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59)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59)화(159/162)
<외전Ⅱ 7화>
언덕에 놓인 나무 아래에서 은영은 탄의 품에 안겨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그간 별일은 없었는지 아들 칼란츠와 손자 헤레이스의 안부 그리고 유진의 안부까지.
칼란츠와 유진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헤레이스는 자신의 아들에게 대공가를 넘기고 시골 영지에서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으니 그녀가 죽고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실감이 났다. 아마 30년은 넘게 흘렀으리라.
30년을 넘게 탄은 혼자서…….
“이제 그만 울어. 눈 쓰리잖아.”
“안 울어요.”
언덕 아래에 시선을 둔 채로 은영은 고개를 저었다.
분명 등 뒤에서 자신을 껴안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을 텐데 어떻게 안 건지…….
여전히 자신의 일이라면 뭐든 알고 있는 그 때문에 더욱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고인 눈물을 닦아 내진 않았다. 괜히 울고 있다 티 내고 싶지 않았다.
그때였다.
그가 부드럽게 그녀의 턱을 잡아 올렸다.
고개가 절로 뒤로 젖혀졌다.
순식간에 시야가 뒤집히더니 하늘과 나무 그리고 탄의 얼굴이 보였다.
“거짓말.”
새빨간 그의 눈동자가 물기 어린 자신의 눈을 확인했다.
아까 같이 울어서 그런지 그의 눈가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
딱 들킨 상황에 당황하고 있는데 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파르르 떨리는 은영의 왼쪽 눈이 감겼다. 탄의 입술이 그녀의 붉게 물든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쳐 주듯 짧게 닿았다 떨어졌다.
뜨거운 숨결이 지나간 눈을 스르르 뜨니 봄의 햇살보다 더 따뜻한 눈이 그녀를 담고 있었다.
“울지 마.”
“응. 안 울게요.”
그녀는 웃음 지으며 몸을 틀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품에 그의 단단한 몸이 느껴지는 게 좋아 폭 기대고 있는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볐다.
머리 위에서 기분 좋은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리광이 는 것 같군.”
그 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들어 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어리광이 는 거라면 는 걸 수 있었다.
그녀가 그의 품에서 눈을 감았을 때가 80이 넘은 나이의 할머니였다. 가족을 꾸리고 세상을 더 많이 겪은 나이.
지금보다 더 점잖았고 여유로웠다.
다시 태어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어도 그녀는 24살이었다. 탄이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모습의 그녀와는 다를 수 있었다.
“그래서 싫어요?”
무슨 대답이 들려올지 알면서도 그녀는 물었다. 어리석게도 그의 입으로 직접 듣고 확인하고 싶었으니까.
그 마음을 읽은 건지 그가 양쪽 입매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그럴 리가.”
이내 자잘한 입맞춤이 그녀의 얼굴 곳곳에 내려앉았다.
고스란히 그의 애정을 받으며 푸스스 입매를 허문 채 웃던 그녀는 이내 두 눈을 감았다.
그의 입술이 겹쳐 왔다.
달뜬 숨이 서로에게 엉켜 들었다.
깊고 진한 입맞춤에 숨쉬기 버거워질 때쯤 알고 있다는 듯 그의 입술이 뒤로 물러났다.
몽롱해진 눈을 뜨니 역시나 그녀와 같이 열기가 식지 않은 붉은 눈이 바로 보였다.
“나는 운이 좋다. 사랑하는 너의 과거도 지금은 현재로 만날 수 있으니.”
젖은 입술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그가 그녀의 허리를 두 팔로 꽉 끌어안았다.
그녀의 20대, 30대 그리고 40대, 50대를 넘어 그다음 나이까지.
그는 이미 겪었으면서도 또다시 함께하게 될 그 시간을 그리며 스스로 운이 좋다며 말하고 있었다.
헤아릴 수도 없이 그 커다란 마음에 은영은 다시금 그의 사랑을 느낄 수밖에 없어 울컥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플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다시 혼자 늙어 갈 테다.
언젠간 또 그는 혼자가 되어 저를 기다리게 될 것이었다.
그렇지만 미리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만난 그와의 지금이 너무도 소중했다.
후회하지 않게 다음에는 더 빨리 기억을 되찾아 그에게 돌아오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함께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런 다짐을 하자 마침 무언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탄. 부탁이 있어요.”
* * *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은영은 입은 다물지 못했다.
“……하나도 변한 게 없네.”
꿈속에서 보았던 정원은 그녀가 마지막으로 기억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정원이 보고 싶다는 제 부탁에 탄이 대공성에 있던 모두를 성 밖으로 내보내어 미안했지만 후회되지는 않았다.
