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22)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22)화(22/162)
<22화>
볕이 잘 드는 창문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고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할 무렵, 그는 감았던 눈을 떴다.
두 팔을 베개 삼아 침대에 누워 있던 그는 개운한 몸을 일으켰다.
잠을 잔 건 아니었다.
그는 잠을 자지 않았으니까. 그저 아침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다리가 길어 서는 데만 한참이 걸린 그는 기다렸다는 듯 방문을 열고 복도를 걸어 나갔다.
이제는 꽤 익숙해진 공작저의 복도를 거니는 움직임엔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고통이 사라진 새벽 뒤에 찾아오는 이 아침이 좋았다.
그래야 그 여자를 볼 수 있으니까.
즐거웠다. 이런 기분을 느껴 본 게 언제인지.
아니, 그는 기억이 없었으니 이렇게 즐거운 건 생애 처음이리라.
그녀가 자정마다 손을 잡아 준 이후로 그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녀만 있다면 지옥 같던 밤도 이제는 별 게 아닌 게 되었으니까.
3개월 내내 그를 괴롭히다 못해 무력화시키던 지긋지긋한 통증은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눈 녹듯 사라졌다.
고작 가슴을 몇 번 옥죄이다 줄행랑을 친 것이었다. 마치 맹수 앞에 선 쥐 새끼처럼.
그때 느낀 통쾌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떨쳐 내고 싶어도 동이 틀 때까진 억지로라도 떨쳐 내지 못하는 지독한 고통이었으니까.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 그녀가 정답이었다.
기억을 잃고 3개월을 넘게 떠돌던 그에게 셀로니아와 함께한 일주일은 처음 겪는 평범하고도 완벽한 날들이었다.
통증이 없는 삶이 이렇게나 다채롭고 윤택할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껴 보았으니까.
그래서일까. 형벌처럼 느껴지던 지겨운 인생이 이제야 조금은 살아 봄 직했다.
“저, 저 손님!”
그때, 앞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목소리라 무심하게 고개를 드니 몇 발자국 앞에 두 명의 여자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여자들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복장이었다.
그중 한 명이 두 볼을 붉힌 채 손을 꼼질거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부르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대답을 하지도, 딱히 시선을 두지도 않고 그대로 속도를 유지하며 여자들을 지나쳤다.
“조, 좋은 아침이에……! 아…… 인사 안 받아 주셨어…….”
“못 들으셨겠지. 다음엔 받아 주실 거야.”
등 뒤로 실망하는 목소리와 위로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작저에서 일주일을 지냈다고 이렇게 종종 인사를 걸어오는 이들이 있었다. 처음엔 줄행랑치기 바빴는데 말이다.
그러나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관심도 없었고.
그에게 관심 대상은 딱 하나뿐이었으니까.
그는 자연스레 밤마다 제 손을 잡아 주면서 한 달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빤히 보이는 얼굴을 떠올리며 픽 웃었다.
“그럴 리가.”
그가 어림도 없다는 듯 뇌까렸다.
이제 좀 살 만해졌는데, 절대 놔줄 리가 없지 않은가.
제가 기억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녀가 저에 대해 절대 함구하더라도 말이다.
그 여자는 저에게 더없이 필요한 존재였으니까.
“흐흥.”
그는 즐겁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어느새 도착한 셀로니아의 방 앞에서 서서 커다란 방문을 두드렸다.
쾅쾅쾅!
“이봐. 일어나.”
괴팍하게 문을 두들기며 누군가 소리쳤다.
아무리 단잠에 들었다곤 하나 방 안을 울리고도 남을 그 소리에 셀로니아의 눈이 번쩍 뜨였다.
소리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챘다.
공작저에서 그녀의 방문을 멋대로 두드릴 사람은 한 명뿐이었으니까.
“빨리 나와.”
“아, 쫌!”
그녀는 고운 얼굴을 와락 구기며 허리춤에 있던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나와.”
“혼자 먹으라고요!”
“문 부수기 전에 나와라.”
“아오……!”
끈덕지게 구는 목소리에 셀로니아가 성질을 부리며 이불을 걷어찼다.
매일같이 반복되고 있는 이 상황에 셀로니아는 정말 짜증 난다는 듯 시트 위에서 몸부림치다 이내 몸을 일으켰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와 식사를 하기 위해서.
마왕과 협상 후 지난 일주일 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는 붕대를 풀었고 상처는 잘 아물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그가 순간 이동을 하여 제 방으로 찾아왔고, 그럼 자신은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것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과가 이어졌다.
