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19)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19)화(19/162)
<19화>
다음 날.
“젠장, 젠장!”
이안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탁자를 엎어 버렸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엎어진 탁자로 인해 위에 놓여 있던 서류가 와르르 쏟아지고 잉크가 사방에 튀었다.
단장실 내부는 이미 한바탕한 터였기에 개판 오 분 전이었다.
방금 셀로니아가 요구한 검을 사람을 통해 공작저에 보냈다.
다시 생각해도 열이 받았다.
피가 거꾸로 솟다 못해 셀로니아가 괘씸해 미칠 지경이었다.
“젠장. 그 검이 어떤 검인데……!”
황제조차 탐을 내던 검이었다.
당연했다.
마왕은 제국의 유일한 골칫거리이자 평생 해결되지 않은 숙제였다. 그런 마왕의 숨을 거둔 검이었다.
기사라면 누구나 꿈꾸는 명예이자 영광이 담긴 검.
게다가 검에선 점점 강한 힘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필시 마왕의 힘이 서린 것일 테다.
이런 검을 제대로 쓰지도, 진가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여자한테!
게다가 그 태도는 뭐란 말인가!
질투를 해도 그렇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바뀔 수 있냔 말이다!
그녀는 여유롭다 못해 미련 한 점 보이지 않는 얼굴로, 자신에게 시건방지게 구는 놈을 손님이라며 두둔하기까지 했다.
“손님?”
그는 셀로니아가 손님이라 했던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와락 얼굴을 구겼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설마.”
애인인 것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 여자가 자신을 두고 애인을 만들 리가 없다.
레예프와 맥라이언이 곁에 얼쩡거려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자신만 바라보던 여자였다.
그러니 자신의 변심에 단순히 화가 나서, 저를 되찾기 위해 이런 쇼를 기획한 게 틀림없었다.
자신이 찾아올 줄 알고 그 남자를 끌어들인 것이다.
“하, 그럼 그렇지.”
멋대로 결론을 내린 이안이 거만한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셀로니아가 저를 쉽게 잊을 수 있을 리 없다. 이건 필히 제 질투를 이끌어 내기 위한 작전이었다.
“…….”
그런데 이 마음은 뭐지?
실상을 파악했는데 왜 이 불쾌함이 가시질 않는 거지?
작전이라 할지라도 셀로니아가 다른 놈과 함께 있었기 때문은 아닐 거고,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
속으로 끝없이 부정하며 이유를 찾던 그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 스치고 지나갔다.
저를 내려다보던 시건방진 붉은 눈동자.
목에 부목을 덧댔는지 고개를 숙이지도 않던, 거만하고 교만한 남자.
“감히.”
이안이 불쾌한 표정으로 으득 이를 갈았다.
대체 그놈은 누구길래 공작인 자신에게 고개조차 숙이지 않는가.
아무래도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그 건방진 버르장머리를 철저히 고쳐 줄 필요가 있겠지.
“단장님, 그레이스 영애가 찾아오셨습니다.”
“뭐?”
그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문이 벌컥 열리며 그레이스가 들어왔다.
“공작님!”
해맑은 얼굴로 등장한 그레이스는 난장판이 된 방 안을 보자 토끼 눈이 되었다.
“어머. 방 안이 왜 이래요?”
“하아. 그대는 지금 내가 바쁜 게 안 보이나!”
짜증이 난 이안이 우악스럽게 앞머리를 넘기며 신경질을 냈다.
가뜩이나 불쾌해 죽겠는데 업무 시간에 불쑥 찾아온 그레이스에게 불똥이 튄 것이었다.
“……딸꾹.”
너무 놀란 그레이스 입에서 딸꾹질이 튀어나왔다.
지금 저이는 그녀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날것의 감정을 내보였기에.
“후우……. 그레이스, 그게 아니라…….”
놀라 딸꾹질까지 하는 그레이스를 보자 이안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금방 후회했다.
“제가, 제가 방해했나 보네요. 죄송해요.”
“그레이스! 그레이스 잠깐 서 봐!”
그레이스가 비참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획 하고 방을 나서자 이안이 황급히 뒤따랐다.
검은 넘겼지만 어떻게 해서든 되찾아올 것이다. 그게 불안해서 마음이 불편한 것이겠지.
그는 자꾸만 마음속 깊은 곳 어디에선가부터 올라오는 어둠과 화를 참으며 토라진 그레이스를 풀어 주기 위해 노력했다.
* * *
남자는 창문 앞에 서서 정원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을 팔짱 낀 채 바라보았다.
그 인파 속엔 셀로니아가 있었다.
남자는 그들이 무엇을 하는 건지 관심도 두지 않은 채 그저 셀로니아만을 눈에 담고 있었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 얼굴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대를 마주한 것 같은 낯설음이었고.
그런데 그건 대체 뭐였지?
“…….”
그가 셀로니아의 손을 잡았던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제는 완전히 그녀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손은 전처럼 차가웠다.
꽉 말아 쥐어도 보았지만 무색하게도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그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으니까.
하지만 딱 한 순간, 그에게도 온기가 느껴진 적이 있었다. 바로 저 여자의 손을 붙잡은 순간이었다.
그는 밤사이 있었던 일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녀의 손을 맞잡는 순간, 진정제를 투여한 것처럼 온몸이 빠르게 나른해지더니 급기야 통증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따뜻한 손을 계속 맞잡고 있노라니 늘 그를 옥죄던 통증은 아예 사라졌다.
기이하다 못해 단비 같은 경험은 그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세 달 동안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던 통증을 삽시간에 진정시키게 만드는 저 손.
