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26)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26)화(26/162)
<26화>
* * *
모두가 잠든 시각. 자정이었다.
늘 그렇듯 소파에 앉아 그를 기다리던 셀로니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늦는 건지 오지 않는 건지. 그가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그녀는 아까 기사들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저 평범한 결투였습니다.’
기사들은 하나같이 묻는 말에 그리 답했다.
혹시나 싶어 그 자리에 있던 하인들에게도 질문하니 돌아온 대답이 달랐다.
‘제가 부단장님과 기사님들께서 하시는 얘기를 엿들었는데요, 오히려 그분은 검을 쥐었어도 검을 사용하지 않더래요. 마치 다치게는 하지 않으려는 것처럼요. 만약 진심으로 상대했다면 여기저기 다 베였을 것 같다고요.’
‘저는 처음부터 봤는데요, 밀리기만 해서 화가 났는지 단장님께서 갑자기 그분께 흙을 뿌리시더라고요? 그 바람에 살짝 베이셨던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은 순간, 셀로니아는 자신이 너무나 과거에 매몰되어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왜 안 와.”
그래서 확실히 알아보고자 했는데 그가 오질 않고 있었다.
초조함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발을 구르다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안해서 그런 건지 몰라도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조금 염려가 되었다.
아무래도 방에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문을 열려고 하는데.
“으윽, 잡아…….”
등 뒤에서 인기척과 함께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셀로니아는 얼른 뒤돌아 그에게로 다가갔다.
“괜찮아요?”
바로 손을 내밀자 바르르 떨리는 그의 기다란 손가락이 마치 자석처럼 제 손에 달라붙는다.
그는 절박하게 제 손가락 사이사이에 본인의 손가락을 얽으며 꽉 붙잡았다.
어떤 경우에서라도 놓을 수 없다는 듯.
셀로니아는 그의 옆에 자리했다.
그는 이젠 지정석이 되어 버린 그녀의 방 한가운데 놓인 벨벳 소파에 축 늘어진 몸을 기대고 있었다.
오기 전까지 고통이 그를 좀 먹었는지 며칠 동안 본 모습 중에 가장 괴로워 보였다.
크게 울렁이는 목울대 위로 너무 꽉 깨물어 빨갛게 부풀어 오른 입술은 곧 피가 터져 나오기 일보 직전이었다.
촉촉이 젖은 눈가 속 고통에 찬 눈동자는 풍랑을 맞은 배처럼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혹시 아까 일 때문에 고민하다 고통을 참지 못하고 뒤늦게나마 저를 찾아온 것일까.
어쩐지 미안해져 셀로니아가 고개를 푹 수그리자 시야에 그의 오른쪽 팔소매가 찢어져 있는 게 들어왔다.
“……정말 다쳤어요?”
물음에도 그는 답이 없었다.
셀로니아가 번쩍 고개를 들자,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진득한 안광이 날카롭게 저를 보고 있는 게 보였다.
안색이 돌아온 얼굴과 함께 그의 숨은 규칙적으로 변해 있었다.
“그건 왜 묻지.”
그가 왼쪽 입매를 올리며 비아냥거렸다.
달빛을 등진 채 음영이 드리운 그의 얼굴은 평소 때보다 사나웠다.
그 눈빛이 너무도 매서워 셀로니아는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키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검을 쓰지 않았어요?”
“…….”
“정말로 루베우스가 다칠까 봐 검을 쓰지 않았어요?”
“하, 그래.”
그녀가 무조건 대답을 듣겠다는 듯 끈질기게 재차 물어오자 그는 헛숨과 함께 귀찮다는 듯 툭 내뱉었다.
그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싸늘했다. 이제 와 그걸 물어봤자, 또 멋대로 오해할 게 뻔했으니까.
이런 건 꽤 익숙했다.
외모와 체격 때문인지 몰라도 무언가를 들고 있기만 해도 종종 오해를 받곤 했다.
무서워서 말 한마디도 걸지 못하면서도 저를 힐끗힐끗 흘겨보는 눈동자들엔 의심이 서려 있었다.
기억이 없다 한들, 아무것도 모른다 한들 그런 부정적인 감정까지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지독히도 남과 세상에 관심이 없던 그였기에 상관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조금 살 만해져서일까?
이 여자가 오해하는 순간 왜 그렇게 짜증이 나던지.
“……왜요?”
“장난하나? 그깟 놈이 뭐라고.”
그가 검을 쓰지 않고 몸으로만 밀어붙인 것은 루베우스가 잔챙이여서 그런 것도 있었으나, 셀로니아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그녀의 주변 사람들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겠다는 약속했었으니까.
약속한 대로 그녀는 밤마다 제 손을 잡아 주고 있으니, 자신도 그 정도는 지켜 줄 만했다.
“……미안해요.”
“뭐?”
그때였다. 들려온 말이 뜻밖이라 그의 붉은 눈이 평소보다 조금 더 크게 뜨였다.
한껏 풀이 죽은 목소리는 무척이나 떨리고 있었다.
뭐지?
그는 자신의 손을 꼭 붙든 채로 어둡게 가라앉은 푸른 눈동자를 들여다보였다.
