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50)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50)화(150/162)
<3화>
“와. 여길 다시 와 보리라곤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는데.”
믿기지 않는 눈으로 은영이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그날의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들이 그대로였다. 생생하게 기억이 날 정도로.
“조심해. 다친다.”
허리에 훅 감겨 오는 팔이 그녀의 부주의한 걸음을 제지했다. 바닥 곳곳에 돌무더기들과 움푹 파인 홈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은영은 고개를 돌려 허리를 안고 있는 팔의 주인을 보았다.
기억 속 아직도 선연한 자비 없는 목소리와 붉은 눈.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와 붉은 눈은 한없이 다정하기만 했다.
“기분 이상하지 않아요?”
“별로.”
“정말?”
“그래.”
“바닥의 공혈을 보고도?”
은영의 손가락을 따라 탄의 고개가 돌아갔다.
가장 안쪽 웅장하고 으리으리한 왕좌를 앞에 둔 홀 한가운데 거대한 구멍이 나 있었다.
신성력과 드래곤의 힘이 뒤섞인 마기가 닿아 일으킨 폭발로 인한 흔적이었다.
두 사람은 현재 마왕성 안에 들어와 있었다.
은영이 구원자들과 함께 그를 물리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그곳. 탄이 쓰러졌던 곳.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어제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대공성을 나왔다.
다만 바다에 가기 전, 탄이 마왕성 뒤에 아주 맑고 깨끗한 호수가 있다고 이야기했던 게 떠올라 먼저 이곳에 들렀다.
호수를 구경하고 나니 마침 뒤에 마왕성이 있어 한번 들어와 본 것이었다.
주인을 잃은 성은 그대로 시간이 멈춰 마지막 전투 날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와 척을 지고 힘을 맞대었던 게 엊그제같이 새록새록 생각나는데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서로를 향해 죽일 듯이 달려들었던 두 사람이 어제 마침내 결혼을 할 줄이야.
완전할 것 같던 셀로니아 베스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올 줄이야. 진짜 이름으로 살 수 있을 줄이야.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사람 일이라더니. 그 말이 진짜였다.
“저 때 진짜 죽을 뻔했는데…….”
추억에 젖은 얼굴로 중얼거리는 은영의 목소리에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탄의 넓고 단단한 어깨가 움찔 떨렸다.
그러니까, 은영이 죽을 뻔했던 원흉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고의였지만 진심은 아니었을 거다.”
침울해진 탄이 은영의 어깨에 이마를 툭 기댄 채 그녀의 얇은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고운 손에 반지를 끼워 준 게 자신인데, 그때 누구를 향해 칼을 겨눴는지……. 지금 와서는 절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음?”
거대한 덩치에 맞지 않게 몸을 웅크린 채로 제 어깨에 머리를 비비적거리고 있는 탄을 보며 의아해하던 은영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때 일이 신경 쓰이는 거예요? 지금?”
토벌 당시 마주했던 그가 100퍼센트 진심으로 구원자들을 죽이려고 했다는 걸 알기에 저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제 기분이 상했을까 싶어 어떻게든 진심은 아니었을 거란 거짓을 지어내는 그를 보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를 향한 마음이 너무 느껴져서.
“그러지 말아요. 괜찮아요.”
빙글 반 바퀴를 돌아 탄을 마주 본 은영은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바닥이 탄탄한 탄의 가슴에 얹어졌다.
지금은 옷에 가려져 있지만 이 안엔 지워지지 않는 흉이 있었다. 그녀가 남긴.
서로에게 상처투성이인 과거였다. 지나간 과거는 바꿀 수도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인걸요. 그래도 우린 변했고 지금 같이 있잖아요.”
결국엔 우리가 서로의 곁에 머무르기로 선택한 것. 그거면 충분했다.
“……너는.”
나긋한 음성을 내뱉고선 어여쁘게 웃고 있는 은영을 보며 탄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찌르르. 가슴 깊숙한 곳이 울렸다. 되지도 않는 변명을 지껄이는 자신과 다르게 어쩜 이렇게 매번 듣고 싶은 말을 예쁘게 하는지.
그는 참을 수 없어 곧장 고개를 숙였다. 당장 저 사랑스러운 말을 내뱉는 붉은 입술을 제 입속으로 꼭꼭 삼켜 버리고만 싶어서.
“와아. 저기가 당신 자리인 거예요?”
하지만 그녀는 말을 돌리며 은근슬쩍 피했다. 얼굴을 붉힌 채 그를 마주 보지 못하고선.
탄은 픽 웃으며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곤 순식간에 이동했다.
“으악!”
