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57)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57)화(157/162)
<외전Ⅱ 5화>
레니아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녹아들었다. 처음부터 함께했던 사람처럼.
“그럼 후작님은 언제 돌아가시나요?”
“탄.”
“아, 네. 탄.”
후작이라 부를 때마다 그는 한 번도 빠짐없이 이름으로 정정하였다. 꼭 이름만으로 불리고 싶은 사람처럼.
한적한 공원.
천 위에 융단을 깔고 앉은 레니아의 옆에는 탄이 앉아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탄을 만나고 난 뒤 레니아는 며칠째 그와 만나는 중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는 동안 그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탄 카르시크 후작.
그는 조카 제이니와 함께 벨라노에 여행을 왔다고 했다.
지내면서 알게 된 건 탄은 일반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은 쓸 수 없는 신비한 능력을 쓸 수 있었다.
특히 처음 순간 이동을 겪었을 땐 너무 놀라 쓰러질 뻔했다.
어떻게 한 거냐고 묻는 자신을 보며 그는 그냥 픽픽 웃을 뿐이었다.
그와 함께 여행 온 조카는 제이니 허시브룩.
허시브룩이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었다 했더니 북부를 다스리고 있는 대공 가문이었다.
유명한 가문이라 가끔 티 파티에 나갈 때면 꼭 빼놓지 않고 언급되는 가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언제 돌아가는데요?”
“글쎄.”
“쳇. 뭐예요 그게.”
시시한 대답에 레니아가 끌어모은 두 무릎에 얼굴을 기대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두 손을 뒤로 뻗어 기대고 있는 탄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지나갔다.
레니아는 살랑이며 흔들리는 그의 머리카락 아래 고요한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렇게 아쉬운 마음이 드는 자신과 달리 그는 별다른 감정이 없는 것 같아서 콕콕 마음이 아파 왔다.
“저는요. 다음 주에 다시 남부로 돌아가요.”
“…….”
그 말에 그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
레니아는 입술을 달싹이다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돌아가더라도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긴장하고 떨려서 크게 뛰는 심장 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려올 정도였다.
이대로 남부로 돌아가면 그를 만났던 시간이 한 여름밤의 추억으로만 남을 것 같았다.
주위 영애들이 첫눈에 반했다는 말, 사랑에 빠졌다는 고백을 들었을 때 그녀는 언제나 심드렁했다.
그런 허무맹랑한 낭만 따위 믿지 않았으니까.
좋다고 고백해 오는 남자들은 많았지만 한 번도 마음이 동요한 적 없었다. 지금까지.
왜인진 모르겠지만 레니아의 마음 한구석은 언제나 비어 있었다.
기억이 남아 있는 어린 시절부터 그래 왔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도 종종 사무치는 외로움에 휩싸였다.
그건 가족의 사랑에도 채워지지 않았다. 마음이란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꼭 다른 무언가만이 그곳을 채워 줄 수 있는 것처럼.
어느 날은 자다가 깨어 목놓아 운 적도 있었다. 펑펑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갑자기 불안해졌으니까.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뭐지?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거지?
찾으려 노력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고작 며칠 전에 만난 남자가 레니아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그와 함께하면 할수록 언제나 비어 있던 마음이 서서히 차고 있는 기분이었다.
믿지 않았던 첫눈에 반한다는 그 말. 이제는 완전히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고작 탄의 표정 하나에 그녀의 기분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걸 설명할 수 없으니까.
‘왜, 왜 대답이 없지? 혹시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건가……?’
레니아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슬며시 눈을 들어 올렸다.
일순간 레니아는 숨 쉬는 방법을 까먹었다. 아니 숨이 멎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언제든.”
이렇게 기쁘게 웃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그가 웃고 있었다.
실제로 본 것처럼 선연했던, 상상만 하던 그의 웃는 모습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
“왜 그러지? 어디 아픈가?”
그때였다.
웃던 그가 순식간에 표정을 굳히며 상체를 일으켰다.
“네? 뭐가…….”
“울잖아. 지금.”
그의 손이 그녀의 뺨을 훑어 주었다.
정말이었다. 언제 흐른 건지 모를 눈물이 부드럽게 쓸고 지나가는 손가락에 닦여 나갔다.
“아…… 이, 이거 그냥 눈에 뭐가 들어가서.”
이유 모를 눈물에 당황한 레니아가 말을 더듬었다.
“무슨 일 있는…….”
“아이스크림!”
걱정이 담긴 그의 눈빛을 보자니 더는 참지 못하고 레니아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 와야겠어요!”
줄행랑을 치듯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쪽팔려, 쪽팔려!’
왜 거기서 울고 난리람?
진짜 미쳤나? 정신 차려! 추하다고! 왜 갑자기 울고 난리야!
레니아는 창피해서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얼마나 당황했을까…….
자꾸 놀란 탄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쉬웠다. 자신이 울지만 않았다면 그가 웃는 모습을 더 볼 수 있었을 텐데.
자책하며 상점가로 걸어 내려가는데, 누군가와 마주쳤다.
“너 나중에 얼마나 후회하려 그러냐.”
“네? 저요?”
레니아가 주위를 둘러 보다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모르는 남자인데 그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더 후회하기 전에 빨리 알아차려.”
대답은 없이 본인 할 말만 한 남자는 그녀를 지나쳐 성큼성큼 공원으로 올라갔다.
“허…… 뭐야 저 인간.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재수 없게.”
어이가 없어 그녀는 멀어지는 남자의 뒤통수를 보며 중얼거렸다.
