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54)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54)화(154/162)
<외전Ⅱ 2화>
“네놈 하나 움직이겠다고 사람을 다 밖으로 내쫓는 게 말이 되냐.”
그렇게 툴툴거리면서도 맥라이언은 착실히 퇴비가 든 포대를 옮기고 있었다.
봄을 맞이하여 정원을 가꿔야 하기에 대공성에 일하는 모든 이가 별장으로 휴가를 떠났다.
그래야 탄이 밖으로 나와 정원을 돌아다니니까.
굳이 사람들 눈에 띌 이유도 마음도 없었기에 그가 정원을 가꿀 때마다 성 전체엔 휴가가 내려졌다.
“이러니까 소문만 더 흉흉하게 나지.”
맥라이언이 덧붙여 말했지만 탄은 그 어떠한 대꾸도 없었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오히려 소문에 불을 지피는 꼴이었다.
5층에서만 출몰하는 유령이 대공성을 자유로이 활보하기 위해 사람들을 내쫓는 거라고.
오래 묵은 그 소문은 이젠 북부를 넘어 수도에서까지 종종 들려오곤 했다.
“때아닌 휴가에 다들 좋아한답니다.”
유진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예쁘게 깎인 과일을 담은 접시가 들려 있었다.
“너는 볼 때마다 주름이 하나씩 더 느는 것 같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만날 때마다 탄의 편에 서는 그녀를 보며 맥라이언의 눈썹이 삐뚤어졌다.
“맥라이언 님은 그대로십니다.”
유치한 나이 공격에도 유진은 타격 없이 그저 사람 좋게 허허 웃기만 했다.
“……나야 뭐. 오늘도 너만 있는 거냐? 이제 힘에 부칠 텐데 자리를 물려줘야지.”
그 반응에 오히려 머쓱해진 맥라이언이 미안해하는 눈으로 슬쩍 유진을 보며 말했다.
“…….”
유진은 인자하게 웃은 채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그 얼굴엔 씁쓸한 감정이 맺혀 있었다.
“저 자식이 필요 없다 했나 보군. 진짜로 혼자가 될 작정인지 뭔지.”
맥라이언은 정원 가장자리에 휴식을 위해 마련해 둔 의자에 몸을 묻었다.
유진도 그의 옆에 섰다.
두 사람은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말없이 소처럼 정원 일만 하고 있는 탄을.
우습게도 고결한 드래곤이 종종 북부에 내려와 만나는 이는 전직 마왕이었다.
이안도 레예프도 다 죽고 없었다.
인간과 달리 늙지 않는 그들의 곁에는 이제 그 옛날의 영광을 기억하는 것도, 그들의 친우를 기억하는 것도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뿐이었다.
“이렇게 종종 찾아와 주인님을 들여다봐 주세요.”
유진의 말에 과일에 손을 뻗던 맥라이언이 멈칫했다.
영생을 사는 건 아니었지만 영물인 드래곤인 맥라이언은 남들은 느낄 수 없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지금 유진에게서 흘러나오는 죽음의 기운처럼. 그녀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다.
“아서라. 저놈은 날 반기지도 않는데. 네가 옆에서 봐줘.”
“홀홀홀. 그래도 맥라이언 님이 계셔서 다행입니다. 제가 가더라도 주인님 옆에 은영 님을 기억해 주시는 또 다른 분이 계셔서요.”
유진은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늙은 자신의 손을 매만졌다.
그녀도 자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90이 다 되어 가는 고령이니 언제 눈을 감아도 이상하지가 않았다.
열심히 살았고 후회는 없었다.
다만 한가지 그녀가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녀가 눈을 감는다면 대공성에서 은영을 기억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쓸쓸하고 외롭게.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분만이.
“하. 다행은 무슨. 제 아들도 외면한 놈인데 나를 볼 리가 있겠어?”
맥라이언은 똑똑히 기억했다.
