄마의 손에 꽉 잡혀 있는 유진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혔다.
“코르사주요?”
“응. 성 정원에 핀 만드리아 꽃으로 만든 코르사주야. 이렇게 팔찌로 해도 되고 옷에 장식해도 돼.”
엘나는 아이의 얇은 손목에 진분홍색 만드리아 꽃으로 금세 팔찌를 만들어 해 주었다.
“히야아…… 너무 예쁘다아…….”
아이는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팔찌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엘라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싱긋 웃으며 아이의 엄마에게도 노란색 만드리아로 만든 코르사주를 내밀었다.
“입은 원피스랑 무척 잘 어울리겠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답례품이에요.”
“답례품이요?”
여자가 갑자기 손에 쥐어진 코르사주와 잘 포장된 상자에 놀라 엘라를 보았다.
“대공 부부께서 오늘 결혼식에 참석해 주신 손님께 드리는 선물이랍니다.”
“네? 저는 준비한 게 아무것도 없는…….”
“당연히 빈손으로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으니까요! 자자 여기서 시간 보내지 말고 어서 들어가세요! 결혼식은 한 시간 뒤에 시작되어요.”
등을 떠미는 엘라 때문에 여자는 아이와 함께 거대한 대문을 통과하였다. 대문 앞을 지키고 있는 기사들은 제지하지 않았다.
그제야 여자는 아이의 손을 잡고 조금은 더 당당해진 태도로 정원으로 향하였다.
“어머! 제인 너도 왔구나! 어서 와서 이것 좀 먹어 봐!”
가는 길마다 곳곳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길 안내를 받아 정원에 도착하니, 미리 와 있던 뒷집에 사는 친구가 여자를 불렀다.
한 폭의 그림처럼 꾸며진 대공 성의 정원은 이미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모두 여자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장을 볼 때마다 마주하는 상인들과 그녀의 마을 사람들까지.
그제야 여자는 정말로 오늘 결혼할 대공과 대공비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은 게 실감이 났다.
처음에는 당연히 영지민들 모두가 귀족들의 잔치일 거라 생각했으나 일주일 전 공지가 내려왔다.
결혼식 당일 대공 성을 열어 모두가 자유로이 결혼식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결혼식 파티에 누구든 참석할 수 있으며, 선물도 대가도 필요 없이 그저 원하는 누구든 참석 가능하다고.
설마설마했는데 정말이었을 줄이야.
“엄마! 저기 봐요!”
유진의 목소리에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풍족한 음식이 차려져 있는 정원에서 조금 떨어진 다른 정원에 길고 긴 하얀 카펫이 깔려 있었다.
카펫 양옆에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화려한 꽃들이 줄지어 장식되어 있었다.
긴 카페 끝에 닿은 건 돔 형태의 하얀 파빌리온이었다. 카펫은 웨딩 로드였으며 파빌리온은 예식이 진행될 장소였다.
“저기서 결혼하는 거죠? 그쵸? 동화책에서 봤어요!”
“그래. 그런 것 같네.”
너무 좋아하며 방방 뛰는 유진을 보며 여자도 빙그레 웃었다.
여자는 완전히 파티에 녹아들었다. 테이블 장식이며 접시며 파티 전체가 살면서 단 한 번도 볼 수 없는 고풍스러움이 묻어나 어색했지만 아는 사람이 즐비한 점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본인 결혼식에 귀족들이 아닌 영지민들을 성에 초대하다니. 이런 영주님은 어딜 가도 없을 거야.”
“게다가 음식도 모두 공짜잖아요. 빈손으로 온 것도 죄송스러운데 답례품까지 나눠 주시고.”
파티의 융화된 사람들은 대공 성의 주인에 대해 칭찬 일색이었다. 여자도 사람들 틈에 공감하여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웅…… 딴 곳도 가 볼래.”
어른들 사이에 지루함을 느낀 어린 유진은 엄마의 손을 놓고 빠져나왔다.
