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2)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2)화(2/162)
<2화>
만약 누군가 그녀에게 이안 체르빌을 사랑했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아니’였다.
그는 원작 속 남자 주인공이었지만, 빙의한 셀로니아는 원작 여주와 달리 그를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강제 진행되는 모험으로 인해 죽을 뻔한 적이 여러 번이었고, 위험천만한 야생에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정이 싹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인간적인 정과 동료애였지, 이성에 대한 감정은 아니었다.
이안 체르빌은 누구라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면모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괜찮다. 난 그대가 조금이라도 덜 힘들길 바라.”
“영애가 아픈 것보다 내가 아픈 게 더 나으니까.”
제대로 된 음식을 섭취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그는 늘 신사적이었다.
콩 하나도 나누지 않고 모두 그녀에게 모두 양보했었다.
이런 다정다감한 태도와 대사에 호감을 갖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안은 남자 주인공답게 용사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으며, 셀로니아에게 절대 무너지지 않는 든든한 모습을 보여 주며 믿음을 심어 주었다.
그래서 셀로니아는 그를 사랑하진 않았어도 그와 결혼하는 결말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어차피 직접 겪어 보니 큼지막한 사건들은 모두 원작과 동일하게 일어났다.
애초에 피한다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고생 끝에 마왕도 죽었겠다, 원작대로 그와 백년가약을 맺고 잘 먹고 잘살았답니다로 끝내면 되겠지 싶었다.
갑자기 자신이 몇 달 동안 쓰러질 줄은, 그동안 남주가 바람이 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그도 모자라 서브남주까지…….
“죄송합니다, 셀로니아 님.”
레예프의 진심 어린 사과에 셀로니아는 놓아 버렸던 정신 줄을 붙잡았다.
‘지금 이거 깜짝 카메라인가?’
아니면 꿈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지독한 악몽인 건가…….
“셀로니아 님이라면 저를 이해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셀로니아는 레예프의 계속된 말에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서브 남주였던 성기사 레예프 헤첼에게 자신이 아닌, 영원을 맹세하고 싶은 레이디가 생겼다.
그 여자의 이름은 그레이스 베넷.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 약혼자였던 이안 체르빌의 바람 상대였다.
“레예프, 그레이스 베넷은 곧 이안 체르빌의 피앙세가…… 될 거예요.”
그녀는 자신의 입으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레예프한테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제 곁에서 언제나 대가 없는 애정을 주던 사람이었으니까.
또다시 가시밭길을 가려고 하니 친구로서 말릴 수밖에.
“알고 있습니다.”
“그…… 예, 예? 알고 있다고요?”
그러나 뜻밖의 대답에 셀로니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알고 있다고? 알고 있으면서…….
“하지만 전 그레이스 님을 향한 제 마음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뒤에서 바라만 봐도 괜찮습니다. 그저 그레이스 님을 지키는 일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에 셀로니아의 입이 다물렸다.
그렇다.
이 고백은 레예프가 저에게 했던 고백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독초를 잘못 먹고 열이 잔뜩 올랐던 저에게 했던 그의 애절한 고백과.
와……. 이걸 이렇게 도로 가져가네?
“정말 죄송합니다, 셀로니아 님.”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고백하던 레예프가 아차 싶었는지 표정을 갈무리했다.
셀로니아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상처를 받은 건 아니었다.
그저 어이가 없고 서운할 뿐.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마음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자 본인만의 것이니 누굴 사랑하든 그의 선택이었다.
다만, 레예프는 서브 남주이면서 그녀가 셀로니아에게 빙의한 이후 처음 사귄 친구였다.
6개월 동안이나 생사를 함께하며 울고 웃었던 소중한 사람.
그런 그가 일부러 자신을 찾아와 변심을 고백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라는 선언.
아마 이 시간 이후 사적인 이유로는 그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아니에요, 레예프. 당신의 마음이니 미안해할 거 없어요.”
왜 하필 그레이스인 걸까. 이건 단순히 우연인 걸까?
목 끝까지 차오르는 궁금증에도 셀로니아는 차마 레예프에게 물을 수 없었다.
물었다가 혹시라도 저를 좋아한다던 그 이유와 똑같은 대답이 돌아올까 봐. 그건 좀 상처일 것 같았으니까.
“송구합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레예프가 절 위해 줬던 마음도, 함께했던 시간들 모두 다 말이에요.”
그녀는 섭섭한 마음을 감추며 레예프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처음으로 레예프에게 전하는 진심이었다.
늘 바다와 같이 넓고 깊은 애정을 주던 그의 마음에 그녀는 화답할 수 없었다.
자신에겐 약혼자인 이안이 있었기에.
