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52)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52)화(152/162)
<5화>
“음…….”
한편 은영은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서 최대한 덜 단 맛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탄은 단걸 싫어하니까 초코보단 딸기가 나으려나.
“딸기 맛으로 두 개 주세요.”
결정을 내리고 주문하자 카운터에 있던 인상 좋게 생긴 청년이 한 스쿱씩 크게 뜬 아이스크림을 각각 과자 위에 올려 내밀었다.
값을 치르고 거스름돈을 받기 위해 기다리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그런데 저어…… 관광객이신가요?”
“네. 놀러 왔어요.”
“아, 네에…… 그…… 저어, 혹시…….”
계속 더듬으며 말끝을 흐리길래 뭔가 싶어 보니 청년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거스름돈은 안 주고 모은 두 손을 꼼지락거리는 모습이나 불안정한 시선, 붉어진 얼굴을 보니 무슨 말이 나올지 단번에 알아챘다.
그녀가 입은 복장은 비싸지 않은 편안한 원피스였다. 게다가 별장에 들어가서 한 번도 나와 보질 않았으니 대공이 별장에 왔다는 소문이 안 났을 터라 그저 관광객이라 생각할 법했다.
“저기 혹시 애인이 있으신…….”
“남편 있어요.”
예상했던 말에 칼같이 답했다.
“아, 그러시군요. 정말 죄송합……!”
“여보.”
여보?
홍당무보다 더 빨갛게 익은 얼굴로 고개를 숙이던 청년을 보고 있던 은영이 고개를 돌렸다.
언제 온 건지 탄이 가게 문을 통과하여 걸어 들어왔다.
여보라니. 언제 또 이런 말을 배워서는……. 출처가 엘라인 게 분명했다.
“다 샀어?”
곁에 다가온 그가 단단한 팔로 허리를 휘감아 안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어리둥절하던 그녀는 그가 왜 그러는지 알아차리곤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이거 딸기 맛인데 당신도 먹어 볼, 읍…….”
은영은 말을 다 이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숙인 그가 아이스크림이 아닌 제 입술을 핥아 냈으니까.
“맛있네.”
입술을 떼었을 땐 그가 만족스럽다는 듯 요망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웃지 않는 살벌한 눈은 경고를 담아 살벌하게 청년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그 딸꾹! 죄송…….”
“가자.”
너무 놀라 벌벌 떨며 딸꾹질하는 청년을 두고 탄이 은영을 품에 꼭 붙인 채 잡아끌었다.
“아니, 거스름돈……!”
거스름돈을 받지 못한 은영이 뒤를 돌아봤으나 탄은 아랑곳하지 않고 데리고 나왔다.
그러곤 손가락을 튕겨 냈다.
“으악! 내 아이스크림이!”
등 뒤에서 청년의 절규와도 같은 비명이 울렸다. 가게 안에 있던 아이스크림이 모두 녹아내렸으니까.
* * *
며칠 뒤.
늦저녁 별장 뒤 정원에 놓인 선베드에 누워 있던 은영이 스르르 눈을 떴다. 그녀의 아래엔 탄이 누워 있었다.
비어 있는 선베드가 여러 개였지만 구태여 두 사람은 한 선베드에 포개어져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탄이 한시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깜빡 잠이 들었다 일어난 그녀는 꼼질거리며 따뜻한 가슴팍에서 얼굴을 뗐다.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걸까?
본인의 팔을 벤 채 누워 있는, 노을에 물든 탄의 얼굴 속 감긴 두 눈이 뜨이지 않았다.
그는 가끔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던 적이 종종 있던지라 그녀는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발소리도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걷고 또 걸어 별장 뒤 정원과 연결된 낮은 절벽에 걸터앉았다.
공중에 뜬 두 다리를 꼰 채 대롱대롱 흔들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쏴아아아.
노을 진 붉은 바다의 파도가 넘실대며 밀려오더니 절벽에 부딪혀 흰 포말이 되어 흩어졌다.
어느새 여행 마지막 날이었다.
딱히 뭘 한 것 같지 않은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금방 가 버렸다.
그와 함께 있으면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하루하루가 아쉬울 정도였다.
그녀는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음악 삼아 천천히 절벽 아래 모래사장에 시선을 두었다.
꽤 많은 사람이 바닷가를 거닐며 노을 진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그중 특히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운데 서서 엄마와 아빠의 손을 꼭 붙잡고서 해맑게 웃으며 걷고 있는 어린아이.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피어났다.
‘언젠간 저런 날이 올까?’
탄과 저의 아이라…….
이런 소소한 일상을 불현듯 꿈꾸다가도 지레 접고 말았다. 그녀의 남편은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이었기에.
