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56)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56)화(156/162)
<외전Ⅱ 4화>
“……으음, 저기…….”
“…….”
“오늘 날씨가 무척 좋네요!”
“…….”
“하, 하하…….”
멋쩍어하며 눈치를 보던 레니아의 입꼬리가 스르르 내려왔다.
어색해. 어색해 죽을 것 같아!
그녀는 속으로 절규하며 창밖을 보았다.
어떻게든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 보고자 아무 말이라도 한 것이었지만 바깥은 정말로 날씨가 좋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과 내리쬐는 햇살에 눈앞에 앉은 남자의 얼굴을 더욱 반짝이게 만들 정도로.
‘정말 봐도 봐도 대단하네…….’
그녀는 창밖을 보는 척 힐끔힐끔 앞에 앉은 남자를 보았다.
등장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말 한마디 않고 있지만 남자는 레스토랑에 있는 모든 이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신경이 쓰일 법한데 그는 그 어떤 동요도 없이 자리에 앉아 그저 빤히 그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 부담스럽게 쳐다만 보고 있나 싶지만 그래도 덕분에 얼굴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레니아의 앞에 앉아 있는 남자는 바로 엊그제 마주했던 그 남자였다.
다시 만나고 싶다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 빨리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엊그제 시장에선 편한 차림이었던 그는 오늘은 슈트를 차려입고 있어 더 눈이 부셨다.
특히 위아래로 맞춘 어두운 남색의 슈트는 그의 검은 머리카락과 무척이나 잘 어울려 사람을 한층 더 이지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거기다가 그가 가진 특유의 압도적인 분위기는 과묵한 지금의 행동가 어우러져 신사의 기품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만약 이 자리가 아닌 연회에서 마주쳤더라면 절대 말 한 번 걸 수 없었을 것이다.
제도도 아닌 시골 남부에서 나고 자란 그녀와는 사는 세계가 다른 고위 귀족일 것만 같았으니까.
“해군이셨구나…….”
레니아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왜냐하면 눈앞에 있는 남자가 제복을 입는다면 얼마나 잘 어울릴지 절로 상상이 되어서.
이곳 레스토랑에 들어오기 전까지 이렇게 기분이 나아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레니아는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
그녀는 아침에 호텔을 나와 레스토랑에 올 때만 해도 기분이 우중충했다.
그저 여행인 줄만 알았던 벨라노 행이 사실은 아버지가 계획한 그녀의 맞선자리였으니까.
‘아스터 백작의 장남으로 해군 대위라더구나. 주위의 평판도 좋고, 무엇보다 사람 됨됨이가 괜찮다. 그러니 한번 만나만…….’
‘아버지! 제가 언제 결혼시켜 달라고 했어요? 왜 멋대로세요! 전 안 가요. 절대!’
‘레아야……. 이미 약속이 되어 있다. 그러니 한 번만 아비의 얼굴을 생각해서라도 다녀와다오.’
아버지와 한바탕 하였으나 그녀는 결국 지고 말았다.
당사자인 그녀는 모르는 약속이었지만 그래도 아버지와 가문을 생각하면 외면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인사만 하고 바로 거절해서 나오려고 했는데 이게 웬걸?
만난 그 순간부터 계속 생각나던 그 남자가 상대였다니…….
아마도 이건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제가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대위님? 아니면 이름을…….”
“너는.”
“……네?”
오늘 처음으로 입을 연 그를 보며 레니아의 눈이 토끼처럼 동그래졌다.
“결혼이 하고싶은 건가.”
“…….”
생각지도 못한 직설적인 질문에 레니아가 큰 눈을 끔뻑거렸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대답만을 기다리는 저 붉은 눈은 화가 난 것 같기도 언짢아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왜 이렇게 화가 났지?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그를 다시 만나서 기쁜 건 자신만이었다는 게 조금 서글퍼졌다.
“레이디 레니아……?”
그때였다.
불쑥 끼어든 음성에 레니아의 고개가 돌아갔다.
“오늘 뵙기로 한 페리안 아스터라고 합니다. 한데 이분은 누구십니까?”
“……예?”
갑자기 두 사람 앞에 나타나 자신이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이라며 말하는 남자는 해군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아스터 백작가의 장남이라고 했는데?
“그럼 이분은 누구……?”
