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27)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27)화(27/162)
<27화>
“나가 봐.”
“그, 그럼 쉬십시오, 단장님.”
말단 기사가 살기가 형형한 분위기를 읽고는 눈치를 보며 후다닥 단장실을 나갔다.
기사가 나가자 찾아온 고요한 적막 속에 알싸한 알코올 냄새가 풍겼다.
아침부터 얼마나 퍼부어 댄 건지 루베우스의 코와 두 뺨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거의 반쯤 풀린 동공은 이채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죽은 동태 눈깔처럼 탁해진 자줏빛 눈동자가 스산했다.
재발 방지 차원에서 어깨에 붕대를 감은 채 집무를 보는 의자에 앉아 있던 루베우스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손에 쥔 언더락 잔을 냅다 던졌다.
퍽 소리를 내며 벽에 맞고 깨진 잔이 사방에 술을 튀기며 산산조각이 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독한 양주가 집무실의 하얀 벽에 흔적을 남기며 흐르자 바닥에 깔린 카펫이 축축이 젖어 갔다.
“감히, 감히……!”
루베우스가 부들부들 떨며 두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치욕스러운 어제 일로 온갖 수모를 겪었다.
어제, 소식을 전해 들은 갤로웨이의 호출에 그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공작님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그러나 공작님은 사람을 불러 놓고도 마치 없는 사람 취급하며 한동안 서류를 처리할 뿐이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린 지 몇십 분이 흘렀을까.
“공작가의 기사단장이 밤의 야수에게 지는 꼴이라니. 위신이 말이 아니군.”
실망이 역력한 눈빛과 함께 들려온 공작의 말에 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이후 갤로웨이는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한 눈동자로 그를 흘겨보더니 세 달 감봉의 징계와 함께 축객령을 내렸다.
백작가의 차남으로 베스인 공작저의 기사단장이 되기까지 정말로 무수한 노력을 했다.
뼈와 살을 깎는 노력도 모자라 공작가의 모든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살아온 지 십몇 년이었다.
그 정을 봐서라도 갤로웨이는 자신을 내치진 않을 것이다.
단장의 자리는 지킬 수 있을 테고, 베스인 공작가 기사단의 명망을 위해서라도 공작님은 분명 소문이 나지 않게 손을 써 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어제의 결투로 기사단 내에서의 수군거림은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일이었다.
분했지만 지금은 조용히 넘어가겠다고 다짐했건만, 아침에 그를 찾아온 셀로니아로 인해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술을 들이부었다.
“시드 경, 얘기 들었어요. 두 사람이 어떤 내기를 했는지도요. 없던 일로 할 테니 그가 공작저에서 지내는 동안 다신 이런 일 벌이지 마세요.”
정나미가 떨어진 푸른 눈이 그가 변명할 시간도 주지 않고 멀어졌다.
그 순간 그가 품고 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비틀리기 시작했다.
결국 공녀님은 그 남자를 옆에 끼고 있겠다는 뜻이었다.
왜 그자를 감싸지? 마치 마음이 있는 것처럼.
공작도 성기사도 드래곤도 아닌 보잘것없는 천민 따위라니, 대체 왜!
이안 공작과의 약혼 소식에 그는 품고 있던 마음을 고이 접으며 납득했다.
이안은 베스인 공녀의 걸맞은 상대였으니까.
토벌에서 돌아온 공녀님이 이안이 아닌 성기사나 드래곤을 택했더라도 이해했을 것이다.
네 사람은 모두의 인정을 받는 세상을 구한 구원자였으니까.
그런데, 지금 그녀의 곁에 있는 건 그 세 사람이 아닌 보잘것없는 비렁뱅이였다.
단순히 은인으로 대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매일같이 식사를 함께하고 매일 붙어 있었다.
“제깟 놈이 감히 누구를……!”
그깟 놈에게 공녀를 내주기 위해 접었던 마음이 아니었다.
실력으로 여기까지 올라왔으나, 그녀에게 닿기엔 신분의 장벽이 너무도 드높았다.
손에 닿을 수 없이 고고해서 멀리서나마 지켜보기만 한 게 다였다.
그런 놈에게조차 마음을 내어주실 줄 알았다면 이렇게 가만히 손 놓고 보고만 있지 않았을 거다.
“그 새끼…….”
루베우스는 어제 검을 맞대면서 자신과는 달리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건방지게 웃고 있던 얼굴이 떠올랐다.
심지어 약 올리는 건지 검은 쓰지도 않고 그 거대한 몸으로만 밀어붙이는데, 수없이 단련해 온 자신이 뒤로 밀리기만 했다.
이 치욕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이대로 그깟 놈에게 빼앗길 수도 없었다. 그러려고 숨겼던 마음이 아니었으니까.
가만두지 않아.
그는 으득으득 이를 갈며 눈앞에 있는 술병을 잡아 올렸다.
걷잡을 수 없는 그의 질투와 경애는 완벽하게 뒤틀려 있었다.
셀로니아는 자신보다 더 나은 인간이 아니라면 아무도 곁에 둘 수 없었다.
* * *
오랜만에 치장을 한 셀로니아는 외출복을 입고 몬테라 거리로 향하고 있었다.
몬테라.
플래너건 제국에서 가장 큰 번화가이자 최대 상점 지구였다.
없는 게 없다는 그곳은 웬만한 소도시를 방불케 하는 큰 부지에 지어져 있었는데, 한가운데 놓인 천사의 분수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구획으로 명확하게 나뉘어 있었다.
북쪽은 그녀가 자주 가던 로블랑이 있는 곳으로 디저트와 식당들이 즐비한 먹거리 지구였다.