축복이 찾아온다면 좋겠지만 만약 그럴 수 없대도 괜찮았다. 지금도 둘이서 충분히 행복했다.
모든 게 다 괜찮았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그녀의 시선이 아이에게서 벗어나 천천히 걸으며 서로에게 기대어 산책하고 있는 백발의 노부부에게 머물렀다.
“시간이 다르잖아.”
그와 저의 시간이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언젠간 그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이가 들 테고 저렇게 머리가 하얗게 세어 갈 거다.
그건 당연한 이치고 자연의 순리이기에 공평하게 모두가 같았다.
그러나 탄은 아니었다. 나이 들어 가는 저와 달리 그는 지금과 똑같을 것이다.
언젠간 제가 죽고 없어진다 하더라도 그는 남겨질 거다.
두고 가는 사람도 남겨진 사람도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시간을 살 수 없다는 건 크나큰 슬픔이었다. 누구라도 좋으니 서로의 시간이 같아지면, 방법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조용하게 가라앉은 고동색 눈동자에 슬픔이 비쳤다.
그때였다. 땅 위에 올려 둔 그녀의 손 위로 크고 거친 손이 포개어졌다.
고개를 돌리니 탄이 옆에 와 앉아 있었다.
“노을이 예뻐서요.”
이 마음을 들킬까 실없이 웃었다.
하지만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깊어진 눈동자가 그녀를 응시했다. 그가 자상하게 머리를 쓸어 넘겨 주었다.
“내가 너와 같은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파도 소리에도 묻히지 않는 진심이 그녀의 귓가를 넘어 심장을 울렸다. 탄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맺혀 있었다.
달리 어쩌지 못하는 불가항력이라는 걸 잘 알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했다.
이런 표정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니었는데……. 은영은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그의 팔에 툭 고개를 기대었다.
“나는 당신이 당신이라서 좋아요.”
손등 위에 포개진 그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제 손가락을 얽혀 깍지를 꼈다.
“질투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다 녹여 버리는 철없는 행동도 당신이라서 사랑해요.”
은영이 키득키득 웃으며 말하자 탄이 따라 웃으며 그녀의 머리에 고개를 맞대었다.
“그냥…… 제가 아쉬운 건 나는 언젠간 머리가 세고 주름이 늘 텐데 당신은 그 모습 그대로일 테니까. 나만 늙고 당신은 여전히 너무 잘난 얼굴이면 내가 항상 긴장해야 하잖아.”
“성 밖으로 나가지 말고 네 곁에만 있을까.”
“내 핑계 대지 말아요. 당신이 날 성 밖으로 안 내보내고 싶은 거면서.”
“들켰군.”
그녀의 눈치는 못 당하겠다는 듯 탄이 웃었다. 그것조차 좋았지만.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라. 난 지금도 가능해.”
그 말에 그녀가 고개를 드니 어느새 그는 50년은 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탱탱했던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카락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생경한 모습이었지만 탄의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가 정말로 나이가 든다면 이 모습일 테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에 그려진 주름을 덧그리듯이 쓰다듬었다.
“잘생겼네. 할아버지가 되어도.”
“하하하.”
“역시 내 남편이야.”
듣는 이가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호쾌하게 웃던 탄은 뺨을 간지럽히는 그녀의 손을 잡아 손가락 마디마디에 입을 맞추었다.
노을보다 더 붉은 눈이 음험한 이채를 띤 채 제 아내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네가 바라는 것은 다 이뤄 줄게.”
함께 나이를 먹진 못해도 그녀가 바라는 게 이거라면 백번이고 천 번이고 할 수 있었다.
상대가 바라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이뤄 주고 싶은 마음. 서로의 시간의 흐름이 같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네가 나를 떠났을 때 혹시나 돌아오지 않을까 너무도 두려운 마음.
사랑이었다. 온 마음을, 온 진심을 다해.
“사랑해. 사랑한다.”
델 듯한 맹렬한 고백과 함께 노을 진 하늘 아래 두 사람이 입술이 겹쳤다.
그들은 숨을 나누며 오래오래 함께 앉아 있었다. 더없이 특별하고 행복한 신혼여행이었다.
조금 전.
탄은 눈을 감고 있었던 5분간의 기억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그녀가 품을 벗어나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게 잠이라는 걸, 자신이 인간처럼 잠을 잤다는 걸 알게 된 건 조금 나중의 이야기.
아주 천천히, 하지만 결국엔 흐르게 된 그의 시간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녀를 다시 만나게 해 줄 것이다.
홀로 오랜 기다림을 견딘 끝에 먼 훗날 다시 만났을 때. 그것은 마지막 기다림이었다.
-외전 1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