이곳은 우리가 처음 북부에 와서 손수 가꾸었던, 우리의 시간이 가장 많이 녹아 있는 곳이었다.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는데 정원만큼은 세월이 흐르지 않은 것처럼 그대로였다.
잔가지 하나 허투루 난 것 없이 깨끗하게 잘려 있고 무성한 잡초 따위도 보이지 않는 정원.
은영의 눈앞에 그가 정원을 가꾸는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언젠간 찾아올 그녀를 기다리며 삐쭉 튀어나온 잔가지들을 쳐 내고 어김없이 생겨나는 잡초들을 또 뽑고 물을 주는 모습들이.
“…….”
탄은 다시 정원에 서 있게 된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감회가 새로운지 상상하기만 했던 모습을 직접 겪은 눈엔 벅찬 감정이 그려져 있었다.
“당신이 지금까지 관리한 거죠? 혼자서.”
은영이 얼른 고개를 돌려 탄을 보았다.
할머니가 되어 그와 자주 찾았던 르웬 나무 아래에 벤치가 여전히 놓여 있는 것까지.
변함없는 모습은 그녀를 예전의 그 시절로 데려다 놓았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추억들이 소중했다.
“우리의 정원이니까.”
그가 대답했다.
그녀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더 깨달았다. 우리는 언제나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그러니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탄.”
몇 걸음 떨어져 있던 탄에게 다가간 그녀는 손을 뻗었다.
여전히 반지가 끼워진, 단 한 번도 빼지 않았을 그의 손을 잡아 들었다.
여전한 모습의 반지를 매만지며 눈시울을 붉히던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결혼해요, 우리.”
“……뭐?”
그녀의 행동과 맞춰 오는 시선을 다정히 바라보던 탄이 순간 당황했다.
당연히 언젠간 하게 될 수순이라 생각했으나 이렇게 빨리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이제 단 1초도 당신을 혼자 둘 수 없어요.”
은영은 확고했다.
따로 흐르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가 더 혼자 있을 시간이 너무도 아팠다.
“결혼해 줘요, 나랑.”
“은영아.”
“나랑 같이 살아 줘요. 내가 행복하게 해 줄게.”
“…….”
“사랑해요. 이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내가 다시 당신을 찾을 미래에도.”
“하, 하하하.”
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에 서서 그 어느 때보다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고백하는 그녀를 보며 탄은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의 시린 기다림을 보상받은 것처럼 가슴 안이 뜨겁게 일렁였다.
흘러넘치는 마음에 손이 저릴 정도였다.
그는 생각했다.
이 순간을 위해 누구는 미련하다 지독하다 말하는 기나긴 시간을 기다려 온 거라고.
“사랑해, 사랑해.”
어느새 그녀를 와락 껴안은 채 그가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참아 왔던 마음을 다 내보이기로 한 건지 끊임없이 그녀에게 사랑한다 속삭였다.
말하고 말해도 사랑이라는 말은 그 마음의 가치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말하면 말할수록 더욱더 선명해지는 그녀를 향한 사랑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탄은 마음 같아선 제 발로 자신을 다시 찾아온, 사랑을 말하는 그녀를 당장 잡아다 곁에 가둬 놓고 누구도 볼 수 없게 꼭꼭 숨겨 놓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새로 태어난 그녀에겐 가족이 있었다.
그녀가 지금의 가족을 얼마나 아끼는지 그들의 곁에서 얼마큼 행복했는지 두 눈으로 지켜봐 왔기에 잘 알았다.
그러니 아직은 그 시간을 빼앗고 싶지가 않았다. 후에 그녀가 후회하지 않도록.
“시간은 많아. 그러니까 천천히. 서두르지 않아도 돼.”
괜찮다며 달래듯 말하는 그의 말에 품에 안긴 은영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결연한 눈을 빛내고 있을 뿐.
* * *
다음 날.
“…….”
답지 않게 놀란 얼굴로 탄이 얼른 은영을 바라보았다.
태연하게 이 상황을 주도한 은영은 방긋 웃고 있었다.
재회를 한 어제.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자고 예쁘게 입고 오라는 말에 탄은 당연히 차려입고 그녀가 머물고 있는 호텔로 데리러 왔다.
한데 이게 무슨…….
“아버지, 어머니. 이 사람이에요. 제가 결혼할 사람.”
은영은 태연하게 옆에 서 있는 중년의 남녀에게 그를 소개했다.
그들도 처음 듣는 얘기에 입을 떡 벌린 채 탄을 보고 있었다.
“탄. 소개할게요. 저희 아버지 어머니예요.”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이번엔 부모님에게 그를 소개했다.
예고도 없이 상견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