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49)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49)화(149/162)
<2화>
“공작님. 휴가는 따뜻한 바다로 가신다면서요.”
“바다로 가고 있잖아.”
“하지만 여긴 북부지 않습니까.”
“지나가는 길일 뿐이다.”
“…….”
보좌관인 크리스가 입을 다물었다.
북부에 바다가 어디 있단 말인가. 또 어느 바다가 이 산맥 지역인 북부와 맞닿아 있단 말인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그는 왜 자신의 상관이자 주인인 이안 체르빌이 북부에 왔는지 알았으니까.
“그나저나 주말인데 상점가 문이 왜 다 닫혀 있는 걸까요?”
크리스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북부 영지에 발을 들이고 가장 규모가 크다는 상점 거리에 들어왔다. 하지만 거리는 한적하다 못해 죽은 것 같았다.
마치 유령 마을처럼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았고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조차 보이질 않았다.
“이상하네요. 너무 스산한데요.”
크리스가 소름이 돋은 팔을 얼싸안았다. 이런 경우는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위험한 거 아닐까요? 지금이라도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넌 내가 누구인지 잊었나 보군.”
이안이 크리스가 한심하여 혀를 찼다.
“잘 알죠. 알고말고요.”
크리스는 주군의 자만 어린 말투에 익숙하다는 듯 대꾸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었다.
이안 체르빌. 그가 누구던가. 최연소로 황궁 월화 기사단의 단장이 된 자가 아니던가.
물론 지금은 휴식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휴가계를 내고 전 약혼녀를 보러 온 지질한 전 약혼남의 불과하지만.
“어? 이봐요!”
속으로 구시렁거리던 크리스가 마침 가게 문을 닫고 나가려는 상인을 발견하곤 달려가며 불렀다.
“오늘 무슨 날인가요? 왜 아무도 장사를 안 하죠?”
“타지에서 오셨나요?”
상인이 미심쩍은 눈으로 크리스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예. 수도에서 올라왔습니다.”
“오늘은 대부분 장사를 안 할 거예요. 큰 경사이자 축제가 있어서요.”
크리스가 멀끔하게 생긴 외모로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말하자 상인도 조금의 의심을 걷고는 말해 주었다.
“축제요? 축제치곤 너무 조용하지 않나요?”
“오늘은 영주님이 결혼하시는 날이에요. 대공 성에서 결혼식이 있고 영지민들 모두 초대를 받았기에 대부분 장사를 안 해요.”
“아…… 예. 말씀 감사합니다.”
크리스는 급해 보이는 상인을 보내며 옆에 있는 이안의 눈치를 보았다.
하필. 하필이면 왜 오늘. 타이밍 한번 기가 막혔다.
대공이 결혼하는 날이라니. 결혼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뻔했다.
주군의 전 약혼녀인 셀로니아가 대공과 함께 북부로 가지 않았던가.
“저…… 공작님, 돌아갈까요?”
진땀을 뻘뻘 흘리며 크리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었다.
이안은 한참을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성을 바라보더니 답했다.
“대공 성으로 간다.”
* * *
“명색이 결혼식인데 귀족들은 초대도 안 했나 보군요.”
정원에 모인 이들을 확인한 크리스가 중얼거렸다.
정원에 차려진 만찬을 즐기는 이들의 행색을 보니 모두 영지민 같아 보였다.
“치안이 괜찮은가. 이러다 무슨 일이라도 나거나 폭동이라도 일으키면 어쩌려고 이러는 걸까요.”
자신의 일도 아닌데 크리스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대공 성을 통과할 때부터 기함했다.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기사들은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주군의 방문을 알리라 일렀지만, 오늘 모든 이들의 방문을 허락한다는 대공의 명이 있었다며 그냥 안으로 들어가라 하였다.
들어왔더니 이번엔 웬걸. 죽은 듯이 조용했던 마을과 달리 모두 다 여기에 모인 건지 인파가 바글바글했다.
체통 없이 경박하게 큰 소리로 웃어 대고 왁자지껄한 분위기까지.
이렇게 격식 없는 손님과 결혼식은 또 처음이었다.
“공작님 지금이라도 돌아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크리스가 미간을 좁힌 채로 이안에게 건의했다. 체르빌 공작의 보좌관이면서 백작가의 차남으로 자란 그는 이런 경박한 분위기가 불쾌했다.
“모두 정숙해 주세요. 이제 곧 결혼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자리해 주시길 바랍니다.”
때마침 나타난 진행인의 말에 정원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결혼식이 진행될 흰 카펫이 깔려 있는 옆 정원으로 향하였다.
“공작님. 돌아가시겠어요?”
크리스의 물음에 이안은 대답 대신 사람들과 똑같이 걸음을 옮겼다. 하는 수 없이 크리스는 한숨을 쉬며 이안의 뒤를 따랐다.
곧 결혼을 진행한다는 안내가 한 번 더 울려 퍼졌다.
