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8)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8)화(18/162)
<18화>
“너 진짜 뭐야.”
“……뭘 말이에요.”
“나한테 무슨 짓을 윽, 한 거야.”
“치료해 주려는 거잖아요. 상처나 좀 봐요. 이 손도 놓고.”
그녀는 알 수 없는 말을 해 대는 그를 무시하며 손목을 틀었다.
그러나 그는 순순히 놓아줄 생각이 없는지 제 손을 더욱 단단히 붙들었다.
“이봐요. 이 손 좀……!”
“잡아.”
“예?”
“잡고 해. 치료받을 테니까.”
당치도 않는 말에 셀로니아는 헛소리하지 말라며 그의 손을 뿌리칠 생각이었다.
분명 그러려고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붙잡힌 손에서 느껴지는 그의 미세한 떨림 때문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내려 제 손을 붙잡고 있는 그의 손을 주시했다.
“…….”
손을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잔뜩 힘을 준 그의 손등 위론 푸른 핏줄이 성을 내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를 붙잡은 그의 손은 간절하다 못해 절실해 보였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바위를 뚫고 나온 나무뿌리를 붙잡은 사람처럼.
“하아……. 알았으니까 살살 좀 잡아요.”
셀로니아는 짧은 한숨과 함께 한 손으로 구급상자를 열었다.
치료가 우선이었다.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사람과 손을 놓네 마네 하는 문제로 실랑이만 하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곧장 상자에서 부들꽃 가루라고 적힌 통을 꺼냈다.
한 손으로 뚜껑을 열기 위해 손가락을 돌리고 있을 때, 그에게 붙잡혀 있던 손에 피가 통하는 게 느껴졌다. 살살 좀 잡으라는 말에 힘을 뺀 모양이었다.
말은 또 잘 듣는 모습에 속으로 어이없어하며 뚜껑을 열기 위해 낑낑거렸다.
얼마나 꽉 닫았는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쯧.”
그는 혀를 차더니 통을 뺏어 들었다.
그러고는 너무도 손쉽게 한 손으로 뚜껑을 여는 게 아닌가.
아니, 연 게 아니라 박살 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저 돌려서 열면 되는 뚜껑을 무를 뽑듯 뜯어내었다.
뜯겨 나간 뚜껑은 종잇장처럼 구겨져 바닥에 버려졌다.
“허…….”
괴력에 셀로니아가 헛숨을 삼키며 그가 내민 통을 받았다.
바로 상처 부위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니 그제야 확 실감이 났다.
그의 나신과 자신이 얼마나 밀착되어 있는지.
꽤 간격이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마주 보니 그의 상처는 바로 코앞에 놓여 있었다.
심지어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오해하기 딱 좋은 자세이기까지 했다. 욕실 바닥에 앉아 있는 그의 위에 제가 올라타 있었으니까.
엉덩이엔 그의 단단한 허벅지가 느껴졌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치료만 해 주면 되는 것이었으니 굳이 이런 요상한 자세를 고수할 필요가 없었다.
셀로니아는 그와 조금 멀어지기 위해 슬금슬금 허리를 뒤로 뺐다.
“그냥 해.”
눈치 빠른 그가 잡은 손을 훅 끌어당기는 바람에 무산이 되고 말았지만.
“…….”
셀로니아는 또다시 그의 맨 가슴에 닿은 얼굴을 떼어 냈다.
욱하고 올라오는 말들이 많았으나 꾹 참으며 상처를 마주했다.
벗어나려고 실랑이하며 힘을 빼는 것보단 그냥 빨리 끝내고 나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꼼꼼히 살피자 상처는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손가락 굵기만큼 벌어진 상처 안쪽으로 근육 조직이 보였는데, 그 사이로 피가 울컥울컥 흘러내리고 있었다.
셀로니아는 어서 그의 상처에 가루를 뿌렸다.
6개월 동안의 모험을 통해 부들 꽃가루가 소독과 피를 멎게 하는 데 특효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 지식을 이자에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 상처, 그 상처 아닌가?’
카페에서 처음 그를 보았을 때 얼핏 보았던 그 가슴에 난 큰 상처.
새로 생긴 게 아니라 덧난 건가? 상처 위치가 똑같았다.
“꽤 따가울 텐데요.”
그녀가 잘 짜인 그의 근육에 난 상처 위로 가루가 소복이 쌓여 가는 것을 보며 말했다.
