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e Leads Were Stolen by the Extra RAW novel - Chapter (28)
엑스트라에게 남주들을 빼앗겼다 (28)화(28/162)
<28화>
“와, 되게 이상한 물건들이 많네요.”
엘라도 느꼈는지 아까와는 다르게 발을 내딛는 움직임이 조심스러웠다.
상점은 독특했다.
전구조차 오래됐는지 몇 초에 한 번씩 깜빡이는 전등으로 음산한 분위기가 풍기기까지 했다.
“이건 뭘까요? 물컹한 게 꼭 젤리 같아요.”
엘라가 선반 위에 놓인 분홍색 타원형의 두툼한 젤리를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말했다.
“글쎄. 처음 보는데.”
셀로니아도 엘라가 만지고 있는 물건을 유심히 보았다.
이곳은 정말 지금껏 지나온 상점들에서는 볼 수 없는 물건들이 수두룩했다.
“그건 고블린의 혀를 말려 만든 장식품이지요.”
그때, 등 뒤에서 낮게 쉰 목소리가 들려오자 엘라와 셀로니아가 동시에 화들짝 놀랐다.
“고, 고블린이요……? 아가씨 저 지금 고블린의 혀를 만졌대요…….”
엘라는 황급히 고블린의 혀에서 손을 떼며 울먹였다.
셀로니아는 속이 메스꺼웠다.
마물 숲을 지날 때 수없이 베었던 고블린이었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고 얼마나 악취가 나는지도 잘 알았다.
그런데 그 혀를 왜 장식품으로……. 미친 거 아니야?
“껄껄껄. 아주 희귀한 수집품을 모으는 사람들이 꽤 있지요. 가끔은 마물을 잡아 가둬 전시하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움찔 떨리는 셀로니아의 어깨만 보고도 생각을 읽었는지 주인장이 홀홀 웃으며 설명했다.
“마물을 잡아 전시한다고요?”
무슨 그런 악취미가 다 있나.
마물을 겪은 그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취미였다.
“힘과 재력을 과시하려는 게지요. 어서 오십시오, 베스인 공녀님.”
“…….”
셀로니아는 저에게 인사를 건네는 주인장을 빤히 보았다.
하얗게 샌 그의 머리카락은 얼마나 많은 세월을 견뎌 낸 사람인지 말해 주고 있었다.
곡선을 그리며 휘어진 주인장의 두 눈가 속에 그녀와 마찬가지로 푸른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지나온 세월의 힘인 걸까?
마치 현자 같은 그 눈동자는 바다처럼 깊고 찬란했으며 총명한 빛을 띠고 있었다.
두툼한 콧망울 옆으론 짙은 팔자주름이 움푹 파여 있었고, 턱엔 머리카락과 마찬가지로 하얀 수염이 길게 나 있었다.
굽은 등, 짚고 있는 낡은 지팡이까지.
뭔가 예사 기운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제국에 네 명의 구원자들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저는 위클란더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위클란더. 혹 제가 찾는 물건이 여기 있을까 해서요.”
“무엇이지요?”
“마법진이 그려진 손바닥만 한 양피지예요.”
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열댓 번이 넘게 했으나, 이번만큼은 느낌이 달랐다.
이곳엔 그녀가 찾는 물건이 있을 것만 같았다.
“흐음……. 마법진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찾기가 힘듭니다. 마법진이 그려진 마법 용품은 너무도 많습죠.”
“양피지 같은 종이에 그려진 용품도요?”
“그렇습니다. 어떤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지에 따라 용도가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그건 처음 안 사실이었다. 마법진에 따라 용도가 다르다니.
셀로니아는 마법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본래 셀로니아의 기억이 없으니까.
게다가 얼핏 본 거라 마법진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하게 기억해 낼 수 없었기에 물건이 있다 해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나았다. 그래야 어떻게든 조사를 해 볼 수 있을 테니.
“게다가 요즘은 잘 쓰지 않습죠. 양피지에 마법진을 그려 사용하는 건 아주 옛날에 쓰던 고전적인 마법입니다.”
그 얘기는 아까도 들었기에 셀로니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본론을 얘기했다.
“혹시 이곳에 제가 말한 물건이 있나요?”
“아마 없을 겁니다. 공녀님. 혹, 누군가 사용하는 걸 보신 겁니까?”
“네. 가지고 있는 걸 보았어요.”
날카로운 위클란더의 물음에 셀로니아는 쉽게 수긍했다.
물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찾으러 다니고 있는 것만 봐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질문이었으니까.
“흐음. 그렇담 그 사람은 무언가 숨기려 했을지도 모르겠군요.”
“숨겨요? 그게 무슨 소리죠?”
“지금은 잘 쓰지 않은 고전적인 방법을 쓰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저는 마법은 잘 몰라서요.”
“요즘은 휴대용 아티팩트에 마법진들을 미리 그려 둬 필요할 때마다 꺼내 사용하지요. 처음 한 번만 그려 두면 저장이 되어 복잡한 마법진을 다시 그리지 않고도 계속 사용할 수 있어요. 세상이 참 편리해졌습니다.”
위클란더의 말에 셀로니아는 지금까지 지나온 마법 상점에서 보았던 물건들을 기억해 냈다.
