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62)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62)화(162/162)
<외전Ⅱ 10화>
“후우, 됐다.”
손에 쥐가 날 정도로 조심조심 가위질을 하던 은영이 이제야 안도하며 손을 떼었다.
“많이 간지러운가 봐요.”
“그러게. 인상을 찌푸렸네.”
탄의 미간이 미세하게 주름진 걸 본 그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물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가려져 있던 그의 눈썹이 드러났고 잘라 낸 머리카락이 물수건에 의해 닦여 나갔다.
무심하게 자라난 그의 머리카락을 잘라 주기를 몇 번.
이제 좀 능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혹시라도 상처를 낼까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오늘도 여전히 주무시고 있네요. 치……. 일부러 요즘 가장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디저트 집에서 초콜릿도 사 왔는데.”
제이니가 넓은 침대 끄트머리에 턱을 괸 채로 실망한 눈을 내렸다.
그 마음이 고맙고도 미안해서 은영은 제이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탄은 단 걸 싫어한다니까.”
“아! 싫어하니까 주려고 하는 걸 알면 싫어서 깨지 않을까요?”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처럼 제이니가 눈을 반짝이며 얼굴을 들었다.
딱 그 나이 때 어린아이들이 할 수 있는 발상이었다.
“그럼 단 냄새가 풍기도록 옆에 놔둘까?”
“좋아요! 가져올게요!”
신이 난 제이니가 초콜릿 상자를 올려 두었던 테이블로 도도도 뛰어갔다.
방 안에 생기를 가져다주는 제이니의 행동에 절로 웃음을 짓던 은영은 다시금 시선을 돌려 침대에 누워 있는 그를 보았다.
삐뚤빼뚤 엉성하게 잘린 앞머리 아래로 가지런한 눈썹은 미동조차 없었다.
감겨 있는 눈꺼풀은 1년째 그의 붉은 눈동자를 가리고 있었다.
결혼식 날 탄이 쓰러지고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날은 정말 어떤 정신으로 그의 옆에 있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너무 울어서 두 번이나 탈진으로 실신을 했다.
눈을 떴을 땐 이미 의원이 다녀간 뒤였다.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인지라…….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모든 게 정상입니다. 그저 잠이 든 것 같습니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이해되지 않을 의원의 진단이었다.
몇 번이나 더 유명한 의원들을 불러왔지만 하나같이 똑같은 진단을 내렸다.
그제야 그녀는 전에 자신이 겪었던 일을 탄이 겪고 있는 것이라는 걸 실감했다.
하지만 의문이 드는 건 그녀는 게일이 마지막 발악으로 했던 흑마법으로 인해 쓰려졌지만 탄은 아무런 전조 증상도 없이 그냥 쓰러졌다는 것이었다.
그저 자주 잠이 드는 것 말고는 특별할 게 없었기에 갑작스러운 탄의 쓰러짐은 그녀를 절망에 빠뜨렸다.
탄이 쓰러지고 3개월은 백작저에 있었다.
그녀가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것도 있고 해서 가족이 함께 그의 곁을 지켜 주었다.
식음을 전폐하며 오직 탄의 곁에만 머물면서 폐인처럼 지내던 어느 날. 은영은 정신을 차렸다.
탄이 쓰러진 지 4개월 만에.
더는 이런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나중에 탄이 깨어났을 때, 자신을 보고서 슬퍼하지 않게, 걱정하지 않게 단단해져야만 했다.
그가 자신에게 그러했듯이.
정신을 차린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탄을 데리고 함께 살려고 했던 저택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레아. 우리와 함께 있는 게 어떻겠느냐.’
‘너 혼자선 힘들어. 우리가 같이 있어 주는 게 후작님에게도 너에게도 도움이 될 거야.’
부모님과 오라버니들은 백작저에서 함께 있는게 좋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완강히 거부했다.
그녀가 둘만의 보금자리를 기대했듯이 그도 그 공간을 기다려 왔다는 걸 잘 알았다. 조금이라도 그가 편안할 수 있는 곳에 있게 해 주고 싶었다.
탄과 저택으로 들어온 뒤 은영은 단 한 번도 식사를 거르지 않았다. 시간에 맞춰 매일 산책도 잊지 않았다.
오래 그의 곁에 있으려면 건강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그저 그간 밀렸던 잠을 몰아서 자고 있는 거면 좋겠다.
얼마나 걸리던 좋으니 잠을 다 자고 나면 그땐 잘 잤다고 하며 일어나기를.
예전처럼 다정한 붉은 눈동자에 자신을 담은 채로 웃어 주길.
‘은영아.’ 하고 오직 그만이 부를 수 있는 제 이름을 불러 주길.
“빨리 깨어나요. 삼촌.”
어느새 다가온 제이니가 달콤한 초콜릿이 가득 든 상자를 열어 둔 채 탄의 베게 옆에 내려 두며 속삭였다.
달콤하고 진한 향기가 주위에 퍼져 들었다.
은영은 조용히 잠이 든 그의 얼굴을 보며 가지런히 이불 위에 올려진 뼈마디가 툭툭 튀어나온 거친 손을 잡았다.
그가 지금 꾸고 있는 꿈도 이처럼 달콤한 꿈이기를.
달콤한 꿈을 꾸다 초콜릿이 녹아 사라지듯 언젠간 꿈에서 깨어나기를.
자신을 기다려 줬던 것처럼 얼만큼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다릴 자신이 있으니 언제든 좋으니 제발 무사히만 눈을 떠 주기를.
부디 그래 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 * *
초콜릿 향이 났다.
단내에 탄은 절로 인상을 썼다.
주위에 분명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어디서 나는 건지.