우려와 달리 손을 잡아 주는 것 외에 그는 특별히 다른 것을 요구하진 않았다.
불쑥불쑥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을 털어놓으라고 협박하는 것만 빼면.
물론 그의 손을 잡아 줄수록 그녀의 마음은 더더욱 복잡해졌지만, 한 달만 버티면 되었다.
한 달만 버티면 그가 이 집에서 제 발로 나가 줄 테니까.
“제발 아침만큼은 혼자 먹을 수 없어요?”
어느새 씻고 나온 셀로니아는 다이닝룸에 먼저 앉아 있는 그를 향해 볼멘소리를 내었다.
“네가 일찍 일어나면 되는 일이다.”
그는 바른말만 하며 갓 나온 크루아상을 반으로 가르더니 황금색의 버터를 올렸다.
음식을 먹는 게 이제는 꽤 익숙해졌는지 알아서 척척이었다.
‘내가 누구 때문에 맨날 늦게 자는 건데.’
셀로니아는 몹시도 얄미운 그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누르며 자리에 앉았다.
요즘 매일 그와 식사를 함께하고 있었다.
그건 그의 식사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저와 함께하는 식사에 대한 집착.
빈말이 아니었는지, 그는 맨날 식사를 하자며 불쑥불쑥 찾아왔다.
오늘처럼 아침에 자고 있는 사람을 깨워 식사하기 일쑤였다.
혼자 먹으라 해도 들어먹질 않았다.
애초에 그들의 계약 안에 식사를 함께하는 조건도 포함되어 있었다며, 지키지 않으면 눌어붙을 거라 협박을 해 댔다.
하는 수 없이 같이 먹어야만 했다.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왜 이렇게 식사에 집착하는 건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순간 이동을 하지 않고 착실하게 노크를 해 주는 걸 고맙다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는 자정 외에는 공작저에서 순간 이동 하지 말라는 제 말을 착실히 지켜 주고 있었다.
“쯧. 입 찢어진다.”
그가 졸린 눈으로 하품하는 그녀를 보며 혀를 찼다.
일주일 동안 지켜본 이 여자는 정말 게으르기 짝이 없었다.
매일 방에 틀어박혀 있거나, 시간마다 정원에서 티타임을 갖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활동적인 일이라곤 고작 정원을 산책하는 게 다였다. 그것도 겨우 몇십 분.
이런 인간은 정말 처음 봤다.
뭐, 그것조차 옆에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지만.
“늦게 잤으니까 그렇죠. 누구 때문에.”
하품으로 인해 눈에 고인 눈물을 닦고, 셀로니아가 샐쭉한 눈으로 마왕을 노려보았다.
그와 지내다 보니 한 가지 알아낸 사실이 있는데, 그는 잠을 자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러니 자신의 피곤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식욕과 수면욕에서 자유롭다니. 새삼 마왕이 저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게 실감이 났다.
“종일 잠만 자면서 무슨.”
“하.”
그가 헛소리하지 말라는 듯 쏘아붙이자 셀로니아는 기가 차 헛웃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정곡을 찔렸기에 모른 척하며 차 한 모금을 들이켰다.
아침이라 그런지 음식이 넘어가질 않았다. 주방장이 애써 만들어 준 아침 식사가 담긴 접시는 처음 내온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그의 앞에 놓인 접시는 거의 다 비워져 있었다.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 * *
사람들은 알까?
기억을 잃은 마왕을 상대하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그건 마치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햇병아리를 가르치는 것과도 같았다.
“저건 뭐지?”
“기사들이요. 훈련받고 있는 거예요.”
몇십 분째 이어진 질문에 셀로니아는 지친 얼굴로 답했다.
그나저나 사람한테 저거라고 부르다니.
기억은 없어도 제 버릇 못 고친 게 확실했다.
“기사? 저딴 게? 하. 검을 쥔 것 좀 봐라. 형편없다.”
그는 목검을 휘두르고 있는 기사들을 보며 기가 차다는 듯 팽 하고 코웃음을 쳤다.
오……. 묘하게 짜증 나는데?
그들은 공작저의 기사들이었다. 그녀는 지금 기사들의 훈련장을 지나던 참이었고.
그런데 그가 공작저 기사들의 실력을 신랄하게 까 내리니 짜증이 날 수밖에.
“당신보단 잘하는 거 같은데요.”
“보여 줘?”
욱해서 던진 말을 그가 거침없이 받았다.
살랑이며 나부끼는 검은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얼핏 보이는 그의 눈동자는 자신만만히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