아까와는 달랐다.
멋대로 몰아붙이고 쏘아 대던 가시 같은 푸른 눈동자가 아니었다.
순간, 기분이 울렁였다.
이건 무슨 기분이지? 다시 들으면 알까?
“다시 말해 봐.”
“미안해요. 제가 오해했어요.”
“다시.”
“진심으로 사과할게요.”
셀로니아는 그의 요구에 몇 번이고 사과했다. 대답을 할 때마다 진심은 더 견고해졌다.
그가 마왕이라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던 최종 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마음이 드는 건…… 그녀의 사과는 마왕이 아닌 며칠 새 겪은 ‘그’라는 사람을 향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구원자들을 죽을 때까지 몰아붙이던 오만하고 자비 없던 마왕이 아닌, 매일 함께 식사를 하던 ‘그’ 말이다.
그는 정말 과거에 자신이 알던 마왕과는 달랐다.
그리고 저와의 약속을 위해 검에 베이면서도 루베우스를 베지 않았다.
“…….”
그는 자신을 담고 있는,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푸른 눈을 보며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스치기만 해도 지레 겁을 먹고 뜻 없이 하는 다른 이들의 사과와 달리, 그녀의 사과는 어쩐지 종일 들어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로 퍽 마음에 들었다.
분명 저녁 내내 목구멍이 돌덩이가 들어찬 것처럼 꽉 막혀 답답했다.
자정에 그녀를 찾아가는 일에 망설임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샌가 그 답답함은 눈 녹듯 사라져 있었다.
이유는 그도 알진 못했다.
“왜 말 안 했어요.”
“네가 내 말을 듣기나 하던가?”
“……그것도 미안해요.”
맞는 말이라 셀로니아가 바로 수긍하며 사과했다.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던 건 자신이었으니, 할 말이 없었다.
너무도 당연하게 사람만 보고 멋대로 오해했다. 그는 위험한 사람이었고, 또 위험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자신과 한 약속 따위는 길가의 돌멩이 취급하듯 하찮게 여길 거라 완신했다.
그 약속이 지켜질 거라 믿지 못한 건 자신이었는데 말이다.
“팔 치료해 줄게요.”
셀로니아는 허리를 숙여 테이블 밑에 있던 구급상자를 꺼내 들었다.
이제는 상태가 괜찮아진 그의 손을 놓고 의료용 가위로 찢긴 그의 소매를 잘랐다.
그러자 가늘고 길게 난 상처가 드러났다. 그대로 방치해 피가 이미 딱딱하게 굳어 살갗에 붙어 있었다.
그녀는 우선 소독약을 적신 솜으로 상처 부위를 닦아 내었다.
“미안하다고.”
“네. 진심이에요.”
“정 미안하면…….”
“사과는 진심인데, 저 정말 모른다니까요?”
또 자신에 대해 실토하라는 말이 나올 거라고 예상해 셀로니아가 먼저 대답했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제가 아는 그에 대해 말하라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가 한 말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이제부터 나를 이봐요, 당신, 그쪽, 저쪽으로 부르지 말고 이름으로 불러.”
“이름이요?”
“그래.”
연무장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그가 와락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오해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녀가 그놈에겐 이름을 부르고 저에겐 ‘이봐요’라고 했던 것이 몹시도 언짢았다.
그 순간만큼은 그도 이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종종 사람들이 그에게 이름이 무엇이냐 물을 때 딱히 지을 필요도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당신 이름이 뭔데요?”
상처를 치료하고 있던 셀로니아가 당황하여 멈칫했다.
이름이라니. 기억이 돌아온 걸까?
두려운 마음에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도 그의 대답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네? 이름으로 부르라면서요.”
“그래. 하나 지어.”
“내가요?”
“그래. 네가요.”
갑작스러운 작명 요구에 셀로니아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는 이 남자의 진짜 이름을 알지 못했다.
원작에서도 그는 대부분 마왕이라고 지칭될 뿐 딱히 이름으로 불리질 않았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그래. 생각해 보니 마왕으로만, 그의 말대로 대명사로 불리는 건 조금 서글픈 일일지도 모르겠다.
미안하기도 했으니까 이름을 지어 주려고 머리를 굴려 보았다.
그런데 아까부터 자꾸 한 이름만 떠오르고 다른 이름은 생각나질 않았다.
결국 셀로니아는 고심 끝에 눈치를 보며 슬쩍 입을 열었다.
“……탄 어때요?”
“탄?”
그는 그녀의 붉은 입술에서 흘러나온 이름을 되뇌었다.
“네. 간결해서 부르기도 쉽잖아요. 어울리기도 하고.”
셀로니아는 나름 장황한 이유를 덧붙였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게 그 이름뿐이었으니까.
“어울리나?”
그가 어울린다는 말에 솔깃한 얼굴로 물었다.
“그쵸. 어울리죠.”
끄덕끄덕.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탄’은 ‘사탄’에서 따온 거니까…….
아무래도 그와 어울릴 수밖에.
“그래. 그럼 이제부터 그렇게 불러.”
탄은 그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