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25)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25)화(25/162)
<25화>
“꺄아악!”
“마,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훈련장에 가까워질수록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더욱 커졌다.
셀로니아는 멈추지 않고 내달렸다.
이미 저 멀리 훈련장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빼곡히 모여든 기사들과 하인들로 인해 뭐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건지 보이질 않았다.
‘내가 그렇게 부탁했는데 기어코!’
셀로니아는 치를 떨며 훈련장에 다다르자마자 모여 있는 인파를 헤쳤다.
“누구……! 아, 아가씨!”
밀쳐진 하인이 성질을 내다 셀로니아를 발견하곤 냅다 허리를 숙이며 몸을 뒤로 물렸다.
그 소리를 들은 하인들이 너도나도 놀라 자리를 비키자 홍해처럼 양쪽이 갈라지며 자리가 났다.
가려져 있던 연무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흙으로 다져진 커다란 연무장 한가운데 마왕과 루베우스가 서 있었다.
아니 서 있는 건 마왕뿐이었다.
루베우스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두 동강 난 검을 든 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심지어 두 사람이 맞댄 건 목검도 아닌 진검이었다.
“이봐요!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경악한 셀로니아가 한달음에 두 사람에게 달려갔다.
그녀는 주저앉아 있는 루베우스 앞에 서서 두 팔을 벌렸다. 마치 마왕으로부터 루베우스를 보호하려는 것처럼.
“…….”
그 모습을 본 그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으나, 셀로니아의 눈엔 뵈는 게 없었다.
“당장 그 검 내려요! 당장!”
“고, 공녀님. 저는 괜찮습니다, 윽.”
“시드 경! 괜찮아요?”
그를 향해 분노하며 소리치던 그녀는 들려오는 앓는 소리에 얼른 뒤로 돌았다.
“으윽…….”
그러자 루베우스가 과장되게 고통스러워하며 자신의 왼쪽 어깨를 감싸 쥐었다.
놀란 셀로니아가 얼른 자세를 낮춰 루베우스를 살폈다. 베인 상처나 피가 보이진 않았으나 어딘가 잘못된 게 분명했기에 당장 소리쳤다.
“빨리 시드 경을 의원에게 데려가! 어서!”
벼락같은 그녀의 불호령에 어안이 벙벙하던 기사들이 정신을 차리며 우르르 달려왔다.
“다, 단장님, 걸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괜찮다. 부축만 해 다오.”
기사들이 루베우스를 부축하며 연무장을 빠르게 벗어났다.
하인들도 눈치를 보며 재빠르게 흩어졌다.
사람이 북적하게 모여 있던 연무장은 한순간 썰렁해졌다.
셀로니아는 싸늘한 눈동자로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내가 그렇게 어려운 부탁 했어요?”
“……너.”
“당신 도와줄 테니 내 주변 사람들 건들지 말라고 한 게 그렇게 어려운 부탁이었냐고.”
화가 난 셀로니아는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애초에 이 일을 승낙하면 안 됐던 건데.
한 달만 버티면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위험한 이 남자를 곁에 두기로 한 것은 커다란 실수였다.
“그 말을 한 지 고작 얼마나 지났다고……!”
“먼저 싸움을 요청한 건 그놈이야.”
“하…….”
그의 납득되지 않는 변명에 셀로니아가 거친 손길로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자신이 내건 조건을 그는 수락했고, 그렇담 이런 결투조차 받지 말아야 했다.
안일하게도 그와 지내는 동안 조금은 괜찮겠지 싶었다.
매일 식사를 요구하는 것도, 무엇이든 물어보는 것도 귀찮았지만,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했다.
안쓰러워해야 할 상대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기억을 잃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로 있는 그에게 어쩔 수 없는 동정심도 생겼다.
밤마다 달뜬 숨을 내쉬며 식은땀을 흘리면서 절박하게 제 손을 찾아 매달리는 모습이 가엽기까지 했다.
“내가 미쳤지.”
셀로니아는 스스로가 겪었던 감정에 자조했다.
허탈함과 함께 후회가 물씬 밀려왔다.
괘씸했다. 모든 걸 다 알면서도 그를 도와주고 있는 저를 바보로 만드는 것도 모자라 멋대로 구는 그가.
하지만 그럼에도 이 인간을 내치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도 짜증이 났다.
“당장 나가라고 하고 싶은데, 나는 당신이 안 나갈 걸 알거든. 또 협박하겠지.”
“…….”
“난 무섭거든요. 당신이 내 사람들 해칠까 봐. 그래서 약속을 어긴 건 당신인데 나는 도와줄 수밖에 없거든. 그러니 한 달 뒤에 나간다는 말이라도 지켜요. 나도 그때까진 약속한 거 지킬 테니까.”
얼음장보다 시린 푸른 눈동자가 그에게서 비껴 나갔다.
셀로니아는 울컥 차오르는 두려움과 후회를 삼키며 그를 지나쳐 연무장을 벗어났다.
그녀가 사라진 연무장.
망부석처럼 우두커니 서 있던 마왕은 쥐고 있던 검을 땅에 던졌다.
챙그랑.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검이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팔을 타고 흘러내린 피가 긴 손가락을 지나 아래로 떨어졌다.
뚝, 뚝.