그는 깊게 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온통 암흑이었다.
돌아가야 하는데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걸어도 걸어도 출구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가 가진 어떤 능력도 이 공간 안에선 통하지 않았다.
이건 죽은 걸까?
영생을 살 거라 생각하진 않았으나 이렇게 갑자기?
놀랐을 텐데, 걱정할 텐데.
눈을 감는 순간 귓가에 이명처럼 들렸던 은영의 목소리가 내내 그의 가슴에 얹혀 있었다.
하필이면 결혼식 날이라니. 좋은 추억만 행복한 기억들만 남겨 주고 싶었는데…….
“젠장.”
그는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으며 눈을 감은 건지 뜬 건지도 분간이 되지 않는 공간에 뒷머리를 기대었다.
제발 많이 울지 않기를 바랐다. 자신 때문에 너무 아파하지 않길 바랐다.
어쩌면 남들과 같은 시간을 사는 그녀를 제 곁에 잡아 두려고 했던 것부터 죄였는지도 모르겠다.
해서 이렇게 벌을 받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형벌처럼 갇힌 시간의 굴레 안에서 그는 은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어 간다는 걸 늙지 않는 그가 알 리가 없었으니까.
아무리 그녀를 따라 나이가 든 외모로 모습을 바꾼다 해도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늙는다는 게 무엇인지, 하루하루의 시간이 짧아져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해진다는 게, 오늘의 노을이 내일과는 또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는 시간의 흐름이 무엇인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사랑하지만 그는 그녀의 완전한 이해자가 될 수 없었다.
나이가 들지 않는 자신을 보며 이따금씩 서글픈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종종 그가 알지 못하는 외로움을 느끼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위로가 되는 말을 해 줄 수가 없었다.
위로와 이해는 공감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었고, 그는 인간과 다른 시간에 살고 있었기에 본질적으로 겪어 보지 못한 흐름에 공감해 줄 수가 없었다.
그것이 내내 가슴에 박혀 있었다.
그녀가 죽는 그 순간에도 미안했다. 평범하지 않은 자신을 만나 느끼지 않아도 될 외로움을 느끼게 만든 것 같아서.
그래서 그는 언젠간 다시 찾아올 그녀를 기다리면서도 열망했다.
부디 다음이 있다면 그때는 그녀를 덜 외롭게 만들 수 있기를. 그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를.
그러니까.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느냐.”
라는 누가 말했는지 알 수 없는 질문과 함께 암흑이 걷히고 그의 앞에 뜬금없이 두 개의 문이 나타난 지금 이 순간.
“후회? 나는 이 순간만을 바랐다.”
너와 함께 늙어 갈 수 있는 시간을 얻기만을.
너의 옆에서 잠이 들고 잠에서 깬 새벽에 자신의 곁에 평온히 잠든 너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늘 맞잡고 있는 손이 하루하루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같이 그리고 조금씩 주름져 가기를.
탄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침없이 어느 한 문으로 걸어갔다.
지금 선택한 이 문으로 나간다면 가지고 있던 모든 능력을 잃는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망설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녀와 같아지기를 평생을 바라 왔는데.
탄은 미련 하나 없이 웃는 얼굴로 문을 열었다.
* * *
1년하고도 다시 또 며칠이 지났다.
“모종은 여기에 둘까요?”
“응. 부탁할게.”
“네. 힘들면 저희에게 말씀해 주세요.”
“아니야. 나 혼자 할 수 있어.”
걱정하는 사용인을 보며 은영은 씩씩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정원을 가꾸고 싶었다.
여름이 찾아온 정원에 꽃을 심기 위해 구해 둔 모종이 주르륵 나열되었다.
은영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홀로 정원의 흙을 고르고 꽃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가꿨다.
하지만 모종을 심지는 않았다.
정원을 가꾸는 건 우리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이었다.
아직 탄과 어떤 꽃을 무슨 나무를 심을지 의논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가 눈을 뜬다면 우리의 정원을 바로 가꿀 수 있게 언제든 준비를 해 두는 것뿐이었다.
씩씩하게 모든 걸 준비해 두어야지. 그가 눈을 떴을 때 오롯이 기뻐할 수 있게.
“으으…….”
그녀는 내내 굽혔던 허리와 무릎에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시야에 들어온 형형색색 꽃의 모종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번에는 부디 정원에 심어지기를.
그때였다.
“……마님!”
“어떡해…….”
그녀를 부르는 소리와 함께 술렁임이 일었다.
눈부신 햇살에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있던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
“배가 고프다는 게 이런 건가?”
“…….”
“손발에 힘이 하나도 없군.”
저벅저벅.
어색하게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햇살 아래 검은 머리카락을 반짝이며 내내 감겨 있다 떠진 눈꺼풀 위로 드러난 붉은 눈동자에 그녀의 모습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침실이 아닌 햇살이 내리쬐고 있는 푸르른 정원 아래서 마주한 그의 얼굴에 놀라 굳어 버렸던 은영의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은영아.”
다시 한번 듣고 싶었던 다정한 목소리에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탄.”
그가 잠든 순간에도 하루에서 몇십 번씩 불렀던 그 이름을 내뱉으며 그녀는 발을 떼었다.
천천히 걸어가다 이내 빨라진 발걸음이 그를 향해 달렸다.
두 사람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품에 끌어안았다.
그녀는 모를 리가 없었다. 그가 변했다는 것을. 이제 더는 외로운 기다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자신과 같은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는 걸 말이다.
그러니 언제나 행복하자.
이번에는 온 마음을 온 생을 다해.
함께 흐르는 우리의 같은 시간 아래.
<외전 최종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