탄이 은영이 죽고 난 뒤 아들과의 관계조차도 놓아 버린 것을.
두 사람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이라 할지라도.
그나마 은영이 곁에 있을 땐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를 이어 주었지만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모든 게 달라졌다.
탄은 혼자가 되기를 택했고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였다. 그의 아들이 몇 번이나 아버지를 설득하였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단 한 사람한테만 감정을 느낀다는 게 말이 되는 거냐고.”
턱을 괸 맥라이언이 포크로 애꿎은 과일을 쿡쿡 찔렀다.
은영이 곁에 있을 때 탄은 변했고 인간다운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해서 달리진 줄 알았는데 그녀가 세상에 없으니 그는 본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그가 깨닫고 배운 줄만 알았던 감정들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발현되고 존재하는 것이었다.
“지독한 놈. 그래 놓고 은영이 죽을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도 않았다니.”
푹.
포크가 예쁘게 깎인 사과 조각을 깊게 관통했다.
은영이 나이가 들어도 변함없이 옆에서 지극정성으로 챙기고 사랑해 왔던 걸 봐 왔기에 그녀의 마지막 순간에 그가 무너지지 않을까 염려했었다.
한데 괜한 기우였다.
펑펑 울었던 자신과 달리 탄은 그녀가 죽는 순간 눈물을 흘리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그저 힘이 풀리는 그녀의 손을 더욱 꽉 맞잡고 있었을 뿐.
“안녕이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지요.”
“뭐?”
맥라이언이 고개를 돌려 유진을 보았다.
“다시 만나기 위함이니 주인님은 울지 않으셨겠지요.”
“…….”
맥라이언은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가끔 보면 오래 산 인간이 자신보다 더 많은 걸 깨닫고 있을 때가 있었다.
그는 저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그러니 탄이 30년을 넘게 이곳에서 유령 소리를 들어 가며 남아 있는 것일지도.
“그러니 종종 주인님의 얼굴을 보러 와 주세요. 염치없지만 이 늙은이의 마지막 부탁입니다.”
“일 년에 한두 번뿐이야. 나도 보살필 식솔들이 있다고.”
“물론이지요.”
툴툴거리면서도 안심되는 대답을 해 주는 맥라이언을 보며 유진이 따스하게 웃었다.
탄은 여전히 그녀를 위해 손수 만들었던 정원에 있었다.
제도에서 볼 수 없는 봄꽃들이 자라날 수 있게 가을엔 북부에서만 자라는 열매가 맺힐 수 있게.
다시 만날 그녀가 변함없는 정원을 보고 웃을 수 있게.
* * *
“할아버…… 아, 아니. 삼촌! 이것 좀 보세요!”
제이니가 말실수를 깨닫고 황급히 정정했다.
탄의 외모는 누가 봐도 할아버지가 아니라 삼촌뻘이었으니까.
다시 또 3년이 지났다.
7살이었던 제이니는 10살이 되었다.
여전히 앳된 아이였지만 그래도 키도 훌쩍 크고 검은색과 밤색의 중간 색인 머리카락도 많이 자라 있었다.
“아이참. 이것 좀 보시라니까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탄에게 척척 다가간 제이니는 스스럼없이 거대한 손을 잡아 이끌었다.
이렇게 될 수 있기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무섭기만 하던, 먼발치에서 가끔 볼 수 있었던 할아버님과 같이 외출할 수 있기까지.
이건 모두 작년 봄에 운명을 달리한 유진 때문이었다.
제이니는 유진과 약속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두 사람은 지금 북부에서 꽤 떨어진 벨라노 마을에 와 있었다.
벨라노는 귀족들이 많이 찾는 휴양지였는데 제이니가 몇 달을 조르고 졸라 탄과 여행을 왔다.
탄과 함께하는 여행은 제이니에게 놀라움과 신남의 연속이었다.
마차를 타지 않고 순식간에 이동을 할 수 있다니.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다니.
