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7)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7)화(17/162)
<17화>
그날 밤.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건지, 생각이 많아 그런 건지 셀로니아는 오늘도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아…….”
야트막한 한숨을 쉬며 침대에 일어났다.
아무래도 이대로 잠을 자긴 글렀으니 답답한 속을 달랠 겸 정원이라도 거닐어야 할 것 같았다.
쌀쌀한 밤 온도에 두꺼운 숄을 챙겨 어깨에 두르고 문을 여니 보초를 서고 있던 기사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게 보였다.
모두가 잠든 자정.
괜히 일거리를 주고 싶지 않아 혼자 조용히 복도를 빠져나왔다.
일정 거리마다 벽에 설치된 마력 등이 비추는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그녀는 오늘 하루 동안 본 마왕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의 태도는 예상 밖이었다.
위협적으로 굴거나 협박할 줄 알았는데, 그저 유령처럼 저택을 떠돌다가 종일 방 안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 안에서 뭘 하고 있는 건진 모르겠으나 듣기론 식사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다.
무슨 꿍꿍이인지.
“역시 위험해.”
어떻게 내쫓으면 좋을지 고민하며 계단을 내려가 정문으로 향하기 위해 몸을 틀었다.
그때였다.
“윽…….”
어디선가 희미하게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흐, 읏…….”
잘못 들었나 의문이 들 찰나 또다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봐도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그녀가 서 있는 바로 옆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을 뿐.
불이 켜진 방은 손님방으로 현재 그 남자가 머물고 있는 방이었다.
그가 종일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있는 그 방.
뭔가 싶은 마음에 머뭇머뭇 방문 앞으로 다가가자 아까보다 조금 더 선명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시 들으니 그 소리는 고통스러워하는 신음에 가까웠다.
신음이라니. 불안함과 동시에 갈등이 들었다.
확인해 봐야 하는 걸까?
고민은 아주 짧았다.
뭔진 모르겠으나 그가 어떤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알아야 했으니까.
이곳은 그녀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그녀의 집이었다.
“이봐요.”
몇 번을 노크해도 대답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셀로니아는 문고리를 돌렸다.
“저기요.”
방문을 열자 환한 빛이 그녀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빛에 적응하기 위해 시린 눈을 깜빡이며 방 안을 확인했다.
“어?”
커다란 샹들리에가 달린 방 안 어디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침대는 누웠던 흔적도 없이 깔끔히 정돈된 상태였고, 테이블 옆에 놓인 소파에도 그는 없었다.
‘분명 소리가 들렸는데.’
게다가 방에 들어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보고받지 않았나.
수상쩍은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으나 우선 남자가 없으니 방을 나가기 위해 등을 돌렸다.
“윽.”
순간, 작은 신음이 그녀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소리가 난 방향은 문이 반쯤 열린 욕실이었다.
욕실?
비장한 얼굴로 주저 없이 발걸음을 떼어 욕실 앞에서 문을 등지고 섰다.
방보다 더 사적인 공간이라 문을 더 열거나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이봐요.”
“…….”
“무슨 일이에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답 없으면 확인해요? 진짜 해요?”
여러 번 경고해도 반응이 없었다.
셀로니아는 하는 수 없이 몸을 돌렸다.
그 순간, 그녀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다래졌다.
이게 무슨 경우인지 그는 헐벗고 있었다.
그녀가 너무 놀라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의도치 않게 빤히 들여다보느라 금방 알 수 있었다.
왜 저 남자가 밤중에 상의를 탈의한 채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구는지.
그는 욕조에 등을 기댄 채 헐떡이고 있었다.
욕실 등 아래 드러난 그의 몸은 잘 조각된 작품처럼 틈 없이 근육이 들어차 있었는데, 왼쪽 흉부 중앙을 시작으로 복근까지 이어진 기다랗고 커다란 상처가 있었다.
벌어진 상처에선 그의 눈처럼 빨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으윽…….”
이도 저도 못 하고 있는 사이, 또다시 괴로운 신음이 들려왔다.
많이 아픈지 그는 이를 꽉 깨문 채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습격이에요? 어떻게 된 거예요!”
정신을 차린 그녀는 아연실색하며 다가갔다.
이건 명백히 검날에 그인 상처였다. 하지만 방 안은 깨끗하고 창문 또한 열려 있지 않았다.
