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61)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61)화(161/162)
<외전Ⅱ 9화>
평화롭고 행복한 날들이었다.
“그만 좀 괴롭혀!”
“괴롭히긴 누가 괴롭혔다고! 수련이다, 수련. 하기야 네가 뭘 알겠냐 기사도 정신을.”
워튼이 업신거리며 검을 들고 연무장으로 나갔다.
“후작님!”
반가운 친구를 부르듯 워튼이 탄을 부르며 쫄래쫄래 다가갔다.
“허. 피곤하다면서 휴무면 집에 있지 왜 여기까지 내려와서는…….”
기가 찼지만 은영의 입가엔 미소가 맺혔다.
저 멀리서 워튼을 맞이하는 탄의 표정이 한결 편안하고 좋아 보였으니까.
워튼이 수련한다고 탄의 시간을 뺏는 바람에 데이트할 시간이 줄어 드는 건 짜증은 났지만.
탄과 재회하고 남부로 내려온 지 어언 5개월이 흘렀다.
탄은 데릴사위처럼 그녀의 저택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다. 아직 결혼을 할 수 없다면 함께 살기라도 하자는 그녀의 제안을 가족들도 그도 받아들인 것이었다.
“경은 정말 후작님을 좋아한다니까.”
오목했던 배가 어느 정도 부풀어 오른 엔리케가 웃으며 다가왔다.
은영은 당연하게 의자를 끌어와 엔리케 옆에 놓아 주었다.
“레아. 결혼식 준비는 잘 되어 가?”
엔리케의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탄과 함께 산 지 5개월. 드디어 부모님의 허락과 함께 두 사람은 결혼식 준비에 한창이었다.
함께 살 집도 벌써 알아보고 구매하였다.
본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저택은 크진 않지만 정원이 무척이나 아름답고 넓은 곳이었다.
다시 둘만의 정원을 새로 가꿔나가기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레아 네가 웨딩드레스 입어 본 날 말이야. 나 정말 놀랐었는데. 후작님의 그런 표정 처음 봤잖아.”
엔리케가 그날을 떠올리며 쿡쿡 웃었다.
은영도 자연스레 그때가 떠올랐다.
결혼이 처음도 아니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처음 본 것도 아니었기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탄의 행동은 뜻밖이었다.
드레스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본 탄은 지난 생보다 이번에 더 감격한 표정이었다.
눈시울까지 붉어지는 게 여차하면 울 것 같았다.
같이 있던 부모님도 당황하였다.
표정도 무뚝뚝하고 워낙 그녀 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입도 잘 열지 않던 그가 그런 반응이었으니.
“레아. 나는 너와 후작님을 보면 진짜로 운명이 있다는 걸 느껴.”
“운명…….”
은영은 그 단어를 곱씹어 보았다.
운명이라.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악연으로 만나 인연이 되어 환생한 이후로도 이어진 마음을 설명할 단어는 운명밖에 없을 테니.
“오늘도 후작님의 승리네.”
엔리케의 말에 은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탄!”
그녀는 물을 챙겨 들고 연무장 안으로 들어갔다.
넘어진 워튼을 일으켜 준 탄은 다가온 그녀를 보며 웃어 보였다.
그가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휘감아 안았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보송보송한 얼굴을 숙인 그는 그녀의 둥근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저 인간이 자꾸 귀찮게 굴어서 미안해요.”
“재밌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가 건네는 물을 받아 꿀꺽꿀꺽 삼켰다.
“하아, 하아……. 다음에도 또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숨 하나 차지 않고 멀쩡한 탄과 달리 숨을 헐떡이며 워튼이 말했다.
“얼마든지.”
“오지 마!”
허락하는 탄과 달리 그의 품에 폭 안긴 은영이 워튼에게 소리쳤다.
“후작님이 허락했거든? 난 간다.”
워튼은 자기 것을 빼앗기기 싫어하는 성난 치와와 같은 여동생을 골려주며 자리를 떴다.
“저 인간 일부러 저러는 거야. 괜히 우리 방해하려고.”