“큭…….”
남자는 바로 맥라이언.
걸어가던 맥라이언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저 소리가 안 들릴 리가 없었다.
“하여간 다시 태어나도 성격은 똑같구만.”
그는 낄낄거리며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는 탄 앞에 섰다.
“증손주한테 작위나 삥뜯기나 하고. 네가 그래 놓고 큰 어른이냐?”
대놓고 시선도 안 주고 무시하는 탄을 보며 맥라이언은 익숙하다는 듯 옆자리에 멋대로 앉았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하는데 자꾸만 두 사람이 마음이 쓰여 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요 며칠 보이는 탄의 행보가 아주 기가 막혀 무료한 그의 삶에 꽤나 재밌는 유희 거리가 되었다.
대공성에 죽은 듯이 틀어박혀 있을 땐 언제고 탄은 갑자기 자신의 증손주이자 현 대공한테 작위 하나를 강탈해 왔다.
인간들은 배경을 중요시한다나 뭐라나.
보나 마나 레니아한테 자신을 소개할 때 변변치 않은 놈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이대로 기억을 못 하면 그땐 어쩔 거냐.”
맥라이언이 저 아래 상점에 들어간 레니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같은 곳을 바라보던 탄은 이내 시선을 내렸다.
탄은 자신의 손을 보았다. 방금 전 레니아의 눈물을 닦아 주었던.
* * *
그날 밤.
“음…….”
자고 있는 레니아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그녀는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어떤 정원에 서 있었다.
너무나 잘 가꿔진 정원 뒤에는 거대한 요새 같은 성이 있었다.
여긴 어디지?
조심스레 정원을 걷고 있는데 웅장하게 정원을 장식하고 있는 르웬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나이가 지긋이 든 할머니와 할아버지였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거동이 불편하신지 의자에 앉아 있는 할머니의 옆에는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내가 너무 늦으면 어쩌죠.’
걱정스러운 할머니의 물음에 할아버지가 무릎을 굽혀 할머니와 시선을 맞추었다.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다.’
다정한 손이 할머니의 바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었다.
‘네가 다시 내게 오는 게 중요한 거지.’
할아버지의 손은 이내 팔걸이에 놓인 할머니의 손을 잡아 올렸다.
그의 손은 주름진 할머니의 손이 아직도 곱다는 듯 손가락으로 문지르듯 부드럽게 쓸어 만졌다.
‘그러니 걱정 마.’
눈물이 날 만큼 다정한 어투로, 곳곳에 사랑이 베어 있는 시선으로, 변하지 않는 애정이 담긴 손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돼.’
할아버지는 그렇게 할머니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손을 꼭 맞잡았다. 주름진 두 사람의 손가락에는 똑같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새빨간 루비가 박힌 반지.
‘…….’
레니아는 그 자리에 서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 순간.
할머니에게 향해 있던 할아버지의 시선이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레니아를 보았다.
그러자 바랬던 할아버지의 머리카락이 점점 원래의 색을 되찾아 가고 주름졌던 얼굴도 옛 모습으로 되돌아 가고 있었다.
이윽고 할아버지의 얼굴이 완전히 젊었을 옛 얼굴로 변하자.
“헉…….”
감겨 있던 레니아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하아, 하아…….”
꿈에서 깬 그녀는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꿈속에서 마지막에 본 할아버지의 모습.
옛 모습으로 돌아간 할아버지의 얼굴은 그녀가 아는 사람이었다.
“탄.”
그건 탄의 얼굴이었다.
대체 이건 무슨 꿈이지? 그 할머니는 뭐고…….
마음이 뒤숭숭하여 더는 잠을 이룰 수 없던 레니아는 가볍게 옷을 갈아입고는 호텔 정원을 거닐었다.
캄캄한 밤하늘 아래 밤공기를 마시며 걷고 있는데.
숨겨지지 않는 커다란 인영이 나무 뒤에 숨어 있는 것을 보았다.
“들키려고 그렇게 숨어 있는 거예요?”
“…….”
잠시 망설이던 그는 결국 그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 그녀가 울었던 일이 마음이 쓰여 탄이 이곳을 찾아온 것이었다.
“너무 엉성하잖아요.”
“왜 안 자고 나왔지? 역시 어디 아픈…….”
“그건 아니고요. 그런데 여기 투숙객 아니면 들어올 수 없는데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그 질문에 그가 스윽 딴청을 피우듯 시선을 돌렸다.
순간 이동이군. 순간 이동이야.
눈치도 안 보고 능력을 남용하는 그를 보며 레니아가 황당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체 그 능력은 뭐예요? 마법사 이런 거예요?”
“그럴 것 같나?”
“아니에요? 마법사가 아니라면…… 천사?”
“……뭐?”
생각지도 못한 어처구니없는 말에 탄의 눈이 커다래졌다.
살다 살다 천사라는 얘기는 처음 들어 봤다. 그래도 전직 마왕인데 너무하지 않은가.
“하, 하하하!”
결국 탄은 웃음이 터져 버렸다.
레니아는 그 호쾌한 웃음에 어리둥절했지만 좋았다. 그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었으니까.
그의 웃음을 따라 함께 올라가던 그녀의 입꼬리는 그녀가 그의 손가락을 발견하면서 멈추었다.
탄의 손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왜 이걸 지금 발견한 건가 싶을 만큼 대놓고.
그리고 그 반지는 그녀가 꿈속에서 보았던 반지와 똑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