남쪽은 의상숍과 보석 상점이 들어선 부티크 지구였고, 동쪽은 수제로 만든 가구나 장식품을 파는 잡화 지구, 서쪽은 마법 용품들을 파는 마법 지구였다.
오늘 그녀가 가는 곳은 서쪽과 남쪽이었다.
어제 보았던 길리안의 양피지에 대해 알아보고 2주 뒤 있을 축하연에서 입을 드레스를 맞추기 위해서.
아무래도 양피지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으니 마법 도구가 아닐까 의심되었다.
셀로니아는 마차를 타고 이동해 몬테라 서쪽 출입구에서 내렸다.
출입구까지는 마차로 이동할 수 있지만 거리 안은 통행로가 좁아 마차는 진입할 수가 없었다.
“우와! 신기한 게 많아요!”
마차에서 폴짝 뛰어내린 엘라가 마법 지구만의 특색이 잘 드러난 거리의 모습에 휘둥그레진 눈으로 여기저기 구경하기 바빴다.
셀로니아도 말로만 듣던 마법 지구 방문은 처음이라 놀랍긴 매한가지였다.
가장 놀라운 점은 다른 지구들과 달리 마법 지구 거리 전체에 주먹만 한 마법 전구들이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지나는 거리 위에 떠 있는 전구들은 환한 대낮이라 빛이 꺼져 있었으나, 어둑한 저녁에는 빛이 들어와 거리를 환하게 밝혀 준다고 하였다.
밤거리를 비추는 전구들이라니. 분명 그 풍경은 장관이리라.
하지만 오늘은 대낮부터 돌아다녀야 할 만큼 바빴기에 볼 시간이 없을 듯했다. 시간이 난다면 꼭 저녁에 한 번 더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가씨, 아가씨. 야수님이랑 잘 해결하신 거죠? 아침 식사 때 보니까 평소처럼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던데요.”
“그게 화기애애했다고?”
셀로니아는 엘라의 말에 의문을 가지며 아침 식사 때를 떠올렸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그와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하지만 식사를 마치면 바로 나가 봐야 했기에 점심은 혼자 먹으라고 하니 그는 살벌하게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협상 까먹었어? 진짜로 저택이 불타는 걸 보고 싶은 모양이지?”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협박을 해 대는지 그가 뿜는 한기로 잔에 담긴 물이 얼 지경이었다.
그게 아니라고 일이 있어 나가 봐야 한다고 장황하게 설명을 하니 그제야 그가 눈에 힘을 풀었다.
“엘라, 너는 그 사람을 꽤 좋아하는 것 같아.”
그걸 화기애애한 걸로 보았다니.
셀로니아는 엘라가 정말 그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는 걸 어제도 느꼈다. 덕분에 오해를 풀었지만.
“물론이죠! 아가씨를 구해 주신 은인인걸요. 그리고 나쁜 사람 같지가 않아요.”
“어떻게 확신해?”
“정말 나쁜 사람은 단장님 같은 비겁한 사람인걸요. 그에 비해 야수님은 그냥…….”
“그냥?”
“조금 모자라지만 정정당당해요!”
칭찬이야?
욕인지 칭찬인지 분간이 안 됐으나, 두 주먹을 불끈 쥔 엘라의 표정을 보니 최고의 칭찬인 듯싶었다.
그래. 오히려 엘라처럼 아무런 편견 없이 그를 바라본다면 그는 오히려 좋은 사람 쪽에 속할지도 모른다.
그의 진짜 정체를 모른다면 말이다.
셀로니아는 본격적으로 엘라와 함께 마법 지구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한 곳, 두 곳, 세 곳, 네 곳.
들렀던 상점이 열 군데가 넘어섰지만 모두 허탕이었다.
“그런 상품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희한테 들어오는 물품 중엔 그런 건 없어요.”
모두가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헛수고인가 싶은 마음을 지우지 못하고 열두 번째 상점에 들어섰다.
“혹, 손바닥만 한 양피지에 마법진이 그려진 물품이 있을까요?”
“양피지요? 요즘은 양피지를 취급하지 않습니다. 아마 오래된 마법 같은데…… 저기 문에 은행나무가 그려진 위클란더 상점으로 가 보시겠어요? 거기 주인장은 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의 자포자기였는데 꽤 기꺼운 정보가 들려왔다.
“고마워요.”
“그런데, 저어…… 베스인 공녀님이시지요? 여기 사인 한 장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희 아이가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자기도 꼭 크면 치유술사가 될 거라면서, 하하!”
주인장인 넉살 좋게 너스레를 떨며 사인을 요청해 왔다.
셀로니아는 기꺼이 그의 아이를 위해 내밀어진 종이에 사인을 하고 상점을 나왔다.
“역시! 우리 아가씨셔!”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는 게 너무도 좋은지 방금까지만 해도 다리가 아프다고 울상이던 엘라의 얼굴에 꽃이 피었다.
셀로니아는 빙긋 웃으며 엘라에게 조금만 더 기운 내라는 말과 함께 두리번거렸다.
문에 은행나무가 그려진 상점…….
“찾았다.”
간판에 ‘위클란더’라고 쓰여 있는 가게로 한달음에 달려가 문을 열었다.
딸랑.
맑은 종소리와 함께 상점 내부가 드러났다.
상점은 꽤 오래된 곳인지 곳곳에서 세월감이 느껴졌다.
많은 손님이 오갔을, 칠이 반쯤 벗겨진 바닥과 얇은 실금이 간 벽, 선반 위 가장 높은 곳에 진열되어 있는 마법 물품들에는 뿌연 먼지가 쌓여 있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