멀어지는 워튼의 뒤통수를 대고 댓 발 나온 입으로 툴툴거리는 그녀를 보며 탄이 행복하다는 듯 웃었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 * *
“탄. 내일 가기로 했던 부티크 말인데요…….”
“…….”
화장대에 앉아 머리를 빗던 은영은 거울에 비친 탄의 모습에 슬쩍 입을 다물었다.
방에 놓인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탄이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탄이 앉아 있는 소파로 다가갔다.
그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고개를 들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을 감고 있는 탄의 얼굴은 더없이 평안해 보였다.
지난 생에서 그는 종종 잠이 들곤 했지만 그건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하루에 몇 시간을 자는 인간과 달리 고작 몇 분이 다였다.
한데 요즘 들어 부쩍 그의 잠이 늘었다.
몇 분이 아닌 몇십 분 동안 잠이 드는 것도 모자라 엊그제는 2시간을 넘게 잠들었다.
게다가 오늘처럼 갑자기 스르르 잠이 드는 일도 종종 있었다.
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지만 늘 그가 힘들까 피곤할까 걱정이 되었기에 이렇게 편안히 잠든 모습을 보는 건 좋았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원래 그는 잠을 자지 않으니까.
부디 별일이 아니길 바라면서 그녀는 담요를 끌어와 그의 몸에 덮어 주었다.
“잘 자요.”
잠결에도 뺨에 닿은 온기를 느낀 건지 그의 입꼬리가 스르르 올라갔다.
* * *
“나 참. 언제 시작하는 거야.”
자리에 착석해 있던 맥라이언이 지루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가족끼리만 조촐히 올리겠다는 결혼식에 당당히 초대받은 그는 하객으로 와 있었다.
아름답게 꾸며진 백작저 정원 한가운데 깔린 웨딩 로드는 아직 휑하니 비어 있었다.
식을 시작하겠다 얘기했으면서 아직 주인공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으니까.
“하여간에 번거롭군. 결혼할 때마다 이렇게 식을 올릴 건지.”
맥라이언은 그렇게 툴툴거리면서도 두 사람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저번 결혼식에선 초대도 못 받았는데 이번엔 초대를 받았으니.
“인내심을 기르셔요.”
누가 어른인지 헷갈릴 정도로 의젓한 목소리가 옆에서 흘러나왔다.
예쁘게 드레스를 갖춰 입은 제이니가 높은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신이 나는 지 음음음 하며 콧소리를 내는 건 영락없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좋아? 네 할아버지가 다시 결혼하는 게?”
“그럼요. 이젠 혼자 그 방에 안 계셔도 되잖아요. 전 좋아요. 유진도 분명 좋아할 거예요.”
다 알고서 말하는 건지 뭔지.
맥라이언은 픽 웃으며 제이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였다.
하라는 결혼식은 시작하지 않고 왜인지 모르게 소란스러웠다.
결혼식 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던 백작가의 사용인들이 다들 수군수군거리더니 사색이 되어 저택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너 여기 꼼짝 말고 있어라.”
이상한 기운을 느낀 맥라이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도, 저도 갈래요!”
“거기 있어!”
따라오려는 제이니를 막으며 그는 사용인들을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어, 어떡해요…….”
“결혼식 날 이게 무슨…….”
“의원은! 어서 의원님을 불러와!”
저택 안은 더 소란스러웠다.
다들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못한 채 어느 방 앞에 모여 있었다. 그곳은 오늘 신랑의 대기실로 지정한 방이었다.
“비켜, 비켜!”
맥라이언은 길을 막는 사용인들을 헤치며 빠르게 방 안으로 들어갔다.
“탄, 탄……!”
경직되어 버린 그의 눈이 커다래졌다.
“탄! 눈 좀 떠 봐요! 탄!”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신부가 쓰러진 신랑을 안고서 울부짖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탄이 쓰러졌다.
감긴 그의 눈은 떠지지 않은 채 무심히 시간은 흘러 어느덧 1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