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60)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60)화(160/162)
<외전Ⅱ 8화>
은영은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 신선한 표정으로 탄을 보고 있었다.
그는 꽤 난감한 표정으로 경직되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처음 있는 일에 조금 긴장한 듯했다.
아무래도 저번 생에선 부모님이 없었기에 누구에게 결혼 허락을 맡는다든가 웃어른께 정식으로 인사드릴 일이 없었다.
그래서 반대에 부딪힐 일도 누군가의 눈치를 볼 일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겐 아버지 어머니가 있었다.
심지어 어떻게 알고 온 건지 오라버니 2명까지 합세하여 그녀의 온 가족이 부담스럽게 탄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
“허시브룩 대공님의 내척이라 하셨나요, 카르시크 후작님.”
“그렇다.”
“레니아와 만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으셨는데 결혼은 너무 이르다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진지한 얼굴로 질문하는 아버지를 보며 은영은 눈이 동그래졌다.
만나고 있는걸 어찌 알고 계셨지?
그리고 결혼하라며 그녀의 동의 없이 선 자리까지 주선해 주신 아버지가 할 말은 아니었기에 나서려는데 손을 감싸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옆에 앉은 탄이 손을 잡아 온 것이었다.
시선을 돌리니 그가 작게 고개를 젓고 있었다.
괜찮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족에게 정확히 자신의 감정을 전해야 했다.
예고도 없이 닥친 일에 다들 혼란스러울 테니까.
자신의 선택이 가벼운 결정이 아니고 진심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고집 부린 건 저예요. 결혼하자 먼저 말한 것도 저고요.”
“레아.”
“이 사람은 제가 좀 더 가족과 함께하길 바랐어요. 그런데 내가 이 사람과 하루라도 더 빨리 같이 있고 싶어서 고집부리는 거예요.”
“…….”
그녀의 아버지이자 아스텔 백작은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까지 후작을 두둔하는 딸이 이해가 되지 않다가도 처음 보는 모습이라 놀라웠다.
지금까지 이성에게 먼저 관심을 보인 적 없던 아이였다. 오히려 너무 관심이 없어 주위에서 더 난리였다.
그러던 딸이 갑자기 만나는 사람이 생긴 것도 모자라 며칠 만에 결혼을 한다고 하니 뒷골이 당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지금 그의 딸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가족이기에, 아버지라서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 있는 것인지 그의 딸은 어릴 적부터 이따금 울적해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어린애답지 않게 딸의 얼굴엔 너무도 쓸쓸한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본인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아주 어릴 땐 이상한 말을 하기도 했었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아빠. 나는 그 사람한테 가야 해. 늦지 않게.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게.’
‘그러니까 어느 날 내가 떠나더라도 슬퍼하지 마. 나는 더 행복해지려 가는 거야.’
꿈을 꾸었을까? 아니면 자기 전에 종종 들려 주었던 동화 속 사랑 얘기가 감명 깊었던 걸까.
백작은 그저 딸이 다른 사람보다 감수성이 남다르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탄을 보자 느꼈다.
아니, 탄을 보는 레아의 모습을 보며 알았다.
그때 그 말이 사실이었구나. 그냥 했던 말이 아니었구나.
딸이 말했던, 기다리고 있다던 남자가 저 남자라는 것을.
그냥 직감처럼 본능처럼 알 수 있었다.
그는 레아의 아버지였으니까.
“레니아. 넌 가만히 있거라. 나는 후작님께 물어보았다.”
백작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럴 때일수록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했다. 딸이 그토록 원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남자인지 알아야 하니까.
“아버지, 이 사람은…….”
“당장 결혼을 하겠다는 게 아니다.”
“탄!”
은영이 목소리를 높이며 탄을 보았다.
탄은 아랑곳하지 않고 백작에게 시선을 둔 채로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나는 레아가 아직 좀 더 그대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으면 한다. 시간은 유한하고 짧으니 내가 줄 수 있는 것 외에도 다른 무언가가 그녀에게 행복으로 기억되면 좋겠으니까.”
“…….”
“더 다양한 행복을 느끼길 바라. 해서 후에 후회 없도록.”
탄은 이전에 그녀를 한 번 보냈을 때 깨달았다.
단 한 사람만 담아 낼 수 있는 공간밖에 없는 그의 마음과 달리 그녀의 마음의 공간은 넓었다.
해서 그와 달리 그녀에겐 소중한 것이 많았다.
자식도, 엘라도, 유진도, 그와 함께 가꾼 정원도, 결혼반지도, 같이 만든 보잘것없는 벤치까지도.
눈을 감는 순간에 그녀가 추억하는 행복한 기억에는 많은 것들이 존재했다.
거의 둘이서만 여생을 함께했던 게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래서 만약 다음이 있다면 그 생에서 눈을 감을 땐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추억에 더 많이 행복하게 눈을 감기를 바랐다.
탄에게 행복은 그녀 하나뿐이었지만 그녀는 자신 외에 행복이 될 만한 것들이 늘길 바랐다.
그래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그럼 당신은 또 기다려야…….”
“무슨 소리지? 내가 어딜 간다고.”
