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55)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55)화(155/162)
<외전Ⅱ 3화>
<그의 이야기.>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탄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마주칠 거라곤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제이니의 시선을 따라 손을 내밀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아, 아이의 아버지 되시나요? 제가 부주의해서 넘어졌어요. 죄송합니다.”
그녀가 미안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처음 보는 사람을 마주한 것만 같은 태도.
“후우……. 내가 본 게 저 여자다.”
옆에서 놀라 어버버거리던 맥라이언이 정신을 차리곤 중얼거렸다.
“사, 삼촌!”
열심히 그와 그녀를 번갈아 쳐다보던 제이니가 소리쳤다.
“아, 삼촌이시구나. 죄송해요.”
잘못된 호칭이라는 걸 안 그녀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퍼졌다.
“……괜찮, 습니다.”
목이 메어 갈라진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한순간도 잊어 본 적 없는 그 얼굴로 그녀는 제이니를 자리에서 일으켜 주었다.
뒤이어 친절하게도 흙이 묻은 제이니의 치마를 손수 털어 주었다.
탄은 그 모습을 떨리는 눈으로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럼.”
모든 할 일을 마친, 더 이상 자신 앞에 머물 이유가 없어진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지나쳐 갔다.
탄은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이름을 묻지도 않았다.
이미 그녀의 존재도 이름도 알고 있었으니까.
* * *
<그녀의 이야기.>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지나쳐 시장을 빠져나온 그녀는 얼른 입구에 보이는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세상에…….”
그러고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켰다.
그녀의 이름은 레니아 아스텔.
아스텔 백작의 막내딸로 백작령이 있는 남부에서 나고 자란 여인이었다.
백작가의 귀한 막내딸로 태어난 그녀는 금발의 파란 눈을 가진 아버지, 어머니와는 전혀 닮지 않은 검은 머리카락과 고동색 눈동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위로 두 명이나 있는 오라버니들조차 부모님을 닮아 금발의 파란 눈이건만 그녀만 혼자 달랐다.
혹시 주워온 자식이 아닐까 어릴 적에는 수없이 생각했고 또 상처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부모님의 친자식이 맞았다.
게다가 부모님은 자신들과는 다른 그녀를 더욱 귀하고 특별하게 여겼고 오라버니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녀는 가족이라는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변함없이 무한한 사랑을 주는 그들의 품에서 행복하게 자랐다.
그런 그녀가. 올해로 24살이 되어 곧 있을 생일을 맞아 나온 가족 여행에서 방금 믿기지 않은 일을 겪었다.
방금 만난 그 남자.
세상에 어떻게 저런 사람이 존재하지?
“어떻게 저런…….”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단 한순간도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저렇게 생긴 사람은 생전 처음 봤다.
무서울 정도로 다른 성인 남자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는 큰 키. 부딪히면 뼈가 나갈 것만 같이 탄탄해 보이는 몸.
모든 것이 압도적이었지만 특히나 그 얼굴은 정말 탄성을 자아냈다.
검은 머리카락에 새빨간 눈동자. 그의 모든 것은 강렬했다.
높이 솟은 코도 날카롭게 깎인 턱선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얼굴까지.
그는 신이 만들어낸 피조물 중 최대의 걸작일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얼굴을 설명할 길이 없었으니까.
“삼촌, 삼촌이구나…….”
레니아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라?”
그래놓고 스스로가 의아했다.
아이의 삼촌이라는 걸 알고 난 뒤 밀려드는 이 안도감은 뭐지?
왜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라 삼촌인 것이 기쁜 거지? 미친 건가?
이런 감정이 어이가 없기도 했고 믿기지 않기도 했다.
지금까지 24년을 살면서 남자라는 존재에 관심을 가진 적도 좋아한 적도 없는 자신이었건만.
그런데 그 얼굴…….
“굉장히 사연 있어 보였지.”
마주했던 남자의 얼굴은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눈동자만큼은 달랐다.
괜한 비약일 테지만 그녀를 보고 있던 붉은 눈동자는 어딘지 모르게 애틋함을 넘어 슬퍼 보였다.
그래서 자꾸만 마음이 콕콕 아파 올 정도로.
“뭐야?”
그때 뒤늦게 그녀를 따라 시장에 나온 둘째 오라버니가 다가왔다.
“뭐가?”
“방금 너랑 부딪혔던 아이 말이다. 레아 너랑 닮은 것 같던데?”
“……오라버니가 봐도 그래?”
그 말에 레니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처음 얼굴을 봤을 땐 그녀도 깜짝 놀랐다.
자신과 부딪혀서 넘어졌던 어린아이는 그녀를 무척 닮아 있었으니까.
“검은 머리카락이 흔하진 않긴 한데 얼굴이 닮았어.”