할아버님은 알면 알수록 대단한 사람이었고 최고였다.
“이게 살구에요! 여기 마을에서만 나는 과일이래요!”
가판대에 진열된 노랗게 잘 익은 살구를 가리키며 제이니가 말했다.
탄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아주 예전에 이곳에 은영과 여행을 왔었다. 여기서 나는 살구를 그녀가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먹고 싶은지 눈을 반짝이고 있는 제이니를 내려다보던 탄은 눈앞에 서 있는 주인을 보았다.
“얼마지.”
“어머나. 인물이 훤칠하시네. 여행 오셨나요?”
“얼마냐고 물었다.”
“잘생긴 사람한테는 공짜예요. 자, 하나씩.”
얼음장처럼 차가운 반응에도 주인은 넉살 좋게 살구 두 개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예쁜 언니!”
혹시나 인간성 없는 탄이 사고를 칠까 제이니가 냉큼 살구를 받아들며 해사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얼른 탄을 데리고 가판대를 벗어났다.
“이럴 땐 그냥 고맙다고 하고 받는 거예요.”
받은 살구 하나를 탄에게 내밀며 제이니가 으스댔다.
10살짜리 고손녀 꼬맹이가 백 년을 넘게 산 할아버지에게 가르치는 꼴이라니.
그런데 밉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제이니가 누군가를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리라.
“맛있다! 새콤달콤해요!”
살구를 한입 베어 문 제이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살구를 좋아하는 것까지 꼭 닮았다.
“너 다 먹어라.”
“와! 정말요? 아니 그런데 할아, 아니 삼촌은 음식을 잘 안 드시잖아요. 과일이라도 좀 드셔야 해요.”
살구를 건네받으려던 제이니가 정신을 차리곤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먹어. 후회하지 말고.”
“……그럼, 헤헤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탄의 살구에서 눈을 떼지 못한 제이니는 두 번의 거절은 없다는 듯 냉큼 살구를 받아들었다.
“히힛. 우리 이거 먹고 뭐할까요?”
기분이 더 좋아진 제이니가 신난 걸음을 재촉할 때였다.
쿠웅.
“이봐! 여행을 갔으면 간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때 갑자기 땅이 크게 울리더니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안녕하세요오…….”
화를 내며 탄에게 다가오고 있는 남자는 아는 얼굴이었기에 제이니가 우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1년에 한두 번이라도 꼬박꼬박 대공성에 찾아오는 드래곤이었다.
“내가 왜 네놈한테 보고해야 하지?”
“보고고 나발이고 여기까지 와서 허탕 칠 뻔했잖아!”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니 아무래도 자리를 비켜 줘야 할 듯싶었다.
제이니는 눈치를 보다 두 사람에게서 조금 떨어져 시장을 구경했다.
“내가 남부에서 누굴 봤는지 알아? 얼굴을 넘어서 기운까지 똑같아. 이건 분명……!”
“안다.”
“……무, 뭐?”
“알고 있다.”
“장난해? 알고 있었다고?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가만히…….”
할아버지와 드래곤인 맥라이언의 대화가 들려왔지만 제이니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관심도 없었기에 반짝이는 조각품을 구경하다 몸을 돌릴 때였다.
“아얏!”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제이니가 콩 하고 지나가던 사람과 부딪혀 넘어졌다.
“이런. 미안해. 내가 앞을 제대로 못 봤네. 괜찮아?”
그러자 다정한 음색과 함께 친절한 하얀 손이 제이니 앞에 내밀어졌다.
제이니는 코를 문지르며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손을 내민 햇살을 등에 지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본 제이니의 눈이 커다래졌다.
“어, 어……?”
“응? 괜찮니?”
“아, 아니 이게…….”
너무 놀라 눈을 끔뻑거리며 횡설수설하던 제이니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제이니는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탄을 보았으니까.
할아버지의 그런 표정은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그런 표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