그가 서 있는 자리에 핏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저, 괜찮으세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지켜보고 있던 엘라가 그를 향해 조심스레 다가갔다.
“가 봐.”
그러나 그는 딱 그 한마디만 남기곤 자리를 벗어났다.
그 뒷모습이 조금 쓸쓸해 보여 엘라는 쉽사리 걸음을 떼기가 힘들었다.
* * *
그날 저녁.
셀로니아는 당연하게도 다이닝룸에 내려가지 않았다.
그도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고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자정엔 어김없이 찾아오겠지.
“하아…….”
깊은 한숨과 함께 셀로니아가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는 거지?
한 달이 지나려면 아직 3주가 더 남았다.
‘이대론 안 돼.’
그는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다. 언제고 또 이런 위험한 행동을 일으킬지 몰랐다.
다행히 그녀가 빨리 도착해서인지 걱정했던 것과 달리 루베우스의 상처는 경미했다.
베인 상처는 없고, 어깨가 빠졌으나 잘 맞췄고, 멍과 붓기도 찜질을 해 주면 빨리 아물 거라고 했다.
아버지는 오늘 일에 대해 싸움이 아닌 정식 경합이자 결투였으므로 문제 삼지 않겠다 하였다.
오히려 아버지는 루베우스에게 실망한 눈치였다.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을 가진 공작가의 기사단장인 루베우스가 뒷골목을 전전하던 밤의 야수에게 진 꼴이었으니까.
기사단장의 자질을 운운하기까지 하셨으니 조만간 공작저의 기사단장이 바뀔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건 누가 결투해도 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가지고 있는 힘이 같질 않았다.
마기를 쓴 것 같진 않았으나, 그곳엔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엄청났다.
만약 그가 예전처럼 눈이 돌아 이성을 잃고 마기를 꺼내 들었다면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모조리 휩쓸려 다 죽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가 기억이 없다 한들 그녀는 그를 직접 겪어 봤기에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셀로니아는 테이블에 차려진 저녁 식사에 손도 대지 않은 채 뚜껑을 덮어 버렸다. 복잡한 마음에 입맛이 없었다.
부쩍 다가온 겨울로 인해 해는 금방 떨어져 바깥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곧 있으면 자정이 찾아올 거다.
정말 그가 꼴도 보기 싫었으나, 봐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도 답답했다.
“아가씨…….”
그때, 그녀의 요청에 따뜻한 차를 내온 엘라가 쭈뼛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엘라, 나중에.”
머리가 지끈거려 엘라와 대화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가씨, 잠시만 안 될까요? 꼭 들어 주셔야 하는 얘기예요.”
웬만해선 이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 엘라라 셀로니아는 하는 수 없이 시선을 들었다.
엘라는 입술을 움찔거리며 우물쭈물하다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야수님 말이에요. 아까 결투하다 다치셨어요.”
“잘못 봤겠지.”
셀로니아는 그럴 일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자가 다쳤을 리가 있나. 그랬다면 루베우스의 몸은 여기저기 검상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아니에요! 제가 똑똑히 보았어요. 팔을 베였는지 피가 났어요.”
엘라가 황급히 반박했다. 진심이라는 듯 갈색 눈동자엔 한 치의 거짓도 보이질 않았다.
‘다쳤다고?’
셀로니아는 무언가 혼란스러웠으나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와의 약속에도 집안 식솔을 공격한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야수님이 루베우스 님이랑 결투를 하게 된 건 정말로 루베우스 님이 먼저 싸움을 거셨기 때문이에요.”
“알아.”
“그럼 그것도 아셔요? 루베우스 님이 야수님한테 염치가 없다면서 비렁뱅이고 식충이라고 했어요.”
“……뭐?”
“물론 야수님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못 알아들으신 것 같지만…….”
엘라는 확신했다.
루베우스가 비렁뱅이, 식충이란 단어를 내뱉었을 때 야수님의 얼굴은 염치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와 똑같았으니까.
알아듣지 못해서 그냥 넘어간 게 분명했다.
“엘라, 잠깐, 잠깐만.”
“그리고 아가씨 옆에서 알짱대지 말고 꺼지라고…… 야수님이 싫다고 하니까, 정식으로 결투해서 자기가 이기면 야수님보고 공작저에서 나가라고 했어요.”
“…….”
“너무 치사해요! 루베우스 님은 기사단장이시잖아요! 야수님은 기사도 아닌데!”
셀로니아의 만류에도 엘라는 모든 걸 지켜본 사람으로서 느낀 감정과 속엣말을 마치 울분을 토하듯 계속 뱉어 내었다.
결과적으로 그가 승리했다지만, 루베우스의 결투 신청은 정말로 야비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기사도 아닌 사람에게 본인의 주 종목인 검으로 맞붙자 하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지.
애초에 승패가 정해진,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다.
그걸 엎어 버린 게 야수님이라, 엘라는 그의 편이 될 수밖에 없었다.
“…….”
갑자기 쏟아진 진실에 셀로니아는 정신이 어지러웠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내야 하는 게 있었기에 바로 정신을 차렸다.
“엘라.”
“네.”
“처음부터 연무장에 있던 기사들과 하인들을 데려와.”
“네에!”
엘라가 활짝 핀 얼굴로 빠르게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