상황 파악이 안 되어 어리둥절한 레니아가 앉아 있는 남자와 아스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녀가 자리를 착각한 건 아니었다. 먼저 도착한 건 그녀였고 그다음에 이 남자가 들어와 당연하게도 그녀의 앞에 앉았으니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설명해 주길 바라는 눈으로 남자를 보았으나 남자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저 팔짱을 낀 채로 단 한 번도 시선을 돌리지 않은 붉은 눈에 그녀를 담고 있을 뿐.
“당신. 누구십니까. 누구신데 멋대로 이 자리에…….”
“꺼져.”
상종할 가치도 없는 건지 아스터를 보지도 않고 남자가 살벌하게 말했다.
“이봐! 어, 어어……?!”
화가 난 아스터가 즉각 팔을 뻗어 남자를 잡으려 하였지만 무슨 일인 건지 남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아스터의 팔다리가 병장처럼 딱 붙었다.
그러더니 그가 휙 몸을 돌려 군인처럼 각 잡힌 팔과 다리를 움직여 레스토랑을 빠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지금 이게 뭔…… 아니 이봐요!”
“읍읍……!”
레니아가 당황하여 벌떡 일어나 아스터를 불렀지만 그는 마치 입에 재갈을 문 사람처럼 끙끙거리면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앉지? 만나고 싶어 나온 거 아니잖아.”
이 사태에 태연한 사람은 오직 하나.
다리까지 꼬고서 여유롭게 찻잔을 들어 올리고 있는 이 남자뿐이었다.
“그건 맞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죠! 대체 당신 누구예요? 왜 여기에 앉아서 저 사람인 척한 거냐고요.”
“내가? 저놈인 척을?”
빤히 그녀를 보는 붉은 눈이 진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고 있었다.
그래. 그는 누구인 척을 하지 않아도 잘난 사람이었다. 아스터인 척을 하는 건 오히려 그에게 손해였다.
“그……럴 리는 없으시겠지만! 어쨌든. 오늘 저와 만나기로 한 분이 아닌 건 맞잖아요.”
“어차피 너라면 얼굴만 보고 바로 거절하려고 했겠지. 수고를 덜어 줬을 뿐이다.”
“저에 대해 아세요? 언제 봤다고 제 생각까지 마음대로 유추하시죠?”
레니아는 기가 막혔다.
어떻게 이렇게 뻔뻔하지?
그런데 더 기가 막히는 건 저 뻔뻔함이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다 못해 그리운 느낌이 든다는 거였다.
진짜 미쳐 버렸나 싶어 그녀는 정신을 깨기 위해 고개를 도리질 쳤다.
“우선 앉아. 주목받는 거 싫어하잖아.”
그의 말에 슬쩍 주위를 살피니 레스토랑에 있는 손님들이 다 이쪽을 보고 있었다.
“허, 진짜 뭐야……. 우리 만난 적 있어요?”
레니아는 구시렁거리면서도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레니아.”
“으엥? 내 이름까지 아네? 당신 정체가 뭐야?”
그녀는 휘둥그레진 표정을 냉큼 지우며 털을 바짝 세우는 고양이처럼 경계했다.
대뜸 자리에 앉았기에 통성명도 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제 이름을…….
“아까 그놈이 말했잖아.”
“아……?”
레니아는 순간 멍청한 표정이 되었다.
그건 몰랐다. 아스터가 그녀를 이름으로 불렀다는 것을.
머쓱해진 마음에 헛기침을 하려는데, 시선을 내리깔던 남자의 한쪽 입꼬리가 피식거리며 올라갔다.
“…….”
그녀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처음이었다. 웃는 모습을 보는 건.
아주 찰나였지만 분명 그의 입매에 미소가 걸렸다 사라졌다.
그걸 보자니 더 크게 웃는 모습도 무척이나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아니 잘 어울릴 거다.
그가 기분 좋게 웃는 모습이 마치 실제로 본 적이 있는 것처럼 절로 머릿속에 떠올랐으니까.
거기에 기분 좋은 그의 웃음소리까지 귓가에 울렸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마음이 저려와 레니아는 허벅지 위에 올려 둔 두 손을 꼭 쥐었다.
“거짓말이다. 원래 알고 있었다.”
“…….”
“내가 네 이름을 모를 리 없잖아.”
그는 그리 말하며 찻잔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아, 또다.
또 웃는다.