갑작스러운 이동에 놀란 그녀가 소리를 질렀을 땐 이미 거대한 왕좌에 앉혀진 뒤였다.
“어떠신지요. 마왕이 된 기분이.”
왕좌 밑, 두 단 아래에 서 있는 탄이 짓궂은 웃음을 머금은 채로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리둥절하던 은영은 상황을 파악하고 걸어오는 장난을 받았다.
“나쁘지 않은데요? 오히려 좋을지도.”
“어울린다. 네 자리 같군.”
“칭찬인 거죠?”
“진심이다.”
마왕의 왕좌가 어울린다니. 그 말이 진심이면 안 되지 않나?
이걸 어떻게 받아쳐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탄?”
순간 느껴지는 촉감에 놀라 시선을 내렸다.
어느새 그녀의 발 아래 한쪽 무릎을 꿇은 탄이 올라간 치맛자락 아래로 드러난 발을 부드럽게 그러쥐고 있었다.
거칠고 투박한 손과 어울리지 않게 조심스럽고도 다정한 손길이 구두를 벗겨 내었다.
이윽고 드러난 하얀 발등과 복숭아뼈에 그가 촘촘히 입을 맞추었다. 마치 숭배하듯 고결하고도 마음이 흘러넘치는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읏, 탄……. 왜 갑자기…….”
그녀는 온 신경이 발에 몰린 듯 밀려드는 감각이 아찔해 입술을 깨물었다.
간질거리고도 심장이 저릿한 느낌에 발끝을 움찔거리며 홧홧하게 달아오른 얼굴을 팔로 가렸다.
“원한다면 세상을 네 발 아래 두겠다.”
“…….”
“나를 네 아래 두고 천하를 부리고 싶다면 그렇게 해라. 내가 쥐고 있는 무엇이든 취해도 상관없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니.”
“……그렇게 주면 당신은 뭐가 남아요.”
진심이 담긴 뜨거운 고백에 그녀는 열이 올라 붉어진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마음이 울렁인다.
거대한 남자가, 그 누구에게도 굽힐 필요도 이유도 없는, 제국을 호령할 수 있는 남자가 모든 걸 놓고서 자신의 앞에 있었다.
“너.”
천천히 그녀의 발에서 입술을 뗀 탄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너 하나면 돼.”
붉은 눈동자가 집요하리만큼 진한 시선으로 크게 요동치고 있는 그녀의 고동색 눈동자를 담았다.
“……아쉽진 않아요?”
“그럴 리가.”
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쥔 모든 걸 놓고 새로 쥔 것이 바로 그녀였다. 그의 모든 걸 무력화시키는 불가항력.
애초에 가진 것은 많아도 모든 게 비어 있던 그를 완벽히 채워 준 존재.
그녀의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 그거 하나면 그의 삶은 완전해졌으니까.
“…….”
그의 대답에 결국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감정이 요동쳤다. 그가 부딪혀 오는 진심이 너무도 커다래 마음이 흘러넘친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악착같이 살아남아 끝끝내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은 온전히 그와 함께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이리 와요. 당장 당신을 안고 싶…… 읏……!”
떨리는 목소리가 조르듯 보채자 인내심이 끝에 다다른 그가 단숨에 그녀의 턱을 그러쥐곤 입술을 삼켜 버렸다.
어느 때보다 뜨거운 숨이 얽고 섞였다.
“읏, 탄, 잠깐 흣…….”
조금의 호흡만 허용한 채 그가 입술을 빨아 먹을 기세로 고개를 비틀었다.
자제가 되지 않는 힘이 짓누르자 의자에 앉아 있던 은영의 자세가 거의 눕다시피 무너져 내렸다.
그는 재빠르게 그녀의 허리를 한쪽 팔로 감아쥐며 멀어지는 몸을 더욱 밀착시켰다.
넓고 차가운 왕좌 위. 어느새 그녀의 위에 올라타 있었다.
“하아, 잠깐……!”
이대로 멈출 것 같지가 않기에 그녀는 최대한 힘을 끌어모아 그의 어깨를 밀쳐 냈다.
이 정도의 힘으로 그가 밀릴 리는 없었으나 행여 다칠까, 탄은 입술을 떼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형형한 붉은 눈동자에 담긴 욕망은 갈무리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들끓고 있었다.
“뭐지? 이번엔 안 놔줘.”
“하아, 하아…… 여기서 이어 할 수 없으니 빨리 움직여야겠어요.”
불만스럽게 꿈틀거렸던 탄의 눈썹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 씨익 웃으며 그녀를 세게 끌어안았다.
“분부대로.”
두 사람이 순식간에 성안에서 사라졌다.
신혼여행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