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21)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21)화(21/162)
<21화>
식사는 어영부영 끝이 났다.
그의 대답을 들은 이후로 셀로니아는 묵묵히 음식만 꼭꼭 씹어 먹었다.
부러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지 않았다.
그에게 깊게 관여하고 싶지도, 괜히 작은 연민도 느끼고 싶지 않았으니까.
“식사하고 싶을 때 아무에게나 말해요. 그럼 챙겨 줄 거예요.”
셀로니아가 뒤돌아서서 따라오고 있는 그에게 말했다.
그가 할 말이 있다 해서 함께 정원에 나온 참이었다.
“네가 나와 먹나?”
“아니요?”
“그게 아니라면 굳이 할 이유가 없다.”
이건 또 무슨 수작이야?
그녀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올려 보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늘 봤던 대로 무감정해 의도를 읽을 수가 없었다.
“나랑 먹어.”
“아니, 따로 챙겨…….”
“너. 내가 여기서 떠나길 원하지.”
“물론이죠.”
셀로니아가 고민할 것도 없이 냉큼 답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는 피식 웃으며 그녀를 빤히 보았다.
오늘 처음 가져 보는 식사 자리는 꽤 좋았다. 싱싱한 채소를 입에 머금는 것도, 잘 익은 고기를 씹는 것도.
처음으로 공허하다 느껴진 속이 채워지는 느낌이 퍽 괜찮았다. 이런 건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는 먹지 않아도 죽지 않아서, 먹는다는 행위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누군가 그에게 권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뭘까.
아무도 권하지 않던, 그가 하지 않아도 되는 먹는 행위를 알리고 망설임 없이 자신의 빈 접시를 채워 준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눈을 뜬 순간부터 이 세상에 제 존재를 아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오롯이 혼자인 삶.
스스로의 이름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건 존재를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그 기분이 너무도 더러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라도 제 존재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려고.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밤새 고통에 몸부림쳐도 지긋지긋한 아침이 찾아오는 것처럼 그렇게 의미 없는 삶이 계속 연장되고 있었다.
저주처럼.
하지만 그는 오늘 처음으로 아주 작은 의미를 느꼈다.
마냥 흘려보내던 하루를 오늘과 같은 경험으로 채운다면 언젠간 제 존재에 대한 의미를, 잃어버린 기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바로 이 여자와 함께한 식사에서.
그는 확신했다. 이 여자라면 제 통증을 없애는 그녀라면 저주이자 속박 같은 자신의 삶을 끝내 줄지도 모른다고.
“날 도와. 협조하겠다 하면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나가 주지.”
“…….”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안에 셀로니아는 몹시 당황했다.
어떻게 내쫓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협조하면 제 발로 나가 주겠다고?
“뭔데요? 뭘 어떻게 도와 달라는 거예요?”
그가 스스로 나가 주기만 한다면 앓던 이가 쏙 빠져나가는 격이었다.
범법 행위나 비인간적인 행동, 자기가 누군지 말하라는 협박 따위만 아니라면 뭐든 해 줄 수 있었다.
“너.”
그러나 들려온 대답은 그녀를 얼빠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요?”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셀로니아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확인했다.
“그래. 너.”
진한 욕망을 띤 붉은 안광과 함께 그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다시 한번 저 손을 잡아 보고 싶었기에.
커다란 손은 허공에 떠 있는 그녀의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그녀가 놀라 움찔하는 사이, 그의 기다란 손가락은 짝을 이루듯 그녀의 손가락 사이사이를 파고들었다.
완벽히 깍지 낀 형태가 되자 그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아직 통증이 있는 시간대는 아니었으나, 역시나 맞잡는 순간 온기가 퍼져 든다.
“너는 내 통증을 치유한다. 그래서…….”
“…….”
셀로니아는 제 귀를 의심했다. 지금 이 남자가 뭐라고 하는 걸까?
혼란스러워서 제대로 들리지가 않았다.
손을 잡히고 나서 그가 뭐라 뭐라 계속 떠들어 대긴 했는데 너무 당황해서 목소리가 뭉개져 들렸다.