“그러게. 희한하네.”
혹시 뭔가 자신과 연관이 있는 걸까?
“레아.”
잠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다정한 부름이 들려왔다. 아버지였다.
미련이 남아 뒤를 돌았으나 시장에서 그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또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뭐라고?”
“아냐. 아무것도.”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그녀는 둘째 오라버니인 워튼과 함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를 향해 걸어갔다.
* * *
“그러니까 다 알고 있었다고?”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지 맥라이언이 되묻고 또 되물었다.
세 사람은 시장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공원에 와 있었다.
피곤하여 곯아떨어진 제이니는 잠시 벤치에 누워 있었다.
“하, 진짜…….”
어이가 없어 맥라이언이 머리를 쓸어넘겼다.
이해가 되질 않았으니까.
그들이 오늘 시장에서 마주친 여인.
그 여인은 확실히 은영의 환생이었다. 머리카락과 눈 색 심지어 얼굴까지 똑같이 태어났다.
그리고 더 확실한 것은, 그녀에게서 느껴지던 기운. 그건 그가 알던 은영의 기운이었다.
윤회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기에 그 여인은 다른 인물일 수 없었다.
은영이었다.
“알면서도 왜……. 아니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던 거 아니야?”
그녀가 죽고 30년을 넘게 대공성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것도 이제는 자국이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반지를 단 한 번도 빼지 않은 것도, 매년 정원을 가꿨던 것도 다 누구를 위해서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알면서도 가만히 있었다고? 대체 왜?
“그럼 이럴 게 아니라 당장 가서……!”
“가서. 뭘 어쩌라는 거지?”
“뭐? 어쩌긴 뭘 어째! 당연히 네가 누구인지…….”
“기억이 있다면 먼저 찾아왔을 거다.”
탄은 피로감을 느끼며 두 눈을 꾹꾹 눌렀다.
24년 전 그가 바라마지 않던 단 한 사람이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났다는 걸 그는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그를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그녀는 약속대로 환생을 했지만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처음부터 설명해 주면 될 거 아니야! 네놈이 누구고 너 자신이 누구인지!”
복장이 터진다는 듯 맥라이언이 본인의 가슴을 주먹으로 쳐 댔다. 답답하게 머저리처럼 구는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생의 기억이 없는 사람에게 대뜸 찾아가서 너는 내 연인이었고 우린 부부였다고 말하라? 네놈은 그 소리를 들으면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나? 아니 애초에 그 말을 믿을 수나 있을 것 같나?”
“그건……!”
언성을 높이던 맥라이언이 입을 다물었다.
그 말에 대해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앞에 놓인 상황만 놓고 스스로의 감정만 생각하는 맥라이언과 달리 이 순간을, 몇십 년을 넘게 이날만을 기다려 왔던 탄은 은영이 겪을 혼란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전생의 기억이 없는데, 과거에 살고 있는 내가 현재를 살고 있는 그녀의 삶에 무턱대고 침입하라고?”
“하지만…….”
“네 놈 같으면 그걸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나?”
살벌한 붉은 두 눈이 맥라이언을 노려보다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탄은 아까 보았던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착잡함에 하늘을 보았다.
그녀가 태어나고 몇 년 뒤 그는 그녀를 찾아갔었다.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녀에게 새로 생긴 가족들은 무척이나 좋은 인간들이었다.
사랑받고 있구나. 안심했다.
그렇게 가끔 그는 생각이 날 때면 그녀를 찾아갔다.
들키지 않게 먼발치에서 그저 지켜만 보다 왔다.
볼 때마다 그녀는 웃고 있었고 그 옆에는 그녀의 가족들이 있었다.
자신과의 과거는 모두 잊은 그 얼굴이 그렇게나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해서 그 행복을 함부로 깨뜨릴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녀가 은영이라 할지라도 멋대로 그녀의 삶에 침범할 수도 마음대로 지금의 행복을 앗아 가는 일 따위 할 수 있을 리도 그럴 자격도 그에겐 없었다.
그와 함께이던 그녀는 세상을 떠났고 지금의 레니아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탄은 기다릴 수 있었다.
그저 종일 골방에 틀어박혀 창밖을 지켜보는 일뿐인 기다림이라도 지금까지 해온 대로 더 기다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그를 떠올려 준 그녀가 먼저 자신을 찾아와 줄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미련한 놈.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냐고.”
모든 걸 알게 된 맥라이언이 탄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한 사람만을 기다렸으면서, 정작 만날 기회가 찾아오자 어째서 그 기다림의 결실을 본인만을 위한 이기심이라 치부하는지.
인간도 이렇게까지 배려할 수 없을 텐데.
미련하고 또 미련해서 가슴이 답답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