부들 꽃가루는 약효는 보장되었으나 단점이 있다면 상처 부위가 무척 따갑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움찔하지도 않았고, 작은 신음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너. 나를 모른다면서.”
치료에 열중인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그가 입술을 열었다.
고통은 어느새 잦아들었다.
새벽이 온 것처럼 통증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이 약 때문이 아니라 잡고 있는 그녀의 손 때문이었다.
약을 뿌리기 전부터, 그녀의 손을 붙잡은 순간 통증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으니까.
“네. 몰라요.”
“그런데 왜 나를 돕지?”
“그럼 그냥 내버려 둬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눈앞에 아픈 사람이 있고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도움을 주는 게 사람 아니던가.
물론 그는 예외이긴 했으나, 이곳은 그녀의 집이었다.
이 남자가 죽는다면 다른 곳이어야 했다. 우리 집에서 시체를 치울 순 없었다.
“…….”
그는 말없이 제 상처에 약초를 뿌리고 있는 셀로니아를 보았다.
옅은 골이 파인 미간 아래 푸른색 눈동자가 제법 진지했다. 앙다문 입술은 꽤나 고집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지금껏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며 싫은 티를 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너.”
그의 부름에 셀로니아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몇 분 전만 해도 숨넘어갈 것처럼 굴던 그는 이제 살 만해졌는지 저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습격을 받았냐고 물었지. 아니, 원래부터 있던 상처다.”
“덧난 거예요? 원래부터 있는 상처에서 왜 피가 나요?”
“글쎄.”
그의 입에서 힘없이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게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였으니까.
‘원래 가지고 있던 상처?’
셀로니아는 묘하게 익숙한 상처의 위치에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이 상처, 그의 껍데기가 사라지고 본모습이 드러났을 때, 자신이 단검으로 찔렀던 위치와 똑같았다.
설마?
“……이거 왜 생긴 건데요?”
“모른다. 기억을 잃고 눈을 떴을 때부터 있었으니까.”
“그게 언젠데요?”
“3개월 전.”
마왕을 물리친 것도 얼추 3개월 전이었다. 시기가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금방 부정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나 물어볼게요. 정말 아무것도 기억 안 나요? 본인이 누구인지도?”
“그래.”
“왜요?”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나?”
그가 어이없다는 듯 나무라자 셀로니아는 입을 닫았다.
맞네. 기억 없는 사람한테 왜 기억을 잃었냐는 질문을 한 것 자체가 웃겼다.
“그럼 이번엔 내가 묻지.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아까부터 자꾸 제가 그쪽한테 무슨 짓을 했다는 거예요?”
그녀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되물었다.
상처를 치료해 주는 사람한테 아까부터 왜 이러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정말 몰라?”
“모르니까 묻잖아요. 뭔데요? 제가 뭘 했는데요?”
“…….”
그는 말없이 흔들리지 않는 푸른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가씨! 의원님을 모셔 왔어요!”
그때였다.
아까 부탁했던 하녀가 의원을 데리고 들어왔다.
“헉……!”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장면에 하녀가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아가씨가 헐벗은 남자 위에 올라타 있는데 놀랄 수밖에.
셀로니아는 질겁하며 그에게 붙잡혔던 손을 빼내곤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공이 무수히 흔들리는 하녀를 보니 오해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오해야. 제임스, 어서 이자 좀 봐 줘.”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하던 베스인 공작가의 주치의 제임스는 바닥에 고인 피를 보곤 단숨에 다가왔다.
뒤로 물러선 셀로니아는 작은 후회를 하며 그대로 욕실을 나갔다. 어쩌다 보니 너무 많이 도와줬다.
그것도 도움을 주질 말아야 할 사람에게.
“…….”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빤히 바라보던 그는 이내 텅 비어 버린 손을 쳐다봤다.
그녀의 손이 떠나가도 고통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피 또한 멈춘 지 오래였다.
마치 그녀가 자신의 고통을 모조리 흡수한 것처럼.
모든 기억이 없고 이곳에서 눈을 뜬 순간부터 지금까지 밤은 그에게 지옥이었다.
그런데 여명이 밝지도 않은 이 한밤중에 이런 편안함을 느끼다니. 처음이었다.
그는 아직 손안에서 사라지지 않은 그녀의 온기를 되새기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모른단 말이지.”
본인이 나를 살리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