그나마 제대로 알아들은 건 자신이 그의 고통을 잠재워 준다는 거였다.
“그러니 네가 날 도와.”
“잠깐, 잠깐만요.”
그가 붙잡고 있던 손을 잡아끌자 정신을 차린 셀로니아가 황급히 목소리를 내었다.
우선 그에게서 잡힌 손을 빼려고 했는데, 욕실에서처럼 그는 제 손을 붙잡고 놔주질 않고 있었다.
또 시작이네.
하는 수 없이 일단 손은 제쳐 두고 근본적으로 궁금한 것을 물었다.
“내가 당신의 고통을 없앤다고요?”
“그래. 다시 한번 친히 귓가에 속삭여 줘?”
그의 눈썹이 불만스러움에 삐딱하게 올라갔다.
“그럴 리가…….”
셀로니아는 믿을 수가 없었다.
치유 능력은 쓰지도 않았다. 놓지 않기에 그저 손을 내어주었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저 잡고 있는 것만으로 고통이 사라졌다니.
“왜 그런지 너는 알겠지. 넌 날 알잖아.”
“모른다니까요.”
그녀는 하도 들어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은 그의 단정을 자연스럽게 거짓말로 맞받아쳤다.
그러니까 그의 말을 종합해 보자면 세 달 전 기억을 잃고 눈을 떴을 때부터 상처는 존재했고, 상처는 밤마다 통증이 되어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아침이 밝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통증이 씻은 듯 사라진다는 거였다.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되었다. 욕실에서 제 손을 잡고 놀라던 그의 표정이.
아침이 오지도 않았는데 손을 잡은 것만으로도 고통이 사라졌으니 놀랄 만도 했다.
“날 내보내고 싶다며?”
그가 고민에 빠진 그녀를 내려다보며 쐐기를 박았다.
자신을 내보내고 싶어 하는 그녀의 마음을 이용하여 이 고통을 벗어나기로.
그러다 보면 무언가라도 알아낼 수 있겠지.
저 여자가 숨기고 있는 그 무엇도, 알 수 없는 기분도, 모든 걸 끝낼 수 있는 방법도.
“그건 맞지만, 고통을 잠재우려면 손을 잡아야 한다면서요?”
퍼뜩 상념에서 벗어난 그녀는 날카롭게 반문했다.
손을 잡기 위해선 함께 있어야 한다. 그것도 어둑한 밤마다.
내키지 않는 제안이었다. 자신에게 이득 될 게 하나도 없었다.
“날 도우면 한 달 뒤에 군말 없이 나가 주마.”
“…….”
한 달이라는 기간은 길긴 했으나, 반대로 생각하면 어떻게 내쫓을까 궁리하지 않아도 그가 한 달만 지나면 알아서 나가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간이 기간인지라 위험 요소가 있긴 했다.
한 달 안에 기억을 되찾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돕지 않는다면 아예 눌어붙을 생각이거든. 네 아버지는 내가 말만 하면 이곳에서 지낼 수 있게 직업 하나쯤은 마련해 줄 태세더군.”
자신이 고민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그가 아주 여유로운 표정으로 협박했다.
“아님 나랑 계속 살고 싶어 그런가? 그럼 나야 좋고.”
“아니거든요? 말이 되는 소릴 해요!”
“왜? 그때 봤던 좁쌀만 한 놈보단 내가 낫지 않나?”
어이가 없어 펄쩍펄쩍 뛰는 자신을 보며 그가 장난기 어린 눈꼬리를 휘며 킬킬거렸다.
좁쌀만 한 놈은 이안을 말하는 거였다.
그의 앞에 서면 이안이 아무리 커도 작아 보였으니까.
“해요, 한다고요.”
셀로니아는 하는 수 없이 승낙하고야 말았다.
그의 말대로 그가 부탁만 한다면 아버지는 공작저에 자리 하나 정도는 내어줄 게 뻔했다.
그건 권력자인 아버지에게 숨 쉬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었다.