주먹보다 조금 작은 회중시계처럼 생긴 물건에 마법진을 저장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는데, 그게 지금 말하는 아티팩트였나 보다.
“그러나 편리한 대신 그 궤가 남습니다. 즉 흔적이 남지요. 조사하고자 한다면 그 사람이 무슨 마법진을 사용했는지를 다 알 수 있습지요.”
“아…….”
셀로니아는 주인장의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마탑에서 나온 아티팩트를 사용하면 편리한 대신 그 흔적이 남는다.
하지만 양피지에 직접 마법진을 그려 사용한다면?
종이는 불태워 없애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에 익명이 보장된다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길리안이 굳이 양피지를 사용한 것은 마법을 사용하는 걸 숨기려고 했다는 게 되었다.
‘대체 왜?’
그 마법진의 용도가 무엇이길래.
셀로니아의 머릿속은 복잡해졌으나, 단 하나의 생각만큼은 뚜렷하고 선명해졌다.
더는 길리안을 완벽히 신뢰할 수 없다는 것. 그의 진의를 알아내기 전까진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했다.
“마법진 밑에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은 용도가 여러 개이기 때문이겠죠?”
“껄껄껄. 맞습니다. 아마 가게에 공녀님이 원하시는 물건은 없지만 책은 남아 있을 겝니다.”
“책이요?”
“어떤 마법진을 그려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설명서지요. 원하신다면 찾아 놓겠습니다. 보다시피 가게를 정리한 지 오래되어 지금 당장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셀로니아는 마법 지구에 들어선 이후로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알진 못해도 그 책이 있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 며칠 뒤에 다시 올게요. 감사해요.”
“공녀님.”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엘라와 함께 상점을 나서려던 셀로니아는 위클란더의 부름에 뒤돌아섰다.
“혹 몸이 자주 아프시진 않으십니까.”
“몸이요? 아뇨. 괜찮은데, 왜 그러시나요?”
뜬금없는 질문에 셀로니아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다.
위클란더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주 본 눈동자가 워낙 맑아서일까. 셀로니아는 께름칙하다는 느낌보다 오히려 모든 것을 꿰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러십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항시 몸을 조심하십시오.”
의미를 다 알 수 없는 말이었으나, 배웅 같은 인사말에 셀로니아는 감사하다 말하곤 상점을 빠져나왔다.
“저분 정체가 뭘까요? 일반 상점 주인은 아닌 것 같아요.”
엘라에 말에 셀로니아가 공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 정체가 은퇴한 마법사, 이런 걸까?
“이제 부티크 지구로 가실 거죠?”
“그래. 그래야지.”
궁금증에서 벗어난 셀로니아는 엘라와 함께 남쪽으로 향했다.
* * *
불쾌한 냄새가 풍기는 판자촌.
군데군데 찢어진 천막과 허름한 판자로 만든, 집이라고도 할 수 없는 가건물들이 잡초가 무성한 공터를 채우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을 정도로 외진 위치에 있는 판자촌이었으나, 탄은 익숙하다는 듯 그곳에 들어섰다.
언제나 그렇듯 카페에서 받아 온 음식이 담긴 봉투를 들고서.
그가 들어서자마자 쓰레기를 모아 피워 둔 불을 가운데에 두고 모여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중 꾀죄죄한 몰골을 한 두 아이가 등 떠밀려 탄을 향해 다가왔다.
어른들은 여전히 지레 겁을 먹고서 석상이 된 것처럼 멀뚱하게 서서는 눈치만 봤다.
“에, 에밀리. 내가 받을게.”
소녀가 동행한 작은 여자아이를 뒤에 숨기며 주춤주춤 탄의 앞으로 다가왔다.
탄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무심한 눈으로 쥐고 있던 봉투를 순순히 소녀에게 넘겼다.
“가, 감사합니…… 히끅!”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봉투를 건네받은 소녀가 개미 소리를 내었다. 그마저도 온전히 내뱉지 못하고 딸꾹질을 했다.
“가 봐.”
사람들이 자신을 무서워하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기에 탄은 아이들에게 가 보라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두 아이가 기다렸다는 듯 꽁지 빠지게 그의 앞에서 달아났다.
어째 나날이 모여드는 사람들이 줄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으나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볼일도 끝났으니 미련 없이 뒤돌아선 그는 판자촌을 나서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지금쯤 그녀가 저택에 돌아왔으려나?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 아침에 그녀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이봐요. 그게 아니라…….”
“탄.”
“예? 아, 맞다. 그래요, 탄. 약속을 어기려는 게 아니라 볼일이 있어 나가 봐야 해서 그래요.”
점심을 함께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려는 그녀가 또다시 저를 ‘이봐요’라고 불러 정정해 주었다.
그 이후 그녀는 꼬박꼬박 저를 탄이라고 불렀다.
그것이 몹시도 흡족해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잡아야만 했다.
“탄.”
탄은 셀로니아가 부르던 것처럼 제 이름을 불러 보았다.
처음부터 제 것이었던 것처럼 그 이름은 낯익고도 부드럽게 입안에 휘감겼다.
“형님!”
그때, 멋대로 올라가던 그의 입꼬리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아래로 향했다.