이 모든 일의 실마리를 쥐고 있을지 모를 여자.
모든 게 불분명한 그의 삶에 딱 하나 명확한 것은 저 여자였다.
그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그녀를 관찰했다.
그녀의 결 좋은 머리카락이 눈부신 햇살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얇은 커튼처럼 흔들리는 머리카락은 그가 늘 지나치던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보라색 꽃과 같은 색이었다.
하늘처럼 파란 눈은 인상적인 색이었다.
기억나는 건 없지만 기억이 없는 삶 동안 언젠간 한 번쯤은 저 눈을 마주했다고 착각이 들 정도로.
그는 셀로니아가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와 저택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하곤 몸을 돌렸다.
어쨌거나 결론은 자신은 저 여자를 곁에 둬야 한다는 것이었다.
* * *
이안이 보낸 검이 도착했다.
셀로니아는 황실에서 나온 공증인들과 공작저 정원에서 그 검이 이안의 진검이라는 것을 검증받았다.
마정석이 검에 파동을 흘려보내 이안이 가진 파동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혹시나 추잡하게 수작 부릴까 걱정했는데 괜한 기우였다.
그래도 검사로서의 긍지는 남아 있어 검을 가지곤 장난을 치지 못한 모양이지.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해요.”
“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황실 소속 공증인들과 인사를 한 그녀는 엘라에게 검을 방 안 금고에 넣어 달라 부탁하곤 저택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안에게 위자료까지 받았으니 이제 정말 더 볼 일이 없었다.
조금은 뒤숭숭할 줄 알았는데 마음은 후련하기만 했다.
아마 어제 그 되지도 않는 진상 때문에 오만 정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리라.
고맙다고 해야 하나? 자진해서 정떨어지게 만들어 줬으니.
“얘기는 잘했나?”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중앙 문을 열자, 남자가 불쑥 나타나 옆에 붙었다.
그새 몇 번 봤다고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좀 살 만한가 봐요? 밤에는 그렇게 죽어 가더니.”
셀로니아는 그에게 힐끗 눈길을 주다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크게 벌어진 셔츠 앞섶 사이로 붕대가 감겨 있는 몸이 고스란히 보였다.
꽉 동여맨 붕대는 그의 가슴을 칭칭 두르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 탓에 근육의 윤곽이 뚜렷하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목 끝까지 잠글 수 있는 셔츠를 하나 던져 주든가 해야지. 남사스러워서 원.
간밤에 의원은 그의 상처를 소독하고 봉합했다.
상처는 깊었지만 많이 아문 상태라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덧붙인 소견에는 그의 상처는 그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아 덧나고 덧나다 터지고 아물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잘 먹고 잘 쉬면 빨린 낫는다 하였다.
그녀는 그 상처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설령 그게 자신이 낸 상처라 할지라도.
모든 건 이 남자를 내쫓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뭐. 나쁘진 않아. 누구 덕분에.”
그의 시선이 걸음에 맞춰 흔들리고 있는 그녀의 하얀 손에 머물렀다.
저 손. 그에겐 저 손이 필요했다. 마음 같아선 종일 쥐고 있고 싶을 정도로.
“계속 눌어붙을 생각은 말아요.”
핀잔 어린 그녀의 목소리에 그가 고개를 들었다.
이윽고 그의 한쪽 입매가 곡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무언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그래. 너, 내가 여기서 나가길 바라지?”
“네. 너무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는 듯 셀로니아가 그를 흘겨보았다.
“그럼 너…….”
“아가씨, 식사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공작님께서 다이닝룸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기회다 싶어 소리를 내었던 그의 목소리는 한 사용인의 등장에 묻혀 버렸다.
셀로니아의 시선이 허리를 숙이고 있는 사용인을 지나쳐 그를 보았다. 계속 얘기해 보라는 표정으로.
“가. 부르잖아.”
그러나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저어……. 귀공님도 함께하시라는 전언이 있으셨습니다.”
눈치를 보던 사용인이 쭈뼛거리며 입을 열자, 셀로니아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아버지는 대체 이 인간이 뭐가 좋다고…….
“일없다.”
“꼬, 꼭 오시라고 하셔서…….”
앳된 하녀는 거절하고 돌아서는 남자의 뒷모습을 향해 애절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그가 많이 무서운지 여린 몸이 바들바들 떨었다.
하기야 그는 키도 덩치도 일반인에 비해 배는 컸기에 상대하기 난감할 수 있었다.
“이봐요.”
결국 셀로니아는 마지못해 그를 불렀다.
달갑진 않았으나, 아버지의 호출이었다.
베스인 공작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조건 해내야만 하는 성격이었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또다시 식사를 함께하자고 할 테니 그냥 한번 빨리 같이 먹는 게 더 나았다.
그리고 그가 공작저에 온 뒤, 한 번도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말을 전해 들어서 그런지 잘 먹고 잘 쉬면 낫는다는 의원이 말이 자꾸만 생각났다.
“뭐지.”
미련 없이 걸어가던 그는 자신을 불러 세운 목소리에 뒤돌아보았다.
그러자 당장 무슨 할 말이 있는 듯 불러 놓고는 굉장히 말하기 싫은 얼굴로 우물쭈물하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가요.”
“뭐?”
이윽고 들려온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라 그는 조금 놀라고 있었다.
“아버지가 부르잖아요. 그리고 상처가 빨리 나으려면 잘 먹어야 한댔어요.”
“…….”
“따라와요.”
어색하게 말을 마무리 짓자마자 셀로니아는 먼저 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덩그러니 남겨진 그는 멀어져 가는 셀로니아의 뒷모습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