밤의 야수를 이용해 공작가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더욱 견고히 하고 싶어 하시니 거절할 리 없을 거다.
내키진 않았으나, 그가 가문의 고용인이 되는 꼴을 보느니 한 달 동안 손을 잡아 주는 게 더 나았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앞으로 저와 제 주변 사람들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해요. 저택도 마찬가지고요. 그럼 협조할게요.”
솔직히 골칫거리를 해결할 수 있다는데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지.”
“약속 지켜요, 진짜.”
“그래.”
“그럼 어디서 볼 거죠? 밤마다 서로의 방에 들락거리는 건 안 돼요. 오해 사기 딱 좋아요.”
그의 손힘이 느슨해진 틈을 타 붙잡힌 손을 쏘옥 빼며 그녀가 퉁명스레 말했다.
다 큰 성인 남녀가 밤마다 만나는 건 누가 봐도 밀회 같아 보였다.
아무리 그가 자신을 구해 준 은인으로 이 저택에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곳은 그녀의 집이었으나 보는 눈과 단속할 수 없는 입이 많았기에 소문이 나기 십상이었다.
“내가 밤에 찾아가지.”
“방은 안 된다니까요.”
“걱정 마. 방법이 있으니.”
그는 다 계획이 있다는 듯 비식 웃어 보였다.
* * *
‘방법이란 게 이거였어?’
셀로니아는 입을 떡 벌린 채 눈앞에 서 있는 그를 봤다.
“으윽…… 잡아.”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그녀의 방에 뚝 떨어진 그는 밀려오는 통증에 곧장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요?”
황당한 것도 잠시. 그녀는 얼른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벌써 그의 이마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어제 보았던 그 모습이었다.
고통에 잠식된 그 모습.
“읏…….”
그는 신음을 삼키면서 그녀의 손이 동아줄이라도 된 양 꽉 그러잡았다.
해일처럼 몸을 집어삼키던 통증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었다.
살 것 같다는 게 이런 느낌인 걸까. 그는 그녀의 손을 다시 잡고 있음으로써 살 것만 같았다.
“여기 앉아요.”
셀로니아가 뒤에 있던 의자를 끌어왔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로 제 손에만 의존하고 있는 그가 어쩐지 아주 조금 안쓰러웠다.
‘정말 이래도 되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왕을 돕는 건 맞는 일인 걸까?
하루빨리 떼어 놓고 싶은 마음에 수락은 했으나 영 찝찝했다.
하지만…….
셀로니아는 바르르 떨리는 손이 절박하게 제게 매달려 있는 것을 말없이 응시했다.
모든 빛이 사라진 자정.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이 그를 비추자 창백한 얼굴로 피가 터질 만큼 입술을 세게 짓씹은 채 고통을 삼키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조금 변명을 하자면 그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마왕을 베는 것이, 그를 죽이는 것이 주인공들의 목표이자 원작의 목표였다.
우리는 당연하게도 그를 죽여야만 했고 그는 당연하게도 우리에 의해 죽어야만 했다.
그를 벨 땐 죄책감 따윈 없었다.
6개월 동안 온갖 고생 끝에 그를 만났고, 그 고생을 안겨 준 악을, 이 세계의 죄악이 될 그를 물리친 것뿐이었으니까.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는 영웅이자 구원자가 되었다.
죄책감 따윈 없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
그런데 이렇게 살아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이제 괜찮아 보이네요.”
상념에서 벗어난 그녀는 어느새 안정을 되찾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
“피는 안 나요.”
그의 가슴에 감겨 있는 붕대는 멀쩡했다.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만약 피까지 흘렸으면 그땐 진짜 죄책감을 느꼈을 것 같으니까.
“그런데 순간 이동도 해요?”
“내가 한 걸 순간 이동이라 부르나 보지?”
“그것도 모르고 썼어요?”
셀로니아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 잡혀 있던 손을 빼내었다.
마음이 뒤숭숭했다.
알면 알수록 그를 마냥 사악한 악으로, 죽어 마땅한 사람으로만 볼 수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