레예프에게 조금의 선의라도 베푼다면, 그것이 그에게 희망 고문이 될까 고마운 마음도 제대로 표현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내내 미안했다.
그러니 이 정도 진심 정도는 내비쳐도 되겠지.
오늘이 그와 마주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될 테니.
레예프는 고지식할 정도로 올곧은 사람이라 이제부터 그레이스가 아닌 다른 상대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이라 할지라도.
“…….”
레예프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처음으로 그녀가 먼저 내민 손. 하필이면 그게 서로의 마지막이 될 오늘이라니.
레예프는 울컥했으나 의연한 태도로 셀로니아의 손을 맞잡았다.
행여나 미약하게 떨리는 손끝이 들킬까 냉큼.
“……몸 건강히 잘 지내십시오.”
“네. 레예프도요.”
서로의 따뜻한 온기를 주고받는 악수는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셀로니아는 레예프와 처음 맞잡은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먼저 손을 놓아주었다.
“그럼 이만.”
레예프는 그녀의 온기가 사라진 서늘한 손을 말아 쥐며 허리를 굽혔다.
마지막까지 늘 그렇듯 흐트러짐 없는 각 잡힌 인사와 함께 그는 발길을 돌렸다.
일정한 발걸음 소리가 응접실을 떠났다.
셀로니아는 적막이 내려앉은 응접실을 둘러보다 털썩 소파에 주저앉았다.
“아, 아가씨…….”
그녀의 눈치를 보며 하인 엘라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엘라, 대체 내가 쓰러진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한탄처럼 중얼거렸다.
이안과 결혼하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본래 세계로 돌아갈까? 아님 셀로니아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걸까.
그 고민 속에 그녀의 바람은 정해져 있었다.
그냥 셀로니아로 살고 싶다.
빙의 전 본래의 그녀는 부모도 친구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외롭게 살다 이른 나이에 병에 걸려 사망했다.
애초에 돌아갈 몸도 없는 것이다.
그녀는 본래 셀로니아가 가지고 있던 과거 기억은 없었지만 이왕 살아난 거 바람난 남주는 깨끗이 잊고 보란 듯이 잘 먹고 잘살겠다고 생각했다.
어찌 됐든 셀로니아의 과거 기억이 없어도 원작을 읽었기에 생활하는 데 크게 무리가 없을 테고, 자신은 여자 주인공이기 전에 공작의 딸이었으니 평생 호의호식하면서 지낼 돈은 충분했으므로.
그런데 원작과 다르게 이안이 변한 것도 모자라 레예프까지 제가 아닌 그레이스 영애를 좋아한단다.
‘아니, 왜 갑자기 이러는 거지?’
무언가 잘못된 건가?
아님, 정말 단순히 그들의 마음이 변한 걸까……?
“……괜찮으세요?”
엘라는 혼이 쏙 빠져 보이는 셀로니아의 눈치를 보았다. 혹시라도 날카로운 고성이나 히스테리를 부릴까 봐 잔뜩 긴장한 사람처럼.
“셀리!”
그때였다.
요란스러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저택 복도를 울린 것은.
이렇게 요란스럽게 등장할 사람은 단 한 명뿐이라 셀로니아는 눈을 크게 뜬 채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 하필 지금 이 순간에……. 설마……?
예사롭지 않은 상황에 솜털이 쭈뼛 일어섰다.
“셀리! 여기 있어?”
벌컥.
문을 부술 듯 거칠게 열고 들어온 남자가 소파에 앉아 있는 셀로니아를 보더니 한달음에 다가왔다.
남자의 이름은 맥라이언.
그는 마지막 드래곤의 혈족이자 레예프와 마찬가지로 원작 속 서브남주였다.
“전에 내가 줬던 심장 돌려줘.”
맥라이언이 인사도 생략한 채 셀로니아를 향해 당당히 손을 뻗었다.
언제는 자신의 마음이라고 그녀에게 드래곤의 심장을 선물로 줘 놓곤, 지금 와서 맡겨 놨다는 것처럼 돌려달라 하고 있었다.
“…….”
셀로니아는 맥라이언의 뻔뻔한 태도보다 지금 이 현실 자체가 소름 돋았다.
그가 다시 돌려달라고 한 드래곤의 심장이 누구에게 갈지 알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곧 그녀의 생각은 적중했다.
“너 말고 주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
“……그레이스 베넷.”
“그래, 맞……! 어? 어떻게 알았어?”
셀로니아가 먼저 그 이름을 내뱉자 맥라이언이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 하하하.”
세 명의 남주들 입에서 나온 동일한 이름에 셀로니아는 결국 실성한 사람처럼 웃어 댔다.
남주들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것도 원작 속에서 단 한 줄도 등장하지 않던 엑스트라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