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24)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24)화(24/162)
<24화>
어느새 턱을 괸 셀로니아는 진지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길리안은 아버지의 사람이었다. 피네스트의 부길드장으로 아버지의 신임을 받고 있기도 했고.
만약 그가 아버지 밑에서 일하면서 다른 꿍꿍이나 혹 제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거라면?
명확한 건 아니었다. 추측일 뿐.
그러니 알아봐야겠지.
다짜고짜 사람을 음해할 순 없으니 당분간은 아버지께 알리지 않고 혼자서.
“아, 아가씨!”
“엘라?”
생각을 정리하고 일어서려는데 밖에서 저를 부르는 엘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아함도 잠시, 길리안을 만나는 자리까지 쫓아오려는 마왕을 막기 위해 그의 곁에 엘라를 두고 온 게 생각났다.
무언가 야단났구나 싶은 마음에 셀로니아가 황급히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크, 큰일 났어요! 루베우스 님이 야수님한테……!”
엘라가 아연실색한 얼굴로 복도를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셀로니아는 곧장 달려 나갔다.
* * *
길리안인지 뭔지를 만나러 쏜살같이 사라진 셀로니아를 기다리며 그는 등나무에 기대어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선 우렁찬 기합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그는 선선한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기합 소리가 나는 곳을 삐딱하게 바라보았다.
그녀가 기사들이라고 말했던 자들이 한 사람의 구령에 맞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쯧.”
그는 맛없는 걸 먹은 사람처럼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혀를 찼다.
자신이 아는 건 없지만, 저게 잘못됐다는 건 지나가는 개미가 봐도 알아챌 것이다.
보기만 해도 한숨만 나오는 그들의 검술에 그는 그냥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봐.”
그러고는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할 일 없이 돌멩이로 땅을 파고 있는 여자를 불렀다.
매일 셀로니아의 곁에 붙어 있는 시종이었다. 그녀가 저 여자를 엘라라고 불렀던가.
“예, 예?! 저요?”
화들짝 놀란 엘라가 삑사리를 내며 답했다.
그도 그럴 게 그는 공작저에서 지낸 지 일주일째였으나, 한 번도 셀로니아 외의 다른 누구에게 말을 건 적이 없었다.
셀로니아와 늘 함께하는 엘라에게도 말이다.
그러니 그의 질문 폭격을 오롯이 감당하는 건 셀로니아뿐이었다.
“그래. 너.”
“헙……. 무, 무슨 일이신지…….”
엘라가 급히 돌멩이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배가 고프신 건가요? 식사 차리라고 할까요?”
엘라가 확신하며 손뼉을 쳤다.
늘 아가씨께 함께 식사하자고 닦달하니 이번에도 배가 고프셔서 그런 거라고.
“아니.”
그러나 그는 식사할 생각 따윈 없었다.
구태여 뭘 먹은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식사라는 행위 자체는 그에게 있어 매우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꼬박 세 번을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서 음식을 집어 먹는 행위라니.
그러나 그가 계속 셀로니아와 함께 식사하기를 고수한 건, 그저 그 자리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갓 내온 음식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와 식기끼리 부딪혀 나는 작은 달그락 소리.
그리고 가끔 가다 가만히 있노라면 손이 없냐 발이 없냐 잔소리를 하면서도 제 접시에 음식을 올려 주는 그녀까지.
그 모든 게 어우러진 자리가 좋아 놓치기가 싫었을 뿐이었다.
“네 아가씨는 언제 오지.”
“아가씨요? 음 아마 곧 오실 거예요. 길리안 님과는 늘 오래 만나시진 않으니까요.”
“다시 땅 파라.”
그는 원하는 대답을 들었기에 미련 없이 엘라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그런데요, 정말 기억이 없으셔요?”
“…….”
“아무것도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하지만 엘라는 이때다 싶어 궁금했던 것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기억이 없다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막막하고 막 그러나요?”
“야.”
“엄청 답답하겠죠? 어떻게…… 너무 힘드시겠어요. 그런데 저 기억상실증 걸린 사람 처음 봐요!”
“너 좀……!”
옆에서 쫑알대는 엘라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그가 소리를 높이려는 순간.
“귀공, 또 보는군요.”
다른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고개를 돌리니 일전에 한번 봤던 얼굴이 놓여 있었다.
“루베우스 님을 뵙습니다.”
엘라가 루베우스를 알아보고 허리를 꾸벅 숙였다.
루베우스 시드.
공작저의 기사단을 이끄는 단장으로 며칠 전에 그가 셀로니아와 공작과의 식사를 가졌을 때 함께 있던 자였다.
“그래. 공녀님은 어디 가시고 여기 있지?”