손님들로 북적북적한 정원을 지나고 또 지나자 귓가에 울리던 말소리들이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고요해졌다.
“진짜 넓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정원을 고개를 휙휙 돌려 가며 열심히 구경하던 유진은 띠로 막아 놓은 정원을 발견하였다.
지키는 사람도 없고 그게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놓은 바리케이드라는 걸 알 리가 없는 유진은 자그마한 몸으로 띠 아래를 쉽게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푸릇푸릇한 풀과 나무를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유진의 눈이 별을 박은 것처럼 빛났다.
“와아아아!”
형형색색 한 아름 피어 있는 만드리아 꽃밭이었다.
달려가려던 유진의 짧은 다리가 우뚝 멈추었다. 꽃밭 옆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거대한 무언가가 서 있었으니까.
“새! 새다! 새! 대따 크다!”
“푸릉.”
“헙!”
유진이 작은 두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이미 소리를 들은 거대한 머리와 부리가 이쪽을 향했다.
“응? 그리핀, 누가 있니?”
그러자 다정하고 고아한 음색과 함께 그리핀 뒤에 있던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아이? 이쪽은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을 텐데.”
“앗…… 죄송해여. 저는 그냥, 그냥…….”
의문스러워하는 목소리에 유진이 흠칫 놀라 얼른 고개를 숙였다.
발걸음이 이쪽을 향하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질책할까 싶어 옷을 그러쥔 조그마한 주먹이 벌벌 떨렸다.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시야에 커다란 새의 발과 사람의 다리가 가득 차려는 찰나.
“꽃……?”
유진의 세상이 아름답게 핀 꽃들로 가득 찼다.
번쩍 고개를 들자 어느새 다가온 여자가 꽃다발을 내밀고 있었다.
“우와아…… 요정님이다.”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그 사람은 꼭 숲속의 요정님 같았다.
반짝이는 검은 머리카락도 호박 석을 닮은 고동색 눈동자도 모두 신비로웠다. 꼭 이 세상의 주인공, 아니 동화 속에서 보던 공주님인 것만 같았다.
“하하. 요정? 고마워. 꽃은 선물이야. 이게 보고 싶었던 거지?”
유진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꽃을 건네받았다. 꽃과 닮은 어여쁜 미소를 지은 요정님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 여기서 새를 본 건 말하면 안 된단다. 비밀이야. 쉿.”
“쉬잇!”
요정님의 행동을 따라 유진이 검지를 입으로 가져갔다.
“은영.”
그때였다. 이번엔 또 다른 굵고 낮은 목소리가 고요한 정원에 울려 퍼졌다.
“조심히 돌아가렴.”
“네에.”
유진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뒤돌아 걸어가는 요정님을 빤히 보았다.
“여기 있었군.”
“탄. 이거 봐요. 반가운 손님이 왔어요.”
성큼성큼 다가온 남자가 요정님 옆에 섰다. 엄청나게 큰 키와 거대한 몸을 가진 남자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봐도 정말로 근사한 사람이었다.
요정님이 동화 속 공주님 같다면 그는 꼭 왕자님 같았다.
“이 자식은 왜 자꾸 찾아오는 거지.”
남자가 거대한 새를 보고 불만스럽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탄이 좋은 거겠죠.”
“푸흥!”
새는 삐졌는지 소리를 내며 고개를 휙 돌렸다.
“……유진! 유진!”
저 멀리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진은 아차 싶어 딱 붙이고 있던 발걸음을 떼었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어 고개를 돌렸을 때 남자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은 적 없다는 듯 아주 다정하고 따뜻한 붉은 눈으로 요정님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아름답다.”
이윽고 꽃이 피어날 정도로 따스한 음성과 함께 남자가 요정님을 껴안곤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가슴이 몽글몽글, 손끝이 간질거리는 그 장면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두 남녀의 모습은 어린 유진의 가슴에 오래오래 새겨졌다.
그리고 조금 더 컸을 무렵.
누군가 사랑을 본 적 있느냐 질문하자, 유진은 그 두 사람이 바로 사랑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