웃음 한 번 짓지 않을 것 같은 차디찬 저 얼굴에 자꾸만 그녀를 향한 웃음이 맺혔다.
그 웃음에 레니아는 본인도 어쩌지 못할 만큼 뛰어 대는 심장을 애써 누르며 입을 열었다.
“우리요. 만난 적 있어요? 예전에요.”
그녀의 물음에 은은히 미소짓고 있던 그가 입꼬리를 내렸다.
어느새 진지해진 그는 긴장한 것처럼 두 뺨을 옅게 붉히고 있는 레니아를 응시했다.
“레니아.”
“네. 말해요.”
“기억을 하지 못 하는 건 좋아. 이해해.”
“제가 기억을 못 한다고요? 그럼 정말 우리가 만난 적이…….”
“하지만 다른 놈은 안 돼.”
“……예?”
“결혼도 연애도 다른 놈이랑은 안 돼.”
다른 나라의 언어를 들은 것처럼 레니아가 제대로 이해 못 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절대. 눈도 마주치지 마. 관심도 주지 마.”
이해를 못 하는 그녀와 달리 그의 태도는 확고했다.
아버지도 오라비들조차 이렇게까지 과잉보호, 구속을 한 적이 없었는데.
“왜요? 당신이 왜 제게 그런…….”
“네 남자는 나뿐이다.”
묻는 말에 대답은 안 하고 자꾸만 알지 못하는 말만 늘어놓는 그에게 삐딱하게 따져 묻던 레니아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순간 마주한 붉은 눈이 불꽃보다 더 강렬하게 타올랐다. 그 안에 숨겨지지 않는 집착에 레니아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건 잊지 마.”
그가 하는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고 기억도 나질 않아 혼란스럽기 그지없었지만, 레니아는 어이없게도 이 모든 게 싫지가 않았다.
이 남자가 싫지가 않았다. 오히려 자꾸만 관심이 가서 문제였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의 입으로 듣고 싶었다.
“이름이나 알죠. 당신 이름이 뭐예요?”
“탄.”
얼굴도 목소리도 심지어 성격과 태도까지. 어느 것 하나 바뀌지 않은 그녀를 보며 탄은 웃었다.
그녀가 그에게 주었던 이름을 긴 기다림 끝에 다시 그녀에게 들려주며.
* * *
한편.
“저, 저 또라이 새끼…….”
두 사람이 앉은 곳에서 멀리 떨어진 레스토랑 구석에 앉아 있는 두 사람.
맥라이언이과 제이니었다.
안절부절못하며 탄을 지켜보던 그는 이제야 한시름 덜었다는 얼굴로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그는 탄이 진짜로 남자를 죽일까 봐 쫓아온 것이었다.
탄이 아스터라는 남자에게 능력을 쓸 때, 맥라이언은 진짜 기겁하며 자리를 박차고 뛰어갈 뻔했다.
다행히도 내쫓기만 했으니 망정이지.
“맥라이언 님. 저 디저트도 먹어도 돼요?”
“먹어라. 너 다 먹어.”
그는 제이니 앞에 자신의 디저트 접시를 넘겨주었다.
“헤헤. 감사합니다.”
얼른 포크를 든 제이니가 무스 케이크를 푹 떠먹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완전히 긴장이 풀린 맥라이언은 안주머니에서 꺼낸 궐련을 입에 물었다.
차마 제이니 앞이라 불은 붙이진 않고 그저 입에 물고만 있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엊그제 탄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래. 기다림? 좋다 이거야. 그럼 나중에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면? 결혼하고 싶어 하면? 너 그땐 어쩔 건데?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나 본데 분명 앞으로 생길 거다. 그럼 그때도 기다린다 어쩐다 하고 보고만 있을 거냐?’
그의 질문에 탄은 그딴 것도 질문이라고 하냐는 표정으로 그를 벌레 보듯 보더니 입을 열었다.
‘죽인다.’
그래. 그놈 성격이 어딜 갈 리가.
웃긴 건 엊그제 기다린다 어쩐다 해 놓고 레니아가 맞선을 본다는 소식에 그가 냉큼 쫓아 왔다는 것이다.
제이니까지 자신에게 맡긴 채로.
웃기지도 않아서.
“그래도 뭐.”
맥라이언은 비식 웃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단 한 사람을 30년을 넘게 기다려온 진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