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6)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6)화(16/162)
<16화>
“네놈이 감히.”
잔뜩 힘을 준 이안의 턱이 부르르 떨렸다. 이딴 모멸감은 처음이었다.
어느 무리에 속해 있어도 큰 키를 자랑하던 이안이었다.
언제나 우러러보는 것은 다른 이들이었다. 자신이 아니라.
그런데 이놈은 뭔데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얼굴로 저를 내려다본단 말인가.
“감히 누구 앞에서!”
“얘기 좀 하지?”
남자는 불같이 성질을 내는 이안의 어깨를 밀치고 들어오더니 셀로니아의 앞에 섰다.
대놓고 무시당한 이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당장 이리……!”
“그만. 더는 제 손님한테 무례하게 굴지 마세요.”
조마조마한 마음에 얼어붙어 있던 셀로니아는 바로 정신을 차리곤 이안을 향해 싸늘하게 말했다.
이 남자는 어찌 됐든 자신을 구해 준 은인으로서 공작저에 머물고 있는 거니 귀빈이었다. 그런 귀빈에게 이안의 행동은 상당한 무례였다.
더군다나 이안은 마왕을 알아보지 못하고 길길이 날뛰었다.
이로써 그의 본모습을 본 건 저뿐이었다는 게 확실시되었다.
“……뭐? 영애의 손님이라고?”
혼자서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부들거리던 이안의 얼굴에 순간 알 수 없는 파문이 일었다.
“누구지?”
“그건 당신이 알 거 없으니 그만 행패 부리고 가세요. 엘라! 손님 가신다.”
셀로니아의 명에 엘라가 착실히 열려 있던 문을 닫았다.
쾅!
이안의 앞에서 문이 닫혔다.
열 받은 그가 다시 문고리를 잡으려 했으나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이 막아섰다.
“공녀님과의 대면은 끝나셨습니다.”
“손 치워라.”
이안이 으르렁거리며 경고를 날렸으나 기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베스인 공작님께서 귀가하셨습니다.”
이안이 결국 주먹을 높게 쳐 올리려던 순간, 갤로웨이의 귀가 소식이 복도를 울렸다.
“하. 집주인부터 하인까지 아주 제대로 엉망진창이군.”
치졸하게도 주먹을 내린 그는 기사들의 어깨를 밀치며 거친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를 걸으면서도 분한지 그의 잇새로 으득 이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게다가 그 남자. 산만한 외간 놈은 무척이나 거슬렸다.
자신도 레예프도 맥라이언도 아닌 처음 보는 낯선 남자.
그 되바라진 놈과 셀로니아가 함께 서 있는 장면이 잊히지가 않았다.
어느새 그는 주먹을 꽉 말아 쥐고 있었다.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는 짜증을 막을 길이 없었다.
* * *
이안이 나가고 셀로니아는 곁에선 남자를 힐끗 보며 자리에 앉았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불쑥불쑥 들이닥치는 게 아주 짜증이 났다.
“노크는 기본인 거 몰라요?”
“모른다.”
뾰족한 힐난에도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답하며 제 앞에 마주 앉았다.
아주 기억 없는 게 벼슬이었다.
그녀는 이번에도 차를 내오라 명하지 않았다. 딱히 이 남자와도 오래 있을 생각이 아니었기에.
이쯤 되니 온 우주가 자신의 휴식을 방해하는 느낌이었다.
이럴 거면 깨어나지 않는데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어…….
몰려오는 두통에 셀로니아가 머리를 꾹꾹 누르고 있자, 허공을 가르며 그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싫어하는 놈인가?”
그녀가 시선을 들자, 붉은 눈동자가 자신을 빤히 응시하고 있는 게 보였다.
자신의 속내를 파악하려는 건지 마주한 그의 눈이 예리한 빛을 띠었다.
“죽여 줄까?”
“…….”
“원한다면 죽여 줄 수 있다.”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휘어지는 입술과 다르게 튀어나온 음성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비인간적이기까지.
셀로니아는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다.