“잠시 손님을 만나러 가셨어요. 저는 귀빈분과 함께 있으라고 하셔서요.”
“그렇군. 귀공, 훈련받는 것을 구경 중이셨습니까?”
루베우스가 시선을 돌려 멀거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루베우스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딱히.”
“그렇습니까? 아까부터 빤히 보시길래 검술에 관심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별로.”
그는 시큰둥하게 단답으로 일관했다.
루베우스인지 뭔지라는 이자는 그저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게다가 묘하게 저 눈이 거슬렸다. 뱀처럼 가는 실눈 속에 숨겨진 자줏빛 눈동자가.
그가 딱 싫어하는 족속들이라 그냥 무시하곤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아직 저택에 머무르고 있는 줄 몰랐습니다.”
루베우스가 자신을 무시하는 그를 향해 날이 선 목소리를 내었다.
그 속엔 빈정거림이 담겨 있었다.
그걸 느낀 그는 한쪽 입꼬리를 픽 올리며 루베우스에게 계속해 보라는 듯 턱을 까딱였다.
“아무리 공작님께서 기한 없이 머물다 가라고 하셨어도 염치를 아는 자라면 진작 나갔을 겁니다.”
“염치?”
그의 한쪽 눈썹이 삐딱하게 올라갔다.
염치? 그건 또 무슨 말이지?
“그……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같은 거예요.”
그가 말을 못 알아들은 걸 눈치챈 엘라가 까치발을 들어 허공에 있는 그의 귀를 향해 작게 속삭였다.
그동안 본 그는 제 아가씨께 하나부터 열까지 시시콜콜 모든 걸 물어보곤 했으니까.
그럼에도 그는 알아듣지 못하였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그딴 게 뭔데.
“하. 공작님께서 당신을 귀공이라 불러 주시니 정말 뭐라도 된 줄 아십니까.”
루베우스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치며 인상을 굳혔다.
루베우스는 처음부터 이 작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밤의 야수?
그런 말도 안 되는 별칭으로 불린다 한들 이 남자는 뒷골목의 시정잡배였다.
그런데 감히 공녀님의 은인이랍시고 공작저에 머물다니. 그것도 일주일째 공녀님의 곁에 딱 붙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면 닳을까 만지면 깨질까 아끼고 또 아껴 애타는 마음으로 몰래 쳐다만 보았던 그의 꽃이었다.
고고하게 피어난 한 떨기의 수선화처럼 연약하고도 가녀린 사람이자 넘볼 수도 없는 사람이었기에 그저 마음속에만 품고 있었는데, 제깟 게 감히.
“마음 약한 공녀님을 꾀어내어 기생하려는 모양인데 어림없다.”
어느새 본심을 드러낸 루베우스가 그에게 바짝 다가가 그르렁댔다.
“너는 그저 길거리를 떠돌던 비렁뱅이고, 운이 좋아 공작저에서 머물게 된 식충에 불과하다.”
더는 숨기지 않기로 작정한 것인지 그를 노려보는 루베우스의 표정에는 혐오가 깃들어져 있었다.
“당장 공작저를 떠나. 더는 공녀님 곁에 알짱대지 말고.”
“싫다면?”
몹시도 같잖은 루베우스의 행동에 그가 어느 때보다 재밌다는 듯 씨익 웃었다.
경고에도 동요 없는 그의 웃음은 루베우스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으득 이를 갈던 루베우스의 자줏빛 눈동자에 순간 졸렬한 빛이 스쳤다.
“힘깨나 쓴다고 들었는데, 그럼 정식으로 나와 결투를 하는 게 어떤가. 내가 이기면 너는 즉시 공작저에서 나가라.”
“내가 이기면? 네가 꺼질 건가?”
“하…….”
말도 안 되는 말에 루베우스가 콧방귀를 꼈다.
그는 공작저의 기사단장이었다.
실력으로만 따진다면 이안 체르빌과 견줄 정도였다.
아무리 그가 자신보다 체격이 좋다 한들 그는 뒷골목에서 활개를 치는 한낱 무뢰한이었다.
그런 자와 자신은 격이 다르고 차원이 달랐다.
“대답.”
그는 어느새 웃음기가 가신 얼굴로 루베우스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좋다.”
“시작에 앞서 내가 조언 하나 해 주지. 쪽팔리고 싶지 않다면 보는 눈들은 미리 치워 두는 게 좋을 거다.”
그는 자신보다 훨씬 낮은 곳에 위치한 루베우스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그의 붉은 눈이 염화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꽤 진심으로 상대해 줄 생각이었다. 저놈이 말끝마다 셀로니아를 언급하는 게 묘하게 거슬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