들려온 목소리에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던 그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셀로니아는 마주친 붉은 눈동자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 눈빛이 얼마나 살벌한지 이글이글 타오르는 게 꼭 누구 하나 죽일 기세처럼 보였으니까.
그는 방금 전보다 더 심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저를 노려보았다. 자신의 등장을 퍽 달가워하지 않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이봐요. 괜찮아요?”
“꺼져.”
걱정되어 묻는 사람에게 돌아온 것은 인성이 파탄 난 대답이었다.
그래도 아픈 사람에게 욱할 수 없어 참았다.
“우선 의원, 의원을 불러올게요.”
“상관 말고, 윽 ……꺼져.”
곧 죽을 것 같은 얼굴로 꺼지라는 말을 잘도 한다.
그는 고통을 삼키며 인상을 쓴 채 입술을 짓씹었다.
얼마나 큰 고통인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그의 가슴이 크게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그의 몸은 온통 땀에 젖어 있었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은 그의 얼굴을 타고 흘러 턱에 고이더니 그대로 뚝 떨어져 가슴 사이를 갈라 벌어진 상처에 스며들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셀로니아는 자신이 다 따가운 것 같아 미간을 찌푸렸다.
치유 능력을 쓰면 상처를 아물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셀로니아는 차마 치유 능력을 쓸 수 없었다.
단순한 환자라면 쓰고도 남았겠지만 그는 마왕이지 않은가.
구원자의 도의가 발목을 잡은 것이었다.
“안 되겠어요. 의원이 오기 전까지 치료라도 해 놔야겠어요.”
허둥지둥 욕실을 나선 셀로니아는 지나가는 하인을 붙잡아 의원을 불러오라 명했다.
그러고는 손님방에 구비되어 있던 구급약 상자를 들고 빠르게 돌아왔다.
“곧 의원이 올 거예요. 그전에 일단 좀 봐요. 소독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
한시가 급한지라 다시 욕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에게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고 했다. 붙잡히지만 않았어도.
“꺼지라……!”
그녀의 손을 신경질적으로 붙잡은 그가 놀란 눈을 크게 떴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혼란스럽게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예요? 왜 그, 으악!”
갑자기 얼음이 된 그를 살피던 셀로니아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앞으로 넘어졌다.
그가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바람에.
예상하지 못한 일에 중심을 잡지 못한 그녀는 그대로 그의 맨 가슴팍에 얼굴을 박았다.
고개를 들 새도 없었다.
“너, 뭐야.”
거친 숨이 뒤섞인 정제되지 못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으니까.
* * *
그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의 가슴에 크게 난 상처는 자정이 오면 칼같이 고통을 수반했다.
그 고통은 아주 날카로운 것에 살갗이 찢겨 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정도가 심할 땐 고통과 함께 상처가 벌어져 피가 줄줄 흐르곤 했다. 바로 오늘처럼.
상처는 그가 눈을 뜬 시점부터 존재했다. 자신이 모르는 과거에 그런 경험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버려진 폐가.
그는 그곳에서 3개월 전 눈을 떴다. 모든 기억을 잃은 채로.
작은 실마리라도 얻기 위해 떠돌아다녔지만 아무런 수확도 없었다.
적막과 외로움밖에 남지 않는 이 삶이 익숙해져 갈 즈음, 이상한 능력을 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누구인지 찾는 데 도움이 되질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익숙해지지 않는 통증에 몸부림치다 보면 날이 밝았다.
해가 뜨면 자연스레 사라지는 어둠처럼 새벽이 오면 그의 고통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푸르스름한 새벽.
해가 어둠을 뚫고 어슴푸레 빛을 내기 시작하면 그의 통증은 사그라들었다.
아파서 죽을 것 같아도 죽이진 않겠다는 듯.
그렇게 고통과 회복이 3개월째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이 여자의 손을 잡는 순간 통증이 사라지는 걸까.
벗어나고자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였는데.
“이봐요!”
셀로니아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맨살이 보이는 것도 모자라 그의 가슴에 제 얼굴이 닿았다는 사실에 귀가 화끈거렸다.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제멋대로 구는 남자로 인해 그녀의 입에서 짜증이 튀어나왔다.
도움을 주려는 사람한테 이 무슨 무례한 행동이란 말인가.
빈정이 상한 것도 잠시, 셀로니아는 금세 당황하고 말았다.
저를 응시하고 있는 붉은 눈동자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무언의 절박함을 담고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