기억은 없어도 그 성정은 변함없는 건지 그는 사람 죽인다는 소리를 무슨 인사처럼 해 대고 있었다.
“대신 네가 알고 있는 나에 대해 말해. 그럼 원하는 대로 처리해 주지.”
“됐어요.”
얼토당토않은 말을 가뿐히 무시하며 셀로니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나 조건부일 줄 알았다. 애초에 승낙할 생각도 없었지만.
“그래. 언제까지 버티나 지켜보지.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얘기하고.”
그가 밉살스럽게 킬킬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자연스럽게 저택 여기저기를 마음대로 쏘다니는 그를 보며 셀로니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주 지네 집이 따로 없었다.
* * *
“레예프 님!”
그레이스가 급히 저택을 나와 정원을 향해 뛰어왔다.
나무 위에 앉아 따사로운 햇살을 받고 있던 레예프가 그녀의 부름에 단숨에 땅 위로 착지했다.
“그레이스 님, 다치면 어쩌시려고 뛰어오시는 겁니까. 부르시면 제가 갈 것인데…….”
레예프가 한달음에 그레이스 앞에 와서 멈춰 섰다. 그러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살폈다.
혹시 발목을 삐끗하진 않았는지, 추워하진 않는지.
그레이스를 향한 보라색 눈길이 섬세하기만 했다.
“오늘인 거죠?”
“맞습니다.”
“언제 출발하시나요?”
“이제 곧 가야 합니다.”
레예프는 그레이스의 묻는 말에 착실히 대답하며 허리를 굽혔다.
뛰어오느라 그녀의 구두코에 묻은 흙을 털어 주기 위하여.
다정한 손길이 그녀에게 먼지 한 톨 묻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꼼꼼히 흙을 털어 냈다.
“의례 기간 동안 단식해야 하잖아요. 이거 파운드 케이크예요. 레예프 님이 좋아하는 다즐링 잎을 넣어 만들었어요. 나오면 허기질 테니 챙겨 드세요.”
그레이스가 뿌듯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킨 레예프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운 두 손에는 예쁘게 포장된 상자가 들려 있었다.
오늘은 레예프가 신성 의례에 참여하기 위해 신전에 가는 날이었다.
1년에 한 번 성기사들을 위한 의식이 치러졌는데, 의식은 15일 동안 지속되었다.
그것은 1년 동안 속세에서 겪은 고단함과 고민을 지워 주는 정화 의식이었으며, 순결과 고결을 되찾기 위한 의례였다.
의식 기간에는 모든 것을 비워 내야만 했으므로 식수 말고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레예프가 꽤 놀란 얼굴로 그레이스와 상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녀와는 승전식 때 나눈 짧은 대화에서 의식 기간에는 단식을 해야 한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저 별 의미 없이 지나가는 말로 했을 뿐이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챙기다니.
레예프의 가슴이 콩닥콩닥 뜀과 동시에 감동으로 손끝이 찌르르 울렸다.
“그럼요. 단식 후 갑자기 움직이면 어지러울 수 있으니까 꼭 드세요. 알았죠?”
“네. 감사합니다.”
그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숨기지 못했다.
레예프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연한 분홍색의 상자를 건네받았다.
상자를 소중히 챙기는 그 모습은 흡사 아주 귀중한 보물을 챙기는 것처럼 애지중지였다.
“꼭이에요! 꼭 하나라도 드셔야 해요.”
그레이스는 레예프에게 재차 당부했다.
“물론입니다.”
레예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챙겨 주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자꾸만 주책맞게 실실 웃음이 났다.
“약속해요.”
그래도 믿지 못하겠는지 그레이스가 쫙 편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새끼손가락에 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네. 약속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겠다는 듯 그의 보라색 눈동자가 단단했다.
그것을 본 그레이스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만족한 얼굴로 손을 내렸다.
“잘 다녀와요.”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레예프는 그레이스의 배웅을 받으며 상자를 꼬옥 쥐고 신전으로 향했다.
차가운 가을바람에 담긴 낙엽 향이 무척 상쾌한 게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