모두가 오늘의 주인공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이안과 크리스는 정원에서 조금 떨어진 등나무 아래 그늘에 서 있었다.
크리스는 속으로 이럴 거면 왜 안 가고 있나 싶었지만 결혼식이 진행될 정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주군을 묵묵히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사로 장식된 하얀 수단을 입은 사람이 웨딩 로드 끝 파빌리온 아래에 들어가 섰다.
크리스도 아는 얼굴이었다. 신전의 주교였다.
곧이어 신랑, 신부가 함께 등장해 웨딩 로드 앞에 섰다.
“…….”
크리스는 숨이 턱 막혔다.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신랑, 신부의 외모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종 모양으로 떨어지는, 어깨가 훤히 드러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정말 아름다웠다.
레이스 장식과 함께 드레스 곳곳에 달린 진주가 햇빛을 받아 오팔처럼 오묘한 색을 내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을 덮은 투명한 면사포 위에는 티아라가 올려져 눈이 부셨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라는 말이 확실히 실감이 났다.
신랑 또한 만만치 않았다. 190센티미터를 훌쩍 넘는 키와 다부진 체격이 드러나는, 꼭 맞는 베스트와 예복이 무척 잘 어울렸다.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카락과 선혈과도 같은 빨간 눈.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외모까지.
크리스는 살면서 본 사람 중에 자신의 주군인 이안 체르빌이 가장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이었다. 하지만 오늘 저 얼굴을 보는 순간 그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다짐했다.
“참…….”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크리스는 뒷말을 삼켰다.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이라고. 특히 똑같은 저 검은 머리카락이…… 잠깐.
두 사람 다 검은 머리카락?
“공작님. 신부가…… 셀로니아 님이 아닌데요?”
크리스가 놀란 얼굴로 이안을 보았다.
당연히 신부가 셀로니아일 줄 알았는데 달랐다. 얼굴도 머리 색도 모두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
크리스의 호들갑 떠는 물음에도 이안은 미동도 없이 신부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미묘하게 움찔거리는 눈가와 함께 그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행진하겠습니다.”
신랑 신부가 팔짱을 낀 채 하얀 카펫을 밟으며 걸어갔다.
모여 있던 모든 이가 진심을 담아 박수를 치며 축하했다. 이안과 크리스만 빼고서.
두 사람이 파빌리온 안으로 들어가 주교 앞에 서자 예식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크리스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은영이요? 이게 대체 뭐죠?”
주교의 입에서 나온 신부의 이름이 셀로니아가 아닌 은영이었다.
얼굴도 머리 색도 이름도 달랐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대공과 결혼하는 이는 셀로니아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자신의 주군은 이런 표정인 걸까.
이안은 맥 빠진 표정으로 눈가를 붉게 물들이고선 주먹을 꽉 말아 쥐고 있었다.
상처를 받을 대로 받은 것 같으면서도 화가 난 것 같으면서도 체념한 것 같은. 정말로 전 약혼녀의 결혼식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은 표정.
“하여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반지 교환과 의례적인 주례를 끝내고 주교가 선언하자 신랑이 고개를 숙여 신부에게 입을 맞추었다.
긴 입맞춤 끝에 입술을 뗀, 이제는 부부가 된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웃었다.
햇살을 머금은 듯 해사하고 온기를 품은 듯 따듯한, 서로를 향한 무한한 애정이 깃든 눈빛에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모두의 축복이 정원을 가득 메웠다.
크리스는 생각을 조금 바꿨다. 이런 결혼식도 나쁘진 않다고.
모인 모두가 진심으로 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 주며 축하해 주는 모습은 정말이지 잊지 못할 장면이었으니까.
“…….”
이안은 탄의 다정한 손길이 머리칼을 넘겨 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은영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심장께가 욱신거렸다.
이 세상에 서로만 존재하고 있다는 듯 온 마음을 다해 상대방을 향해 미소 짓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더는 볼 수가 없었다.
“돌아간다.”
이안은 빠르게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공작님!”
크리스가 허겁지겁 뒤를 쫓아왔다.
이안은 은영이 등장한 순간부터 셀로니아라는 것을 눈치챘다.
이름도 외모도 모든 게 변했어도 단 하나 변하지 않은 것. 토벌 당시 종종 보였던 그 눈빛이 똑같았다.
게다가 황궁에서 청문회가 있던 날, 그를 두고 탄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던 셀로니아가 생각났다.
그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표정으로 탄을 향해 웃던 얼굴. 그녀를 바라보던 애틋한 탄의 눈빛. 지금 저 부부의 모습과 똑같았다.
그녀가 자신에게 알려 주기 싫어했던 본명이 ‘은영’이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 이름을 저자는 거침없이 부르고 있었다.
미련이 남아 여기까지 왔는데, 그 마음은 정말로 저 혼자뿐이었던 것이었다.
“묵을 곳을 찾을까요?”
“아니. 돌아간다.”
그는 빠르게 대공 성을 벗어났다. 이제 다신 이곳을 찾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