탄은 슬퍼하는 은영을 보며 웃었다.
“나는 네 곁에 있을 거다. 나는 네 행복을 가장 옆에서 지켜볼 거야. 평생.”
네가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언제나.
“탄…….”
결국 눈물이 고여 버린 은영은 팔을 뻗어 그를 와락 껴안았다. 탄이 하하 웃으며 그녀의 뒷머리를 끌어안았다.
“…….”
“…….”
순간 앞에 앉아 있던 가족들은 갑자기 자기들만의 세상에 빠진 두 사람을 보며 벙 쪘다. 두 사람에게서 그들은 완전히 잊혀 있었다.
“……크흠! 흠흠!”
“야! 안 떨어져? 너 지금 부모님이 다 보는 데서 뭐 하는 거야!”
얼굴을 붉힌 백작이 결국 참다못해 헛기침을하자 정신을 차린 둘째 오라비인 워튼이 언성을 높였다.
“뭐 어때. 결혼하면 자주 보게 될 건데.”
은영은 투덜거리면서 탄의 품에서 떨어졌다. 아쉬움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저저저! 어휴, 저걸 진짜…….”
“두 사람의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그래도 결혼은 이릅니다.”
워튼이 어이가 없어 어버버 거릴 때 백작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아버지.”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도 반대를 하시는 건가 싶어 은영이 초조한 얼굴로 아버지를 불렀다.
“그래도 뜻은 알겠으니 우리도 진지하게 두 사람의 만남을 지켜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우리 레아.”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탄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당장 결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것은 허락이었다.
탄은 말 대신 백작 부부에게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갖추었다.
무사히 고비를 넘긴 것 같아 그녀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려는 순간.
“저 좀 보시죠, 후작님.”
저 인간은 또 왜 저래?
둘째 오라버니인 워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꼭 이렇게까지 해야 겠어? 후회할 텐데.”
“후회는 무슨. 자고로 남자는 자기 여자 하나는 지킬 힘은 있어야 한다고.”
그녀의 말에 워튼이 콧방귀를 끼며 검을 고쳐잡았다.
황실 기사단에 부단장인 워튼이 탄에게 검을 쓸 수 있다면 맞대어 보자고 정식으로 요청한 것이었다.
“부모님도 허락했는데 오라버니가 왜 이래?”
“야!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키우긴 뭘 키워. 부모님이랑 첫째 오라버니가 날 키웠지. 오라버니는 내 장난감 내 간식 다 뺏어 가고 놀렸던 거 몰라?”
기가 막혀 은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쨌든! 나 하나 못 이겨 놓고 어떻게 널 지키면서 산다는 거지? 난 허락 못 해! 아니 안 해!”
단단히 화가 난 워튼이 소리치며 검을 들고선 호텔에 마련되어 있는 연무장으로 들어갔다.
“나 원 참…….”
“걱정되지 않아?”
조용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첫째 오라버니인 존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슬쩍 존을 올려다보다 이내 연무장에 서 있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두었다.
“얻어맞을까 봐 걱정이지.”
“누가? 후작님이?”
“무슨 소리야? 오라버니지.”
은영은 탄에게 일부러 져줄 필요 없다고 얘기해 둔 상태였다.
그의 힘을 잘 알고 얼마나 검을 잘 다루는지도 알았기에 그냥 워튼이 걱정되었다.
나름 어린 나이에 황실 기사단의 부단장이 된 것에 자부심을 높게 갖고 있는 사람인데, 탄한테 왕창 깨지면 한동안 식음을 전폐할지도 모르겠다.
“레아. 후작님이 너에게 어떤 사람이야?”
그때 조근조근 물어 오는 질문에 그녀의 고개가 다시 존에게로 향하였다.
“어떤 사람이길래 네가 이렇게 단단해진 걸까.”
어릴 때부터 언제나 다정하게 늘 자신을 생각해 주고 위해 주었다는 것을 알기에 은영은 존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오라버니. 이런 얘기 치기 어린 감정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한 템포 쉬고 숨을 고른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야.”
“…….”
그녀를 보던 존의 눈빛이 흔들렸다.
소중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에겐 확실히 눈에 보였다.
내내 비어 있던 자신의 여동생의 마음 속이 이제는 가득 채워지다 못해 흘러넘치고 있다는 것을.
그 누구로 하여금.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나는 그 사람 곁에 있으면 언제든 행복할 테니까.”
활짝 핀 꽃처럼 웃는 그 얼굴에 존은 그저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다정한 손길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끝났네.”
존과 서로 마주 보며 웃던 은영이 다시 연무장을 확인했을 땐 모든 상황은 끝나 있었다.
탄이 아주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은 채 그녀에게 거침없이 걸어오고 있었다.
“역시 내 남자.”
은영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밝게 웃으며 그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러다 문득 걱정이 되어 연무장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는 워튼을 보았다.
“저 인간 표정이 왜 저래?”
상심했나 싶었는데 걱정과 달리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반짝이다 못해 경의가 담긴 워튼의 눈이 탄을 쫓고 있었다.
탄의 추종자가 하나 생기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